조롱

백은선

서고 by 흰

죽어서도 죽고 싶은

나를

너희들은 천사라 부르지

죽은 천사는 벽에 갇혀 노래한다

천천히 부서지는 기억의 형상

잊히지 않는 푸른 손의 여인들

시간은 너무 많고 끝나지 않아

쇠구슬을 이 접시에서 다른 접시로

조심스럽게 옮겨 담는 손가락

좌푯값 꽃이 진저리 치며 시드는 동안

두 귀가 커지는 기분

견딜 수 없는 통증

깃털을 씹으며 인사해

풀 수 없는 수수께끼를 가지고 다닌다지

이 숲은 휘청이고 자꾸만 실족하네

천상의 노래를 오늘 밤

부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신이여

그렇지만 이 숲은 뒤집히고 우르르

터져 나오는 웃음

나는 태풍

태풍이 지나간 텅 빈 땅

이미 죽은 천사

죽고 있는 천사

죽어서 다시 태어난 천사

죽음의 바깥에서 죽음을 관전하는 천사

천사가 아닌 천사

천사였던 천사

죽어도 천사인 천사

천사뿐인

죽음

속에서 //천사//

나는 관망하고 다시 활강하고

숫자를 세고 아프고 웃고

인과 없이 다 죽는 노래를 만들지

모두가 천사라서

제일 슬픈 오늘 밤

너는 기쁘고

뜨겁고

멀어

이제 다시 공포를 불러올 것

시시하고 시시해

헛소리나 지껄이겠지

영혼

빛을 으깨 만든 망치

청력이 분실된 사물함 속 입 천 개

동시다발 중얼거리는

잠든 태내의 아이들이 꾸는 꿈의 총합

스크린 위로 쏟아지는 어둠과 어둠

어둠에 가까운 색

(끝없이)

(계속 끝없이)

가까이 와볼래?

끌어안을 수 있게

눈을 만드는 하늘 위의 존재가

구름을 부리는 커다란 손이

아픔을 몰라서 아픔을 줄 수 있다고

그렇게 믿자

나와 너는

하얗고 빛나는 상자 속에서 나란히 앉아

마주 보지 않고

가만히 흔들리고 훌쩍이고

마음에 파랗게 멍이 들고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칼을 꽂지

긴 칼날에 줄줄이 꿰인

천사들

파드득//날개//흔들 때

가장 밝은 것과 가장 어두운 것의

총합은 같다고

눈물에 눈물을 더하고

절벽에 절벽을 더해

상자는 가득 차

다 너 때문이야

나 때문이야

매일 견디지 매번 죽지

죄를 고백하는 밤마다

존재를 혼동하는

존재 너머의 파닥거림

그것은

*

더 이상 사랑을 믿을 수 없다면, 천사는 무엇에 복무할 수 있을까. 가능한 것은 접시를 뒤집어 구슬을 쏟는 일. 얼음 위에 눈, 얼음 위에 눈, 얼음 위에 눈. 다시 얼고. 다시 얼고. 다시 언다. 겹겹 쌓여가는 하얗고 빛나는 형상. 그것을 이해하려고 우리는 노래를 배웠지. 어떤 음률도 그곳에 가닿을 수 없네. 무수히 흩어지는 소리, 금속성의 소리. 거기서 내가 본 건 단지 슬픔 아니면 생, 탄생. 처음부터

세상에 슬픔이라는 말이 없었다면 우리는 슬픔을 모르고 살 수도 있었을까. 우리는 세 명의 아이를 낳아 돌보네. 커다란 손들. 커다란 손들. 예쁘고 아름답고 따듯한 것만 가르칠 거야.

*

내가 죽고 난 다음 너는 내가 된다

내가 죽고 난 다음 너는 내가 되었다

내가 죽고 난 다음 너는 나였다

정적이 가득한 도시의 밤

거대한 빌딩들

얼어붙은 뼈들

뼈아프다

뼈아프다

20141122

이것은 대본입니다. 유명한 영화감독 빈 헤르스 허가 꿈속에서 쓴 대본입니다. 그가 미처 만들지 못한 작품입니다.

우리는 ‘끝나지 않는 노래’라고

제목을 붙였습니다.

절대로 촬영할 수 없는 대본입니다.

천사들로 가득한 상자와

빛을 엮어 만든 빈 상자

서로를 혼동하는 두 사람

육 면 가득 카메라

찍는 동시에 상영합니다.

조금씩 어긋난 680개의 프레임이

수많은 창

세포처럼 화면 위를 흐르고

폭력을 기다린다.

사랑의 산란의 깃

엎드린 청력의 깃

어떤 장애는 읽을 수 없는 문자들로 가득하고

그 챕터에 거장은

형상화할 수 없는 슬픔, 이라 써놓았다.

그는 미쳤어.

노래를 부르지 마.

어느 나라 말로 쓰여 있나요.

그가 아는 모든 언어로.

터질 것 같은 물주머니로.

영원한 불 같은 혀끝으로.

‘화면조정’

+++* *+++

처음의 제목이었지.

*

아이들은 웁니다. 잘 울죠. 내 딸도 곧잘 울곤 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아가들이 하는 일이 우는 거니까요. 천성은 어떤 인간도 버릴 수 없습니다. 나도 울어요. 내 안에 아기가 숨어 있나 봐요.

울음은 피를 흔들어 깨우고

나는 태풍

요람 속 작은 이마

눈이 내려

눈이 내려

흔들리며

천사의 날개가

빨갛게 웃을 때

노래할까

네 입술의 작은 떨림에 맞춰 짜인 직물처럼

노래할까

얘기하고 싶었어 내 모든 기쁨과 슬픔을 내 못난 얼굴과 손과 굽은 어깨를

만져줘 용기를 줘 사랑해줘

이것은 누구의 유언?

누가 버린 휘어진 모서리?

돌고 있는 영사기. 탁, 탁, 끝나버린 필름이 돌아가며 부딪는 소리 상영관을 나가기 전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당신이 기억하는 모든 장면을 적어주세요. 이것이 유일한 질문이었고 질문을 토대로 만들어진 두 개의 필름.

모두가 기억한 장면들을 편집한: 어떤 그래프의 꼭대기를 오려낸 것과 같은 필름.

모두가 잊은 장면들로 만들어진 필름.

잊힌 장면들로 만들어진 그 영화를, 나라고 생각해요. 천사가 가만히 내려앉으며 말할 때. 그렇게 긴 날숨은 처음이었다고. 이제 남은 건 ( - )뿐이라고/

계속하세요.

그 모든 것을.

빛의 어깨가 부풀어 오를 때 눈물이 엎질러질 때 종소리 다음 적막이 영혼을 부러뜨릴 때

감응

디스토션

엉키고 뒤섞인 한 덩이 육체 보는 것 만지는 것 소리 내는 것 둘 사이 상상으로 가득한 얼어붙은 허공 이제 이동합니다 천천히 노래하세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무수해지는 잎 무수해지는 피 술렁이는 술렁이는 ( - )

*

새끼손가락만큼 작아진 네가 내 배꼽 위에 앉아 있다. 버둥거리며 다리를 흔든다. 인사는 처음부터 없었다. 내가 원하지 않았기 때문. 네가 말하면 나는 위장으로 듣는다. 어릴 적 읽은 동화 속 고래처럼.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니다. 듣기 싫은 말은 커다란 파이 속에 숨겨 삼켜버린다. 날갯짓. 우리의 대화체를 그렇게 불렀지. 우리는 천사가 아니니까. 괜찮아. 어두운 벽에 붙어 차가운 잠을 잔다. 아직이야, 아직. 돌아누우며 찡그린 얼굴로 네가 말한다.

신은 영원이 싫어

지루함이 싫어

이야기를 만들고 세계를 만들어

가령 겨울 다음 봄이라는 서사

하양 검정 파랑

하양 검정 파랑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죽음에 대해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봄이라는 죽음에 대해

말할 수는 있었다

지나가는 파랑이 검정을 흉내 내며 웃었지

커다란 입을 열어 불렀지

*

거의 강간이야.

아이 셋을 앉혀두고 그녀와 나는 영어로 이야기한다. 아이들이 우리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도록. 가끔은 너무 오래 신에 대해 생각하기 때문에 그는 내 아버지 같다. 혹은 남동생. 그러나 알 수 없기 때문에 신과 친밀해질 수 있다. 진실보다 어려운 것은 변명이다. 그래서 웃었지. 내가 본 모든 미소를 따라.

거의 그렇지. 그녀는 대답한다. 다음번엔 그 사람 뺨을 갈겨. 어차피 기억도 못 할 거야. 뒷좌석에 앉아 내 귀에 속삭이지.

그렇지만 아무도 때리고 싶지 않아. 나는 나를 때리기로 했어. 나의 귀, 나의 귀, 나의 귀. 처음 네가 태어났을 때 네 날개는 손바닥보다 작았는데, 매일 자라났어. 결국 네 몸보다 더 커졌고 너는 어깨와 허리가 아프다고 매일매일 울었잖아. 왜 나만 다르냐고. 다른 형제들처럼 매끈한 등을 갖고 싶다고 울었잖아.

나는 엄마인데 네게 해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서. 네가 태어나서 가장 처음 배운 게 좌절이라는 게 너무 미안해서. 같이 울었지.

*

세상에서 가장 큰 가위를 달라고 기도하는 거 다 알아

네 두 눈에 보이는 게 피뿐이라는 것도

눈물을 달고 살아서 그렇게 눈이 나빠진 것도

안경을 쓴 천사

경멸과 비참 속에서

할 줄 아는 건 아름답게 있는 것뿐이라서

나는 사물이에요?

너는, 옥상에 서서, 주차장을 내려다보며, 저 차들을 이해해. 말했지.

리히트, 일랜드, 아우거, 리히버, 리히트, 일랜드, 아우거, 리히버, 리히트, 일랜드, 아우거, 리히버, 리히트, 일랜드, 아우거, 리히버, 리히버, 리히버……

네 입에서 새싹처럼 돋던 푸른 말들 갇혀서 돌고 있는 육식 안에 새겨진 말들 영원히 꺼낼 수 없는 말들 거짓보다 거짓인 말들 그래서 간신히 약간의 진실만 획득한 말들 전쟁이 끝나면 나는 말을 탈 거야 폭격 속으로 돌진할 거야 가장 아픈 건 빛이라는 걸 그걸 만들어낸 손들을 증오할 거야 내 생명이 다할 때까지 증오할 거야

왜 나는 날면 안 돼요?

그날 너의 마지막 질문이 아주 오래 마음속에 남았단다. 그 말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불을 끄고 문을 닫았단다.

항상 태어나지 말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를 낳다니. 그보다 웃긴 일은 없을 거라고. 나는 공룡처럼 생각했다.

그보다 구체적인 감정이 없었다.

그래서 만들었지 노래를

네게 불러주려고

불과 나무의 노래를

모두 죽어버리는 이야기를

*

옛날 옛날

나무를 사랑한 불이 있었단다

나무를 사랑한 불

불을 사랑한 나무가 있었단다

불을 사랑한 나무

나무는 두 발이 묶여

불에게 갈 수 없고

불은 나무가 뜨거울까 두려워

나무에게 갈 수 없었지

어느 날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올 때

커다란 보름달이 떴을 때

불은 그만 나무에게 다가갔다

나무는 검게 그을린 채 웃었어

검게 그을린 채

나무는 타올라 재가 되었단다

그때 아침이 밝아오고

불은 보았지

바람 속을 빙글빙글 돌고 있는

잿더미를

빙글빙글 돌고 있는

예쁜 검정을

너무 슬퍼 불은

활활 울었어

눈물이 불의 몸에 뚝뚝

떨어질 때마다

떨어질 때마다

불은 점점 작아졌어 점점

점점 작아지다가

불은 마침내 꺼져버렸지

잿더미 속에서

잿더미 속에서

잿더미 속에서

*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두자. 사랑이라면 휘어진 그림자를 끌고 온 다리를 건너고 물속을 떠다니며 소리 지르자. 세상 따윈 끝나버리라고. 빌면서. 너의 빨강을 너의 빨강을 나는 다 알 수 없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만히 서서. 벌 받는 것처럼 서서. 어서 다가와줘. 불살라줘. 그러나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지. 두 발이 붕 뜰 때. 사방이 허방일 때. 공포를 다시 배우겠지. 그건 누구도 배울 수 없는 아름다움이란다. 너만의 천성이지. 눈 내리는 빛 속을 날아오를 때. 뒤집힌 거울 속에서 입이 벌어질 때.

예감하고 있었어 잊은 적 없어.

빨갛게 활짝 피어날 것을.

막을 수도 돌이킬 수도 없으리라는

예언을.

날아가.

가.

*

수집가는 천 개의 필름을 갖고 있었다

죽음으로 가득 찬 것을

보면서 웃었다

솔방울이 벌어진다

눈이 내린다

세 아이의 어깨 위로

슬픔은 늘 채 말해지지 않은 상태로

각자의 심장 속에서

홀로 얼어붙고 있다

하늘, 봄, 사랑

세 개의 이름이 있었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들로 만들어진 필름

*

그것이 이 시다

*

사랑을 기억해

빨갛게 활강하며 흔들리던 커다란 두 날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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