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른

[브레마이/아케이토] 아이스크림

8 by 8

어느 여름의 주말밤.

아이스크림을 사러 편의점을 다녀온 이토는 방에 들어가기 전, 멘션의 계단에 고개 숙이고 앉아있는 아케호시를 발견했다.

“…아케호시군?”

“……”

누군가를 기다리다 잠든 건가? 아케호시와 유라기의 호실을 바라보자 아무도 없는 듯 불이 꺼져있었다. 여러 번 그의 이름을 불러도 반응이 없자, 이토는 들고 있던 편의점 봉투를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잠들어있는 아케호시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아케호시군. 일어나.”

설마 어디가 안 좋은 건가? 반응이 없는 아케호시의 상태를 자세히 보기 위해 다가가자——커다란 손이 이토의 손을 감싸 잡고 끌어당겼다.

“……!”

“……”

넘어질뻔한 탓에 놀라 아무런 소리를 내지 못한 이토의 시야에 찌푸리고 있는 아케호시의 얼굴이 들어왔다. 좁혀진 거리만큼, 아까는 알아차리지 못한 알코올 향기가 느껴졌다. 술을 먹고 온 것뿐, 어디가 아픈 건 아니구나 하고 이토는 속으로 안심했다. 그런 그녀를 알아본 아케호시가, 찌푸렸던 표정을 풀고 평소와 같이 활짝 웃었다.

“…아~ 이토씨였구마.”

“깨워서 미안. 놀랐지…”

“아니. 내도 놀래켜서 미안타.”

클럽에서 술을 먹고 돌아오는 길, 너무 피곤해서 깜빡 잠들었다며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인 아케호시는 잡고 있던 이토의 손을 놓아주지 않고, 그녀의 손바닥에 자신의 볼을 비비적거렸다.

“!”

분명 편의점을 향해 나왔을 때는 없었는데, 밖에 있던 시간이 꽤 길었던 건지 손바닥에 닿는 그의 피부는 차가웠다. 그에 비해 이토는 자신의 손이 뜨겁다고 생각했지만, 아케호시는 ‘이토씨의 손, 시원하다…’라고 중얼거리며 웃었다. 그가 말할 때마다 아케호시의 입술에서 뜨거운 입김이 나와 이토의 손을 간지럽혔지만, 그녀는 자신의 손이 술을 깨는데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싶어 그를 그대로 두었다.

“이토씨는? 지금 퇴근한 건가?”

“잠깐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왔어.”

“아이스크림?”

이토가 대답대신 바닥에 있는 편의점 봉투로 시선을 돌리자, 아케호시의 시선도 그를 따라왔다.

“안된다, 녹기 전에 얼른 먹어야 하지 않나?”

“괜찮아. 밤이라 시원하고.”

“하하, 이토씨는 상냥하구먼. 그럼 여기 앉아라”

“엇…”

잡힌 손이 이끄는 데로 이토가 아케호시의 옆자리에 앉자 아케호시는 바닥에 있는 편의점 봉투를 집어 이토에게 내민다

“자, 아무리 밤이라도 녹으니까 먹는 게 좋다.”

“아…고마워.”

‘감사까지야’하며 웃는 아케호시를 따라 작게 미소 지은 이토는 편의점 봉투를 받아 두고두고 먹을 생각으로 사 온 아이스크림들을 전부 꺼내 내밀었다.

“아케호시군도 괜찮다면 하나 드세요.”

“어, 내도 챙겨주는기가? 기쁘네~”

“어차피 여러 개니까.”

“그럼 사양 않고, 이토씨가 좋아하는 걸 먼저 골라라”

좋아하는 거? 이토는 그냥 손에 집히는 대로 사 온 것뿐이다. 잠시 고민한 이토는, 여러 아이스크림들 중 대중적 호불호가 클 듯한 팥맛 하드를 골라 집었다.

“에에~? 팥맛을 좋아한다니 이토씨도 입맛이 꽤 의외네”

“그런가? 좋아하기보단 크게 상관없어서… ”

“크게 상관없다니… 하하, 이토씨 답다”

두 사람은 나란히 계단에 앉은 채 각자의 아이스크림을 먹기 시작했다. 서늘한 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와서, 대화가 끊긴 적막도 불편하지 않았다. 이토가 멍하니 먹고 있던 팥맛 하드를 꽤 괜찮은 맛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옆에 있던 아케호시가 ‘이토씨’하고 불렀다.

“왜 옆에 앉은건지 물어봐도 되나?”

“?…아케호시군이 권해줬으니까?”

“헤~ 전부터 생각했는데, 이토씨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타입이구나”

“그런…것도 조금. 많이 있을지도”

“그래도, 이런 늦은 시간에 남자와 단 둘이 있는 건 안 좋지 않나?”

“아케호시군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해…?”

“하하, 거기서 의문형이면 어카나~물론 내니까 괜찮지만.”

아케호시군이니 괜찮다고 생각하는 건 정말인데, 이토는 저도 모르게 의문형으로 말해버렸다. 아무런 내용도 없는 대화를 나누며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으면, 자신의 몫을 다 먹은 아케호시가 이토의 아이스크림을 가리키며 말했다.

“한입 먹어봐도 되나?”

“…?”

“그 팥맛 아이스크림 말이다. 이토씨가 맛있게 먹으니까 궁금해서”

“상관없지만, 먹던 거라 더러우니 부족하면 다른걸...!”

“괜찮대도~”

뭐가 즐거운 건지. 고개를 내밀어 아-하고 입을 벌려온 아케호시의 행동에 이토는 그것이 먹여달라는 것을 인지하고, 자신이 깨물었던 부분이 아닌 방향을 향해 아이스크림을 내밀어 주었다. 만족스러운 듯 한입 베어 문 아케호시는 떨어지나 싶더니, 나무 막대를 따라 이토의 손가락에 흘러내린 아이스크림을 가볍게 핥아냈다. 역시나 이번엔 이토도 놀랄 수밖에 없었는지. 반사적으로 손을 빼내다 그녀의 손톱 끝이 아케호시의 입술을 할퀴고, 아이스크림은 저멀리 날아가 떨어지고 말았다.

“!!”

“아아~ 미안타. 눈앞에서 녹으니까 그만.”

“아,아니! 아케호시군은 아무 잘못도 없어요. 제 잘못이에요”

“또 갑자기 존댓말…혹시 싫었나?”

“엇……”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존댓말은 평소 그녀가 사과할 때의 버릇처럼 튀어나온 것이었다. 아케호시 나름의 선의로 시작된 행동은 싫다고 말할 정도의 행동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좋다고 하는 건 더욱 이상했다. 대답을 헤매던 이토가 시선을 내리자. 아케호시는 그 틈을 파고들며 다시 눈을 맞췄다.

“아니면 좋았나?”

“…!”

“하하, 이토씨는 역시 재밌구만”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명백하게 아케호시에게 놀려지고 있는 게 분명한 상황. 이토는 얼굴에 오른 열로 인해 방금 전까지 시원했던 공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얼굴에 오른 열이 두근거림보다는 부끄러움 쪽이라 생각한 이토는, 감정을 삼키고 손을 뻗어 자신의 손톱에 긁혔던 아케호시의 입술을 확인했다.

“어?”

상처는 없지만 아팠을 것이다. 대답을 피한 데다 할퀴기까지 하다니… 기분 나빴으면 어쩌지. 이대로 넘어가면 이 오해는 풀기 힘들테니 지금 바로 제대로 사과해야겠다 싶은 이토는, 생각나는 대로 정리되지 않은 말을 내뱉었다.

“저,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 나, 아케호시군 좋아하니까.”

“……큽.”

“역시 아, 아파?”

웃음을 참는 아케호시의 모습에 이토가 당황하고 있는 사이, 아케호시는 또다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이토씨, 진짜가?”

“? 당연히 진짜지…”

“하하,…아하하! 이토씨, 정말 최고다.”

뭐지? 내가 이상한 말을 했나? 이토의 반응은 상관없다는 듯 아케호시는 활짝 웃으며 그녀의 손바닥에 볼을 부비적거렸다.

“내도 이토씨가 좋으니까. 잊지 마라”

“…!”

그제야 자신의 말투에 오해가 있었음을 알아차린 이토가 두 번째의 오해를 풀기 위해 허둥대었지만. 아케호시의 기분이 워낙 좋아 보였던 탓에 한동안 그가 하는 대로 두며, 집에 들어가기 전 꼭 바닥에 떨어트린 아이스크림을 치워야겠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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