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007
개인 작업: 3800자
Z이 여간 불만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듯 한쪽 눈썹을 까딱 올린 채 등 위의 짐덩이를 고쳐멨다. 동시에 등 뒤에서는 악,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는 이를 모르는 체했다. 들쳐멘 짐짝은 인에서 난 리베리 한 명이었으며 Z은 당장이라도 이 불필요한 짐을 로도스 아일랜드 본부 내 숙소 한가운데에 던져둔 채 자리를 떠나버리고 싶었다. 어, 어지러…… 웅얼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때리자 Z의 눈이 한껏 가늘어졌다. 속이 끓는다는 어른들의 말이 어떤 느낌인지 알 것도 같았다. 술도 못 하시면서 그렇게 드셨으니까 당연히 어지럽겠죠……. 이를 악물었다는 표현에 걸맞게 목구멍 끝까지 올라오는 잔소리들을 겨우 눌러내린 투로 그가 중얼거림을 흘렸다.
I의 이러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Z이 항상 성질을 참아가면서까지 그를 데려오는 이유는 제법 간단했다.
하나. 한 번 취하면 많이 귀찮긴 한데, 그렇게 자주 취하는 편은 아녔다. 서너 달에 한 번 꼴이라고 할 수도 있고, 그 이상이라고 할 수도 있을 정도로 텀은 길었다. 일부 오퍼레이터들처럼 술을 늘상 즐기는 편이었다면 해가 지도록 잔소리를 내뱉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게 아니니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는 느낌이 더 크기야 했지만.
둘. 술버릇이 틈만 나면 자리를 잡고 잠들어버리려는 것. 시원한 맥주캔이라도 한 번 따는 소리가 들리면 두 사람, 혹은 그 이상의 사람이 술자리 담소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 청량한 소리가 두세 번 반복되고 난 후부터는 늘 I의 목소리가 점차 작아지곤 했다. 그치. 그렇긴 하지. 듣고 있어. 같은, 머릿속에 제대로 들어가지도 않았으면서 뭘 그렇게 듣고 있다는 건지 알 수가 없을 추임새를 억지로 가져다 붙이며 용케 정신줄을 붙잡으려 드는 I의 말은 타인이 듣기엔 이미 뭉개진 발음과 웅얼거림 정도였다.
그럼, 길가에서 마시면 길가에서 자기라도 하려나? 이에 대한 해답은 Z이 인을 방문했을 때 과일 장수가 이미 내어준 상태였다. 담벼락 위에 올라가서 눕던데? 나는 뭐 들짐승인 줄 알았는데 I였지. 내가 발견했을 때가 아침에 장사 준비 하려고 나왔을 때였으니까, 분명 새벽 내내 그렇게 잔 게 분명하네. Z이 이마를 짚는다. 본인은 기억하던가요? 전혀. 대체가 용이라는 사람이……. 술 취해서 필름 끊기는 행위가 절대 좋을 리는 없고.
셋. ……붙어 있을 핑계가 생긴다.
처음 술에 취한 I를 데려와 침대에 눕혔을 때 Z은 예상치 못한 I의 행동에 어쩔 줄을 몰라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잔뜩 당황하게 하질 않나, 그래놓고선 위에 엎어져서 해가 중천이 될 때까지 자질 않나. 그 날 Z은 단 몇 분도 잘 수 없었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겨우 낮잠이라도 청한 뒤 잔뜩 날이 서서는 I를 노려다본 건 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두 번째로 그런 일이 있었을 땐 링에게 고량주를 잔뜩 건네받아 잠들었던 날이고, 이땐 냄새만 맡아도 취할 것만 같던 독하고도 독한 술 탓에 괜히 Z까지 잠이 몰려와서는 걱정없이 잠들 수 있었다. 어찌나 술이 셌던 건지 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도 잠에서 깨어나기는커녕 움직임 하나 없었어서, 그런 I를 보던 Z은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닌지 괜시리 마음을 졸이며 심장 소리를 들어보기도 했다.
세 번째는 오퍼레이터들 사이에 좋은 일이 있다며 샴페인이라도 한 병 터뜨린 날. Z과 I처럼 술에 찌든 오퍼레이터들이 파트너 격인 오퍼레이터들에게 끌려가는 것이 흔한 풍경이라고도 할 수 있던 날이었다. 이날의 Z은 슬슬 익숙해져 잠들어 있는 I를 눈으로 천천히 관찰(본인이 관찰이라 칭했다.)해보기에 이르렀고, 오늘은 네 번째인 참이다.
방에 들어선 Z이 한쪽 손을 등 뒤로 돌려 허우적대고 있었다. 어디에 연결된 거야? 한참 동안 팔을 휘적이고 나서야 벨트가 풀어지는 소리를 내더니 쿵, 하곤 I의 환도를 바닥에 떨구었다. 그 다음은 자신의 허리춤. 왼쪽 허리에 자리한 검을 바닥에 떨어뜨린 뒤에야 Z이 쓰러지듯 침대 위에 누웠고 그 위로 I가 도미노 넘어지듯 엎어졌다. 짧게 윽, 소리를 내뱉는 것을 마지막으로 상황은 일단락. 방에 오는 것 뿐인데 이렇게 힘들 일인가? Z이 한층 피곤함이 담긴 눈으로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따뜻한 숨결과 고르게 오르내리는 등을 확인한 Z이 이번에는 자리를 떠나볼까 생각이라도 한 듯 몸을 두어 번 꼼지락거렸지만 장신의 남성이 제 위에 엎어진 상태로 빠져나가기는 쉽지가 않았다……고 Z은 스스로에게 해명했다. 그렇다면 자세라도 편하게 바꿔볼까 하며 조금씩 위쪽으로 몸을 옮기니, 뒤늦게 어딘가 이상함을 알아챈 I가 베개 끌어안듯 팔에 힘을 주곤 무어라 웅얼거렸다. 아, 알았어요. 이제 끝난 척 조금씩 더 자리를 옮기던 Z은 침대 등받이에 제 상체를 기대고 나서야 만족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어냈다.
그러고 보면…… 평소에는 이렇게 못 있지 않나? 문득 스친 생각에 Z이 이제까지의 행적을 떠올렸다. 포옹을 하든 뭘 하든, 항상 주체가 되는 쪽은 I였다. 늘상 안는 쪽도 I였기에 본인은 꼼짝없이 품에 갇히는 신세였고, 쓰다듬기를 하자니 I의 쓸데없이 큰 키 탓에 항상 그가 Z을 내려다보며 머리를 쓰담곤 했다. 하다못해 대련으로 넘어가면 늘 피하기만 반복하는 I였던 탓에 Z은 그에게 손끝 하나 닿지도 못했다. 그러니 종합하자면, 실패의 연속.
그랬던 그가 술만 들어가면 이렇게 얌전해져서는 기억조차 못 한다니, Z에겐 기회가 아닐 수가 없지 않나. 차분하게 가라앉은 남색 머리카락에 천천히 한쪽 손을 올려본다. 뒤쪽 머리칼 사이로 자라있는 푸른 깃털 하나하나 손끝으로 천천히 훑어보기도 하고, 손을 조금 더 내려선 뚫었던 흔적이 있는 귀도 한 번 만져볼까 고민한다. 하지만 아직 이건 용기가 부족하니 넘어가기로 하고.
양 팔을 들어올려 목을 감싸면 I는 꼼짝없이 Z의 품에 안긴 상태가 되었고, 고개를 살짝 내리면 머리카락 사이에 얼굴을 묻어볼 수도 있었다. 두 팔에 조금 더 힘을 주면 한가득 끌어안는 기분에 괜히 어딘가 이긴 기분마저 들었다. 조용한 방 안에 잠들어있는 자의 숨소리와 Z이 움직일 때마다 옷소매가 이불에 쓸리는 소리만이 퍼져나갔다. 만족스런 기류 사이로 길게 뻗은 뱀꼬리 끝이 좌우로 까딱거리던 것은 덤이다.
이러한 행위를 한참을 반복하고 나서야 Z은 새삼 I가 왜 그렇게 바보 같은 얼굴로 웃으며 늘상 저를 끌어안고 쓰다듬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건 이해했을 뿐이지, 받아들이겠다는 건 아녔다. 한 번 쯤은 안 취했을 때도 이쪽이 안는 쪽도, 쓰다듬는 쪽도 해볼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아직 너무 이른가? 사실 제가 하고 싶어요, 라고 한 마디만 내뱉으면 I는 뭐든 들어줄 터였지만 그건 뭔가…… 영 아녔다. 이게 자존심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그냥, 뭔가가.
……애초에 이런 걸 허락 받고 할 사이는 아니잖아.
연쇄적으로 터져나가는 생각의 끝에서 Z이 미간을 좁혔다. 이윽고 약간의 못마땅함과 함께 품 안의 리베리 남성을 바라보다가, 조금씩 몸을 움직여 아래쪽으로 내려가서는 두 팔 가득 I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한참을 그렇게 안는 쪽의 주체가 되어서는 시간을 보내다 느낀 건, 뭔가 약간 부족하다는 것.
한참을 고민하던 Z은 I를 옆으로 살짝 밀어 눕혔다. 맥없이 침대에 눕혀진 I의 한쪽 팔을 베개 삼아 베고, 반대쪽 팔은 살짝 들어올려 제 어깨 위에 올려두었다. 그런 상태를 만들고 나서야 I의 허리를 감싸안으니 비로소 안긴 쪽과 안는 쪽을 둘 다 할 수 있는 자세가 된 것 같아서, Z은 만족스럽다는 듯 입꼬리를 당겼다. 늘상 제게 얼굴을 부비적거리던 I의 행동을 품 안에서 따라해보는 것과 꼬리로 한쪽 다리를 천천히 감아보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이건……
전부 I 씨 술버릇 탓이에요. Z이 되도않는 핑계를 대며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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