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24
타입 외: 5700자
안녕하세요.
-원하시는 기능을 선택해주세요. 아무도 듣지 않는 키오스크의 음성이 울려퍼졌다. 아주 작게 고개를 돌려도 금방 눈에 들어오는 여러 아이들의 뜀박질에 C는 다시금 제 푸른 눈동자를 앞으로 돌렸다. 뻔했다. 뛰어다니던 도중 실수로 닿았거나, 괜시리 아무 이유 없이 두어 번 화면을 난타했다가 다시 제 친구와 장난이라도 치려 저 멀리 달려가버린 거겠지. 그런 들리지 않는 외침을 뱉은 키오스크를 바라보던 그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꽤나 넓은 곳이다. 지도 정도는 확인해야 적어도 서점이 몇 층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C가 오른손을 든다. 가볍게 검지를 들어서는 화면에 띄워져 있는 선택지 하나를 살짝 누르자 또다른 무수한 선택지들이 그를 반겼다. 그렇지, 여긴 ‘복합’ 센터였으니까……. 여전히 화면에 맞닿아있는 검지를 아래에서 위로 쓸어올리자 그제서야 서점이 모습을 드러낸다. 4층? 꽤 높이 있네. C는 하마터면 한 층 한층 에스컬레이터로 올라가며 별 볼 일 없는 푸드코트나 아동용 완구센터만을 지나며 시간을 허비할 뻔한 자신을 떠올렸다.
그런 생각 와중 졸지에 어디 한눈이라도 팔린 듯 앞을 보지 않고 뛰어오던 아이 한 명이 가볍게 그의 옆구리에 머리를 박았다. 아! 하고, 짧은 탄식과 함께 그를 올려다보던 아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겁에 질린다. 그 날카로운 눈매를 보기라도 한 듯하자 C는 그런 아이를 보며 큭 하는 웃음소리를 냈다. 괜찮아? 유하게 웃으며 한 마디 덧붙인 건 덤이다. 아이들은 워낙 단순해서인지, 금세 표정이 풀린 아이가 수줍게 입을 열었다. 그으, 죄송합니다……. 당연하게도 아이가 달려가는 곳의 목적지에 서있는 사람은 제 아버지이리라. 그저 가벼운 일이라 생각하고 자리를 뜨려던 C의 입꼬리가 순식간에 움찔, 하고 내려간 이유는 그 다음 이어진 아이의 목소리 탓이었다. 삼촌! 아이고, 조심 좀 하지. 학생, 미안합니다!
도착한 서점에서는 제법 익숙한 향이 났다. 깔끔한 바닥, 이건…… 대리석? 아무튼. C는 스스로 바닥을 이룬 자재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만 보통 대형마트나 복합센터를 이루는 바닥은 항상 깨끗했으며 단단했고 여기저기서 쏘아대는 빛을 열심히 난반사시킨다 정의했다. 그런데, 지금은? 서점에 들어선 C의 발걸음 소리가 달라진 이유는 하나다. 서점은 여기서부터는 온전히 제 구역이라는 듯 푹신한 바닥재질을 열심히 뽐내고 있었다. 시끄러운 복합센터의 사람들이 한순간에 조용해지는 곳. 발걸음부터 목소리까지, 은은한 종이 냄새를 풍기는 책을 배려하기라도 하는 듯한 풍경에 C는 새삼…… 서점은 친구들과 함께 오면 절대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절대 안 되지, 절대. 그 시끄럽게 쳐대는 장난들이나 하다못해 옆 반 친구는 수업만 끝나면 교실 뒷문을 벌컥 열어대며 달려오기 일쑤다. 혼자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C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 학교 출판사가 어디더라? 문제집들이 쌓인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 C가 곰곰이 생각한 말이다. 다양한 학교 교과서의 출판사와 맞게 빼곡히 쌓인 문제집들이 갖가지 표지를 보이며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게다가 색깔은 또 얼마나 화려한지, 과목별로 다르게 지정한 표지 색을 보며 C가 가볍게 으, 하는 표정을 지었다 풀었다. 그러다가도 다시 문제집의 두께나 문제의 난이도 등, 제게 맞는 것을 고르고 있자니 어느덧 벽 한 켠에 걸려 있던 TV에서는 꽤 씁쓸한 표정을 지은 앵커가 다음 속보를 말해가고 있었다. 속보입니다. 작년에, 모 기업에서 노동자 한 명이 근무 중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죠. 이때 회장은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모습까지 보였지만, 내부적으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김○○ 기자입니다.
노동자 한 명, 근무자 사망. 이런저런 생각으로 가득찬 C의 귀에 정확히 꽂힌 말이었다. 쿵, 하고 순간 놀란 심장과 함께 순식간에 서늘한 느낌까지 드는 뒷목까지. C가 고개를 돌린다. 본능적으로.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아무리 듣기 싫은 주제더라도 인간은 본래 자신을 놀라게 한 무언가가 제 뒤에서 들려온다면 그곳으로 시선을 빠르게 돌리지 않나. 아니나 다를까 화면에서는 사망했다는 노동자의 동료들이 인터뷰에 응하고 있었다. 그리고 화면 전환. 카메라는 장례식장에 놓여 있는 중년층 남성의 영정사진을 잡더니, 이윽고 그곳에서 목이 터져라 울부짖는 가족들을 내비치고 있었다.
“……아.”
-흑, 콜록, 콜록……. 일순간 호흡이 불규칙해지더니, 그것을 조절하려다 실패한 듯한 C는 결국 사레가 들린 듯했다. 제 숨에 들린 사레라니, C는 자신이 제법 멍청하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금 숨을 가다듬으려 했으나 그 평생토록 해오던 들숨이 쉬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윽, 으. 첫 숨이 막히자 이를 부정하는 듯 두어 번 또다시 숨을 쉬려 몸부림치던 C는 점점 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다가, 결국은 서서히 무너지는 듯 몸을 숙이더니 한쪽 무릎을 꿇곤 바닥을 짚었다. 오늘, 재수가 없는 날인지 뭔지, 아까 꼬맹이가 한 말부터 거슬렸는데……. 그런 생각을 떠올릴 즈음 앞을 바라보면, 세상이 돌고 있었다. 무중력에 빠지기라도 한 듯 이리저리 흔들리는 풍경에 세상이 도는 건지 제 머리가 이상해지는 건지 분간조차 하기 어려워질 때쯤 시야는 점점 암전되더니, 마지막으로 보인 건 어딘가 흰 머리칼 뿐이었다.
……흰 머리카락?
“…….”
C가 눈을 뜬 곳은…… 어디지? C는 나른히 감긴 눈을 두어 번 끔뻑이며 두 눈의 초점을 돌아오게 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천장. 옆에 놓인 응급처치 도구들. 작은 침대와 닫혀 있는 간이 커튼. 살다살다 복합센터 의무실 천장을 보는 날도 있구나 생각한 C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커튼을 열어내자 의사 한 명이 고개를 돌렸다. 아, 일어나셨어요?
그렇게 몇 분이 지나서야 C는 자신의 증상에 대한 이야기를 내려두고는 의무실 밖으로 나설 수 있었다. 아, 참. 친구분은 밖에 앉아 계세요. 덧붙인 의사의 말에 C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친구…… 요? 짧게 답한 말에는 수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정말 제 친구 중 한 명이라면 밖에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었을 테다. 더하여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서는 제가 눈을 뜨자마자 난리법석을 쳤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밖에 앉아 있다고? 미간을 찌푸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친구’라는 주인공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한 걸음, 두 걸음. 천천히 의무실의 문을 열어 밖을 나서자 센터 내부 벤치에 앉아 있던 누군가의 얼굴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어, …….”
“아, 일어났어?”
겨울 쌓인 눈 위에 발자국 하나 없는 듯한 색의 머리카락. 은은하게 퍼지는 분홍빛 눈동자.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라고 해봤자 등교 후 안녕, 하고 짧게 내뱉는 말뿐이 전부였는데. 와……. C의 입에서 짧은 탄식이 나온 이유는 하나였다. 못 볼 꼴을 보였다. 그것도 마냥 어색하기만 했던 ‘같은 학교 같은 반 친구’에게. 하다못해 쪽팔린 감정까지 파도 마냥 밀려오던 C가 성큼걸음을 옮기더니 이내 그 ‘같은 반 친구 S’의 옆 자리에 쓰러지듯 털썩 앉아보였다. 그리고, 침묵. 약 2분간 이어진 어색한 침묵에 C가 제 얼굴을 손으로 한 번 쓸어내리곤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그……, 잘 안 이래. 원래. 오늘이 좀 특이한 경우라서…….”
“괜찮아, 이상하게 생각 안 해.”
“당황했을 거 아냐, 미안.”
“진짜 괜찮아. 나, 어릴 때부터 몸 약했어서…… 이런 곳 의무실 위치는 기본적으로 알거든.”
“그렇구나, 우리 지금 역대급으로 대화 길게 하는 중인 거 알아?”
그, 그거야……. S의 말꼬리가 길게 늘어졌다. 내가 낯을 좀 가려서……. 더욱이 작아진 목소리로 급급하게 덧붙이는 말에 C가 큭 하는 웃음소리를 냈다.
“그래서…… 오늘 왜 그랬던 거야?”
여전히 작은 목소리다. 그럼에도 애써 입을 열어 묻는 이유는 순전히 궁금해서도 있겠으나 걱정된다는 것이 더 클테다. C가 가만히 눈을 끔뻑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외삼촌에 대한 것. 열다섯 살이라는 몇 년 되지 않은 과거의 때에 있었던 일에 대한 것. 자신에게 트라우마를 남겨주었던 기억을 차분히 말해내는 것을 S는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C의 길고도 짧았던 이야기가 끝나고 고개를 돌리자 수도꼭지라도 터진 것마냥 눈물을 뚝뚝 흘려내던 모습은 덤이다. 어어, 어? 너…… 너 울어? 당황한 목소리로 뱉어낸 말에 S가 고개를 가로로 내저으며 눈물을 뚝뚝 흘려댔다. 아니, 누가 봐도 우는데 그렇게 고개만 저으면 어떡해……. 지나가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엄마, 저 언니 울어! 옷 보니까 데이트 나온 건데 남자가 울렸네…… 같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상당히 곤란해진 C가 그, 그만 울어…… 라며 애써 S를 진정시켰다. 여전히 잔뜩 울어대며 고개만 끄덕이는 S다.
짧고도 황당한 상황이 끝나자 코를 훌쩍이던 S가 입을 열었다. 너한테 그런 일이 있는 줄 몰랐어. 그야 우린 별 대화도 안 했었으니까. 나였으면 엄청 울었을 거야. 당연하지. 평생 못 잊을 텐데…… 네가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것만 보고 듣고 느끼면 좋겠어. ……고마워. C가 느릿한 미소를 지었다. 또다른 대답을 내뱉으려던 찰나 한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S야! 척 들어도 가족이 부르는 듯한 느낌에 C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아직 앉아있던 S를 내려다보았다. 가족이랑 놀러온 거였구나.
“바빠 보이는데, 먼저 일어날게. ……오늘 도와준 건 고마워. 진짜로. 너 무슨 영화에 나오는 히어로 같은 일 한 거잖아.”
“……응.”
S가 한쪽 손을 들고는 천천히 흔들어보였다. 뒤늦게 달려온 가족이 너 울었어? 같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한 말을 내뱉자 C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 남몰래 웃음소리를 냈다. 공감을 잘하는 수준을 넘어서, 저렇게까지 본인 일인 것마냥 울어대는 애는 처음이다. 제법 웃겼다. 웃기고…… 한편으로는 어딘가 위로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껏 저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저런 새하얀 머리카락을 가졌는지도 몰랐고, 잘 어울리도록 땋은 머리카락도, 눈물 들어찬 눈동자가 저런 색을 띠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왜 몰랐지? 이렇게 잘 보이는데. 연쇄적으로 터져나가는 생각의 끝에서 C는 어느덧 자신이 몇 분 내내 S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서야 인지할 수 있었다.
가슴 한 켠이 간지러웠다. 왜지? 싶다가도, 문득 돌아오는 월요일의 등교를 기대하던 스스로를 본 C는……
*
월요일의 풍경은 여전히 탄식으로 들어차 있었다. 주말이 사라졌다며 우울해하는 학생들도, 기다리던 날이 왔다고 즐거워하는 학생들도. 다양한 학생들 사이에서 C는 몇 없는 후자의 편에 속했다. 그야 기다리던 사람이 있었다. 어쩌면 특별한 누군가라고 하기엔 뭐했던, 마냥 어색하기만 했던 ‘같은 학교 같은 반 친구’. 분명 며칠 전까진 특별하지 않았던, 스쳐지나갈 인연일 줄만 알았던 그 누군가를 C는 이제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여전히 같은 시간 때맞춰 등교하고, 지루한 담임의 아침 조회를 듣고 있는 모습을 보며 C는 S에게 하고픈 말이 쌓여가고 있었다. 아니, 사실은 이미 수없이 쌓여 있었다. 등교 중에 ‘S 생일이었잖아.’ 같은, 학생들의 말로 알아낸 정보 탓이다. 무슨 말을 할까. 어떻게 대화를 시작할까. 어떤 주제로 말을 이어갈까.
그렇기에 C가 오른손을 든다. 가볍게 검지를 들어서는 제 옆자리 특별한 사람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자 S의 순한 얼굴이 그를 반겼다.
안녕.
아무도 듣지 못할, 그러나 S만이 들을 수 있을 C의 음성이 작게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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