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우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9
이산의 마차는 그들이 도착한 지 한 시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여관 앞에 멈춰섰다.
상단의 짐마차들도 함께였다. 하늘을 가르는 해의 기울기를 가늠하며 시간을 재던 서혜가 담장 너머에서 휘날리는 익숙한 문장을 보자마자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갖가지 장식용 장포에 머리를 틀어올려 비녀까지 꽂았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움직이는지 알 수 없었다.
마차에 주희를 밀어붙인 서혜가 박력있게 외쳤다. “어디 다친덴요? 머리는요? 아프진 않죠?”
이산 장군 앞에서 형부의 폭력적 행사를 규탄하는 것 같은 말을 해도 되나? 주희는 얼떨떨한 낯을 쓸어내리며 차근히 대답했다. “멀쩡합니다. 머리는 이제 막 물들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팔이 아픈데 좀 놔주시면 안 될까요.”
혜는 그제야 제 모습을 깨달았는지 순순히 두어 걸음 물러났다. 밀어붙인 탓에 약간 흐트러진 주희를 위아래로 두 번 훑더니 다시 바짝 붙어서 온갖 매무새를 다듬기 시작한 것만 빼면 괜찮았다. 과년한 처자가 이렇게 막… 붙어도 되나…? 주희는 심란한 낯으로 허리를 숙여주었다. 키 차이가 꽤 나는 탓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혜가 불편했다. 붉은 머리카락이 혜의 손가락 사이로 푸석하게 갈라졌다.
시선을 힐끗 올리니 이산은 이쪽을 등지고 하곡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주희는 그대로 시선을 굴려 여관을 훑었다. 기와를 얹은 열 칸짜리 여관. 그림자가 좀 더 깊게 지는 걸 보니 앞에 보이는 단층 열 칸이 다는 아니었다. 그 뒤로 좀 더 방이 있는 성싶고, 지붕 너머로 나무 끝이 얼핏 보이는 걸 봐서는 중정도 따로 있는 것 같고.
서천상단이 아무리 세가 좋다 해도 이렇게 좋은 저택을 여관으로 턱 내놓을 순 없었다. 누구의 별장이면 몰라도.
“서천의 것이 아니죠?”
“…… 하 진짜 눈치가 왜 이렇게 빠르지?”
“제가 언제 눈치 못 챈 적 있었습니까.”
이산 장군께선 마음씨도 넓으시군. 아니면 황명이거나…. 혜의 손길이 떨어져나가기 무섭게 주희도 몸을 일으켰다. 황명이겠지. 여유당전서가 제 구역 안에 주를 들일 리가 없지 않은가. 아, 아닌가. 흑산 사람들은─…. 주희는 그만 생각하기를 택했다. 도움될 것 하나 없는 사색에 가까웠다.
이제 와서 그들의 호의를 되짚기엔 주희가 그럴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어떤 것은 되짚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그도 그렇긴한데 좀 모른 척 넘어가주지 그랬어요.”
“시정하겠습니다.”
“순순히 인정하니까 내가 나쁜놈 된 것 같네. 안내 좀 해 줘요. 짐 풀고 정리하고 나면 바로 관으로 가겠다던데요.”
“그나저나 사업을 또 시작했습니까?”
“아, 이건 구 선생 전담.”
하긴, 저 있을 때도 하루 걸러 새 상로를 트던 이들이었다. 숙박업을 새로 시작했다고 놀랄 일은 아니었다.
“머리 물들이는 거 도와줄 테니까 일 끝나면 저기, 앞마당 쪽으로 와요. 염색약이 있는지 모르겠네.”
“예,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얼른 가요.”
혜가 여상스러운 낯으로 그의 등을 떠밀었다.
도심에 위치한 것 치고 여관의 주변은 조용했다. 일대가 부촌이라 조용한 건지 원래 조용한 건진 알 수 없었다. 실력 좋은 정원사가 가꿨을 정갈한 정원과 어두운 색의 대청마루를 지나면 회화나무가 심겨져 있는 중정이 나왔다. 주인을 닮은건지 원래부터 그랬는지 사택은 고즈넉했다.
“너무 좋은 곳 같은데.”
“아마… 지금은 영업을 안 할 겁니다. 숙박업을 시작하면 사람도 새로 구해야 하니까요. 당장은 호객부터 시험해보려는 요량이겠죠.”
“유를 상대로?”
“상인들이 다 그렇죠. 그래도 품질이 나쁘진 않을 겁니다. 총관이 있는데 빈객 대우를 허투루 할까요.”
객청의 어느 창을 열어도 중정의 회화나무가 보였다. 상록수로 바꿔심자고 이야기를 해 둘까. 잎이 다 떨어진 마른 나무는 보기 좋아보이지 않는데. 시답잖은 생각을 잠시간 했으나 그뿐이었다. 남의 집에 말을 얹는 건 좋은 버릇이 아니었다……. 주희는 하곡을 제일 좋은 방 중 하나로 밀어넣었다. 맹가는 이미 제 방을 찾아 들어가고 보이지 않았다.
“방 괜찮죠?”
“응, 괜찮다. 너는? 어디서 자고?”
“본관에 직원용 숙소가 있을겁니다. 거기서 자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러니? 객청에서 같이 자면 좋을텐데.”
그는 상단의 빈객이 아니니 그럴 수 없었다. 주희는 대답하는 대신 눈꼬리를 살짝 접어 웃었다.
형부에서 사람이 온 건 신시가 막 지날 무렵이었다. 마침 주희는 마루에서 머리를 까맣게 물들이고 있었다.
“뭐 벌써 오셨대?”
“장군께서 여기 계시니 말입니다. 우리 전에도 봤죠?”
서혜가 입꼬리를 실룩였다.
“아 그 개새-”
“형부 관원에게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아가씨…….”
주희가 황급하게 서혜의 입을 틀어막았다. 궁장을 다 벗어던지시더니 이러려고 벗으셨나. 힘도 세시지……. 이산은 객청과 본관이 이어지는 복도 기둥에 몸을 기댄 채 이 광경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손을 억지로 끌어내린 혜가 성질을 부려댔다. “뭐 저딴 놈한테 예의를 지켜요?”
“그러니까 이러시면 안 된대도요.”
“사람이 너무 착해서 탈이야.”
주희가 착했던가. 그는 대답하는 대신 새 수건을 혜에게 건네주었다. 관원은 어깨를 으쓱하곤 아무렇지도 않게 정원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됐습니다. 나머진 제가 마무리하고 나올 테니 접객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차는 안 내줄 건데요.”
“물이라도 내어주세요… 나중에 손님으로 오면 어쩌시려고.”
“그럼 형부 관원은 안 받는다고 해야지.”
“상단주께서 알면 경을 치신다니까요.”
혜는 그제야 영 못마땅한 낯으로 마루에서 몸을 일으켰다. 사방에 널린 물그릇에 수건, 가루와 약병 따위를 들고 일어나자 이산의 시선이 따라붙었다. 주희는 목깃을 고쳐매어 목덜미에 남은 얼룩을 가리곤 걸음을 옮겼다. 새하얀 햇빛이 머리카락 위로 쏟아졌다가 손 위로 검은 반사광을 드리웠다. 그게 퍽 마음에 들었다.
아, 분칠도 해야 하는데. 주희는 어디에 흉터가 있어야 상대가 폭행 사건을 효과적으로 되새길 수 있을지 생각했다. 얼굴에 날아든 것은 없었으니 이마의 흉은 가리는 편이 나을까. 손의 흉터는 보여주는 것이 낫겠고. 그 외의 것은 전부 옷 아래 있을테니…. 형부에서 몸수색을 하려 들진 않을 것이다. 하면 어쩔 수 없고. 그릇을 내려놓자 물방울이 튀어 손 위로 궤적을 그렸다. 손등을 가로지르는 물방울이 차갑기만 했다.
“…….”
회암은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다시 본관으로 나왔을 때는 손에 새까만 장갑을 끼고 있었다.
서천의 여관은 형부 관청과 멀리 떨어져있지 않았다. 자고로 오래 전부터 사람이 모여드는 곳은 공권력과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한다는 상단주의 지침 덕에 그랬다. 그새 온갖 패물을 단 유군과 당홍색 장포를 차려입은 서혜는 장갑을 고쳐끼며 나오는 회암을 빤히 쳐다보더니, 이제 가자며 재촉하는 관원의 정강이를 걷어차곤 -장군은 결국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웃었다- 종종걸음으로 그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홍옥을 세공해 넣은 은비녀가 작은 손에 들려있었다.
“머리는요?”
“회암이 틀어야지?”
“약혼했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외간 남자가 머리를 이렇게 막 만져도 되나.”
“그이는 손으로 하는 건 다 못해서 딱히 신경 안 쓸 걸?”
서혜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 앞에 냅다 돌아섰다. 기름을 발라 반들거리는 머리카락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회암은 머리카락을 반만 남기고 땋아 올려 비녀를 꽂아주면서 낮게 웃었다.
“하하, 그럴 리가요. 신경쓰실텐데…….”
“왜?”
그리고 농조로 덧붙였다.
“제가 더 어리고 젊으니까요.”
“… 하하, 아하하하! 아, 세상에. 진짜 웃긴다. 방금 좀 재밌었어요.”
“그러시다니 다행입니다. 자, 다 됐습니다. 이제 가시죠.”
그는 익숙하게 서혜의 손을 잡았다. 혜가 웃으며 다른 손에 장포자락을 쥐고 문을 나섰다. 그리 행동하는 게 퍽 익숙해보였고, 또 같은 사람이라곤 믿기기 어려울 만큼 다정하고 상냥했으며, 그리고…….
이산은 복도 기둥에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마차를 이용하기엔 짧은 거리라 아마 관원도 그들도 도보로 이동할 것이다. … 아직 이른 봄이다. 그들이 증언을 끝내고 나오면 해가 다 져 있으리라.
맹가가 소리없이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이산은 시선을 내리지 않은 채 물었다. “다 보셨습니까?” 단조로운 어조가 돌아왔다. “가면이라도 갈아끼운 것마냥 행동하는 거라면.”
“하곡 선생은요.”
“잔다. 안 그래보여도 피곤했을 테니까.”
“저녁 식사는 같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술정시(*오후 8시 30분) 전엔 깰 거다. 제대로 찬을 차려 식사하는 건 넘어갈 것 같고 간단하게라도 먹어야지.”
“안 따라가도 괜찮으신지.”
그제야 맹가의 시선이 이산을 향했다.
“‘회암’의 보호자는 내가 아니라 서청이야. 저 상태로 내가 따라가면 부담스러워할 거다.”
… 맹가는, 하남으로 오는 마차 내내 애써 웃던 주희를 떠올렸다. 하곡에게 걱정을 더 얹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다. 애써 웃고, 괜찮은 척 상처를 숨기고, 아프지 않았던 척을 하고, 떠돌아다니면서도- 부당한 대우를 받았으면서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웃었다. 손바닥엔 여전히 갈라진 흉터가 남았고 이마가 그렇게 크게 찢어졌으면서. 발을 절면서. 어깨를 잘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그런 말을.
맹가는 긴 숨을 내뱉었다. 돌아오거든 물어봐야 할 것이 끝도없이 쌓여가고 있었다.
“돌아가면 실 빼야겠네.”
“아.”
반사적으로 이마를 더듬자 손끝에 우둘투둘한 흉이 걸렸다. 그러고보니, 사천에서 꿰메고 한번도 안 뺐던가. … 회암은 최근 이마를 다친 적이 없다. 그는 눈꼬리를 살짝 접어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리가요. 이마를 다친 적이 없는데요. 혜가 그의 옆구리를 툭 쳤다. 우리 지금 주변에 아무도 없어요, 회암. 그는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기실 서혜는 그가 어떤 외형이던지 그를 회암이라고 불렀다. 꽤 다정한 배려였다.
“사천서 하남까지 열흘 걸릴 텐데 안 아팠어요?”
“… 빼는 걸 깜박했습니다.”
“다른 건 안 잊으면서 이런 건 진짜 잘 잊네.”
“안 아파서요.”
“운이 좋은 거에요. 이거 잘못하면 다시 째야겠는데.”
“그 정도까지는….”
“의원 노릇도 했으면서 왜 모른 척 한담? 다른 곳이면 모르겠는데 머리라서 어쩔 수가 없네요.”
그는 문득 이 행동이 자해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합병증으로 죽기라도 바랬던건지. 그렇게 죽지도 못할 거면서.
도심은 야시장이 열렸는지 멀리서 호객 소리가 바람에 묻혀 들렸다. 주희는 아주 잠깐 그 눈부신 능선에 시선을 주었다가, 회암? 하는 소리에 거뒀다. 그가 갈 일은 없는 곳이었다.
망상하는 사이 벌써 여관 앞이었다. 늦은 시간인데 식사를 준비하는지 담장 너머로 사용인들이 부산스레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 그건 어떤 평화였다. 아주 평범한 가정집의 일상 소리나 다름없었다. 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해가 지면 새까만 나무 그림자 사이로 집집의 불길이나 연기가 피어올랐다. 선산은 밤이 되면 나무 사이에 걸어둔 화등에 불을 올렸어서 온 사방이 환했었다. 종종 절벽에서 선산 아래 마을을 바라보면 문을 넘어 반짝이는 불빛이 퍽 아름다웠노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니 주희가 갈망했던 것이다…. 이젠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것이다.
눈을 느리게 깜박여 소리 위로 덧붙여진 망상을 지워낸 주희는 익숙하게 서혜의 머리칼에 꽂힌 비녀를 빼들었다. 혜는 이미 한팔에 장포며 요대를 한가득 얹고 있었다.
“이리 주세요.”
“… 진짜 새삼스러운데.”
“예?”
“이렇게까지 하인을 자처하지 않아도 돼요.”
“…… 제가요.”
그랬던가?
“옷 들어주고, 해달라는 거 다 해주고, 그러는 거 좋긴 한데.” 말을 흐린다. 입술을 달싹이며 시선을 피하는 게, 처음 보는 모양새였다. … 주희가 모르는, 모르면 안 되는, 이런 반응에는. “내가 당신을 하인으로 고용한 게 아니잖아요.” 대답을 어떻게 해야하지?
“시정하겠습니다.”
“뭘, 그냥… 아, 말하기 좀 힘든데. 그러니까 너무 저자세로 있지 말라고요. 싫은 건 싫다고 이야기해도 돼요. 지금 당신이 우리 총무인 것도 아니고, 내가 당신 상사도 아니고.”
“…….”
“내가 지금 단주를 대리해서 당신 신분보증인으로 있긴 하지만, 그게 끝이에요. 돈도 안 주고 부려먹을만큼 악덕인 것도 아니고. 그간 열심히 했으니 그 보답이라고 봐야지.”
“예. … 감사합니다.”
“뭘, 새삼스럽게. 들어가요.”
“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은혜를 갚을 길이 없는데……. 혜는 한숨짓듯 웃곤 그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들겼다. 무거운 문이 열리고, 마루에 앉아있던 이들이 그들을 반겼다. 그리고, 그리고……. 주희는 그 안온한 평화 속에서 괴리감을 찾았다. 여기서 그 홀로 이방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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