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 에우로파, 가니메데, 칼리스토-Part 1.
과제로그/1학년 천문학/줄리엣 클락 w. 로디 맥케이
—
“…으. 별을 읽는 것이 실제로 미래를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된다니. 나는 천문학자나 로켓 과학자가 우주 과학자가 아닌데도 이걸 달달 외우고 있어야 한다니… 노력은 하고 있지만, 적응이 도통 안 되네.”
슬리데린 소녀의 조그만 투덜거림. 빈 교실에는 초여름의 온난한 공기가 맴돈다. 옆에는 다른 기숙사의 동급생이 있기에 기숙사 휴게실을 이용할 수는 없고, 도서관에서는 정숙을 유지해야 해 떠들 수 없기 때문에 선택된 장소이다. 주변에는 책이며 양피지와 깃펜, 가방 따위가 또래답게 흩뜨러져 있는 대신 가지런히 놓여 있다.
로디 맥케이는 작게 사각거리던 양피지에서 고개를 들어 줄리엣을 본다. 서글서글하게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조금 비웃는 것 같기도 한 특유의 표정이다.
“도와줄까?”
줄리엣은 인상을 쓴다. 그녀는 호그와트에 입학한 한 해 동안 표정이 늘었다.
“넌 한참 전에 벌써 다 외웠지? 재수없어…”
소년은 부정하지 않음으로서 긍정하고, 대신 친절하게 말을 잇는다.
“어느 부분이 막히는데? 지도, 아니면 위성 이름?”
“위성 이름. 나도 지도는 아까 외웠어. …77개를 전부 외우라니, 말이 돼?”
목성은 태양계의 5번째 행성이자 가장 부피가 큰 행성으로, 가장 많은 위성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2023년 카네기과학연구소에서 천문학자 스콧 셰퍼드 위성 12개를 발견하면서 공식적으로 총 92개의 위성을 보유하게 되었다고 각종 언론사의 과학 분야 기자들은 글을 썼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이야기가 흐르는 시간인 1911년, NASA가 발족되기도 반세기가 조금 덜 되는 시간이 남았으며 세계 각지의 연구소에서 관측되었던 위성은 총 8개이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관측해 갈릴레이 위성이라 부르는 이오, 에우로파, 가니메데, 칼리스토와 다시 몇백 년의 시차를 두고 발견된 아말테아, 히말리아, 엘라라, 파시파에.
하지만 마법사들의 망원경은 순수히 유리와 공학의 힘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으며, 육안으로 관측할 수 없는 천체의 움직임을 오래전부터 읽어 왔으므로, 이미 머글들이 발견하기 한참 전부터 수많은 위성들의 존재를 알았고 공부해 왔기에. 더 많은 위성들의 존재를 알고 있으며 또한 머글들의 것과는 사뭇 다른 이름 체계를 가지고 있다.
재미있는 우연 한 가지는, 머글들 또한 오랫동안 천체를 신화와 연관지어 왔기에, 어떤 점에서는 같기도 하다는 것이다.
암기법을 또 하나 알려주려는 그를 가로막고, 줄리엣은 말을 잇는다.
“…머글들은 제일 처음 발견된 위성 4개를 갈릴레이 위성이라고 부르는 것 알아?”
“갈릴레이?”
끄덕거림.
“응. 16세기 이탈리아의 머글 철학자 겸 과학자. 그 사람이 머글 중에서는 처음으로 목성의 위성을 발견했거든… 그런데 우리가 지금 배우는 천문학 교과서에서도 이 위성들은 이름이 같더라. 신기해서 왜일까, 고민하다 보니 마법의 역사 시간에 배운 게 생각났는데, 갈릴레오가 살았던 시기는 아직 국제마법사비밀법령이 제정되기 전이니까. 머글과 마법사도 지금처럼 단절되어 있지 않았겠지. 어쨌든, 그 사람이 붙인 이름들- 이오, 유로파, 가니메데, 칼리스토는 신화에 나오는 최고신 유피테르Jupiter의 연인들이잖아? 마법사들도 이건 마음에 들었나 봐. 그대로 쓴 걸 보면.”
(마법사 가문 아이들의 이름은 신화에서 따온 경우가 많고, 라틴어는 마법 세계에서 단순히 지식의 언어가 아닌 삶의 언어이다. 국제비밀법령이 제정된 순간 시간이 멈춘 것처럼 마법사들은 가장 중세적인 이들이다.)
로디는 한번 끄덕인다. 언뜻 보아서는 이름을 못 외웠으면 다시 과제에 집중이나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라는 건지, 흥미롭네, 라는 대꾸가 진심인지 알 수 없다. 줄리엣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갈릴레이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주장해서 죽을 뻔 했던 거 알아? 당시 교회는 그걸 부정했거든.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인상적이었는데, 이런 낭만적인 면도 있을 줄은 몰랐네.”
사실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보이는 것 또한 중요하지 않다. 다만 우리는 결국 서로를 이름으로 불러야 하며, 결국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것으로 서로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당신의 영 껄끄러운 호의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해 이 세계에서 우리를 몰아내겠다 선언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나는 이제서야 이 세계를 사랑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당신 또한 미워할 수가 없다. 같은 기숙사의 동급생들, 순수혈통 가문에서 나고 자란 이들에게 혼혈일지라도 어쩔 수 없이 어울려주게 만들겠다고 자신만만하게 선언했던 것을 되돌려 받기라도 하듯, 당신들에게 서운해하고 상처받으면서도 마냥 증오할 수가 없어서.
아무렇지않게 목성의 열여섯 번째 달의 마법사식 이름을 묻는 당신에게 인상을 구기면서도 순순히 대꾸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불치병은 이것일 수도 있겠다.)
- 카테고리
-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