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무를 위해

Yours Truly, Juliet

줄리엣 클락 1학년~4학년 공백기 로그

BGM:

존경하는 아버지께.

All is well모든 것이 좋아요. 안배해 주신 덕에 용돈도 넉넉하게 쓰고 있고요. 열차 안에서 간식을 조금 사 먹었답니다.

저는 네 기숙사 중 슬리데린에 배정되었어요. 마법 세계에 오래 살았던 가문 출신 아이들이 많이 있는 곳이요. 배정하는 분이(정확히는 사람은 아니고 모자인데, 자세한 건 뒤에 더 말씀드릴게요) 저를 보고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을 아이“라고 말하더라고요. 여기에서라면 말씀하신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을 것 같고, 새로운 지식도 많이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동봉한 노트들에는 학교 안 여기저기의 그림을 그려 두었어요.

(중략)

스코틀랜드의 날씨는 쌀쌀하네요. 다시 뵙는 날까지 따뜻하게 잘 계시길 바라겠습니다.

-1910.09.01. Yours truly, Juliet

존경하는 아버지께.

여기엔 정말 다양한 친구들이 있는 것 같아요. 꼭 “혈통”뿐만 아니라, 취미나, 성격이나, 가족이나, 지금까지 자라온 환경까지……. 마법 때문에 평생 갇혀 산 아이들부터, 마법이 부끄럽고 숨겨야 하는 것이라고 가르침받은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마법이 선택받은 이들에게만 부여되는 자격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도 많고, 누군가의 마법은 진실로 마법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아이들도 있고요.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죠, 사람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배경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저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렇다면 하나의 사람은 하나의 세계의 결과물인데, 우리가 만약 세계를 전부 이해할 수 없다면, 과연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요?

…감상적인 소리가 늘었네요. 본론은 뒷장에 첨부해 두었어요. 늘 평안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중략)

-1910.12.04. Yours truly, Juliet

존경하는 아버지께.

오늘 비행술 수업 시간에 어떤 기자가 왔어요. 그리고…. 아빠, 마법을 정말로 사람에게 부여하거나 빼앗는 것이 가능할까요? 저는… ….

-(이 편지는 전송되지 않고 불태워졌다.)

존경하는 아버지께.

네, 외조모님의 유품의 번역은 잘 되어가고 있어요. 고대 룬 문자를 수강하는 선배에게 부탁해 도움을 받고 있지만, 부족한 딸의 룬 문자 실력이 빠르게 성장하지 않아, 속도가 여전히 미진함을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기를. 아버지께서 늘 말씀하셨다시피, 저는 학자의 아내는 되더라도 학자가 될 운명은 아닌가 보아요. 하지만 말씀주신 38페이지 세 번째 문장이 핵심적이라는 것은 이해했으니, 그 부분만은 해석에 성공하도록 노력해 볼게요. 제 생각에는 그 부분은….

(중략)

-1913.01.25. Yours truly, Juliet

나의 사랑, 당신에게!

저는 오늘도 당신에게 편지를 써요. 지난주 이후로 또다시 답장이 없으신 것은, 분명 당신이 로맘 가문을 부흥시키고 혼란한 마법 세계를 평정하기 위해 쉴틈없이 힘쓰고 계시기 때문이겠죠? 그런 당신을 무한히 존경하는 마음과, 또 저를 귀찮은 어린 여자아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최대한 자제해 보려 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따금씩 터져 나오는 꽃망울처럼 이렇게 당신을 향한 사랑이 걷잡을 수 없이 펜끝에서 잉크로 흘러넘쳐 나오고는 하네요.

그래서 오늘도 저는 혼자서 당신을 그린답니다. 마음속으로도, 그리고 종이에도요. 종이에 그려진 당신은 저를 떠나지 않는데, 살아 숨쉬는 당신은 저를 봐주지 않으시니, 이렇게 황홀히 잔인한 당신께 저는-, 아니, 방금 말은 읽으셨더라도 잊어 주세요. 당신이 주시는 다정한 눈길 한 번이, 따스한 말 한 마디가 제게는 세상의 어떤 이가 베풀어줄 수 있는 어떤 자비보다도 더 크니까요. 그리고 다음 주 팔수스 가문에서 주최하는 사교회에 또다시 저를 파트너로 초대해 주신 것 또한, 저에게는 덧없는 하루하루를 숨쉬는 이유가 되고 있답니다.

혹시라도 그 전에 답장을 주신다면, 제가 입고 갈 드레스의 색을 추천해 주시지 않겠어요? 만일 허락해 주신다면, 저는 당신의 푸른 눈색을 물고기가 바다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소중히 생각하고 있어요.

-1913.06.05. Yours truly, Juli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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