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번 더 라고 말하지 않는다.

첫승리


남요를 처음 만난 건 나와 형님이 열 다섯 살 때였다.

처음 만난 남요는 스무 살이었다.

가끔 심심하던 우리 형제가 남요를 끌어들여 놀아달라고 떼라도 쓰면 남요는 어쩔 수 없단 듯 웃고 익숙하게 장기판을 가져오곤 했다.

"아, 또 졌다..."

장기 말을 톡톡 두드리다 결국 살아나갈 방법을 찾지 못한 내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내 모습을 보던 류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한번 더!!"

남요는 그러면 웃으며 다시 한 번 승부에 임해주었다. 류호는 자존심이 강한 사내였다. 그는 항상 남요에게 일부러 져주지 말라고 이를 바득바득 갈았고, 그 말 때문인지는 몰라도 남요는 지는 일이 없었다. 나는 그 모습 탓에 그가 더더욱 어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그를 '이상적인 어른'으로 인식하였고, 그처럼 되고 싶다 생각했다. 그는 일종의 범접하지 못할 성인이었다.

슬픈일이지만, 나는 덕분에 시간이 흐를 때마다 그 시절 그렇게 커보였던 남요가 어찌나 어린 나이였는지 실감하게 되었다.


눈이 쏟아지는 날에 형님이 죽었다.

남요는 그날 울지 않았다. 내가 계속 울고 있어서 기억한다. 남요는 어째서 울지 않습니까. 슬프지 않습니까? 물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묻지 못했다. 답을 듣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며칠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는 나를 보다 못한 남요는 익숙한 장기판을 들고 왔다. 류호와 내가 힘을 합쳐 논의를 해서 싸워도 한번도 이기지 못했던 놀이였다.

"... ...괜찮습니다, 남요."

남요는 장기 말을 놓았다. 그는 늘 그랬듯 '한' 진영을 골랐다.

"정말 괜찮습니다."

"초나라가 먼저입니다."

그는 내게 얼른 놓으란 듯 손짓했다. 결국 나는 비틀거리며 바닥에 어정쩡하게 앉았다.

나는 병을 먼저 움직였다.

남요는 졸을 움직였다.

나는 마를 움직였다.

남요는 다른 졸을 움직였다.

한참 타각거리는 소리만 났다.

"...아."

외통수였다. 한번도 할 수 없을거라 생각했다. 나는 멍하니 장기판을 바라보다 고개를 들어올려 남요를 바라보았다.

그는 고작 나보다 다섯 살 많았다. 성장기를 거친 나는 어느 정도 성인 남자의 체격이란 것을 알게 되었고, 그간 내가 어린 소년이었단 것도 알았다.

하지만 바보같게도 남요의 우는 얼굴을 보고서야 그가 아직 이립조차 되지 않은 청년이란 사실을 깨닫고 마는 것이었다.

슬퍼하는 건 나 뿐이 아니었다.

나는 그 날 무슨 짓을 해서라도 죽지 말자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게 설령 비굴하게 바닥을 기는 일이라도 좋았다.

그가 지고 우는 얼굴은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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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요_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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