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GL / 좀아포] Requiem Z min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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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말 by 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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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왜 이렇게 막혀?”

 

시간을 확인한다고 해서 꽉 막힌 도로가 시원하게 뚫려줄 리도 없건만 수현의 손은 계속해서 애꿎은 휴대폰의 홈 버튼을 눌러댔다. 오늘 저녁은 윤아가 좋아하는 전골을 끓일 생각이었다. 장까지 혼자 다 봐놨다는 말이 기특해 1초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거짓말을 조금 섞어 평소의 스무 배는 늘어지는 교통체증에 귀가시간은 자꾸만 더뎌졌다.

 

 “아저씨! 차가 왜 이렇게 막혀요?”

 “그러게요…. 여기가 이렇게 막히는 구간이 아닌데 이러네.”

 “미치겠네, 정말.”

 

사람으로 꽉 찬 버스 공기가 답답했는지 코트 단추를 풀어헤치고 연신 손부채 질을 해대는 중년여성의 손놀림을 지나 버스 기사가 틀어둔 라디오 소음이 귓가에 들려왔다. 서울 곳곳에서 빚어지는 교통체증의 원인을 파악 중이라는 둥, 오늘 날씨가 어떻다는 둥….

 

‘이제 두 정거장만 더 가면 집인데…. 내려서 걸어갈 걸.’

 

퇴근 다섯 시간 전부터 멎질 않던 투덜거림이 이제 입 밖으로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 맛있는 저녁과 밀린 하루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윤아와 살면서부터 낙이 된 하루의 마무리를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몽글몽글해진다. 입술을 꼭 물고 번지는 미소를 참는데 곧이어 옴짝달싹 않던 차가 속도를 내는가 싶더니 얼마 가지 않아 타이어가 찢어질 듯한 마찰음과 함께 급정거해 몸이 앞으로 크게 쏠려버렸다.

 

“뭐야, 정말!”

 

참아왔던 성질을 버럭 내며 애꿎은 운전석을 노려봤지만, 버스 안의 군중은 그보다도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렸다.

 

“저거…. 뭐야…?”

“꺅!”

“사람 아냐?”

 

길바닥에 흩어진 피와 살점, 눈이 뒤집혀 처참하게 죽어가는 사람의 배에 고개를 처박고 우적우적 내용물을 뜯어먹는, 마치 사람처럼 보이는, 보이기도 하는 ‘그것’에 사람들의 목소리가 웅성웅성 몸집을 부풀려 갔다. 수현은 현실과 괴리된 풍경에 어떠한 반응도 할 수 없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여기저기서 카메라를 켜고 사진을 찍거나 녹화하는 사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자신이 사건의 현장에 운명처럼 놓인 주인공처럼 굴고 있었다. 그러나 수현은 직감적으로 알았다. 당장 이 장소를 벗어나야 한다고.

버스 기사가 식은땀을 흘리며 오르막길을 향해 액셀을 밟자 터진 엔진 소리가 아무래도 ‘그것’의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었다. 입가에 잔뜩 피를 묻히고 악을 쓰며 달려드는 모습에 발끝에서부터 머리카락까지 온몸의 털이 쭈뼛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아저씨, 차 세워주세요! 내릴게요!”

“여기서 어떻게 세워, 아가씨! 못 세워! 내릴 생각들 마쇼!”

 

혼란에 빠져 으름장을 놓는 버스 기사에게 더는 바랄 수 없다고 느낀 수현에게도 내려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곧 있으면 집을 지나칠 터였다. 혼자 있을 윤아의 생각에 아찔해졌다.

사람이 극한의 상황에 던져지면 이성을 잃고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고는 하지만 본인에게도 그런 능력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저 무작정 창문을 열고 몸을 욱여넣고 보는 것이다. 다행히 버스의 창문은 큼직해서 성인의 다 자란 몸도 어떻게든 빼낼 수 있었지만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린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했다. 버스의 속도는 따라올 수 없었던 것인지 아직 저 멀리 뒤처진 ‘그것’을 보고 눈을 꽉 감은 채 몸을 인도 쪽으로 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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