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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신타브

발더삼 by 소금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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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 이후의 일상.

엔딩 스포 주의!


할신은 나무를 깎았다. 조각용 칼이 나무를 가르는 소리가 귓가에 모여들었다가 달빛을 만난 구름처럼 흩어졌다. 평소라면 동물들을 깎았겠으나, 이번에 깎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자신의 연인이었다. 자신이 신뢰할 수 있으며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 그 중 가장 소중하며 자신의 정원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이었다.

할신은 나무를 조각하며 자신의 지난 삶을 추억해보았다.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떠났으며, 스쳐 지나갔다. 그들중 몇명은 지금의 연인처럼 할신의 정원 안에 들어왔던 자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중 대부분이 이미 지나가 자연으로 돌아간 자들이었다. 그의 긴 인생을 누군가와 함께할 수 없음에 어느 때에는 슬퍼했고, 어느 때에는 분개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그 많은 것들은 풍화되고, 그 혼자만 남아 이제는 둥글어졌다. 할신의 앞에 있던 벽난로에서 장작이 부러지는 소리가 났고, 그의 귓가에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할신, 뭐해요?"

뒷쪽에 있던 건물에서 그의 연인인 탭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히 잠들어 있었을 텐데, 어느새 이리 나온건지 담요를 뒤집어 쓴 채였다.

"나무를 깎고 있었소. 달빛이 밝기에, 취미를 하기 좋구려. 오래된 나의 취미 중 하나라오."

할신은 탭을 보며 빙그레 웃어주고는 자신이 들고 있던 나무 조각을 들어올려보였다. 이제 막 사람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나무조각은 약간 떨어져 있는 탭이 보기에는 그저 사람의 상반신을 조각한 것으로만 보였다.

"그런 취미가 있는지 몰랐어요. 가까이 가서 봐도 될까요?"

"물론이오. 밤 공기가 차니 벽난로 가까이 의자를 옮겨주겠소. 여기에 앉으시오."

탭은 그 친절에 감사를 표하며 벽난로 가까이 옮겨진 의자에 앉아 할신이 주는 나무 조각을 받아들었다. 그제야 할신이 깎고 있었던게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챈 탭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나무 조각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투박한 나무조각에서 따스함이 느껴지는 듯 했다. 자신의 연인은 언제나 이렇게 부드럽고 따스하게 자신에게 스며왔다. 이 따스함에 기대면 자신의 힘들었던 시절의 일들이 사라지는 듯 했다. 그래서 탭은 벽난로의 불을 쬐고 있는 할신에게 살짝 기대며 나무조각을 돌려주었다.

"왜 나를 깎고 있었어요?"

"오늘은 그대의 얼굴이 평소보다 더 생각나더구려. 평소에는 동물들의 모습을 깎는데... 오늘따라 그대의 얼굴이 더 보고 싶었나보구려."

그 말에 탭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할신의 솔직한 표현은 그에게 부끄러움을 자아냈다. 탭은 벽난로의 열기 때문에 그렇다며 속으로 둘러대고는 나무를 깎는 할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아침에 일어나면 고아원의 일을 도와야 할 것이었다. 그러니 지금 이렇게 둘만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이었다. 할신은 재난으로 인해 고아가 된 아이들을 데려다 고아원을 만들었고, 그 아이들을 위해 살고 있었다. 그리고 탭은 할신의 그 상냥한 마음마저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고아원을 꾸리는 것을 옆에서 거들었다.

타닥거리는 벽난로가 조용히 기대어 시간을 보내는 연인들을 비추었다. 탭은 불을 바라보며 이때까지의 여정을 추억했다. 노틸로이드에 잡혔던 일, 처음으로 만난 동료들과 야영지에서 야영물자를 나누어 먹었던 일. 그러다 고블린 부락에서 갇혀있던 할신을 구출하고, 달오름 탑으로 가기 위해 언더다크를 여행하고, 그림자에 잠긴 땅을 구하려 하는 할신을 돕고.

탭은 그런 일들을 하나하나 추억하다 나무를 깎는 소리에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리고 할신은 그런 탭을 조용히 바라보다 탭이 편하게 잠들 수 있도록 자신의 무릎을 내어주었다.


다음날. 할신은 아이들을 위해 스튜를 끓였고, 탭은 할신을 위해 앞마당을 쓸었다. 아이들을 놀아주는 일은 할신도 잘 했지만 탭의 '소꿉놀이'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더 많았다. 탭은 자신이 극단 배우로 살았을 때의 재능을 살려 아이들을 놀아주었다. 노래를 부르는 일도 있었고, 연극을 하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언제나 할신이 함께했다. 아이들과 다 같이 산으로 들로 놀러 갔을 때. 아이들은 꽃으로 된 화관과 목걸이를 가져와 할신과 탭에게 씌워주었다. 그 사이에서 탭은 무척이나 행복했다. 밝은 얼굴로 아이들을 보며 웃고 있으면, 어느새 할신이 다가와 그를 번쩍 안고 한바퀴 뱅글 돌고는 했다. 물론 그 후에는 아이들이 자신들도 해달라는 통에 할신이 아이들을 들고 뱅글뱅글 돌았지만 말이다.

날은 할신과 탭의 사이만큼 따스했고, 아름다운 봄날이었다. 어느새 곰으로 변해 아이들을 놀아주고 있는 할신을 보며 탭은 웃었다. 이렇게까지 행복한 날이 거짓말일까봐 가끔은 두려웠지만 할신이 손을 잡아오거나 어깨를 감싸오면 언제든 그런 생각은 사라졌다.

점심이 지나고, 저녁시간이 되기 전, 탭은 할신과 함께 장을 보러 나왔다. 고아원을 돕는 다른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사람들은 할신과 탭이 연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에 한번씩 둘만 있는 시간을 주고는 했다. 탭은 이 시간이 무척이나 좋았고, 또 새로운 고아원 동료들에게 감사했다. 그 때, 할신이 탭에게 물었다.

"다른 일은 하지 않아도 괜찮소?"

탭이 그게 무슨 말인지 할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 가볍게 웃은 할신은 사과를 고르며 말했다.

"나를 따라 고아원을 함께 운영하고 있지 않소. 다른 일을 하고 싶었을 수도 있었을텐데 나를 따라와 준 것이... 미안해서 그렇소."

할신은 탭의 다른 가능성에 대해 말했다. 홀로 여행을 떠날수도, 카를라크와 함께 아베르누스로 갈 수도, 아스타리온을 따라 언더다크로 갈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그게 아니라면 탭이 하고 싶은 다른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탭은 입을 열었다.

"나는 당신을 따라온 것을 후회하지 않아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이에요. 나는 당신밖에 보이지 않는걸요. 다른 동료들도 내 소중한 사람들이지만, 그 중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당신이였어요."

"그렇지만... 내가 그대의 가능성을 막아버린것은 아닌지 가끔 걱정이 되오. 자네는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고... 정말 원하는 것이 내 곁에 있는 것 뿐이오? 나만으로도 괜찮겠소?"

그 말에 탭은 웃었다. 그의 연인은 가끔 이렇게 불안감을 내비쳤다. 그리고 그때마다 탭이 해 주는 말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물론이죠.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뭘 해야 할지 몰랐을거에요. 여행은 이미 오래전에 많이 했고, 카를라크는 윌이 함께하고 있고. 아스타리온이 스폰들을 통제하려면 그들끼리 있는것이 더 편할거에요."

그리고 할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언제나 당신밖에 없어요. 불안해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속마음을 터놓는 건... 아직 조금 부끄럽지만 말할 수 있어요. 내 마음은 언제나 당신 뿐이라는걸 난 알고 있어요."

말을 들은 할신은 잠시 눈을 조금 크게 뜨고 탭을 바라보더니, 너털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말이 부끄러웠는지 눈을 살짝 피했다.

"미안하오... 나만 바라보는 상대는 오랜만이라 가끔... 불안해지오. 자네를 의심한 것은 아니오. 하지만 내 마음이 묻기에 물었을 뿐이니 너무 개의치 마시오."

탭은 답하지 않고 할신을 꼭 안아주었다. 그의 심장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두근대는 소리가 누가 보아도 사랑에 빠진 사람의 심장소리였다. 그 소리에 탭은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할신의 손을 잡고 빨리 고아원으로 돌아가자고 끌어당겼다. 늦으면 아이들이 배를 곪게 된다는 소리에 할신도 빙그레 웃음짓고는 손을 맞잡고 고아원으로 향했다. 둘은 거리의 누가 보아도 사랑스러운 연인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고아원으로 돌아온 둘은 저녁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영양을 생각해 재료를 손질하고, 요리했다. 홀로 여행다녔을 때의 경험이나 야영물자를 요리하던 경험으로 인해 요리는 탭이 만들었고, 할신은 재료의 손질을 도왔다. 요리를 완성하고, 아이들을 먹이고, 이를 닦도록 시켰다. 그리고 또다시 밤이 돌아왔다.

할신은 나무를 깎았다. 어제에 이어 자신의 연인을 조각하는 중이었다. 자신의 연인은 어린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해 주는 동화나 자신의 경험담을 말해주면 그것을 듣다가 꾸벅꾸벅 졸았다. 덕분에 할신은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이면 자신의 연인을 조심히 들어올려 침대 위에 올려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든 탭이 깨지 않도록, 뺨에 작게 키스를 남기고 조용히 벽난로가 있는 이곳으로 나와 나무를 깎는 일을 반복했다. 아마 이 일은 이번 나무 조각이 완성 될 때까지 반복 될 것이다.

할신은 자신의 연인을 생각했다. 거미줄의 은빛으로 빛나는 흰 머리카락에 제비꽃 같은 자색 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스해졌다. 그를 보고, 껴안고, 키스하고 싶었다. 아마 자신의 연인은 자신이 그를 바라볼 때 어떤 생각을 하는지 꿈에도 모르고 있을 터였다. 마음을 터 놓았지만 아이들이 생긴 이상 할 말과 못할 말을 구별 할 줄은 알았다. 할신은 나무조각을 향해 입김을 훅 불어 톱밥들을 걷어냈다. 어제보다 조금 더 자신의 연인에 가까워진 나무조각은 이제는 완성만을 앞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탭이 자신을 향해 걸어왔다.

"오늘도 나무를 깎는거에요?"

"그렇소. 아마 완성될 때 까지는 계속 할 것 같구려. 이번 나무조각은 빨리 완성하고 싶어서... 나도 참. 그대와 관련되면 젊었을 적으로 돌아간 듯 하오. 아마 내 마음도 그리 알고 있겠지."

"...오늘은 나무 조각보다 옆에 있는 사람을 안아주는건 어때요?"

할신은 눈을 깜박이다 옆 사람을 바라보았다. 반짝이는 제비꽃 두 송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약간은 상기된 얼굴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알고 있지 않냐며 묻는 것 같았다. 그것을 본 할신은 웃었다. 그리고 두 손에 들고 있던 나무조각과 조각칼을 위험하지 않도록 치워두고, 탭을 껴안았다.

"키스해도 되겠소?"

"...네. 물론이에요."

부드러운 바람이 불었다. 봄날의 바람이었다. 따스한 바람은 벽난로의 불을 흔들리게 만들었고,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하나로 합쳐진 모습을 보았다. 부드러운 바람은 그 모습이 부끄러워 천천히 불꽃만을 사르락거리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오늘도 벽난로의 장작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달빛이 밝은 보랏빛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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