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외

모형저택의 요정

히게사니

드림 by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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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rin_Honmaru 님네 혼마루 드림 설정을 기반으로 합니다. 모 사건의 후일담. 공포 4444자.


당신은 요정이 존재한다고 믿는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혹은 우리가 보지 않는 동안 침대 아래나 책장과 벽의 틈, 혹은 다다미의 틈새 아니면 족자 뒤에 숨어있다가 인기척이 없어지면 슬그머니 나타나는 존재들 말이다. 그들은 주로 작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나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도와주거나 착한 일을 한 사람에게 선물을 준다는 설화로 전해진다. 어떤 이들은 이들이 요괴나 도깨비 같이 아이들에게 환상과 교훈 심어주기 위한 상상 속의 존재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의견 또한 그렇다면 이 이야기에서도 무언가 교훈을 찾을지도 모르겠다.

여기 한 소년이 있다. 장난감 가게에 왔지만 다가올 동생의 생일을 고르느라 정신 없는 어머니 때문에 소년은 불만이 가득하다. 볼까지 부풀려 잔뜩 화났음을 티 내고 있지만 어머니는 본체만체 한다. 그녀가 고르는 동물 모양 봉제 인형은 소년 눈에는 하나같이 시시하기 짝이 없다. 결국 한눈을 팔고 만다. 커다란 턱을 가진 호두까기 인형, 뚜껑을 열면 감미로운 노래가 흐르며 무용수가 춤추는 음악상자, 줄을 당기면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비행기 모빌. 입구 앞의 대형 가판대, 가게 구석부터 천장까지 눈이 돌아갈 정도로 장난감들이 장식되어 있었지만 제 손에 든 것은 종이로 만든 바람개비 하나 뿐이다. 제가 가진 것이 초라하게 느껴 아이는 바닥만 보며 걸었다. 입술을 뒤틀리게 만드는 감정의 이름이 실망이라는 것도 모르지만 힘이 빠졌다.

어디선가 쩔그럭, 둔탁한 소리가 들려 소년은 고개를 들었다. 시선 너머 선반에는 장난감 집 전시품이 숲속의 정원처럼 꾸며둔 층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어른의 두 손을 활짝 펴야지 덮일 것 같은 아담한 크기의 2층 서양 저택의 모형 집이었다. 인형을 넣고 놀기에는 작은 크기였지만 오돌토돌하게 질감 처리 된 붉은 처마와 흰 벽, 2층에는 테라스까지 꾸며둔 것을 보면 만든 이가 꽤 정성을 쏟은 것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묘한 것은 어느 방 하나 창문이 열려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모형 안에 전구를 설치한 것일까? 나무문으로 가로막힌 창문 틈에서 은은하게 빛이 새어 나왔다. 그 틈을 들여다보려고 애를 쓰던 중 어느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니?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한 목소리. 속삭이는 어투가 아니었음에도 두 손을 귀에 가져다 모아야만 들릴 것 같은 작은 소리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시 소리가 들렸다.

-조금 피곤한 것 뿐이야.

모형 집 1층에서 나는 소리였다.

혹시 요정이 사는 장난감 집은 아닐까? 

두근거리는 발견에 소년의 눈이 커졌다. 조금 전까지 풀이 죽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뺨이 달아오른 소년은 모형 집을 조심스레 귓가에 가져다 대었다. 

-"배고프진 않니? 식사를 가져달라고 할까?

-사양할게. 혼자 있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

하늘을 둥실둥실 떠다니는 양떼구름같이 천연덕스러운 말투. 그리고 지쳐있는 듯한 남자의 목소리가 났다. 장난감에서 들리는 대화 소리는 환상이 아니었다. 이게 꿈이 아니라니. 아이의 손바닥에 스멀스멀 식은 땀이 배기 시작했다. 안을 엿볼 방법이 없을까? 천천히 모형 집을 돌리니 반대편 창문은 모두 유리창이었다.

소년은 눈을 가져다 대었다. 

차茶색과 적赤색. 침실을 꾸미기엔 지나치게 화려한 벽지에 이질감이 느껴졌다. 무엇 때문인지 설명할 수 없었지만 생생한 신기루와 같았다. 소년은 어느 날 오후 선물 받은 망원경으로 건너편 집을 훔쳐본 기억을 떠올렸다. 분명히 그곳에 있으나 이곳에 있지 않은 것. 엿보면 안될 것을 보는 듯한 기분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방 안에는 어두운 피부를 가진 사내가 홀로 서 있었다. 생각에 빠진 듯 허공을 바라보던 사내는 허리를 숙여 침대 아래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수첩과 주사기였다.

남자는 말없이 그것들을 한참 지켜보았다. 담담한 표정이었으나 고민이 많아 보이는 얼굴.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인형극의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만 듯한 기분이었으나 으레 아이들이 그렇듯 소년은 금세 몰입하였다.

-모든 게 그가 만든 연극이라면 우리는 어디쯤 서 있는 걸까.

-뚜벅.

울리는 발걸음 소리에 소년은 옆을 보았다. 복층 홀을 돌아 새하얀 차림의 남자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길게 뻗은 몸과 날렵한 선. 난간을 짚고 가볍게 도는 모습은 요정이 아니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호수 위를 미끄러지듯 한 걸음이 2층에 도착해 소리 없이 낙엽을 지르밟듯 사뿐해졌다. 숨바꼭질 중 술래 몰래 발걸음을 죽이는 아이 같은 가벼움 그러나 사냥감의 눈을 피해 바닥을 조용히 기어가는 맹수를 떠올리는 발걸음에 관객은 숨을 죽였다. 남자가 입만 움직여 무어라 중얼거렸다. 분명 소리를 내지 않았음에도 소년은 그가 무어라 중얼거린 지 읽을 수 있었다.

 아직 멀었니?

남자가 조심스레 문고리를 열었다. 문틈 사이로 벌어진 틈을 노리며 남자는 조심스레 자세를 낮췄다.

눈 깜짝할 새였다.

남자가 튀어 오르듯 문을 박차고 나가자 건너편 방에서 물건이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쿵. 카펫에 커다란 무언가 쓰러져 난 소리. 당황한 소년이 서둘러 눈을 옮기자 차색과 적색의 방 한가운데 쓰러진 사내와 그 위에 올라탄 하얀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쓰러진 사내는 얼굴이 보이지 않았으나 목에 빛나는 날카로운 것이 꽂혀 있었다. 소년은 서둘러 입을 틀어 막았으나 비명같이 들이마신 숨소리가 새어나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샛노란 눈동자가 소년과 마주쳤다. 조금 전까진 요정이라고 생각한 이었으나 자신이 잘못 본 게 분명하다. 세로로 길게 갈라진 동공은 어느 폭풍우 치던 밤 할아버지가 보았다는 요괴의 이야기랑 똑같았다. 쥐가 고양이를 마주하면 굳어버린다는데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눈을 떼는 순간 하얀 칼날과 같은 시선이 제 몸을 반으로 가를 것 같은 살기에 소년은 입술을 떨었다.

창문 가득한 검은 눈망울. 초대하지 않은 관객에 뱀 같은 동공이 한층 좁아졌으나 관객의 눈망울이 일렁이자 남자는 살기를 거두고 눈꼬리를 휘며 웃었다.

-몰래 훔쳐보는 건 못 써.

가뿐하게 일어난 남자가 어깨에 걸쳐진 웃옷이 팔락이며 창가로 다가갔다. 장난치다가 꽃병을 떨어트렸을 뿐인 고양이처럼 쓰러진 사내를 배경으로 남자는 뒷짐을 지고 창문 가득한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남에게 숨기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야. 그런 걸 멋대로 봐버렸으니 대가를 치러야지 않겠니?

둥실둥실 떠다니는 양 떼 구름 같은 말씨로 아이를 타이르곤 남자는 매끄러운 검은 가죽 장갑으로 덮인 손바닥을 내밀었다.

-괜찮아. 베거나 베이거나 하는 일은 아니니까. 그냥 네가 들고 있는 그걸 주지 않을래?

 알 수 없는 말에 관객은 눈만 깜빡였다. 그러자 하얀 사내가 장난스레 웃으며 끄덕였다. 이걸로 된 건가? 소년이 망설이다 길게 눈을 깜빡이자 손뼉을 치는 소리가 귓가에 울리더니 붉은 커튼이 시야를 가렸다.

 

규칙적인 소리를 내며 철길을 달리는 장난감 기차, 오색찬란한 빛을 내며 돌아가는 회전목마 모형, 천장에 걸린 색색의 깃발들과 정해진 선로 위를 지나가는 열기구 모형들. 소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금 전의 저택은 물론이고 자신이 신기하게 들여다보던 선반 자체도 보이지 않았다. 없어진 것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시선을 내리자 텅 빈 손이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가 계산대에서 골라준 붉은 바람개비가 사라졌다. 아니, 요정에게 주었다는 말이 맞을까?

 다른 이야기들이 그렇듯이 이후로 소년은 몇 번 더 장난감 가게에 찾아갔으나 소리가 나는 저택이나 장난감 사이에 숨은 요정을 다시는 보지 못 했다고 한다. 그 작은 집에서 일어나던 연극은 대관절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이어지고 있었던 것일까?

  


 

호우키 국(伯耆国)의 어느 상점가의 화과자 가게. 어두운 피부에 밝은 머리카락을 지닌 사내가 단말기를 보다가 말없이 얼굴을 문질렀다. 근시 혼자 심부름을 보내고 포장 주문을 기다리는 사이 소일거리가 없던 게 화근이었다. 옆자리에 앉은 손님들이 통신 사이트에서 오래된 괴담이 올라왔다 하길래 궁금해서 검색해 본 것인데……. 어쩌면 자기가 알고 있는 '그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차라리 아예 보지 않았으면 좋지 않았을까? 두툼한 눈썹을 모으고 괴로워하고 있자니 익숙한 기척이 느껴졌다.

"어라, 무슨 일이라도 있니?"

시킨 일은 다 했다는 듯 뿌듯하게 심부름 봉투를 내밀려다가 주인의 표정을 보고 히게키리가 고개를 기울였다. 츠루마루 쿠니나가만큼은 아니지만 얼룩 하나 없는 새하얀 옷의 말끔한 양장. 천진무구한 표정이지만 시선을 피하는 법을 모르는 샛노란 눈을 보니 조금 전의 글이 다시 떠올라서 사내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냥 조금 이상한 이야기를 봐서."

"무슨 이야기였길래?"

"……별로 재미없을걸."

슬금슬금 피해 보지만 따라붙는 시선에 사내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궁금한 게 있다면 살금살금 다가가 톡 건드려도 보고 데굴데굴 굴리고 입 안에도 넣어봐야 하는 새끼 고양이 같은 도검남사로부터 피할 방법은 역시 없나.

각자 봉투 하나씩 들고 혼마루로 돌아가는 길. 콧노래를 부르며 주인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남사를 향해 사내가 겨우 입을 떼었다.

 "히게키리는 요정을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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