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6] 러스티x621
1500자 짧은데 왜 한페이지에 안 담겨T_T
레이븐을 죽이고 싶었다.
적어도 해방전선의 영웅, 루비콘의 유일무이한 희망이었던 러스티가 그 독립용병을 단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아직 이 러스티가 살아있다고… 그 연약하고 잘난 날개를 꺾어서, 생명의 흔적이라고는 존재치 않는 가엾은 행성 한구석에 목을 비틀어 내걸겠다고.
레이븐은 목덜미에 들이밀어진 칼자루를 보고도 이해한다는 듯 무덤덤했다. 버석한 입술에서 나오는 말에는 끊김이 없었다.
“내가 전부 부쉈어. 네가 가진 모든 걸.”
“그래, 널 제외하고.”
녹슨 칼을 쥔 손이 흔들렸다. 사실은 루비콘이 붉게 타오르는 걸 보면서 러스티는, 암호통신을 시도한 해방전선의 멍청이를 직접 죽였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두 경우 모두 가장 먼저 느껴진 감정은 슬픔이 아니다. 이제는 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레이븐. 내가 네게 반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원망스레 꽉 쥔 칼끝에는 지울 수 없는 다정함이 담겼다. 친우를 대할 때 러스티는 습관처럼 그렇게 했다. 레이븐이 눈을 깜빡였다.
“레이븐. 나 또한 알고 있어…… 모든 게 자네 탓은 아니지.”
목이 막힌 듯한 속삭임에 레이븐은 가만히 서 있되 반응하지 않았다.
그가 아는 한 레이븐이 선호하는 건 찌르는 종류의 무기들이다. 하던 대로 했으면 콕핏까지 무난하게 폭발했을 것이다. 그러니 직격시킨 랜스를 구태여 파고든 AC 내부로 휘둘러서 그어낸다는 발상을 할 필요는 전혀 없다. 저 녀석은 항상 학습해. 이건 마치 Vvc-774LS의 참격을— 파손된 육체를 질질 끌듯이 빼내어 간신히 스틸 헤이즈를 목도했을 때 러스티는 웃었다. 감탄할 필요는 없었다. 불씨를 밟아 끄지 않은 건 레이븐이다. 오늘의 안일함을 후회하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만약에. 고통은 수도 없이 그를 덮쳤다. 만약을 의심하게 되는 순간에 러스티는 늘 강박적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이 스스로를 약하게 할 때마다 끝없이 도망쳤다. 도망치는 데 이유가 필요했던 것인지 도망치는 것 자체가 이유인지는 몰랐다. 스스로에게서는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었던 그는 단지 집요하게 레이븐의 흔적을 좇았다. 자신의 복잡한 마음속을 낱낱이 헤집느니 흔적도 남기지 않고 새까만 잿더미가 된 까마귀의 발자취를 파헤치는 쪽이 쉬웠다.
적을 노려보는 러스티의 턱밑이 파르르 떨렸다.
“널 용서할 수가 없어.”
“응.”
두서없는 말에도 레이븐은 그저 동의한다. 러스티는 예고도 없이 칼을 쥔 양손을 내질렀다. 레이븐은 그 광경을 눈도 깜빡이지 않고 가만히 보았다. 어떠한 욕망도, 두려움도 없는 것처럼.
넌 결코 변하지 않아…… 두려워하질 않지, 죽는 것도, 죽이는 것도.
이 빠진 나이프가 하얀 목덜미 대신 콘크리트 틈에 박혀 부스러졌다. 그토록 원했던 복수를 목전에 두고 한껏 눌러 쌓았던 둑이 터져 넘쳤다. 러스티에게 적의 표정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삼켰던 뒤엣말이 명치에 콱 박혀 빠지지 않는다. 레이븐을 찾아내고 싶었다. 반드시 살아있는 꼴을 보고 싶었다. 죽이고 싶을 만큼 원망스러웠다. 안식을 방해해서. 아무도 질 필요 없어진 책임을 소생시켜서. 남들처럼 도망칠 기회를 앗아가서. 마음 깊숙이는 원치 않은 무거운 중압감으로부터 가장 숭고하게 해방될 기회를 네가 모조리 태워버려서.
“…친구. 네가 진정 루비콘의 악마가 아니라면.”
나를 기어코 다시한번 살게 한 것을. 어떻게 해도 그것을 용서할 수가 없어서.
최선을 다했다고, 그런데 안 됐다고. 그렇게 변명할 수 있었는데.
“날 죽였어야지.”
어깨에 얹혀 온 별볼일없는 무게가 그를 한번 더 무너뜨렸다. 침묵이 온 공간에 사납게 울렸다.
정말로, 레이븐을 죽이고 싶은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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