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가면

가슴이 터질듯한

소다 b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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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돌아갈 품을 잊은 몸뚱이가 새카맣게 타버린 심장을 품은 채 하얀 승용차로 향했다.

차디 찬 공기가 바깥에서 안으로 이동할 필요도 없었다. 힘 없는 손길은 그 잠깐 동안에도 꽝꽝얼어붙은 차 내부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이렇게 차가운 계절인데도 뜨거운 화마는 속절없이 모든 걸 집어삼켰다. 폭발은 결국 일어났으며 들여다보기도 싫은 비통한 건물을 눈 앞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 진호개를 통상케 하였다.

흰 눈발은 길에 나온 모든 이를 추념하듯 차 위로, 몸 위로 쏟아졌고 시야를 어지럽혔다. 구름같은 한숨이 퍼지면 수사관은 차내임에도 반사적으로 몸을 떨었다.

시동을 건다. 힘겹게 돌아가는 핸들은 방향을 잃는다. 어디로 가야하는 건지 머릿속은 복잡했다. 사실 정해져있지만 가고싶지 않았고 조금 더 시간을 벌고 싶었다. 코흘리개 시절에도 단 한번 해보지 못한 어리광같은 감정이다.

매마 투정은 오래가지 못한다. 사건은 끝나지 않았기에 가야만 하는 길을 올랐다. 으릉거리는 엔진소리만이 유일한 소음이다.

몇날 며칠 악으로 지새운 덕에 뻑뻑하다 못해 붉게 충혈된 눈두덩일 짓누르니, 아픈 것도 아닌데 저도 모르게 한숨이 튀어나간다. 조수석에 누가 있었다면 타박이라도 들었을 행동이었다.

“⋯⋯⋯⋯.”

눈 쌓인 신호등이 금빛을 알리다 붉은 등으로 옮겨간다. 정해진 규칙에 따라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차가 멈추면 당연한 정적이 찾아왔다. 안그래도 조용한 내부가 숨이 막힐 정도로, 침묵은 더해져만 간다. 참으로 귀에 거슬리는 정적이다.

복잡한 마음에 생각이 많아지려는 차. 진호개는 제가 어느 순간부터 핸들에 힘을 가득 쥐고 있었다는 것을 자각했다. 빠드득거리는 손끝에 겨우 힘을 풀고 울렁거리는 속을 달랬다.

커다란 손은 차의 메인보드로 향한다. 익숙하지 않은 버튼들에 몇 번 버벅이다 겨우 라디오 채널을 재생했다. 뭐라도 들으면 조금 진정될 지도 모른다.

짧은 날씨 안내가 이제 막 지나갔고 맑고 단정한 목소리의 라디오 DJ는 경쾌한 시그널 음악과 함께 인사를 전했다. 흰색 승용차도 다시 도로를 달린다. 운전에 집중하다 보면 DJ가 사연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미라곤 없는 이야기지만 무의식적으로 볼륨을 높여놓는다. 어느새부턴가는, 대화로 이 정적을 채웠던 탓에 차에서 듣는 스피커의 음질은 간만이었다. 얻고싶은 정보는 없으나 속쓰린 잡념을 부르는 정적보단 이 편이 더 나았다.

“…얼어 죽겠네.”

멀지 않은 거리임에도 차는 가다 서기를 반복한다. 길게 뻗은 도로 위에 많지도 적지도 않은 차들은 얼어버린 빙판길 위를 느리게 걷는 어린아이처럼 굼뜨게 움직였다.

커피, 좋지. 달그락대는 플라스틱 커피잔을 떠올리다 숨을 크게 쉬었다. 하아- 부연 김은 여즉 그대로다. 그러고보니 히터도 틀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럼 다음 사연 마저 읽어볼까요?’

개개인의 고충과 즐거움이 담긴 사연들 다음은 헤어진 연인에 대한 이야기였다.

‘서로가 원한다 해도 주변이 도와주지 않으면 마냥 오래갈 수는 없는 노릇인지 오늘 헤어지고 말았다’며 한탄하는 내용은 흔해빠진 레파토리였으나 진호개는 괜히 집중하지 않은 척 했다.

‘너무 사랑하지만 보내줘야만 하는 것이, 이해하지만 또 그걸 무력하게 바라만 봐야했던 것이 너무 미안하고 후회된다. 곁에 있을 때 더 잘해줄 걸. 왜 그러지 못했을까요.’

슬픈 이별 사연에 자세한 상황은 적혀있지 않은 모양인지 DJ는 궁금해하는 기색을 보이다가도 살가운 위로를 보냈다.

멀리서 청취 중이던 수사관 역시 헛기침을 하며 악셀을 밟았다. 씨이. 짜증도 내었다.

더없이 사랑했다. 사랑했었다. 처음 만난 그 날 부터라고는 장담할 수 없지만 분명 행복한 나날이었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부터 제 시야에는 한 사람만이 꿰차고 있었다. 서로의 안전을 바라던 사이에 제발 멀었으면 하던 이별이 추운 겨울날 재채기만큼이나 빠르게 찾아왔다. 그러게 왜, 쓸데없이 나서서는.. 이유없이 억울함은 스친다.

사연은 매서운 바람이 부는 이 맘때와 비슷한 시린 감정이었다. 눈 녹는 봄은 언젠가 올 것이다. 그러니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는 DJ의 말 대로 진호개 역시 앞으로 마음속에 아주 긴 공백을 남겨두어야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서로가 미워서 헤어진 게 아니라면 기다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죠. 혹시 모르잖아요. 그 사람과 운명처럼 다시 만나게 될지?'

진호개는 입술을 사려물었다. 단방향 라디오에 대고 다신 돌아오지 못하는 걸 알아도 기다려야 되는 것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멍청한 질문이었다.

‘따듯한 만남을 응원하며 신청곡 듣고 오겠습니다. 신청곡은오, 저도 오랜만에 듣는⋯’

저 멀리 신호가 열리고 다시 제각각의 삶과 사연을 가진 차들이 움직인다. 그 속의 진호개는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이 비통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응원의 메세지와 함께 틀어진 신청곡의 전주는 익숙한 멜로디로 흘러나와 귓가를 멤돌았다. 수사관도 충분히 아는 노래이지만 따라 부를 수 없었다. 낡은 신디사이저와 키보드의 음율이 괜히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어 아련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듯 했다.

'그대 나를 위해 웃음을 보여도 허탈한 표정 감출 순 없어⋯'

건조해진 입술을 다시 사려물면 튿어진 사이로 핏기가 스며나왔다. 진호개는 알고 있었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그 모습이 마지막이란 것을. 801호 문짝을 애써 열지 못하고 돌아설 때마다 먼저 그 두터운 손잡이가 돌아가 열리길 등신처럼 바랬었다.

죽은 이의 물품은 빠르게 치워졌고 죽은 이의 몸은 넋을 기리기도 전에 훼손되어 그가 지키고자 했던 것을 드러냈다. 이것이 진정 최선이었을까. 지독하게 남만 생각하는 공무원이 기어이 남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던진 것이 과연 숭고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해하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서로가 원한다 해도 영원할 순 없었다. 저 흘러가는 시간이 아닌 죽음 앞에서는 더더욱.

'세월이 가면- 가슴이 터질 듯한-'

'그리운 마음이야 잊는다 해도.'

'한 없이 소중했던 사랑이 있었음을 잊지말고 기억해 줘요.'

그 짧은 노래의 반복적인 음율이 계속될 수록 진호개는 으스러지는 시야 때문에 눈을 연신 굼뻑여야했다. 괜찮은 척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한산해진 도로 옆 급하게 세운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핸들에 고개를 쳐박아야 했다.

미친놈처럼 팔뚝이 떨려도 멈출 수가 없었다. 울음을 삼킨 숨은 거칠게 나갔다가 한껏 유약하게 목을 넘어간다. 가득 채워진 양동이가 엎어진 꼴이다. 주워담을 수도 없는 감정은 꾹꾹 닫혀있던 이성을 내던져버렸다. 안 괜찮아. 죽을 것 같다고.

'시신은 이제부터 살인범 잡을 증거일 뿐이야. 개인적인 감정 끊어내.'

피도 눈물도 없는 수사관이 뱉은 말은 제 자신에게 던지는 말이기도 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버틸 수 없었다. 개인적인 감정 당연히 단칼에 못 끊지. 경찰은 검거에 미친 깡통로봇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런 불필요한 감정 소모 시간을 이겨낼 수 없었다.

수사는 머리로 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될 거 아니냐는 말로 제 자신을 무장시켰지만 결국 둑이 무너지듯 한차례 쏟아지는 물줄기는 진호개를 집어삼켰다. 어쩌면 제 자신이 이 사건에서 가장 배제되어야 했던 것이 아닌가. 진정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분노는 오래가지 못한다. 이 모든 것이 해결되면 남는 것은 사무친 외로움은 슬픔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자책으로 변해 속을 썩어 곪게 만든다. 그렇게 속을 사정없이 베어놓을 것이다. 내가 끝없이 널 그리워하는 것 처럼.

눈물은 손등을 적시고 허벅지 위로 떨어진다. 한없이 작아진 등은 짙고 뭉툭한 투덕임이 필요했다. 팔뚝을 쥐어뜯으며 머리를 조아리는 진호개. 멈추지 않는 울음은 이것이 마지막이 되길 빌 뿐이었다.

보고 싶다. 도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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