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릭서: 메모리아-01. 4화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무거운 침묵이 가득했다. 묘한 긴장이 언제까지 이어지나 싶었던 그때, 하루키와 싸운 사내가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 이소이 레이지 입니다”

“제가 질문을 던진 상대는 당신이 아닙니다만.”

“저의 목적은 저의 ‘의형’이자 사네미츠 씨의 ‘친아들’ 인 당신의 안전확보입니다”

사내의 입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하루키의 의심에 확신을 얹어주었다. 원래는 저 소리를 자신과 닮은 모습의 푸른 머플러를 한 사내의 입으로 들어었야 했을터. 자기입으로 말하지도 못하는 모습에 어이없음을 느꼈다.

“그렇다면, 더더욱 당신들에게서 도망쳐야겠군요”

안전확보가 목적이라고 하며, 습격을 시도하는 이들에게 저의 신변을 맡기는 건 아무리 봐도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 같군요. 거기다,

“자기 입으로 말도 못하면서 이.런.식.으.로. 찾아오는 모습은 과히 꼴불견 이네요”

하루키의 주위를 휘감던 녹음의 끈은 이내 날카롭게 벼려진 칼이 되었다.

“뭐, 부정할수 있는 부분이 없네~ 그런데 아토씨?”

그럼 아토씨는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가려는거야?

“여기있는 모두가 실력좋은 능력자라고~”

내내 조용히 있던 보라색 머리의 긴 피어스를 한 사내가 입을 열었다. 사내의 붉은 색 두 눈동자가 빛났다. 묘하게 빛나는 듯한 붉은 눈동자는 이유를 알수없는 위압감을 자아냈다.

 

꼭 신이 내려다보면 이런 느낌일까.

 

어디선가 뱀의 비닐소리가 울렸다. 하루키는 자신의 약점도 알고있다는듯이 말하는 모습에 어디서 정보가 흘러나갔을까. 한숨이 절로 나왔다.

“뭐, 제가 지겠지요”

1대1 이라면 모르겠지만, 다수 를 상대로, 그것도 사람이 대상이라면 분명 집니다. 전 다인전에 특화된 이능력자가 아니여서 말이죠.

그러나,

“전 제능력을 온전히 다 들어낸 적이 없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하루키의 몸에서 녹음의 빛이 강렬하게 피어올랐다.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정확히 밝힌 적도 없는. 오로지 루이만 제대로 알고있던 본디 나의 능력.

 

“식물 만큼 생명력이 충만한것도, 성장력이 뛰어난 존재도 없죠”

당신들은, 저를 상대하는 것이 아닌 자연을 상대해야 할것입니다.

 

근방의 나무들이 스산하게 울었다. 바닥에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있던 식물들은 서로서로 얽혀가며 바닥을 향해 기어갔다. 늑대의 발톱이 날아왔지만, 그 발톱은 하루키에게 닿지 못했다.

팡-

나무가 터지는 소리가 울렸다. 덩굴들은 땅을 기어와 사람의 발목을 잡아챘다. 날수 있는 정령을 부리는 자를 제외한 이들이 속박되었다. 체력이 좋지않아 오래 유지하지는 못하지만, 이곳이라면.

하루키는 식물을 끌어올려 박쥐의 날개짓을 막았다. 식물이 가루를 흩날리며 말라갔다. 상극이네. 거슬린다는듯, 하루키는 손을 휘둘렀다. 식물들이 자라며 하늘 높은줄 모른다는듯이 올라갔다. 덩굴의 거미손들은 서로를 휘감고, 서로를 지지대삼아 자라며 하루키의 의지를 반영했다. 그모습은 긴 피어스를 한 사내와는 다른 위압감을 자아냈다.

 

재앙이 강림했다.

***

재앙이 도래했다. 식물들이 받드는 그모습은 신이요, 하늘 높은줄 모르는 식물의 모습은 오만한 재앙의 면모였다.

“숨기고 있는게 많네요.”

“뭐, 이런 능력은 함부로 쓰기도 뭐하니까요. 안써도 충분하기도 했고.”

여우가 길게 울었다. 울음소리와 함께 덩굴이 휘감아 올라왔다. 곰이다. 박쥐의 기척도 느껴졌다. 녹음의 끈이 하루키를 감싸 안았다. 곰의 앞발은 비어버린 공간을 휘두른 꼴이 되었다. 끈에 휘감겨 공중에 떠오른 하루키는 식물들이 이미 준비했다는듯, 식물들 사이에 자리했다. 박쥐의 발톱은 자라난 나무에 막혔다.

“당신, 처음과는 다르게 막나가네?”

“글쎄, 막나가는 본능이 뒷감당 못하는 핏줄에서 나왔나?”

하루키는 갈색머리의 사내의 주먹을 받아치며 말했다. 인적없는 숲근처 까지 몰렸다고는 하나, 소란은 금물이었기에 과한 능력사용은 곤란했다. 하루키의 두눈이 붉게 빛났다. 체력도 좋은편이 아닌지라 식물을 다루는 이 능력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본인도 장담할수 없었다. 기회를 만들어야 했다. 붉은 눈동자가 허공을 바라봤다. 어느새, 공중에서 하루키를 향해 주먹을 내지르고 있는 주황머리의 여자를 어깨위에 앉아있는 여우가 뛰어올라 받아쳤다. 오른팔을 내질렀다. 녹음의 앞발은 식물과 함께 허공을 길게 찢었다.

“하, 시말서 예약이라고 하더니”

이판사판이다 이거야?

녹음의 빛을 피한 갈색머리의 사내 품안에는 머플러를 한 사내가 들려있었다. 포대를 안아들은 것 마냥 달랑 안겨진 사내는 자신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몰랐다는듯이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복합능력자라는 이름값은 하네. 당신”

곧바로, 군화가 날아왔다. 빠르게 휘둘러지는 발을 숙여서 피하고 곧바로 오른팔을 내밀었다. 박쥐의 날개가 달라붙었다. 서로서로 얽으면서 솟아오른 덩굴들은 박쥐의 날개짓에 가루를 흩날리며 말라갔다. 그럼에도, 덩굴이기에. 옭아매는 힘은 여전했다. 못해도 거슬리게는 하겠다는듯이 움켜쥐는 덩굴들에 박쥐도 그이상 힘을 가하지는 못했다.

주황머리의 여자는 곰의 등을 지지대 삼아 주먹을 날렸다. 하루키는 덩굴을 이용해 스스로를 끌어당겨 피하고, 자신에게 입을 벌리는 늑대를 향해 녹음의 끈을 휘둘렀다. 늑대의 목을 휘감아 쳐박고는 곧바로 날아오는 갈색머리 사내의 공격을 덩굴로 휘감아 결박했다. 자라나는 덩굴들이 얽히고 섥혀 하나의 거미줄을 완성했다.

박쥐를 향해 솟아올랐다. 솟아오른 덩굴들이 박쥐의 날개를 휘감아 곰을 향해 쳐박았다. 왼팔이 떨렸다. 슬슬 한계다. 여우가 길게 울었다. 날카로운 울음이었다. 오른손을 길게 휘둘렀다. 가로로 길게 휘둘러 주황머리의 여자와 초록색 머리의 사내의 공격을 견제했다.

여우가 어깨에서 뛰어내렸다. 기다란 꼬리를 휘두르며 여우가 땅을 박찼고 하루키는 녹음의 끈을 휘둘렀다. 자랐던 나무들이 한번에 잘려 땅으로 내리꽂혔다. 떨어지는 나무를 오른손으로 받아쳐 주황머리 여자와 초록색 머리의 사내에게 날렸다.

왼팔로 녹음의 끈을 다뤘다. 팔을 휘감는 녹음의 끈을 휘둘러 근처의 옥상으로 몸을 옮겼다. 보라색 머리의 사내는 이미 알고있었다는듯, 하루키가 도착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은, 여기서 물러갈게.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사내의 입이 움직이는게 눈에 들어왔다. 머플러를 한 사내는 안절부절 못하는 상태로 긴 피어스를 한 사내에게 붙잡혀 있었다. 당장이라도 능력을 쓰려는 듯 손에 노란 빛과 녹빛이 섞여 있었지만 피어스를 한 사내의 제지에 이러지도 저러지도못한채로 서있는 모습이었다. 무언의 제지 였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다 하루키는 몸을 돌렸다. 직접적으로 전투를 하는 인원은 이미 제압했고, 남은 둘은 싸울 생각이 없어 보이니,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사정이 있었다고는 해도 멋대로 이능력을 사용했으니, 이에대해 보고를 올려야 했다. 옥상에서 뛰어내린 하루키는 사람들 사이로 섞여 다시 오토와 탐정 사무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

“하.루.키”

슬슬, 눈동자를 굴리며 애써 시선을 피해보지만 따갑고 강렬한 시선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사고치지 말라고 말한지 몇시간이나 되었지? 소장님의 한자한자, 힘이 들어간 질문은 두말할 입도 다물게 만들었다.

“그으… 잘못했습니다”

“나가서 왠 날파리에 꼬이더니, 멋대로 이능력까지 사용해서 싸우고 돌아왔다?”

내가 분명, 한동안 조용히 지내라고 분명히 말하지 않았었나? 냉랭한 목소리에 움찔, 고개를 숙였다. 그게, 내 의지가 아니었고… 눈치를 슬쩍슬쩍 보았다. 목소리에 티가 날 정도로 감정을 들어내는 루이는 드물기에, 얌전히 불호령을 들었다.

루이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부하직원을 어째야 하나, 골머리를 앓았다. 크리쳐 폭주사건과 이번 이능력자 습격사건이랑 모종의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거하게 사고를 쳤으니 아무리 조용히 일을 처리해도 새어나가게 될것이었다. 크리쳐 폭주사태에 깊은 연관이 있는 녀석이니, 이번 사건들이 마무리 되기 전엔 편안한 일상은 물건너 간것이나 마찬가지 일터. 한숨이 흩어졌다. 어떻게 해야하나. 방금전까지 읽어내려간던 죄없는 서류만 불쌍하게 루이의 손에서 가차없이 구져질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목적은 신변보호와 더불어 너의 친..와의 만남이 목적이었으며

 “너는 거기서 빠져나오기 위해 거한 사고를 치고 나왔다는건가?”

 “…그런것입니다

한숨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지만 무시하자. 하루키는 그렇게 생각하며 볼을 긁적였다.

 “다친곳은 없나?”

 “그쪽도 상당한 실력자였으니 죽지는 않았을….?!”

 “다친곳은 없냐고 물었다

 “다친곳은 없어

 “그렇다면 다행이군

사고친것이야 어차피 숲 근처이고, 급습당한 쪽이며 기밀과 관련되었으니 복잡하기는 해도 해결은 될 터, 너의 신변만 무사하면 큰 문제는 없지않나.

 

하지만, ... 사고친거 수습하면서 내집에서 머물러야 겠어

내시선이 닿는곳에 너를 둬야 사고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것 같군.

뒤이어 나오는 말은 혼잣말인것처럼 조용히 읇조리는, 그러나 귀에는 잘 박히는 소리였다. 숨소리마저 죽일정도로 음산한 그 말은 다시한번 사고를 치면 알고있겠지? 라는 뜻을 품고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무섭다.

 “너는 어떻게 하길원하지?”

 “?”

네집에 하숙하는거 말이야? 직원의 의문에 소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네가 거부해도 강제할꺼다.

 “

 “네말대로 라면, 그사람들과 만나는 것은

 “, 그거말이야?”

하루키는 다시한번 볼을 긁적이고는 시선을 피했다. 글쎄.

 “딱히만나고 싶지는 않아. 이제와서 뭘 어찌하겠다고

 “그런가

그렇다면, 그쪽에서 다시 접근해도 허락하지 않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며 루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때아닌 외출이군.

 “사고친것에 대한 시말서와 보고서는 작성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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