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e]여성 오타쿠가 사는 어두컴컴한 연못에 대해서
2024.02.11에 올라온 게시글입니다.
※일본 사이트 note에 올라온 게시글을 번역하였습니다. 일본에서는 이런 의견이 있다는 참고 정도로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쉬운 이해를 위해 원문의 문장이나 표현을 수정한 부분이 있습니다. 또한 일본에서 쓰이는 표현을 한국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으로 갈음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어지는 내용 이해를 위해 최초로 언급된 내용만을 번역해두겠습니다.
제목 : 남자지만 이상할 정도로 가슴이 큰 캐릭터가 별로다
내용 :
미안하지만, 좀 우웩하게 된다.
현실 속 사람에 대한 게 아니라 어디까지 2차원의 이야기.
큰 편이 좋다는 의견도 보여서 싫어진다.
그 캐릭터가 정말 큰 가슴을 가지고 싶어했을까?
소중한 캐릭터라면, 큰 가슴을 밀어붙이지 말고 평균적인 사이즈로 맞추는 게 좋을텐데.
자기 취향을 캐릭터에게 강요하면 즐거운가?
뭐 즐겁겠지.
내 취향은 가슴이 큰 쪽이 아니니까 괜히 생각하는 건가.
진짜 하지 말아줬으면 싶은데, 그런 흐름은 바뀌지 않겠지.
만화 잡지에서도 말이지, 그라비아 아이돌 사진의 가슴을 강조하는 것도 그만했으면 좋겠다.
그걸 찍은 그라비아 아이돌은 나쁘지 않아
그런 얘기가 아니라 가슴을 어필한다는 것 자체가 낡았지 않아?
그렇게 가슴이 좋냐? 라는 이야기.
뭔가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된다.
나는 만화를 읽고 싶은건데 표지가 그라비아 아이돌이니까 어떻게 해도 눈에 들어오게 된다.
만화잡지니까 점프같은 캐릭터 그림으로 해달라고.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가슴이 큰 캐릭터 그만 나오면 좋겠다.
스토리는 좋아도 가슴이 너무 커서 괴롭다.
예를 들면, 『내위험』 같은 작품들
좀 더 작게 그려주면 좋겠어…
그런 색기 필요없다고…
그래도 작가는 좋아서 그리고 있을테니 별 수 없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가슴 크기가 방해된다
하지만 큰 쪽이 독자도 기뻐하고 윈-윈이 된다는 거겠지
아─ 가슴이 큰게 좋다는 세상 같은건, 진짜 살기 힘들어.
또 콘텐츠에 대한 치졸한 기분표명문이 엄청난 호응을 얻고 있었습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내 마음의 위험한 녀석』에 나오는 히로인의 가슴이 너무 크다, 그리고 만화 잡지에 실리는 그라비아 아이돌 사진에서 가슴을 강조하는게 불쾌하다는 내용입니다.
1. 글쓴이 "남성"이 여성이 쓸 법한 말투로 얘기하고 있다
남자지만 이상할 정도로 가슴이 큰 캐릭터가 별로다
미안하지만, 좀 우웩하게 된다.
현실 속 사람에 대한 게 아니라 어디까지 2차원의 이야기.
큰 편이 좋다는 의견도 보여서 싫어진다.
그 캐릭터가 정말 큰 가슴을 가지고 싶어했을까?
소중한 캐릭터라면, 큰 가슴을 밀어붙이지 말고 평균적인 사이즈로 맞추는 게 좋을텐데.
자기 취향을 캐릭터에게 강요하면 즐거운가?
뭐 즐겁겠지.
일단 이거 쓴 사람 여자입니다. 여자 오타쿠.
저는 인터넷 에스퍼 4단입니다만, 이 내용에서는 작성자가 여자라는 몇몇 시그널을 포착할 수 있습니다. (「야한 걸 싫어하니까 여자!」라는 건 아닙니다.)
말하는 걸 보면 「어딜 봐도 여성」 플러스 「완전히 미친 사람きちがい」입니다만, 글이 올라온 하테나 블로그에선 성별을 의심하지도 않고 정신나간 주장에 찬동하고 있습니다.
작성자가 어떤 인간인가 하는 것은 말투나 문장보다 언어와 발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언어나 발상이야말로 그 인간이 평소 헤엄치며 지내는 연못의 환경에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후로는 왜 이 작성자가 여성인지를 설명한 다음 본론에 해당하는 진상 행동을 해설하고자 합니다.
2. 여성 특유의 언어와 발상
미안하지만, 좀 우웩하게 된다.
큰 편이 좋다는 의견도 보여서 싫어진다.
우선 세부적인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감이 좋은 사람이라면 이것만 보고도 「아, 이거 여자가 썼군」하고 눈치챌 겁니다.
남성이 어떤 일을 비판하려고 하면 근거로서 그 「어떤 일」이 가진 하자나 오류를 나열합니다만, 여성이 무언가를 비판할 때에는 「자신의 기분」을 근거로 삼아 피해가 발생한 사실을 내세웁니다.
「우웩하게 된다」, 「싫어진다」가 남성의 입에서 나오면 그저 몸 상태가 좋지 않음을 알리는 보고이므로, 뭔가를 진지하게 비판하는 자리에서 이런 언어가 등장하는 경우 작성자는 상당히 높은 확률로 여자입니다.
다시 말해 「우웩하게 된다」, 「싫어진다」는 남성 세계에서는 비판으로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런 컨디션 보고나 기분의 표현에 가까운 말로 무언가를 전달한 듯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경우, 작성자는 상당히 높은 확률로 여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미안하지만」, 「조금」도 여성의 언어입니다만 생략합니다)
3. 여자 소비자 특유의 무속 논법
그 캐릭터가 정말 큰 가슴을 가지고 싶어했을까?
소중한 캐릭터라면, 큰 가슴을 밀어붙이지 말고 평균적인 사이즈로 맞추는 게 좋을텐데.
자기 취향을 캐릭터에게 강요하면 즐거운가?
뭐 즐겁겠지.
남녀구분에서 결정적인 부분은 여기입니다.
이걸 구분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무시무시한 화법입니다.
・캐릭터에게는 독립된 자아(영혼?) 혹은 마음이 존재한다
・나는 캐릭터의 자아와 소통할 수 있지만, 작가는 못한다
・나는 그저 그 캐릭터의 자아가 걱정되어 변호하고 있다
・특정 설정은 작가에 의한 "강요"이며 캐릭터의 의견을 무시하고 있다
꽤나 특이한 전제조건이 몇 겹이나 쌓여있는 비판 논리입니다. 그리고 이건 남성이라면 일단 취하지 않는 논리입니다. 상당한 악질 안티나 분별없는 클레이머라도 그가 남성이라면 이런 얘기는 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남성에겐 이런 발상이 없으니까요.
구조를 들여다보면 「캐릭터에게 무녀처럼 빙의하여, 어디까지나 캐릭터의 대변인이자 변호인으로서 작가에 대한 불만과 비판을 나열한다」는 화법인데, 지극히 문화적인 행위, 다시 말해 여성 오타쿠의 기이한 풍습입니다.
그 연못에서 살지 않는 사람이 처음 보기에는 당연히 이상한 사고방식과 논법입니다만, 오랜 기간 같은 영역에서 살아가게 되면 그런 감각도 없어져서 자신의 사고방식이나 논법이 평균적이고 스탠더드한 거라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니 이 작성자도 그런 걸 아는 인간이 보면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여자라고 알리는 문장으로 「나는 남자인데~」라고 속이며,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한 겁니다. 폴카 마을 주민들이 마을 바깥에서도 인간을 「공물 」로 부를 때의 느낌으로. (※ 영화 「미드소마」 이야기)
언어와 발상으로 들킨다는 건 이런 이야기입니다.
4. 연못에서 기어나온 괴물
다시 말하자면, 작성자의 논법이나 말투는 외부에서보면 완전히 정신 나간 행동입니다.
만화에서 나오는 세계와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모두 한 사람의 작가가 창조주가 되어 만들어낸 것으로, 야마다 안코라는 캐릭터의 육체도 정신도 환경도 운명도 모두 신(=작가)에 의해 정해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캐릭터의 메타 자아는 자신의 체형을 싫어하고 있다」, 「나의 취향과 이 캐릭터의 의지는 일치하고 있으며 작가는 그걸 방해한다」, 「캐릭터는 작가와 분리가 가능하지만, 나에게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건, 어떤 TV 드라마 각본가의 도움을 받더라도 옹호될 수 없는 정신이상자의 변명입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가 제대로 있으므로 한 번 생각해봐주세요)
아이자와 토모코相沢友子 (* 「삼각창의 밖은 밤」, 「위국일기」 등의 작가) 라면 결코 이런 탁구 랠리같은 대사는 쓰지 않을 것이고, 자신의 희망과 현실의 분별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선 교토 애니메이션 방화사건의 아오바 용의자에 가까운 말투입니다.
다만 아오바의 주장은 「내 실제 인생에서 일어난 불상사나 무력감은 내 탓이 아니라 내 재능을 노린 유명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나 그 사주를 받은 어둠의 조직에 의한 피해」라는 생각이 뒤엉킨 결과 그러한 미친 사람의 논리로 굴러떨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와 반대로 이 작성자의 주장은 「나는 커다란 가슴 묘사가 싫다」뿐 입니다. 이런 근거 없는 취향 주장이라면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하면 될 텐데, 어째서 하나하나 원작에 빙의한 광인 논법이나 성별 속이기 같은 강력한 전술을 쓰면서 논리를 펼치려고 한 걸까요?
여기서부터가 본론입니다만,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는 생물이 있다면 그 생물의 서식환경을 살펴봐야 합니다. 그 생물이 기어나온 연못 (여성의 세계・여성 오타쿠의 세계)란 대체 어떤 세계인 걸까요?
5. 연못의 룰은 어떤 것인가
커다란 가슴 묘사가 싫은 사람이 있다.
커다란 가슴 묘사가 좋은 사람이 있다.
커다란 가슴 묘사가 좋지도 어떻지도 않은 사람이 있다.
본래라면 이 정도입니다. 거기엔 귀천도 빈부도 선악도 없습니다만, 이런 사소한 정리나 상호 존중을 극도로 싫어하는 이상한 세계가 있습니다. 여성 오타쿠의 세계입니다.
이건 여성 오타쿠판의 이상한 풍습을 몇 가지 살펴보면 알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성에 의한 여성향 2차 창작에는 「뭐든지 괜찮은 사람만 보세요」라는 엄청난 주의문이 자주 보입니다.
이렇게까지 경고할 정도라면 대체 얼마나 엽기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묘사가 나오는 걸까. 조로와 상디가 인체 결손 놀이라고 하는걸까 생각하고 읽어보면, 그저 러브러브한 는실난실이나 꽁냥꽁냥 허그만이 나올 뿐입니다.
다시 말해,
여성 오타쿠의 세계에선 그저 자기 취향의 해석이랑 다르다던가 자기 취향의 커플링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 감정을 불태우며 불만 공격을 퍼붓는 광인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논리에 대해선 위해서 설명한 바와 같이 「내가 우웩하게 된다」, 「내가 싫어진다」고 말한 것 만으로 무언가 의미있는 걸 전달한 듯한 얼굴을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다시 말해 적어도 그 사람이 매일 지내고있는 연못에는 그것만으로도 피해 사실이 성립하여, 책임질 의무가 생기고, 상대를 자유롭게 공격할 명분이 성립하는 겁니다.
그 결과가 이런 룰을 가진 연못에서 기어나온 생물에 의한 저 작문입니다.
6. 연못이 지능에 미치는 악영향
이런 식의 공격자가 초유리한 게임 밸런스는 창작자 여성을 위축시키겠지요. 하지만 이런 환경을 누리며 살아온 악성 클레이머는 이걸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선 설득력을 가진 논리를 펼칠 수 있는 능력을 전혀 기를 수 없게 됩니다. 아울러 자기 통찰도 필요없어지기 때문에 지능이나 공감 능력, 자기억제력도 퇴화합니다.
따라서 연못을 나오게 되면 「힘들다」, 「싫어진다」, 「~라는 느낌을 받았다」, 「~는 낡았다」, 「~는 안됨」같은, 타인을 조금도 설득시킬 수 없는 울음소리만 내는 기이한 생명체가 됩니다. (이런 모습은 아직 사회적 영역이 발달하지 않은 미취학 연령대의 유아를 심하게 닮았습니다)
또한 「너는 야마다의 기분을 무시하고 있다」, 「네 취향을 야마다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정신 나간 무속 논법도 이런 연못의 산물입니다.
이건 다시 말해 여성 오타쿠가 여성 오타쿠의 2차 창작에 인과를 덧붙일때 쓰는 방법입니다. 「당신은 캐릭터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조로가 사랑하는 것은 상디가 아니다」, 「당신의 취향을 캐릭터에게 강요하지 말아주세요」.
1차창작자인 사쿠라이 노리오 (* 『내 마음의 위험한 녀석』 작가) 에게 말하면 완전히 이상한 변호인입니다만, 2차창작 작가 대상이라면 그럭저럭 성립하는 문제니까요? (자신의 취향을 「캐릭터의 의지」로 덧씌우는 불합리한 무속 논법임은 변함없습니다만)
하지만 이렇게 입장이 약한 2차창작 작가에게 유아처럼 자기 기분에 따른 감상을 보내며 상대를 두들겨패다보면 당연히 공격자가 절대유리한 이지 게임이 됩니다. 이것도 지능이나 자기제어력을 퇴화시킵니다.
그러니 연못을 나와선 원작자를 향해 「캐릭터가 정말 그걸 원할까?」, 「캐릭터에게 자신의 취향을 강요하면 즐거운가?」같은 걸 물어보는 경천동지할 기행자가 되는 겁니다. 그것 밖에 모르고, 그거면 항상 승리했으니까요.
7. 연못에서 둥기둥기 자라난 아기
정리해보면 가끔씩 X나 하테나 익명 다이어리같은 곳에 나타나 콘텐츠에 대한 울음소리를 내는 클레이머 여성의 정체는 「클레임 거는 쪽이 초유리한 연못에서 잔뜩 특혜를 누리며 자라난, 몸집만 커다란 아기」입니다.
소중한 캐릭터라면, 큰 가슴을 밀어붙이지 말고 평균적인 사이즈로 맞추는 게 좋을텐데.
그냥 자신의 취향인데 왜 「그렇게 해야한다」며 작가가 거기에 따라야 할 정도의 룰로 만드는가. 아기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취향을 캐릭터에게 강요하면 즐거운가?
뭐 즐겁겠지.
원작자의 자유와 권리로 만들어진 체형을 왜 「캐릭터에게 강요했다」, 「나에게 강요했다」로 이해하는가. 아기이기 때문입니다.
(원작자의 자유영역에 대해 「평균적인 크기로 했어야지!」라고 밀어붙이는건 이 아기 쪽입니다만, 아기의 머릿 속에서는 「내가 강요당한거니까 피해자!」가 되어있으므로 주의해야합니다.)
내 취향은 가슴이 큰 쪽이 아니니까 괜히 생각하는 건가.
진짜 하지 말아줬으면 싶은데, 그런 흐름은 바뀌지 않겠지.
「괜히」 정도가 아니라 결국 자기 취향을 울부짖고 있을 뿐인데 왜 그런 자각이나 객관적 시선을 가지지 못하는가. 아기이기 때문입니다.
만화 잡지에서도 말이지, 그라비아 아이돌 사진의 가슴을 강조하는 것도 그만했으면 좋겠다.
그걸 찍은 그라비아 아이돌은 나쁘지 않아
그런 얘기가 아니라 가슴을 어필한다는 것 자체가 낡았지 않아?
그냥 「자기가 싫은 것」을 사회에서 아예 말살시키지 않으면 기분이 풀리지 않는 것은 왜인가. 아기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는 싫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의 기분은 어떻게 되는가, 그런 공정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왜인가. 아기이기 때문입니다.
배제하기 위한 이유조차 생각하지 못하고 「낡았지 않아?」 같은 바보같은 강요를 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아기이기 때문입니다.
8. 남자를 속이는 동기와 사고방식
작성자가 남성인 척한 동기나 사고방식도 이제 아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연못에선 완전 무적이던 내 클레임이, 왠지 연못 바깥에서 통하지 않아. 내가 얼마나 절실한 기분으로 피해를 호소해도 바보취급 받거나 비웃음을 사.」
「그리고 어째서인지 『기분파 바보여자』라느니, 딱히 밝히지도 않은 이쪽의 성별을 지적해오는 사람도 있었어.」
「맞아! 여성차별이야! 어떤 사소한 부분으로 작성자가 여자라고 알아낸 뒤, 여자가 말하는 거니까 진지하게 듣지 않는다는 차별이야!」
「좋았어! 『나는 남자지만 커다란 가슴은 별론데~ 엄청 기분 나쁘고~ 가슴을 캐릭터에게 강요하고~』」
연못 특유의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사람인 척 하는 괴생물의 탄생입니다.
9. 연못의 성립과 공적, 그리고 죄
마지막으로, 저는 「연못의 룰과 환경」, 「그 환경이 연못의 생물에게 어떤 여양을 미치는가」까지는 고찰할 수 있었으나 「애초에 왜 이런 식이 되었는가」는 결론 낼 수 없었습니다.
애초에, 이 연못의 환경에서 누가 이득을 보는가? 적어도 소비자 측 (클레이머 사이드)는 악영향을 받을 뿐, 거의 학대에 가까운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취향이 다르다는 것만으로 피해자가 될 수 있고 피해자는 사람을 때리고 자기 말에 무조건 따르게 해도 된다」고 배우며 자라난 아이가 대체 어떤 인간이 되겠습니까.
자기 기분에 휘둘려선 「싫은 기분이 됐잖아!」라고 울부짖는 것 외의 교류법은 가지지도 못하고, 바깥에서 통용될 만한 언어나 발상력도 지니지 못한 커다란 아기가 되겠죠. 이건 학대 외의 무엇도 아닙니다.
(그 증거로 만화의 커다란 가슴에 겁먹고 그라비아 아이돌의 가슴에 눈물을 흘리는 바보같은 미스터 섬세함 씨와 자신이 풍기는 냄새를 눈치채지 못한 괴생물의 실체를 모두가 목격했을 겁니다)
클레이머에게 공격당하는 쪽은 괴롭고, 클레이머가 되서 공격하는 쪽은 이 이후가 괴롭다. 죄다 손해를 보고있을 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뭔가가 오래 이어지는 데에는 그에 따른 숨겨진 합리성이 있는 법입니다. 있겠죠?
…어쩌면 대량의 손 쓸 도리 없는 아기 클레이머를 묘지로 보내버린 뒤, 그들로도 뭉개버릴 수 없었던 한 줌의 생존자들… 실로 우수한 여성 창작자를 세상에 내보내기 위한 시스템인걸까요?
여성 오타쿠의 소비자 사이드에는 터무니없는 악질 클레이머나 기분파 야쿠자나 지능 낮은 바바리안이나 통제주의지가 잔뜩 있는 한편, 여성 오타쿠 창작자 사이드에는 남성작가들이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하게 발달한 천재가 있습니다.
그 연못에서는 ALL FOR ONE 정신으로 모두가 한 사람의 천재를 제련하기 위해 봉사(정신나간 클레임)하고 있는 에코 시스템인 걸까요.
제가 말하고도 그다지 설득력이 없네요.
누군가 좋은 생각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끝.
이후 이 글을 읽어보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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