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
윤슬;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
저무려하는 늦은 오후의 해가 물에 비쳐 반짝거렸다. 투명한 물은 하늘도 다 담을 듯하였다. 슬은 물가에 비친 제 얼굴을 이리저리 쓸어보다 반질반질한 작은 돌멩이를 하나 쥐었다. 제 치마에 돌멩이의 물기를 닦곤 돌밭에서 찾은 들꽃 한 송이를 꺾었다.
"윤아, 너는 영원한 게 있다고 생각해?"
종아리까지 오는 길고 검은 치마를 손에 움켜쥐고 맨발로 돌다리를 쓸던 윤이 고개를 들고 반문했다. 그런 윤의 모습이 수면에 비쳐서는 일렁였다.
"으음. 글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돌다리를 건너온 윤의 손을 일어나 맞잡은 슬은 반질반질한 돌을 휙 다시 강에 던졌다. 수면이 일렁였고, 튄 물방울은 다시금 수면을 일렁이게 했다. 살랑이던 바람에서는 못다 진 여름의 향이 나는 것 같았다.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는데 어느새 노을이 슬의 머리칼과 눈을 비추었다. 까맣고 고운 먹 같은 머리칼에 노을이 색을 물들였다. 윤에겐 슬의 눈에 해가 비친 게 아니라 꼭 슬의 눈이 해와 같았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어. 윤아. 모든 것은 변해. 나팔꽃은 매일 지고, 지저귀던 새는 어딘가에서 죽어."
손에 쥐고 있던 작은 들꽃 줄기가 억세게 쥔 손힘에 몸부림쳤다. 작고 여린 꽃잎이 하나 떨어졌다. 슬의 눈에서 떨어진 눈물은 꽃잎을 적셨다. 슬은 눈가가 벌게져 눈물만 뚝뚝 흘려대었다.
"윤아, 영원하지 않을 내일이 아니라 영원할 것 같은 오늘을 봐줘. 영원하진 않아도 너의 일부일지라도 순간일지라도."
맞잡은 손을 바라보며 말하던 슬을 보고 윤은 슬의 머리칼을 다른 손으로 귀 뒤로 넘겼다. 들꽃은 고개를 떨구고 천천히 시들어가고 있었다. 어린아이를 달래듯 나긋나긋한 투로 윤이 말했다.
"슬아, 저 해는 영원할 거야. 누군가는 언젠가는 해가 터져버릴 거라고 말하겠지만, 우리는 언제까지고 동쪽에서 뜨는 해를 볼 거야. 네가, 그리고 내가 살아있을 때까진. 응? 너 또한 내 일부도 순간도 아닌 나의 영원일 거야."
윤의 낮게 내리뜬 눈이 슬과 마주하자 곱게 접힌 초승달 모양이 되었다. 슬은 아직 촉촉한 눈가에 눈물방울을 달곤 윤과 함께 웃어 보였다.
누군가는 언젠간 태양의 수명이 다해 우릴 집어삼킬 거라고 말해도, 해는 내가 바라볼 땐 언제나 동쪽에서 고개를 들고 서쪽에서 고개를 떨굴 것이고, 여름이면 내 머리 위에서, 겨울이면 나와 눈을 맞추고 걸어갈 것이다. 해가 고개를 떨구면 별과 달이 날 맞이할 것이고 그와 함께 달맞이꽃도 수줍은 고개를 들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하늘을 바라보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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