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확장

태섭우성

초벌 by 안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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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었다, 우성은.

그러니까, 그런 눈을 본 것이.

그건 마치……였다.

*

198x년 겨울, Y대의 운동장은 열기로 가득차 있었다.

많은 이들의 시체 위에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선언되었다. 전태일의 분신, 김상진의 할복, 박종철 고문치사, 이한열의 사망까지. 드디어 대공분실의 시대에서 벗어나 민주주의의 문을 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모두의 마음에 싹 텄다. 그러나 그것은 엘리트 계급의 전유물일 뿐, 국민 대다수인 노동자들은 달랐다. 직선제 개헌, 언론의 자유 등이 포함 된 6.29 선언에 어디에도 노동자를 위한 조항은 없었다. 같은 해 8월, 투쟁 노동자 이석규가 사망했다. 탄압은 점점 거세어져 갔다. 동시에 더 이상 그늘에 숨겨지고 싶지 않은 노동자들이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충실한 종에서 벗어나 인간으로써의 삶을 부르짖게 된 것이다. Y대에 모인 것은 그렇게 두려움과 침묵 사이에서 희망을 토해내는 사람들이었다.

우성은 여러모로 이질적인 존재였다. 잡일이라곤 해본 적 없을 것 같은 하얀 얼굴은 무료함에 젖어 있었다. 머리가 긴 다른 선배들과는 달리 짧게 민 머리와 큰 키에 모두들 한 번씩 우성을 흘긋 쳐다보았다. 이런 곳인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따라 오지 않았을 거였다. 동아리 방에서 시험 공부를 하다가 빨리 짐을 챙겨 따라오라는 선배들의 말에 허둥지둥하며 끌려왔는데 정작 우성을 데러온 당사자들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려 이렇게 덩그러니 홀로 남겨진 것이었다.

“재미없어…….”

우성은 이런 것들에 관심이 없었다. 선배들이 늘상 침 튀기며 말하는 노동권이니 민주주의니 그것이 옳다는 건 알지만 그건 외부 세계의 일이었다. 우성의 관심이란 그 자신에게 한정되어 있었다.

언제쯤 선배들이 오려나, 신발 끝으로 모래를 퍽퍽 팠다. 타오르는 열기 속에서 우성은 뜻모를 한기를 느꼈다. 고개를 갸우뚱 하던 찰나 식이 시작되었다.

교정에는 가지각색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깃발 사이로 누군가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까무잡잡한 손이 마이크를 쥐었다. 보통 정도의 키, 멋부린 헤어 스타일, 한 쪽 귀에 자리한 귀걸이까지.

‘송태섭.’

사회자가 소개한 그의 이름이었다.

우성은 태섭을 보며 저만큼이나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입술이 달싹이고 그 사이로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예상과는 달리 부드럽고 그러면서도 단호한 문장에 우성은 내심 놀랐다. 왜인지 모르겠으나 홀린 듯 태섭을 바라보았다.

“……한마음 한뜻되어 노동악법 박살내자...!”

순간 고개를 돌린 태섭과 눈이 마주쳤다. 고동빛 눈동자는 멀리에서도 빛으로 가득차 있었다.

“아름답다.”

저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우성은 놀랐다. 단단한 눈을 가진 사람은 많았다. 그러나 불안에 흔들리면서도 나아가고자 하는 결의로 이루어진 그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우성은 속절없이 빠져들고 말았다. 태섭의 눈을 보고 있자니 마치 그 불씨가 제게 옮겨온 것처럼 가슴이 홧홧해졌다. 영원 같은 찰나가 지나가고 태섭은 단상에서 내려갔다. 우성은 놓칠세라 그를 뒤쫓았다.

“저기, 저기요!”

“네?”

무작정 어깨를 잡았다. 막상 뒤돌아 물으니 할 말이 없었다. 한참을 말 없이 서있자 태섭의 눈썹이 삐뚜름하게 솟구쳤다.

“뭡니까.”

“친해지고 싶어서요.”

다급히 내뱉은 말에 우성은 놀랐다. 친해지고 싶다니. 과에서도 유명한 천상천하 유아독존 정우성이 아니던가.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어놓은게 자신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건 태섭도 마차가지인 듯 했다. 의심을 띄는 눈이 우성을 관찰하듯 쳐다보았다. 적의가 없다고 판단한 건지 이내 누그러진 눈으로 태섭이 말했다.

“뭔 여기가 지금 친구 찾는 곳인 줄 아나봐요.”

“그래도 뭐, 나이도 비슷해 보이고, 좋습니다.”

“그럼, 우리 말 놓자.”

“와, 냅다 말부터 까네. 어, 그래. 그러자.”

킥킥대며 태섭이 우성의 등을 쳤다. 손이 생각보다 매웠다. 따끔한 등을 어루만지며 우성은 울상지었다.

“너 되게 금방 운다.”

“안 울어.”

“곧 울 것 같은데?”

“아냐.”

“그래. 그렇다고 치자.”

태섭이 이끄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미어터질 듯한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와 그나마 한적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마도 우성을 배려해준 듯 하였다.

“관심 없어 보이길래.”

“그렇게 티나?”

“어. 완전. 얼굴에 대문짝만하게 써있어.”

“내가 원래 거짓말을 잘 못해.”

“말이나 못하면…….”

신기했다. 어떻게 자신의 생각을 읽어낸 건지 보기보다 섬세한 사람이구나 한층 더 마음에 들었다.

“이름이 뭔데?”

“정우성.”

“나는-.”

“알아, 송태섭. 아까 들었어.”

우성이 재빨리 답했다.

“어쩌다 여기에 왔어.”

“얄라셩이라고 알아?”

“아니.”

“우리 학교 영화 동아리인데, 처음엔 그냥 영화 많이 보는 곳인 줄 알고 들어갔거든. 아, 나 고향이 강원도야. 아무래도 시골이다 보니 영화 같은 거 보기가 힘들어서. 그래도 광철이랑 미사가 나 하고 싶다는 건 다 시켜줬어. 여하간 들어갔더니 영화를 보기는커녕 맨날 뭐 시위 현장에 나가니, 영화 운동을 주도해야 한다느니 하기만 해서 재미가 없더라. 여기도 갑자기 명헌이 형이 끌고 와서 온 건데 그래놓고 나만 두고 다들 사라졌어.”

“광철이랑 미사는 누군데? 친구?”

“아니 우리 엄마 아빠.”

태섭의 표정이 알 수 없다는 듯 찌푸려졌다. 우성은 웃는 건지 이상하다는 건지 아니면 둘 다 인건지 모를 그 표정이 희안하게 좋았다.

“너는 아버지 어머니를 이름으로 부르냐?”

“그럴 수도 있지.”

“뭐가 그럴 수도 있지야……. 하여간 웃기는 놈.”

“내가 웃겨?”

“어. 웃겨.”

우성은 활짝 웃었다. 순수하고 투명한 웃음을 보며 태섭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조금 부끄러워 보였다.

“너는 어쩌다 여기에 왔어?”

우성이 물었다.

“나 원래 제주도 출신이야.”

“어? 정말?”

“어. 정말.”

“제주도에서 여기까지 온 거야?”

“그건 아니고.”

태섭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제주도에 살았는데 왜 몇 년전에 한창 관광도시로 개발되면서 아버지가 거기 일하러 갔었어. 그러다 사고로 죽었고. 형이 일하러 가면서 좀 자리가 잡히나 했는데 형도 비슷하게 죽었어. 그길로 어머니가 하던 물질 다 그만두고 인천으로 이사 온 거야.”

“어…… 미안.”

“네가 미안할 건 아니고. 그나저나 나 원래 형 얘기 아무한테도 한적 없는데 이상하게 술술 나오네. 니 눈이 너무 반짝여서 그런가.”

“내 눈이 반짝여?”

“몰랐어? 엄청 빤딱거려. 앞에서 거짓말 하면 죄 받을 것 같아.”

“좋은 거지?”

“좋은 거지.”

태섭이 미소지었다. 어찌되었건 칭찬을 받은 셈이니 우성은 기분이 좋았다.

“인천에 와서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서일물산에 들어갔어. 죽어라 일만 했어. 월급도 적고, 신나 냄새 풀풀 나는데 환풍기도 없고. 철야, 철야, 철야.”

태섭은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노조가 있긴 했는데 회사랑 협상이 잘 안됐어. 우리 요구를 들어주기 싫었는지 위장 폐업을 하더라. 그래서 파업을 하고 파업 기금을 모으려 했는데 그러다 한 명이 죽었어. 그걸 보니까 갑자기 너무 부끄러운 거야. 나 하나 살자고 아무것도 모른 척 하고 있던 게.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형 볼 낯이 없다고 생각했어. 형이라면 분명 똑같이 여기에 서있었을 거야. 그래서 여기에 온 거야.”

우성은 태섭의 눈이 아까 단상 위에서 그랬듯 빛나는 것을 보았다. 태섭은 계속해서 노동자들이 왜 힘을 합쳐야 하는지 설명했다. 사실 태섭이 하는 말은 절반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부끄러움으로 선 자리라는 것도, 타인을 위해 이렇게 까지 나서는 것도. 그러나 그 눈이 태섭이 하는 일이 옳은 것이라 말하는 것 같았다. 우성은 그저 그게 좋았다. 설령 태섭 또한 자신을 이해하지 못 한다고 해도 괜찮을 터였다.

그저 배우는 것이 즐거웠다. 하나씩 알아가는 것이 좋았고 지식을 정복해나가는 감각을 사랑했다. 그렇게 최고의 대학이라는 이곳까지 왔다. 서울에서 손에 꼽히는 대학에 왔으니 자신과 같은 사람이 한가득일 줄 알았다. 그러나 다들 배움은 뒷전이고 늘상 정권과 사상과 노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우성은 그들을 이해 할 수 없었다. 그들 역시 우성을 전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태섭은 달랐다. 학내 사람들처럼 볼테르니 뭐니하며 고급 용어를 구사하진 않지만 태섭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단호한 목소리와 눈동자는 지금까지 보아온 그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우성은 처음으로 타인을 이해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

우성은 꾸벅이며 조는 태섭을 구경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구사대다!! 백골단이다!!”

백골단과 구사대가 들이닥쳤다. 여기저기서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비명의 연속. 교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정우성, 이리와!”

어느새 일어선 태섭이 우성의 손을 잡고 달렸다. 엉망진창이 된 사람들을 헤집고 태섭이 우성을 밖으로 떠밀었다.

“싫어.”

“정우성!”

“남아있을 거야. 보내지 마.”

“야, 너 그러다 다쳐.”

“너나 조심해. 난 여기에 있을 거야, 너랑 같이.”

태섭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우성을 보았다. 우성의 얼굴은 결연했다. 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태섭은 곧 포기한 듯 우성의 손을 꽉 잡았다.

“이거 받아.”

태섭이 우성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카메라였다.

“이걸로 여길 다 찍어줘.”

“너는?”

“나는 가야해. 다들 싸우고 있잖아.”

“그럼 나도 갈래.”

“안돼. 여기에서 이걸 다 기록해줘. 부탁한다. 해 줄 수 있지?”

눈 앞이 흐릿해지고 우성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응.”

“다녀올게.”

태섭이 힘을 주어 우성을 팔을 끌어 당겼다. 휘청이는 우성을 품에 안고 꽉 껴안았다. 뺨을 감싸쥐고 쓰다듬으며 씨익 웃어보였다. 그리고 달려 나갔다.

떨리는 손으로 카메라를 들었다. 보이는 모든 것들을 담으려 애썼다. 두들겨 맞는 노동자들, 반격하는 사람들, 흔들리는 깃발, 광목 천 위에 피로 써진 ‘노동해방’ 붉은 네 글자까지. 우성의 인생에서 최초로 타인의 삶을 깊이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악-!”

경찰이 휘두은 곤봉에 태섭의 머리가 깨져 피가 흘렀다.

“송태섭-!!!!!!!!!!!!!!!!!!!!!!!!”

우성은 비명을 지르듯 태섭의 이름을 울부짖었다. 가까이 가려 했지만 태섭이 손을 휘저었다.

‘오지마.’

입모양을 읽어낸 우성은 계속해서 울었다. 카메라 렌즈 위로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며 담고 또 담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생각 이상의 맹렬한 저항 탓인지 사태는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몇몇은 경찰에 잡혀갔고, 몇몇은 들것에 들려 누군가의 집으로 옮겨졌다. 우성은 빠르게 태섭을 찾았다. 저어기 멀리 주저 앉아 지혈하고 있는 태섭을 발견하고 단숨에 뛰어갔다. 태섭은 고개를 들어 우성을 보곤 마치 안도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우성이 손을 내밀었다. 손을 잡고 태섭이 일어섰다. 천천히 걸어 현장 밖으로 나갔다. 어느새 아침 해가 떠있었다. 잠시 멈추어 선 우성이 태섭에게 카메라를 돌려주었다. 한쪽 눈썹을 찌푸린 채 태섭이 환하게 웃었다.

우성의 마음이 강렬한 생명에 영원히 붙들리게 된 순간이었다.

(끝)

사랑이란 진정 눈물의 씨앗인가요

아니야 아니야 정말아냐 그런건 아닐거야

함께 눈물 흘리고 젖은 가슴에

햇살처럼 따스한 환한 웃음 그리는거야

행복이란 진정 새장안의 잠든 새일까

아니야 아니야 정말아냐 그런건 아닐거야

거친 풍랑 헤치고 더높이 나르는

불꽃처럼 뜨겁게 타오르는 날개일거야

사랑과 행복 (김민영 작사, 김호철 작곡)

글쓴이 구운은행 @basket1on1

표지 및 내지 구운은행

발간일 2024년 07월 28일

본 책은 원작 만화 및 영화와 무관한 2차 창작물이며 등장하는 모든 이름, 인물, 사건들은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장소, 건물, 제품과는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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