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판14

[Kanya] 앞으로의

*가내 드림주(빛전)의 효월이 끝나고 있었던 일상 및 행보(6.0 기준)

카냐는 새벽이 해산 하고 올드 샬레이안에 머물기로 하였다.

다른 이들처럼 각자 하고 싶은 것들이 있어 남은 것이 아니라, 그저 어딘가에 머물 장소가 필요했고, 마침 자신이 마지막으로 당도한 장소가 샬레이안이기 때문이었다.

그리다니아로 돌아가기엔 카냐에게 남은 것이 없었다. 가족도, 집도, 마을도. 수년 전 인한 화재에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기에 카냐는 그리다니아로 돌아간다는 선택지는 일치감치 지워냈다.

물론, 그곳 고아원 사람들이 그립지 않냐 할 수 있겠지만... 글쎄, 카냐에게 있어 그곳은 썩 좋은 기억만 있던 것은 아니었으니 그리 좋은 선택지는 아니었다. 어찌됐건 카냐는 즉석에서 머물게 된 것 치고는 샬레이안에서 꽤 좋은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쌍둥이들의 입김을 받아 르베유르가의 도움을 얻게 되어 샬레이안 한쪽에 작은 집을 받게 된 카냐는 그곳에서 한동안 평화로운 일상을 보냈는데

아침이 되면 햇살을 받으며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고, 샬레이안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고, 날이 좋으면 가벼운 옷차림으로 밖을 나가 산책을 하다가 쌍둥이들의 어머니인 아멜리앙스의 티타임에 초대받기도 하고, 이따금 샬레이안 마법대학생들이 점성술사인 카냐에게 찾아와 과제에 관련하여 조언을 구해가기도 하는 그런 평화로운 일상들을 지내고 있었다.


"의뢰?"

"네! 사베네어 섬 쪽에 있는 쿰비라의 가죽이 조금 필요해서요. 영웅님은 토벌 의뢰도 맡으신다 들었어서... 아 물론 보, 보수도 드릴거에요!"

"아니 뭐... 상관은 없는데."


카냐는 제 앞에 있는 샬레이안 마법대학생들을 바라보았다. 하필이면 제게 의뢰를 부탁하는 학생들이 라라펠 종족이라 그 작은 체구로 애처롭게 쳐다보는 데, 카냐는 은근 그런 것에 약했다.-물론, 울다하의 일로 라라펠 종족이 그리 순진하지만 않다는 것도 알고있지만...- 의뢰 내용도 간단했고, 일주일 안에만 가져다 주면 된다는 말에 카냐는 처음으로 흔쾌히 그 의뢰를 수락했다. 매번 의뢰를 수락 할 때마다 상대방을 세상 모든 쓰레기를 보듯 하던 그가 처음으로 성질부리지 않고 받은 의뢰였다.

아마 새벽이 이 장면을 봤다면 카냐가 어른이 됐다고 난리를 피웠겠지.

새삼 카냐는 이 주변에 그라하나 쿠루루 같은 이들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카냐가 자신들의 의뢰를 받아줬다는 것에 안심한 학생들은 꾸벅 인사를 하고선 다시금 자신들의 연구실로 걸음을 옮겼다. 카냐는 그들이 가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기지개를 쭉 피고선 걸음을 옮겼다.

사베네어섬 까지는 에테라이트를 이용하면 금방 도착하는 거리였다. 학생들이 텔레포 비용으로 쓰라고 어거지로 쥐어준 길 주머니를 보고는 카냐는 본래 갖고 있던 제 소지금을 잠시 확인했다. 학생들이고, 딱보니 최근 입학한 샬레이안 유학생인 듯 싶었는데, 그런 애들의 돈 까지 받기엔 카냐의 얼마 안되는 양심이 찔려왔다. 결국 그 학생들이 준 주머니는 제 소지품에 잘 넣어두고는 익숙하게 샬레이안 중앙에 있는 에테라이트로 걸음을 옮겼다. 쿰비라 가죽 정도야 얼마 안걸리는 의뢰기도 하였으니 챙길 것은 없었다. 천구의는 언제나 들고 다녔으니 더더욱 집을 들릴 필요도 없었다.

익숙하게 에테라이트에 손을 얹고 텔레포 주문을 읊으며 카냐는 사베네어 섬의 팔라카 마을로 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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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네 요즘 산란기야? 왜 이렇게 많이 와?"


평소보다 더 뭉쳐있는 쿰비라 무리들을 바라보며 카냐가 중얼거렸다. 아무리 자신이 스스로를 치유 할 수 있고, 보호 할 수 있다 하더라도 저정도로 많이 뭉쳐있는 것은 무리였다. 못 잡을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 의뢰를 가지고 그정도 고생을 하고 싶지 않았다. 산란기인지, 아님 그저 뭉쳐있는 건지 모를 쿰비라 무리들을 가만히 쳐다보던 그 때 몇마리가 무리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본 카냐는 제 초코보와 함께 천천히 따라나갔다.


"음... 저정도만 잡아서 챙겨가면 되겠지."


하나, 둘, 셋, 넷, 다섯...  초코보 위에 앉아서 저 멀리 있는 쿰비라들의 수를 세어보던 카냐는 다섯마리 정도면 괜찮지. 하는 중얼거림과 함께 천구의를 들고선 익숙하게 주문을 외웠다. 예로부터 이게 제일이었다. 선빵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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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셋, 넷, 다섯... 어 몇 개 더 쓸만하겠네. "

그리고 의뢰는 꽤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심지어 가죽도 학생들이 말했던 개수보다 더 나와서 조금 넉넉하게 챙겨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뜯어낸 가죽들은 잘 정리해서 소지품에 넣어두고, 나머지 시체들을 바라보았다. 어린 시절에 고기를 먹어야 할 때에 간혹가다가 가축 말고 마물을 잡았었던 적을 떠올려 본 카냐는 제 초코보에게 여기서 잘 지키고 있으라 말하고선 팔라카 마을로 텔레포를 탔다.


"...래서 쿰비라를 좀 잡았는데, 여기도 혹시 야생 개체를 잡아서 먹어?"

"아, 가끔 먹긴하는데, 보통 고기류는 예드리만에 가서 사오는 편이에요. 야생 개체를 잡는건 무역선이 오지 못할 때나 좀 많이 급할 때?"

"그렇구나... 그럼 시체들은 그냥 둬야겠다."

다른 산짐승들이 먹겠지. 그리 말하며 카냐는 제 말에 답해준 주민에게 까딱이며 인사하고는 제 초코보가 있을 곳으로 달려갔다. 초코보는 주인의 말을 잘듣고있었는지 그 짧은 사이 시체 냄새가 고약하게 올라오고 있는데도 벗어나지 않고 카냐를 기다리고 있었다.

푸른 깃털을 가진 초코보는 제 주인이 오자 끼익 울며 주인을 반겼고, 카냐는 그런 제 초코보의 부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고삐를 잡고는 시체와 멀어지도록 이끌었다.


"이건 야생 동물들이 먹게 두고, 우린 라자한이나 가자."


온 김에 라자한에도 들려서 이것저것 필요한 것도 사고, 바르샨... 아니 브리트라도 만날 겸. 카냐는 초코보의 고삐를 잡고서 천천히 걸어갔다. 초코보를 타고 달려가도, 날아가도 되겠지만 카냐는 일부러 걸어가는 것을 택했다. 사베네어 섬의 풍경을 보는것도 좋지만, 그냥 그러고 싶었던 기분이었기에 카냐는 초코보와 함께 걸었다.

열대 기후에서만 보이는 식물들을 지나가며 보고, 시원하게 흐르는 냇가에서 초코보의 물을 챙겨주고, 자신도 잠깐 쉬기도 하며 걸음을 얼마나 옮겼을까. 익숙한 라자한의 입구와 보초병이 보여 고개를 까닥이며 인사하고는 익숙하게 지나갔다.

세상을 구한 영웅- 이라는 타이틀은 의외로 여러곳에서 쓸모가 많았다. 과장되어 말하면 에오르제아 전역에 카냐가 가지 못하는 곳은 없다고 할 정도로. 물론 본인은 이런 타이틀이 주는 부담감을 싫어했지만, 원하든 원치않든 얻게 된 왕관은 언제나 카냐의 머리위에 씌워져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보초병이 경례하는 것에도 고개만 까딱이며 지나갔겠지.


"쌉니다 싸요-! 저 멀리 라노시아에서 잡은 멜토르 망둥이가 단돈 25길!"

"장신구 예쁜거 많습니다-! 연인에게 주는 선물로 최고!"

"맛있는 아므라 라씨 팔아요-!"


라자한 시장거리는 언제나 사람들이 북적였다. 카냐는 그새 익숙해진 거리를 천천히 거닐었다. 복작복작 사람들의 목소리가 시끄러울 법도 한데 카냐는 왠일로 그 장소를 벗어나지 않고 평범하게 시장 물건들을 구경했다. 이건 그라하가 좋아하겠네, 쌍둥이들에게 사줄까. 옆에서 초코보가 그러자는 듯 끼익 울었다. 

라자한 전통 장신구들을 보며 카냐는 현재 샬레이안에 있는 친구와 갈레말드에서 고생할 동생같은 이들을 떠올렸다. 배달부 모그리가 조금 고생하겠지만, 그래도 생각난김에 사다주는게 좋겠지.

카냐는 그리 생각하며 팔찌와 같은 장신구를 여러개 구입해 따로따로 포장까지 알뜰하게 마쳤다.

한손에 장신구 꾸러미를 들고선 시장가에서 라씨를 하나 사먹고, 호떡도 하나 알차게 사먹은 카냐는 -초코보에게도 호떡 하나를 물려줬다- 익숙하게 걸음을 옮겨 메가두타 궁전으로 향했다. 과정에서 잊지 않고 배달부 모그리에게 '전' 새벽에게 줄 물건들과 이번에 마친 의뢰 품목을 배달 시키는 것을 잊지 않고선 말이다.

언제나 바쁜 섬유국을 지나며, 도도 축사를 지나고, 한적해지고 넓어진 거리를 지나 메가두타 궁전 앞에 도착했다. 분명 처음 왔을 땐 제법 으리으리하다 느꼈었는데 이제와서는 그런 위엄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종말을 대비하며 꽤 자주 오간 탓에 눈에 익숙해져서 그런 것인지. 아님 그 안의 존재와 친분이 쌓여서 그런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카냐는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별빛전사단에게 꾸벅 인사하고는 -봉투에 있던 라씨도 줬다. 경비병이 얼떨떨해 했지만 넘어가자- 익숙하게 궁전안으로 들어갔다.


"원래 한 나라의 왕을 만나려면 이런저런 절차가 필요하지 않나?"

"그대의 방문인데, 그런 절차는 귀찮지않은가."

"애늙은이말투..."

"편하게 말하라 할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그러느냐"

"그치만 '바르샨'일 때는 어린아이잖아."

"그럼 다시 이렇게 말해줄까요?"

"...아니, 그냥 그게 낫다."

태수의 인형... 그러니까 바르샨의 모습으로 자신을 마중나온 브리트라를 보며 카냐가 말했다.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나이먹은 어르신처럼 말하는 것이 썩 보고싶은 모양새는 아니었으나, 바르샨의 말투보다 브리트라의 말투가 더 익숙해지니 오히려 이쪽이 더 어색해질 지경이었다. 괜히 말했다는 듯 카냐가 라씨에 꽂힌 빨대를 잘근 씹다가도, 알현실로 들어가 브리트라와 마주하면서 그것도 그만두고는 짧은 담소를 이어나갔다.


"그러고보니, 그대가 라자한까지는 어쩐일인가."

"사베네어 섬 의뢰가 있어서, 그거 해결하고 겸사겸사..."


앞에 있는 과일을 한입 베어 물며 카냐가 말했다. 그에 브리트라가 의외라는 답을 하며 카냐가 먹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카냐와 브리트라와의 관계를 정의하자면, 그냥 안면식이 있는 정도였다고 해도 무관했다. 카냐는 애초에 용에 관심이 큰 편도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찾아온 것은 순전히 저더러 파트너라 부르는 한 엘레젠이 신경쓰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전직 푸른 용기사라 그런가 용과 참 인연이 길다 라고 느끼던 카냐는 브리트라를 보며 말을 이어갔다.


"에스티니앙은 잘 지내?"

"그는 잘 지낸다. 가끔씩 와서 별빛전사단의 훈련을 도와주기도 하지."

"너무 부려먹는건 아니지?"

"그럴리가 있겠느냐, 귀빈으로 모시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거라."


카냐가 먹는 과일이 하나 둘 늘어가면서 짧은 담소도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카냐는 제 앞에 놓인 과일 바구니의 과일들을 딱 절반만 집어먹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오래 있을 이유도 없고, 다른 곳도 방문 할 계획이었으니 라자한에서만 시간을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와는 만나지 않을생각인가."

"소식 들었으니까. 됐어. 앞으로 갈 곳도 새벽 애들 보러가는것 보단 그냥..."

"그냥?"

"그냥 세상 구경인거니까. 눈에 띄기 싫어"

"그대가 자연스럽게 라자한의 궁전에 오는 것은 눈에 띄는 일이 아닌가보군"


브리트라의 말에 할말이 없어진 카냐는 괜히 심술을 부린다고 근처에 잡히는 쿠션을 브리트라에게 던지고는 -이러면 안된다- 궁시렁 대며 알현실을 나왔다. 뒤에서 브리트라가 옅게 웃는 소리가 들렸지만 가볍게 무시하고는 앞에서 대기하던 별빛전사단이 절도있게 하는 경례에 고개만 끄덕이며 지나치고서 텔레포 주문을 다시 외웠다. 이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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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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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새로운 너."

"안녕 휘틀로"


카냐는 오랜만에 온 1세계. 그것도 템페스트 가장 아래에 있는 아모로트의 환영을 돌아다니다 발견한 그의 환영체에 인사했다. 물론 진짜 휘틀로다이우스를 만나본데다 처음부터 눈 앞에 있는 이 검은 로브를 입은 형체가 진짜 휘틀로가 아님을 알고있음에도 카냐는 그를 '진짜'처럼 대해주었다.

그저 단순하게 눈 앞에 존재하니 진짜처럼 대해주는 것이지만 깊게 생각하는 것은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으니 카냐는 에메트셀크의 마력으로 만들어진 '휘틀로다이우스'의 거품과 함께 그 시절 아모로트를 걸으며 짤막한 담소를 나눴다.


"그래, 종말을 막아냈구나. 멋진걸."

"진짜 '휘틀로'도 만나봤어."

"정말? 어땠어?"

"되게 장난기 많더라. 에메트셀크가 골머리를 썩히는 이유를 알 것 같아."

"후후, 그와는 옛날부터 알고 지냈으니까. 아무래도 둘 다 '볼 수 있는'사람이었고."


고요한. 그러나 어딘가에서 시계 초침이 째깍이는 소리가 나는 이곳에서 두 사람의 목소리만 울려퍼졌다. 카냐는 자신보다 한참은 큰 휘틀로를 바라보며 엘피스에 다녀온 이야기를 해주었다. 에메트셀크의 창조마법으로 만들어진, 그의 기억으로 재구성 된 가짜일 뿐이지만, 엘피스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은 현재에 이르러선 눈 앞의 이 거품 밖에 없었으니까.

"마지막은 유쾌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꽤 즐겁게 시간을 보냈었나보네."

"아무래도...?"

"후후, 그래도 안그런척 그런 사건들에 휘말리는건 지금의 너도 똑같구나."

"과거의 나도 이랬나보지?"

"딱히 그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언제나 사건사고의 중심에 있긴했어."


과거의 자신을 만나보진 못했지만, 눈 앞의 거품이 해주는 말에 그렇구나, 싶긴했었다.


"본인은 내켜하지 않았지만 매번 어디에서 자꾸 사건사고를 몰고왔었어. 이프리타의 활동을 막을 때도, 포도가 맛있으니까- 로 퉁쳤지만 위원회 앞에서 급하게 지어낸 변명이었지."

"..용케 먹혔네 그게?"

"그 보고를 들은게 에메트셀크가 아니라 엘리디부스였으니까. 당시의 엘리디부스와 '너'는 꽤 친한 사이였거든."

"..... .... ...... 그 하얀놈이랑?"

"...음? 그렇지?"

"..... ...... ........ ..... 안믿겨져"

"아무래도 지금의 너는 그와 마지막에 그렇게 싸웠으니까 안믿겨지려나."

엘리디부스와 자신이 친했다? 카냐의 입장에서는 자다가 봉창두드리는 소리였다. 마지막은 제법 안쓰러웠고, 종말이 다가오는 날 자신을 엘피스로 보내준 것도 그였으나. 결국은 아씨엔이었고 과거의 인연이었다. 심지어 자신은 기억도 안나는 전생의 인연! 그 때 어떻게 지냈던 그 기억이 없는 채로 현재에 와서 다시 만났고, 현재에서 만난 인상은 그야말로 최악에 가까웠으니. 

친했다고 말해주는 거품의 이야기에 카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내가 그 녀석이랑 친했다니.

마지막에 서로 죽이려고 덤벼들었는데...


" 후후, 뭐 그때의 그와 너의 관계였으니까. 지금은 시간이 많이 지나서 너도, 그도 많이 변했잖아. 그러니 너희의 관계도 그렇게 변했을거야."

"뭐... 그렇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들으니까 미묘하네, 나야 지금은 조각에 불과하지만 엘리디부스 걔는 원형이었으니까. ... 아 원형이라기엔 조디아크에서 떨어져 나온거니까 원형은 아니려나."

"글쎄, 그래도 그와 동일한 건 맞을거야. 그 때 이곳에 왔을 때 내 눈에 보인 에테르는 그와 동일했으니까."

거품의 말에 카냐는 그렇구나, 하는 짧은 감상을 내뱉었다. 타인의 마력으로 만들어진 거품이라 진짜 처럼 영혼을 보는 지는 모르지만 카냐는 거품의 말을 믿기로 했다. 애초에 이것이 정답이다 아니다, 라고 말해줄 수 있는 이들은 이제 더이상 이 시대에 없으니까. 카냐는 거품과의 짧은 담소를 뒤로하고 자신은 이만 가보겠다는 말을 남겼다. 그 날 이후로 이곳에 와서 시간을 보내다보면 기이한 향수에 휩싸이곤 했으니.

느껴지는 그리움들에 본인이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오래 머무는 것은 아무래도 힘든 일이었다.

거품에게 손을 가볍게 흔들고, 카냐는 익숙하게 텔레포 마법을 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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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도착한 곳은 그리다니아였다. 광장에 도착하고 익숙한 얼굴들이 지나가며 자신에게 아는체를 해오는 것은 무시했다. 그리다니아에는 그닥 좋은 감정이라고는 없었으니까. 지금이야 카냐가 종말을 막은 영웅이고, 세상의 위협을 몇 번이고 막아낸 사람이니 저런 태도를 보이지만 카냐가 어렸을 적에는 카냐를 비롯한 마을 주민들을 밀렵꾼들이니 뭐니 하는 말로 욕을 하고 뒤에서 험담을 해왔었다. 그러니 적어도 그리다니아 사람들의 행동은 카냐에게 있어서 가식적인 행동과 같았다. 물론 그게 아닌 진심인 사람도 있겠지만, ... 그게 몇이나 되겠어.

오래 전부터 자리를 잡고 살아왔던 부족이었음에도 어느날 생겨난 '도시'가 자신들을 이방인, 밀렵꾼 취급을 하며 내쫓으려 하고, 막대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굳이 카냐 만이 아니더라도 마을에 살던 모든 달의 수호자들이 한 번쯤은 그리다니아 귀곡부대와 마주했을 때 겪는 일들이었다.

카냐도 당장 몇 년 전만 해도 귀곡부대원들에게 얻어맞아 도망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었다, 그런 그들을 좋게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아마 좋게 볼 일은 없을 것이었다. 당장의 우호관계인 카느 에 센나도 불편해 죽을 것 같았으니까.

아무튼, 그리다니아 사람들을 지나쳐 곧장 검은장막 숲으로 나갔다. 차라리 숲에 있는 에테라이트를 탈 걸 그랬나 싶긴 했지만, 자신이 갈 곳으로 가기엔 여기만큼 가까운 에테라이트가 없었다. 다음에는 하우징 구역에서 사용하는 간이 에테라이트라도 구해다가 설치해둬야하나 하는 생각을 하며 걸음을 바삐 옮겼다.

검은장막 숲으로 나와서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길목으로 들어간 후 자연스럽게 성큼성큼 나아가는 걸음은 익숙했다. 얼마나 나아갔을까, 카냐의 눈에 익숙한 폐허가 보이기 시작했다.

불에 탄듯 검게 그을린 자국들이 가득하고 몇몇 건물은 불에 타 무너져 내린듯 뼈대만 남아있는 곳도 있었다.

작은 마을의 모양새를 하고 있는 이곳은 카냐가 살았던 마을이었다. 당시엔 이 주변 일대가 싹 다 불탔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마을 터를 제외하면 다시 생명이 자라나고있어 기묘한 괴리감을 느끼고는 하였다. 바삭 거리는 검은 색 땅을 밟고 지나가며 카냐는 과거 자신이 살았던 마을의 잔재를 살펴보았다.

이곳은 카냐가 어린시절 뛰어놀았던 곳이었고, 먹고, 자고, 가족과의 추억이 깃든 곳이었다. 숲 깊은 곳에 위치해 있는 만큼 그리다니아 측 사람들이 쉽게 건들 생각도 못했을테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을까. 카냐는 폐허가 된 집터에 풀썩 앉으며 가만히 정면을 응시했다. 그의 초코보도 곁에 앉아 울음소리 대신 부리를 가볍게 대고 있었다. 주인의 기분을 알아주기라도 하는걸까 위로하듯 구는 모양새에 카냐가 제 초코보의 부리를 가만히 쓸어주었다.



" 여기가 다른 사람들 눈에 안띄었음 좋겠는데. "

끼우웅

" 이미 충분히 눈에 안띄지 않냐고? 그리다니아 사람들이 옛날에 왔었으니까 그러진 않을걸. "



예전에 화재 진압과 생존자 구출을 위해 왔었으니, 그리다니아 사람들이 이곳을 모르진 않을터였다. 적어도 카느 에 센나 같은 권력자들은 모르는게 이상하겠지. 그럼에도 여길 그대로 두는 것은 뭐가 됐던 정령이 건들지 말라해서 일까, 자신이 고민 해 봤자 이유를 알 턱도 없으니 그냥 앉은채로 폐허를 바라보는 것만이 전부였다. 

한참을 바라보았을 까, 카냐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가만히 들어보았다. 만약 제 가족들이 살아있었다면, 지금의 자신을 제법 자랑스러워 했겠지. 어머니도, 누나들도, 형들도, 동생들도, 자신을 아는 마을의 사람들이 그 까칠하던 꼬맹이가 이렇게 컸다며 자랑스러워 할 것이 눈에 보였다. 이제는 없는 이들이니 그저 상상에 그쳤지만, 카냐는 그들이 그랬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다정했고, 피가 전부 이어지진 않았어도 가족이었으니까.

하늘을 바라보던 것을 멈추고 제 초코보에 걸린 고삐의 끈을 가볍게 잡고선 당긴다.


" 이제 가자, 집에 가야지. "

끼웅

" 여기 더 있어서 좋을건 없잖아. "

끼잉...

" 나중에 오자, 착하지. "


초코보가 짧게 울고, 카냐는 초코보의 부리를 한 번 매만져 주고선 텔레포 마법을 시전했다. 몸이 공중에 뜨고, 지잉- 하는 에테라이트로 이동할 때의 감각이 몸을 감싼다. 익숙한 감각을 뒤로하고 눈을  떠보면 샬레이안에 위치한 자신의 집이다. 텔레포로 앓는 초코보를 익숙하게 축사에 매어 두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시작은 작은 의뢰로 시작됐지만 생각 외로 이곳저곳 여행을 많이 다녀왔다.

그것이 좋으면서도 한켠에서는 싫다고 드는 감정이 참 모순적이었다.

아무래도 고향에 다녀와서 그런걸까, 그래도 고향 마을터에 다녀온 것에 후회는 없었다. 언젠간 가봤어야 하는 곳이었으니까. 그것을 이렇게 충동적으로 가도 됐을지가 문제였지만. 어쩌겠는가, 자신이 배워온 것은 이런 것 뿐인데.


그래도 이번 짧은 여행에서 한가지 드는 생각은 있었다.

" 나중에 내 부지로 만드는 법이나 알아봐야겠네. "

알피노라면 좋은 방법을 알까, 여타 다른 새벽에게 물어볼 사항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면서 카냐는 침대위로 몸을 던졌다.

이제 여행의 피로를 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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