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그어 기반 / 잭힐데 (카이힐데)] 현실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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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위의 크그1 ~ 괴물묵시록 쭉 보고 오셔야 이해가 가는 글.

* 괴물묵시록,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대의 잭힐데.

리모컨을 만지작 거리던 힐데베르트의 시선이 느리게 창문 밖으로 향했다. 기분 좋게 들려오던 크리스마스의 캐롤이 슬슬 잠잠해질 시기. 그 대신 밀어닥친 매서운 칼바람 소리가 창문에 부딪히고 스러지며 창문을 뒤흔들고 긁어내며 비명과 같은 소음을 냈다. 그런 소리를 듣고 있자면 힐데베르트는 생각하고 만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곳이 현실이 맞는 걸까. 사실,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는데, 자신 혼자 팔자좋게 이 완벽하도록 이상적인 꿈에 붙들려있는 것은 아닌가. 윤과 아미가 살아있고, 더이상 크리쳐라는 괴물들과 맞서지 않아도 되는, 더이상 누군가를 구해야하는 의무를 어깨에 들춰매지 않아도 되는, 내내 바래왔던 달콤한 소망에 붙들려있는 것은 아닌가. 창문 너머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힐데베르트의 시선이 현관으로 느릿느릿 가 닿았다. 꼭 이것과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나가지 마, 대장……. 이젠 까마득하게 느껴질 법 한데, 간절히 자신을 붙들던 목소리와 표정이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정말 여기가 현실이 아니면 어떡하지? 힐데베르트는 어느 순간 자신이 현관문의 앞에 서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느리게 올라간 손이 현관문의 손잡이를 붙들려던 순간이었다. 그것을 부드럽게 저지하듯, 하얀 손이 힐데베르트의 손목을 꾹 붙들었다.

“힐데.”

젖은 머리를 말리지도 못하고 온 건지 머리에서 물을 뚝뚝 흘리고 있던 카이로스였다. 힐데베르트의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와 표정이 한껏 굳어있었다. 그 모습을 돌아보던 힐데베르트가 작게 입을 달싹였다.

“카이, 이런 날씨에 머리 안 말리면 감기 걸려.”

힐데베르트의 잔소리에 카이로스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안도감이 섞인 숨소리. 힐데베르트의 표정을 한 번 더 살피던 카이로스가 늘 짓던 웃음을 그려내며 잡고 있던 손목을 천천히 놓아주었다.

“이 날씨에 그런 차림으로 밖으로 나가려 했던 자네보다야 낫지.”

그의 말에 힐데베르트는 제 몸을 가볍게 훑었다. 따듯하게 난방이 틀어져있는 덕에 굳이 긴 옷을 입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반팔과 반바지 차림이였다는 뜻이다. 음, 합당한 지적. 머쓱한 웃음을 지어낸 힐데베르트가 몸을 돌려 도로 거실로 걸음을 옮겨갔다. 카이로스는 물자국을 바닥에 뚝뚝 남기며 힐데베르트의 뒤를 따라왔다.

“떨어진 건 네가 다 닦아…….”

힐데베르트가 투털대자 카이로스는 어깨에 걸려있던 수건으로 머리를 덮으며 하하 웃었다.

“당연히 그래야지.”

그리고 잠깐의 침묵이 있었다. 미처 끄지 못한 티비에서는 크리스마스 특집 클리셰 영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래, 이런 점마저도……, 자신이 지금의 상황에서 서서히 유리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런 기분을 도저히 견디기 힘들어서 침묵을 깼다.

“카이로스.”

“듣고 있어.”

“내가 밖에 나가고 싶다고 하면, 말리지 않을거야?”

그의 시선이 자신에게 닿는 것이 느껴졌다. 동 떨어지는 감각 속에서도, 그의 눈빛이 유독 선명했다.

“내가 굳이 말려야할 이유가 없지. 방금처럼, 그런 차림으로 나간다고 하면 좀 달라지겠지만.”

이어진 문장은 장난스러운 기색이 상당했기에 자신도 실없이 웃음을 터트릴 수 밖에 없었다. 손등 위로 따듯한 온도가 덮여왔다. 희미한 바디워시 향이 스쳤다.

“힐데.”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그제서야 그에게 시선이 닿았다. 방금의 장난스러운 기색 대신 진중한 표정의 그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산책을 하기에 그리 늦은 시간은 아냐. 날씨가 조금 험하다는 게 문제지만…….”

“…….”

“그래도 나가고 싶다면 함께 갈게.”

대답대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관 앞에 우뚝 서있던 힐데베르트 대신, 현관문을 열어 젖힌 것은 카이로스였다. 아까와 달리 힐데베르트는 쉽사리 현관문의 손잡이에 손을 올리지도 못하고 있었으므로. 문을 열자마자 매서운 추위가 두 사람을 덮쳤다. 정말로, 그 언젠가를 떠올리게 만드는 날씨였다. 힐데베르트가 저런 상태가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거라 여기며, 카이로스가 자신의 대장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이가 카이로스의 손을 꼭 잡았다.

이후의 일정은 별 것이 없었다. 매서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처럼 거리를 걸어다니는 이들은 몇몇 있었다. 퇴근하는 사람들이나, 여전히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고 있는 길거리를 걸어다니는 다니는 사람들이나……. 그들 사이로 섞여 걷던 힐데베르트는 그런 풍경에서 쉽게 눈을 떼지 못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안 좋은 생각을 하는 게 아니면 좋겠는데……. 그런 카이로스의 초조함을 눈치채기라도 한 건지, 힐데베르트가 입을 열었다.

“…… 이 모든 게 꿈같아.”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였으나 카이로스는 그의 말을 놓치지 않고 들었다. 알고 있다. 그와 자신이 겪어온 것들은, 겨우 며칠 만에 모조리 잊어버릴 수 없는 종류의 것임을. 그래서 힐데베르트의 불안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간혹 그런 기분을 느껴.”

금안의 시선이 카이로스에게 가 닿았다. 조금 놀라움을 담은 채로. 네가? 라는 뜻이 분명히 담긴 듯한 눈빛에 카이로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저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말할 뿐이지. 이곳은 자네가, 그리고 내가 구해낸 곳이라고…….”

그저 ‘모두가 행복해졌습니다.’라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달려왔던 이야기의 끝마저 꿈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너무나 잔인한 일이였으므로. 특히, 제 하나뿐인 대장에게는 더더욱. 어느 새 두 사람의 걸음은 우뚝 멎어있었다. 거칠게 흩날리는 눈발은 어느 새 그 매서운 기세를 늦추고 있었다.

“그러니, 너무 불안해하지마.”

“…….”

“우리의 최선은, 결코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거야.”

하얀 속눈썹 위로 눈이 내려앉았다. 손을 들어 그것을 닦아낸 카이로스가 힐데베르트를 당겨 안았다. 힐데베르트 역시 그런 그의 등을 단단히 끌어안고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따듯한 체온이었다. 여전히 자신을 뒤흔드는 불안이 온전히 가신 것은 아니였으나, 그와 함께 있다면 언젠간 이 불온한 감각이, 언젠가는 가실 것이다. 더이상 자신이 되찾은 현실에서 떨어져 나오지 않는 그런 날이, 꼭 올 것이라고, 힐데베르트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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