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찬연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행복하시길 바라며.

안녕하세요, 파랑찬연 주최입니다.

오늘 하루 행복하셨나요?

10월 10일, 행사의 마지막에도 위와 같은 말로 인사드렸습니다. 여러분이 작게나마 행복할 수 있는 계기와 공간을 마련하고자 시작한 기획이 '파랑찬연'이었습니다.

파랑찬연(波浪燦然)이라는 4글자는 저란 사람의 취향이 가득 담긴 4글자입니다. 청명(青明)의 이름 자를 활용한 언어유희와, 인생을 항해에 비유하는 것이 그러합니다. 아마 여름에 기획됐던 탓도 있겠습니다. 신이 나서 온통 파랑과 바다로 이미지를 꾸려놓고 보니 청명이는 이 색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 아차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도 가끔은 끝없는 푸르름에 몸을 내던지고 싶을 때가 있지 않겠습니까. "저 청명입니다!"라며 당당히 뱉던 그 말이 화산에 드리운 구름을 걷혀왔던 것처럼, 그가 가진 기억의 시작 또한 화산의 산문 넘어 펼쳐진 청명한 가을하늘이었을 텐데.

보시다시피, 사실 그렇게 많은 것을 준비한 행사는 아닙니다. 1인 주최 괜찮겠느냐고 걱정하던 주변 분들께도 "나는 해시태그만 만들고 아무것도 안 할 것이다."라고 호언장담을 했습니다. 준비 기간이 힘들었던 건 순전히 현생의 탓이 큽니다. 지인에게 한 우스갯소리로, "나는 이렇게 시련을 이겨내며 행사할 생각이 없었는데 졸지에 개큰 시련을 이겨낸 사람이 되어버렸다."고 했을 정도로요.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처음 기획 단계부터 꼼꼼하게 설계했으면 좋았을 텐데요. 더 그럴듯한 행사가 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가장 후회하는 것은 익명 문의 창구를 '페잉'으로 한 점입니다. 일본어와 한국어가 동시에 원활히 지원되는 사이트를 사용하고 싶어서 선정했는데, 이렇게 외부 광고가 많은 사이트인 줄 알았더라면 절대 안 썼을 겁니다.

급하게 요청해서 시간이 촉박했음에도 귀한 도움 주신 0taym님, 모서리님, 쑤님, 도비님께 다시 한번 감사 인사드립니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행사 참여자분들을 위한 전프레 형식의 선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추후 공지드릴 예정이므로, 관심 있는 분은 참여해 주시면 감사합니다.

아울러, 각자의 자리에서 시련을 견디고 자리에 함께해주신 여러분께도 감사와 응원의 인사 드립니다.

청명의 생일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우리는 작품이 연재되고 있는 플랫폼에 큰 실망을 겪었습니다. 많은 분께서 기꺼이 대항하고자 불매연대에 참가하셨고, 저 또한 그들 중 하나가 됐습니다. 작품의 유입이 플랫폼의 수익이 될 것을 우려하여 창작물을 내리고 자물쇠를 걸어 잠근 분들도 많습니다.

좋아하는 작품의, 사랑하는 주인공이 생일을 마음껏 축하하지 못하는 분위기 속에, 준비해 왔던 열정과 사랑의 표현에 대해 고민이 많으셨을 줄 압니다. 파랑찬연은 오프라인 행사가 아닌 온라인 행사였기에 더욱 고민이 컸습니다. 행사에 참여하시는 분들의 트윗 하나가 인터넷에서 어떻게 보이고 받아들여질지 모르니까요.

파랑찬연의 본 기획이 해외(일본) 팬들과의 교류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행사 참여 인원이 정말 많았더라면 아마 저는 기꺼이 셔터를 내리고 계정을 지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해외 분들과 직접적으로 교류를 하다 보니, 갑자기 본국(한국)의 팬들이 일제히 분노하고 작품 소비를 멈추는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채 불안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한일 교류 행사를 표방하고 있는 만큼, 파랑찬연에서 이 상황을 설명하고 또 약속을 지키는 것이 좋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행사 직전에 장문의 의사 표명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만 많은 분께 양해를 얻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소 안타깝게도 '화산귀환'은 상업 웹소설입니다. 우리가 소비하는 것은 작가와 출판사의 '작품'이 아니라 웹콘텐츠를 제공하는 플랫폼의 '서비스'에 더 가깝습니다. 우리가 플랫폼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대가를 지불하면 플랫폼이 그 수익의 일부를 출판사에게 주는 형태라고 이해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작가에게 독자가 보내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는 인세"라는 말은 시대가 종이출판에서 전자출판으로 옮겨왔음에도 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공간에서 작가와 접할 수 있는 출판 문학과 비교해 웹소설은 정말 안타깝게도 플랫폼을 통한 "돈" 이외에 작가와 독자 사이에 맺어질 수 있는 수단이 없다시피 합니다.

우리는 모두 매출 지표 속의 숫자 1입니다. 이것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절대적인 것이어서, 애석하게도 제가 작품을 사랑하는 마음에 지불하는 1은 작품을 폄하하고 혐오와 폭력을 휘두르는 어떤 사람의 1과 완벽히 동등한 1입니다.

지표에 적힌 1의 뒤편에 어떤 정신이 함께하는지 알아볼 수 있는 회사란, 죄송하지만,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참여하는 이들은 '연대'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연대는 1을 2로 만들고, 10으로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이미 기득권에 올라 더 큰 목소리를 가진 어떤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1을 최대한 끌어모아 그들과 견주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수단이 연대입니다.

단순히 작품을 덕질하고 싶었을 뿐인데, 좋아하는 캐릭터를 보며 웃고 싶었을 뿐인데. 그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고, 눈치를 보며 불편함을 느끼는 사태에 마음껏 분노하시고 불만을 토로해주세요.

저는 누군가를 지적하고 깎아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좋아하는 마음이 실망으로 인해 상처받는 것에 분노하고자 합니다.

꼭 '회산귀환'이 아니더라도, 다른 어딘가에서 다시 그대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무언가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이번과 같은 일로 또다시 실망하고 상처받지 않기를. 오로지 여성혐오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불편함을 겪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에, 앞으로도 얼마든지 여러분께 불편을 끼칠 생각입니다.

실컷 화내고 부당함에 대항하다 지칠 때 다시 이 자리에 모여 잔치를 엽시다. 오타쿠가 가진 최고의 힘은 손쉽게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작품을 들여다보고, 사랑하는 인물에 대해 나누며 언제든지 행복해집시다. 그리고 그 힘으로 다시 힘든 일 그 무엇이든 간에 이겨내시기를.

이토록 좋아한 작품이 외면당한 이들의 연대를, 끝없는 협의의 실천을, 사랑을 논하는 작품이라 기쁩니다.

그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자신은 절망이 아닌 희망을 바라보는 사람이라고 한 청명의 말을 굳게 믿으며, 이 이야기를 계속 읽어나가는 것처럼.

여러분의 항해가 늘 청명한 하늘 아래 이어지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파랑찬연 주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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