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시작
첫 만남은 괴담과 닮았다
사랑은 하찮다. 그렇게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하늘만큼 드높은 이상, 저주보다도 지독한 원한, 우물 안 개구리의 좁은 식견, 세상물정 모르는 금지옥엽의 오만함, 그 외의 진위를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유로 덤비는 녀석들은 지천으로 널리고 널렸다. 심장이 뛰던 몸은 순식간에 고기로 도륙되어 산처럼 쌓이게 될 지라도 덤벼드는 불나방 같은 놈들이라고, 그렇기에 저가 하는 행위들은 모두 거슬리는 벌레들을 치우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태어나기를 저주로 태어나 어딘가 결여된 탓에.
타인일 뿐인 그들 따위야 신경 쓸 이유가 있으랴.
이는 사랑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만, 약자들이 보내는 구애를 강자로써 받았다.
그리하여,
영문을 모르는 적의의 대상이 되었다.
까닭을 모르는 공포의 화신이 되었다.
이득이 되는 건 산처럼 쌓인 사냥의 결과물 뿐이었음에도 생의 끝까지 끊이지 않은 구애를 받아줬다. 지독하리만큼 끈질기고 질릴만큼 질척이는 감정의 파도를 저주로써 전부 들이켜줬다. 이를 사랑이 아니면 뭐라 할 수 있는가. 그럼에도 고독을 논한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가져서 상실을 모르는 도련님의 탐욕스러운 욕심일 뿐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단언한다.
이해하기에 딱 잘라 말한다.
남이 채워줄 수 있을 거란 기대조차 하지 않았기에 분명하게 답할 수 있다, 고.
그러나
‘스쿠나’
그 생각을 스스로 부정하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나는 지금 사랑을 하고 있어’
그런 말을 하는 너를 보면서 어떻게 감히 내가.
감히 내가──────────
特愛(특별한 사랑)
0. 시작
이타도리 유지는 가끔 어떠한 꿈을 꿨다.
어린 시절 추억으로 남은, 어느 여름날의 꿈.
스기사와 마을에는 아주 오래된 공동묘지가 있었다.
마을 구석에 자리한 공동묘지는 오래된 만큼 묘비가 빽빽이 들어가 있어 햇볕을 쬐어도 음산한 기운을 풍겼다. 그리고 오래된 공동묘지는 으레 그렇듯 항상 뒤숭숭한 소문이 돌았다. 저승으로 가는 길목 위에 있어 밤마다 귀신이 출몰한다든지, 과거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들을 암매장한 장소였다든지 등등. 그러나 오싹하고 소름이 끼치는 괴담으로 가득한들 자본 앞에선 흙먼지에 깔려 사라질 이야기였을 뿐인지라, 마을의 발전을 위해 지금은 재개발을 이유로 파묻혀 마을 회관의 한 쪽 벽에 걸린 사진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녀는 여름이 되면 늘 그곳에 있었다.
그녀와의 첫 만남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녀에 대한 건 꿈속에서조차 흐릿했다.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어디에서 살고 있었는지, 나이는 몇이고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었는지. 같은 마을에 살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들은 그녀와 연관이 없는 것마냥 흐릿하다 못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나 길고 부드러운 흑발과 검은 원피스를 입은 모습만큼은 인상이 깊었는지 꿈속에서만큼은 선명했다.
유지는 항상 같은 자리에 머무는 그녀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오랫동안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알겠느냐, 유지.’
‘내 허락 없이는 무덤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거라.’
유지의 할아버지, 이타도리 와스케는 거의 매일 아침마다 유지에게 단단히 말했다. 그리고 유지는 와스케의 경고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녀가 나타난 날이면, 마을은 바다에 잠겼다.
우연인가 필연인가.
마을에서 일어나는 모든 비극이 그녀의 탓인지 아니면 티끌보다도 작은 확률이 그녀에게만 적용된 건지 유지도, 마을의 그 누구도 알 수 없었지만, 와스케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유지도 모를 수 없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지는 그녀를 만나러 갔다. 와스케의 경고도 유지의 발을 묶을 수 없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외로워 보였으니까.
꿈에서조차.
“안녕, 유지.”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유지는 자주 그녀를 만나러 갔다. 학교가 늦게 끝나는 날도 있고, 친구들하고도 놀아야 했기에 일주일 중 가는 날보다 못 가는 날이 훨씬 많았지만. 그러나 그녀는 유지와 만난다는 상황만으로도 즐겁다는 것처럼 늘 웃는 얼굴로 유지를 맞이했다.
······해서 내가 혼내줬어.
“대단하네, 유지는.”
그렇게 대단한 일도 아닌걸?
“충분히 대단한 일이야.”
그래?
“응, 그렇단다.”
유지가 이야기하면 그녀가 맞장구를 치고, 유지가 물으면 그녀가 긍정하기를 반복할 뿐인 대화였다. 이웃으로 만난 누나와 동생 관계, 만나는 장소가 마을에서 정말 오래되고 음산한 공동묘지였을 뿐인, 특별한 것 하나 없이 평범하기만 한 모습이었다.
적어도 유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야. 누나는 계속 여기 있을 거야?
하늘을 보며 유지가 물었다.
그녀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다.
대화가 끝나면, 그녀는 유지의 물음에 답을 하지 않고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전에는 미소와 함께 뭐라고 답을 해줬던 것 같은데, 유지는 생각했다. 희미해진 추억만큼 빈 곳 투성이의 꿈에서 많은 것을 바라면 안되지만. 몸을 일으킨 유지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묘비 위에 앉은 그녀는 항상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유지.”
어? 유지는 눈을 깜빡였다.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그녀는 흐릿한 꿈에서 홀로 선명하게 웃었다.
“아무거나 함부로 주워 먹으면 안 돼.”
알았지? 그녀가 말했다.
─────그런 말, 단 한 번도 해준 적이 없었는데.
“헉…!”
눈이 번쩍 뜨였다. 악몽을 꾼 것처럼 숨이 가빴다.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끼며 유지는 눈을 데굴데굴 굴려 주변을 확인했다. 자기 위해 전등을 꺼서 안이 어두웠으나, 흐릿하게나마 가구들이 보였다. 자신의 방이었다. 유지는 크게 숨을 내뱉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끼며 몸을 일으킨다. 잠이 더 올 것 같지 않았다. 유지는 방의 유일한 창문에 다가갔다. 밤하늘은 별들로 가득했다.
별을 보니 꿈속의 그녀가 떠올랐다.
그녀가 마지막에 했던 말도.
“갑자기 마지막이 달라서 놀랐네……무슨 의미가 있나? 설마 이것도 일종의 심령 현상인가!”
내일 선배들에게 말해줘야겠다, 단순한 사고 탓에 금방 의문을 접은 유지는 오지 않을 줄 알았던 수마를 느끼며 다시 이불 위로 누웠다. 이윽고 고운 숨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스기사와 마을에는 오래된 공동묘지가 있었다.
오래된 공동묘지는 으레 그렇듯 항상 뒤숭숭한 소문이 돌았다. 저승으로 가는 길목 위에 있어 밤마다 귀신이 출몰한다든지, 과거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들을 암매장한 장소였다든지.
“좋은 꿈 꾸렴, 유지.”
혹은
수수깨끼의 소녀가 나타난다던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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