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스토리 드림

홍일점은 춤추지 않는다 上

올 캐릭터 드림

* 이벤트 ‘글로리아스 마스카레이드’ 엔딩까지의 스토리 스포일러 있습니다.

* 스토리 내에서 묘사되지 않은 부분은 개인 상상력으로 채워 넣었습니다.

 

 

 

01.

 

아이렌은 눈 위로 쏟아지는 햇볕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일어났다.

어젯밤 무리한 탓인지 온몸이 무겁다. 팔다리가 욱신거리고 허리가 저릿한 게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였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일어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부스스한 머리를 정리하지도 못하고 멍하니 상체를 일으킨 채 앉아있던 아이렌은 반대편 침대를 독차지한 그림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자신만큼, 아니 어쩌면 더 고생했다고 해도 좋은 그림은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다.

 

‘피곤할 테니 무리도 아니지.’

 

밤새 뛰어다니며 홍련의 꽃을 상대했으니, 마력이 없는 자신보다 더 피곤한 게 당연하다. 무도회는 오늘 밤이니, 좀 더 자게 내버려 두는 게 좋겠지.

침대에서 빠져나가 아이렌은 커튼으로 빛을 차단하고, 씻기 위해 움직였다. 자신만의 특별한 방법으로 피로를 덜어둔 그는 오늘 아침부터 일찍 움직일 계획이었다.

 

‘미리 피로 회복제를 구매해 놓길 잘했어.’

 

꽃의 거리로 가기 전, 샘의 상점에서 ‘이거라면 3일간 잠들지 않아도 쌩쌩하게 움직일 수 있다’라고 말해지는 자양강장제를 구매했던 그는 어젯밤 과로하고 돌아오자마자 약을 마시고 곧바로 잠들었다. 약이라는 건 만능이 아니다 보니 아직도 사지가 욱신거리긴 하지만, 제가 겪은 심한 짓에 비하면 이 정도 피로는 애교로 넘어가 줄 수 있었지.

빠르게 씻고 몸가짐을 바르게 한 아이렌은 익숙한 교복을 챙겨입고 밖으로 나섰다.

머리가 다 마르지 않아 긴 머리를 치렁치렁 푼 채 돌아다니는 그의 모습은 꽤 눈에 띄었지만, 노블 벨 칼리지의 학생들은 행사 준비로 바빠 아이렌을 신경 쓰지 못했고, 다른 학교 학생들은 애초에 마력을 빼앗겼던 후유증으로 일어나지도 못해 복도에 나와 있지도 않았다. 한산한 복도를 걷는 아이렌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아름다운 교내의 풍경과 이른 시간의 여유를 즐겼다.

 

“아이렌?”

 

숙소를 나와 걷고 있던 아이렌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자신처럼 교복 차림으로 나타난 리들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의 거리를 좁혔다.

 

“이 시간에 일어나다니, 잠을 못 잔 거니? 피곤할 텐데.”

“저는 괜찮아요. 그것보다 선배는…….”

 

아이렌은 걱정스레 묻다가, 어젯밤 에펠과 리들에게 자초지종을 들었던 걸 떠올리고 입을 닫았다.

에펠이 혼자 도망 다니는 동안 그의 유니크 마법으로 계속 잠들어 있었으니, 잠이 올 리 없을 테지. 잃었던 마력도 다른 이들보다 더 빨리 회복되었을 테니, 이 시간에 일어나 돌아다니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유를 짐작한 아이렌이 어색하게 웃자, 리들이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것보다, 머리는 왜 풀고 다니는 거니? 평소라면 깔끔하게 하나로 땋고 다니잖아.”

“머리가 덜 말라서요. 조금 있다가 땋을까 했어요.”

“흐음.”

 

잠깐 고민한 리들은 매지컬 펜을 꺼내들어, 그의 긴 머리카락을 향해 가볍게 휘둘렀다.

그 순간. 시원한 바람이 둥실 떠올라 허리 아래까지 내려오는 새까만 머리카락을 감싸고, 남아있는 물기가 순식간에 증발한다.

어느새 뽀송뽀송하게 마른 머리카락을 보고 놀란 아이렌이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리들은 이미 어떤 말을 할지 예상이 간다는 듯 영리하게 선수를 쳤다.

 

“나는 괜찮아. 이미 충분히 쉬어서 마력이 남아돌고, 이 정도 마법으로 무리가 가진 않으니까.”

“……아, 네.”

 

역시 이 말을 하려고 한 거구나. 리들은 순순히 대답하는 후배의 얼굴을 보곤 어깨를 으쓱였다.

푹 잠들었던 자신과 달리 아이렌은 밤새 뛰어다니며 꽃을 뿌리째로 뽑고 주민들을 대피시킨 걸로 알고 있는데, 누가 누구 걱정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눈앞의 후배는 늘 저 자신에겐 무관심하고 남에 대해서만 궁금해하는걸 잘 아는 리들이었지만, 오늘은 더욱 그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피곤할텐데 들어가서 쉬는 건 어때. 무도회에 가려면 체력을 아껴둬야지?”

 

자신은 무도회에 별로 가고 싶지 않다. 아니, 가는 것까지는 괜찮지만 춤을 추거나 사교활동을 하고 싶진 않았다. 춤을 추는 것도 낯선 이들 사이에 섞여 노는 것도 즐기지 않는 아이렌은 리들의 말에 반박하려다가, 아예 말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교내를 살펴본 후 마을에 좀 가보려고요. 잘 수습되었는지 걱정되기도 하고, 피해 규모가 신경 쓰이기도 해서요.”

“지금?”

“네.”

 

그건 네가 할 일이 아니라 노블 벨 칼리지의 학생들이 할 일이다. 특히, 롤로 프람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리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책임감으론 자신과 비교해도 꿇리지 않는 아이렌이, 저런 말을 듣는다고 얌전히 돌아갈 리 없었다. 제가 구한 곳을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저 자신도 공감하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역시 한 가지 방법뿐이다.

 

“그럼 나도 같이 가도록 할까.”

“예?”

“싫으니?”

 

아이렌은 쉽게 답하지 않았지만 싫은 기색을 보이진 않았다. 그에겐 동행을 거절할 명분도 없었고, 제안을 거절할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곧바로 그러자고 말하지 않는 건, 역시 리들은 쉬어두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 그런 것뿐이었지.

맑은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선배의 얼굴에서 생기를 확인한 아이렌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러면 머리부터 땋고 가도록 할까? 그 상태로 돌아다니는 건 깔끔하지 않으니까.”

“예, 그럼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금방 묶을게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아이렌?”

 

리들은 고개를 기울이고 손을 내밀었다.

 

“끈 주렴. 내가 묶어줄 테니.”

“선배가요?”

“왜, 나는 영 미덥지 못하니?”

“아뇨. 그럴 리가요. 단지…….”

 

그저 리들이 제 머리를 땋아주는 건 처음이라 어색할 뿐이다. 꼼꼼하고 야무진 그라면 분명 머리도 예쁘게 땋을 테지만, 리들 로즈하트가 이리 손수 머리를 만지겠다 나서다니. 아이렌은 머리끈을 넘겨주면서도 지금 이 상황이 얼떨떨하게만 느껴졌다.

 

“그냥, 좀 영광스러워서요.”

“음. 영광까지야.”

 

장난스러운 아이렌의 말에 리들은 저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상대는 겨우 이 정도로 영광을 입에 담지만, 자신은 이것보다 더한 것도 해 줄 수 있다. 어차피 겸양이 뼛속까지 스며들어 있는 아이렌은 받으려 하지 않겠지만, 리들은 이 후배를 위해선 다소 무리한 것도 해 줄 용의가 있었다. 그것도 선배로서가 아닌, 남자로서 말이다.

춤을 가르쳐 주는 것도 할 수 있고, 단둘이서 마을 여기저기서 하는 공연을 보는 것도 좋겠지. 기념품을 사러 가거나, 줄을 서야 하는 맛집에서 함께 차례를 기다리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머릴 땋은 리들은, 끈을 리본으로 묶어 마무리한 후 아이렌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 갈까.”

“네. 감사합니다, 선배.”

 

눈을 느리게 감으며 답한 아이렌의 얼굴이 미소가 번졌다.

아침 해를 등지고 웃고 있는 그는 그림자 때문에 보랏빛 눈동자만이 빛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리들은 웅장하게 들리는 아침 종소리와 기쁨 가득한 시선에 약한 현기증이 일어나, 크게 숨을 들이 삼켰다.

 

 

 

02.

 

마을을 둘러보는 아이렌의 표정은 어두웠다. 마치 제가 이 모든 재난을 불러오기라도 한 듯 엄숙한 얼굴로 거리를 둘러보는 그는 큰 피해를 본 이들은 없는지, 실종된 사람은 없는지 같은 걸 수소문했다.

리들은 그런 아이렌을 따라다니며 이런저런 도움을 주긴 했지만, 솔직하게 후배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아이렌은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의 불행은 대부분 무던하게 넘길 줄 알지만, 타인의 불행은 제 고통처럼 느끼고 적극적으로 도우려 들었지. 제 사지가 부러져도 남의 생채기를 위해 연고를 찾아올 사람. 억지로 베푸는 선의가 아닌, 타인을 돕는 일에서 정말로 즐거움을 느끼는 선의를 가진 사람. 그게 이 여자라는 걸, 리들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오늘 새벽만 해도 그랬지, 죄책감 가득한 얼굴로 모두를 봤었어.’

 

홍련의 꽃이 모두 말라 죽은 후, 주변을 마무리한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의 학생들이 숙소에 모였을 때. 엉망진창이 된 동급생과 선배를 본 아이렌은 세상이 무너진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본인도 꽃을 뿌리째 뽑느라 두 손이 상처투성이가 되었으면서 시계탑으로 향한 이들이 한 고생만이 눈에 들어오는 것인지, 뭐라고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하고 개개인의 상태를 살핀 그는 작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내가 마법을 쓸 수 있었다면…….’

 

내뱉은 문장은 불완전했지만, 그 자리에 있는 모두는 아이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아니, 제가 소중히 여기는 소수의 행복을 위해 자신이라는 개인은 신경 쓰지 않는 그라면 분명 이리 생각했겠지.

 

‘자신 혼자 미끼가 되려고 했을지도 몰라.’

 

아무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지만, 리들은 알 수 있었다.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아이렌의 공허한 눈과 허탈한 혼잣말을 듣고 그 불길한 상상을 떠올렸다는 걸. 

 

“선배, 배고프시진 않으세요? 아침은 드시고 나오셨어요?”

 

오늘 새벽의 일을 곱씹느라 잠깐 주변을 살피지 못했던 리들은 아이렌의 부름을 듣고 급히 고개를 돌렸다.

어린아이들과 함께 있는 아이렌은 한 손에는 크루아상 샌드위치를, 다른 한 손에는 병 우유 두 개를 들고 있었다.

 

“아침? 아니.”

“이 애들의 부모님이 샌드위치를 갖다주셨어요. 배고프실 텐데 같이 먹어요. 마을을 구해줘서 고맙다고, 이거라도 먹고 가래요.”

“아…….”

 

리들은 투박하게 포장된 크루아상 샌드위치를 받아들고 후배의 표정을 관찰했다. 큰 인명피해가 없다는 걸 몇 번이나 확인하고 나서도 안도하지 않던 아이렌이, 지금만큼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마음의 여유를 보이고 있었다.

 

“누나, 형. 맛있게 먹어요! 우리 엄마의 샌드위치, 정말 맛있으니까!”

“언니, 언니. 어제 낮에 노래 불렀던 그 언니 맞죠?”

“어제 같이 있던 고양이는 어디 있어요? 오늘은 같이 안 왔어요?”

 

샌드위치를 가져다준 아이들은 조잘조잘 떠들며 리들과 아이렌 주변을 맴돌았다. 지난밤 큰 소동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밝은 얼굴로 기운차게 행동하는 소년 소녀를 보며, 아이렌또한 눈을 접으며 따스하게 웃어주었다.

 

“그 고양이는 지금 자고 있어. 잘 먹을게, 고마워.”

“또 노래 불러주면 안 돼요?”

“오늘은 안 돼. 반주도 없잖아? 이 언니 노래는 비싸다고.”

 

장난스럽게 대꾸하는 아이렌의 말에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다. 리들은 순식간에 언행을 바꾸고 어린 것들을 대하는 후배의 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천진한 아이들을 보고 기분이 풀린 걸까. 아니면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비로소 마을이 무사하다고 안심한 걸까. 그것도 아니면, 여전히 자신이 책임질 필요가 없는 죄책감에 압박되어 있으면서 순수한 영혼들에게 좋지 않은 모습은 보여줄 수는 없어 연기를 하는 걸지도 모른다.

 

“다음에 또 놀러 와요, 누나!”

“거기 오빠도요! 축제 날 아니더라도 꽃의 거리는 재미있는 곳이니까요!”

“안녕, 안녕!”

 

부모가 부르는 소리를 들은 아이들은 저마다 인사를 남기고 가정집이 모인 거리로 뛰어갔다. 멀어져가는 그림자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열심히 손을 흔들던 아이렌은 여전히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하, 정말 귀여운 애들이라니요. 그럼 선배, 어딘가 앉을만한 곳을 찾아볼까요. 무슨 일을 해도 밥부터 먹고 해야지요.”

“……그럼, 그러도록 할까.”

 

리들은 그 의견을 곧바로 수락했다. 마침 배가 고프기도 했고, 마을에 온 후 계속 표정이 좋지 않았던 아이렌이 한숨 돌리길 원했으니까.

북적이는 거리를 떠나서 수로 근처의 광장으로 온 두 사람은 벤치에 앉아 늦은 아침 식사를 했다.

아이들의 말대로 수제 크루아상 샌드위치는 굉장히 맛있었다. 입 안에 퍼지는 깊은 버터의 향과 간이 잘 된 햄, 아삭한 야채의 조합은 짧은 시간 안에 몰아친 수많은 생각과 사건으로 지쳐버린 심신을 위로해 주었다.

순식간에 샌드위치와 우유 한 병을 비운 두 사람은 식사를 마치고 나서고 곧바로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렌.”

“네, 선배.”

“이만 돌아가는 게 어떨까. 네가 할 만한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하는데.”

 

이 이상 마을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물어봐야 정신이 피로해질 뿐이다. 진짜 조사가 필요한 거라면 꽃의 거리 사람들이나 노블 벨 칼리지 학생이 하게 두는 게 더 낫지. 곧 떠나야 할 여행객이자 손님인 자신들이 이러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리들의 조언은 현명하고 합리적이었지만, 아이렌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입을 닫고 있었다.

조금 뒤. 맑은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본 아이렌은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럴까요. 큰 피해도 없는 듯하고.”

“음, 좋아. 잘 생각했어.”

 

원하던 대답이 나오자 리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것을 삶의 지향점으로 삼고 있는지 짐작도 가지 않는 후배지만, 역시 그는 현명한 사람이었다.

리들은 아이렌과 나란히 서서 노블 벨 칼리지로 향하는 중, 피곤한 기색이 엿보이는 옆모습을 향해 조언했다.

 

“돌아가면 낮잠이라도 자도록 해. 저녁의 무도회를 즐기기 위해서는 휴식이 필요할 테니.”

“……아, 예.”

“어라, 대답이 시원찮은걸.”

“그럴 리가요, 선배. 기분 탓 아닐까요?”

 

그럴 리가 있나. 저 심드렁한 얼굴, 꺼림칙한 표정이 전부 답을 말해주고 있는데.

리들은 아이렌이 이토록 숨기지도 않고 싫은 티를 내는 이유를 알고 있기에 절로 눈을 가늘게 뜨고 상대를 노려보게 되었다.

 

“대체 왜 그렇게 춤추는 걸 싫어하니? 이데아 선배도 이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이유를 말하라 하시면 2시간 정도 장황하게 발표할 수 있지만, 선배가 바라는 건 그런 게 아니겠지요.”

“잘 알고 있구나, 아이렌.”

 

사람은 이유 없이 무언가를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호불호와 별개로 이토록 질색하고 거부한다면 좀 더 중요한 문제점이 있을 게 아닌가.

리들은 그게 알고 싶었던 거다. 원래도 주목받는 일 자체를 싫어하는 아이렌이라지만, 노래를 부르거나 도움을 주는 일에는 성큼 나서면서 춤을 추는 것만큼은 이토록 거부하는 이유를 말이다.

 

“역시 제가 즐겁지 않다는 게 가장 큰 이유겠죠.”

“하지만 청소 중에 빗자루를 스탠드 마이크 삼아 몸을 흔든 적도 있었잖아. 그걸 보면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건 좋아하는 것 같은데, 아니니?”

“예? 자, 잠깐. 그건 어떻게……!”

“이전에 고물 기숙사에 놀러 갔던 에이스와 듀스가 네가 혼자 노래 부르며 청소하는 중 그러는 걸 봤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보구나.”

 

‘맙소사, 둘 다 가만 안 둬.’ 아이렌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시선을 피했다.

 

“그거랑 춤은 다르죠. 그리고 혼자 있을 때 몸을 들썩이는 것과 형식과 예를 갖춰 파트너와 함께 춤추는 일을 같은 선상에 두면 안 된다 생각해요.”

“그렇지만 어제 거꾸로 축제에서 춤출 때는 아무런 격식도 파트너도 필요 없었는데 가만히 앉아있었잖니? 엉덩이를 의자에 딱 붙이고 앉아 롤로 선배와 이야기하기 바빴지.”

“그건…….”

 

잠깐 말문이 막힌 아이렌은 노블 벨 칼리지를 향해 잠깐 시선을 돌렸다가, 진담인지 농담인지 모를 말로 얼버무렸다.

 

“롤로 선배와 대화하는 게 더 즐거웠으니까요.”

“……뭐?”

“롤로 선배가 말은 참 잘하시잖아요.”

 

그리 반갑지 않은 이의 이름을 핑계로 대는 아이렌 때문에, 리들의 미간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변명을 할 거라면 다른 주제를 꺼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니, 애초에 저건 얼버무리기용 변명이 맞을까?

아이렌은 일이 이 지경이 되었음에도 롤로 프람에 대해 쓴소리를 하거나 그를 원망하지 않았다. 거기엔 분명 이유가 있을 터.

 

‘……곤란한데.’

 

자신을 함부로 휘두르려 드는 게 아니라면 뭐든 포용하는 이 후배가, 또 이상한 걸 품어버리려고 하는 거 같다.

리들은 제 예상이 제발 틀렸길 빌며 이마를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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