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더

식사를 합시다

시우위고 느와르 AU

커뮤로그 by 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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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을 가하는 사람과 당하는 사람 중 진정으로 고통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대체로 당하는 사람 쪽을 떠올리겠지만, 그는 조용히 고개를 젓는다. 대체로 고문의 끝은 죽음이고, 죽은 이들은 당연하게도 발언권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자리에서 고통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으로 좁혀진다.

그러나 흔한 성씨 하나 조차 가지지 못한 이는 대체로 무감해서 말할 수 있는 부분이 크게 없었다. 고통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어떤 부분을 짚어야 하나? 무릎 뒤켠을 한 번 후려치거나 종아리의 가자미근을 따라 자르는 것 만으로도 바로 다리를 절고, 애써 목을 조르지 않아도 턱과 이어지는 부분에 가볍게 손을 대어 누르면 쉽게도 숨을 틀어막을 수 있다든가. 성대는 가로가 아니라 세로로 가르는 편이 나중에 봉합하더라도 낫지 못할 확률이 높다거나. 이런 것들은 사실의 나열이지 고통에 대한 문장은 될 수 없었다.

때문에 그는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느리게 죽어가는 과정 위에 놓인 인간은 전부 비슷한 얼굴을 한다. 첫째, 큰 소리로 울며 애원한다. 둘째, 다양한 종류의 협상을 시도하려 애를 쓴다. 셋째, 아주 소수의 사람들은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눈을 한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 모든 사람들이 세 번째 예시로 귀결되곤 했으니 결론적으로 전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채 감기지 못한 눈 위에 제 손을 얹고, 초점 없는 눈꺼풀을 닫아준다. 시우는 물컹하고 진득한 것들에 손을 대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이제 남자는 몸에 낭자한 칼자국이 아니더라도 아무런 소리를 내지 못했다. 곧 죽을 이의 손목을 살며시 쥐고 잠시 기다렸다. 묶인 손목에는 거친 몸부림의 흔적으로 새빨간 속살이 보였고, 맥은 더이상 뛰지 않았다. 무심코 그 위를 문지르며 생각에 잠겨있으면, 두 팔이 등 뒤에서 쑥 뻗어진다. 마른 몸이 보다 작은 품 안에 꽉 차듯 안겼다.

“데이트 하는 날에 이런 일 부탁해서 정말 미안…”

“…….”

“대신 오늘은 네가 원하는 걸 원하는 만큼 하게 해줄게.”

끌어안은 채로 등에 뺨을 대고 있는지 작은 웃음소리가 간지러웠다. 몸을 돌려 마주보기도 전에 제게 닿으며 붉게 번진 핏자국이 눈에 거슬렸다. 원하는 것? 피로한 눈이 가만히 깜박이다가, 허리께에 걸쳐진 네 손 위에 제 손을 겹쳐 잡는다. 번진 핏자국을 닦아 줄 생각으로 가볍게 훔쳤으나, 오히려 제 손에 더 잔뜩 묻어 있던 피가 선명한 붉은 길을 그렸다. 이래서야 둘 다 씻고 나가야 하게 생겼다.

“먼저 정리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시우는 머릿속으로 일련의 과정을 떠올렸다. 사지가 찢겨 널브러진 시체는 최대한 작은 부피로 수습해야 버릴 때 편리했다. 미리 깔아둔 비닐을 걷어 피를 버릴 때 넘쳐 흐르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하고, 사무실에 여벌의 옷이 있는지도 고민해야 했다. 왜냐면 네게 원하는 것은,

“… 못한 식사를 같이 하겠니.”

더럽고 지저분하게 섹스하고 서로를 망가뜨리는 일은 누군지 모를 사람을 붙잡고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보다는 함께 차를 마시고 식사를 하는 쪽에 더 관심이 있었다.


늘 약속되어 있던 시간보다 한참 늦게 도착했지만, 늙은 주인은 두 사람의 얼굴을 보곤 군소리 없이 가게의 불을 다시 켜주었다. 반질하게 닦인 적삼목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으면 얼마 걸리지 않아 대나무 통에 가지런히 담긴 새하얀 딤섬, 라유나 절인 채소를 넣지 않아 뽀얗게 맑은 우육면이 두 그릇 놓였다. 따뜻한 잔 안에 들어찬 노란 빛의 투명한 차는 하고초 특유의 향이 은은하게 올라왔다.

“이런 날은 술 마셔야 하지 않아요? 다들 그렇게 말하던데.”

“그런 미신은 안 믿어서… 믿는 편이니?”

“아니, 당신이 믿을까 싶어서.”

정갈하게 놓여진 수저와 젓가락이 차례로 손에 들렸다. 식기가 가볍게 부딪히는 소리와 천천히 이어지는 대화는 방금 전 시체를 하나 치우고 온 것 치고는 제법 평화로웠다. 시우에게는 당장 내일이 어떻게 될 지 모르기 때문에 먼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필요도 없었으니 목요일 오후 다섯시, 위고와 함께하는 저녁 식사 메뉴를 고민하는 것 정도가 의미 있는 일이었다. 입이 짧아 늘 먹다 마는 위고를 위해 딤섬을 하나 집어 앞접시에 올려주었다.

“… 하나쯤은 먹어.”

“싫어서 안 먹는 게 아닌데. 시우, 왜 자꾸 날 먹이려고 해요?”

“뭘 먹이는 게 좀 더 보람있거든.”

“이럴 때마다 진짜 내 부모라도 되는 것 같아….”

“… 부모는 자식이랑 섹스하진 않지.”

평화로운 분위기에 할만한 대화 소재는 못 되었지만, 둘 사이에선 제법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원하는 것을 원하는 만큼 하게 해주겠다는 말 만큼 침대 사정에 대한 이야기가 몇 번 오갔지만 시우의 주된 목적은 위고에게 밥을 먹이는 것이었으므로, 젓가락이 좀 더 부지런히 움직였다.


“시우, 피 냄새 나요.”

먹이는 쪽이 더 보람있다는 말을 한 것 치고는, 가는 허리를 감싸안은 팔은 놓아 줄 생각이 없는 것처럼 제법 단단했다. 위고의 말에 마른 아랫배 위를 훑으며 셔츠 안으로 밀려 들어가던 시우의 손이 순간 멈추었다. 목덜미에 입술을 묻고 있던 고개를 들어올려 시선을 마주했다.

“잘 씻었는데, 티 많이 나니?”

“응, 많이 나요. 너무 난다~”

“… 그래서 싫으니.”

답을 바란 물음이 아니었던 듯, 시우는 위고의 턱을 당겨와 짧게 입맞췄다. 여러 번 가볍게 닿았다 떨어지는 소리가 가까운 거리 탓에 귓전을 크게 울렸다. 간지러운 감각에 위고가 몸을 움츠리며 웃는 소리가 둘 사이를 채웠다.

꼭 나이를 먹고 비슷한 나이의 어른이 되지 않더라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시우에게 이 말을 한다면 글쎄, 그는 웃는 법이 없어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지만 위고 장 클로드는 그의 말과 말 사이의 틈을 이미 알고 있다. 알만한 정보상은 말보다 행동에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되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싫으니, 라는 물음은 그래서 싫어하지 말라는 말과도 같다. 뻔한 물음에도 여러 번 봐주는 것은 어떤 형태의 감정인지 몰라 그저 팔을 뻗어 시우의 목덜미를 끌어당기듯 안는다. 이 남자와 식사만으로 끝나지 않고 침대 위에 끌어들이는 것에 성공했으니 지금은 판단을 내릴 필요가 없었다.

시우의 침대에서는 먼지 냄새가 났다. 엎드린 위고의 등 위를 시우의 손이 꾹 내리누른다. 긴 머리카락이 헝클어지며 항상 가려져있는 목덜미가 희게 드러났다. 마른 목덜미 위에 이를 세우며 등 위를 덮으면 온통 안긴 모양과도 같다. 살과 살이 부딪히며 두 몸이 흔들리고, 잇새로 긴 숨을 흘렸다. 어느 한 쪽이랄 것 없이 서로에게 매달리고 엉켜들었다.


시우가 향긋한 홍차에 레몬이 듬뿍 들어간 차를 한 잔 내주었다. 손가락 하나 꼼짝 할 힘이 없다는 위고의 말에 시우가 먼저 팔을 뻗었다. 몸 아래에 팔을 밀어넣어 일으키면 당연한 것처럼 시우의 어깨에 매달려 침대 헤드에 기대 앉았다. 잔을 받아들어 한 모금 머금으니 홍차 향이 코 끝에 맴돌고, 시원한 단맛이 입 안에 남았다. 위고는 자신과 같은 것이 든 잔을 기울이며 창가에 기대 서있는 시우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필요하다고 했던 거, 자켓 주머니 안에 넣어놨어요.”

시원한 홍차를 홀짝이며 대뜸 말하는 것에 고개를 기울이다가, 아. 하고 무심코 깨닫는다. 시우는 역시나 무심했으므로, 위고의 말에 바로 벽에 걸린 자켓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작은 병이 하나 걸리고, 이어 다른 병이 하나 더 손에 쥐인다. 비슷한 모양의 병 두개를 꺼내 손 안에서 굴리다가 위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필요한 건 독약 한 병이라고 했는데.”

“하나는 향수예요.”

“향수?”

“그건 내 선물.”


그런건 왜? 구해다 주긴 하겠지만, 쓰진 마. 알았지? 위고 장 클로드는 그의 말과 말 사이의 틈을 안다. 곧게 바라보는 시선. 거짓을 말하지 않는 눈. … 그래, 그럴게. 한 박자 늦는 목소리, 거짓을 말하는 입. 나는 그 때 당신의 입술 안쪽을 파헤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후회는 선택하지 않는 것에서 비롯되어서, 홀로 서서 차가운 유리 위를 어루만지는 손길은 당신을 제대로 감싸쥐지도 못한다.

서투른 애정은 엉망으로 바닥에 떨어져 먼지처럼 깔려 있다. 제 마음을 밟고 있던 뒤꿈치를 들어올려 유리 위에 입을 맞춘다. 금방이라도 깨어날 것 같이 죽은 이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산산조각난 당신의 혼을 주워 모아 이어 붙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목요일 오후 다섯시. 가게의 주인은 위고 장 클로드가 왜 홀로 왔는지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저 움직이지 않는 문과 흔들리지 않는 구슬 발을 보다가, 홀로 앉아있는 이를 위해 불을 올리고 웍에 기름을 둘렀다. 주문은 늘 시우의 몫이었으므로 주인은 위고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전채로는 작고 동그란 접시에 소담하게 놓인 소채와 자차이가 함께 나왔는데, 주인의 마음대로 나온 메뉴에도 위고는 별 말 없이 젓가락을 들었다. 비어있는 앞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익힌 채소를 천천히 씹어넘긴다. 전채 그릇을 다 비워갈 때 쯤 잘게 채썬 파가 올라가 먹음직스러운 챠오멘이 나왔다. … 뭘 먹이는 게 좀 더 보람있거든…. 입이 짧아 전채만으로 꽤 배가 불렀지만, 센 불에 빠르게 볶아 불 향이 은은하게 나는 면을 조금 집어들었다. 한 쪽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먹으면 입가에 기름기가 조금 남았다. 입가를 닦고, 가끔 차를 머금고. 조용한 식사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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