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하는 자놀

버릇 하나

카린x리안

난 당신의 버릇 하나하나를 알고 있다. 당신은 민망할 때면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고, 어렵거나 난해한 문장을 만나면 페이지를 만지작거리며 한참을 고민한다. 편지를 쓰다 막히면 괜히 손 끝으로 잉크통을 두드리기도 한다. 당신은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소매 끝을 조금 당기며 작게 속삭인다. 그리고 지금처럼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정신없이 방 안을 돌아다닌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처사야.”

“또 뭐 때문에 그래?”

“황제가.”

그래, 난 당신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참 많다. 당신은 아버지를 절대 아버지라 부르는 법이 없지. 그에게 받은 상처가 너무 많아 가족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아하기 때문임도 알고 있다.

“...아니야.”

당신은 끝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난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다. 이미 내게 오고간 이야기였으니까.

“황제 폐하의 명이라면, 어찌할 수 없지.”

당신의 기사이자 벗이기 이전에 난 이 나라의 백성이니까. 감히 황제의 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거절했다간 목이 달아날 거야.”

당신은 불만인 것처럼 보였다. 원하는 답이 아니었기에 그럴 것이다. 당신은 원하는, 정해진 답을 가지고 있을 때면 늘 눈썹을 조금 찌그러 트리곤 했다.

“물론 너가 원한다면 죽더라도 명을 거부하고 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을 수는 있어.”

“...그런 말 하지 마.”

난 당신에게 조금 웃어보였다. 당신도 나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카린. 하고 싶은 게 있어.”

“뭐?”

“같이 나가자.”

“며칠 간 방 안에만 있더니.”

“나가고 싶어졌으니까. 넌 내 기사니까. 같이 나가줄거지?”

“맞는 말이야.”

당신이 겉옷을 주섬주섬 챙겨든다. 난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 뒤에 서 옷 모양새를 잡는 것을 도와주었다. 당신의 허리가 내 손 끝에 닿았다. 이 허리를 팔로 두를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이러한 생각만 몇 년을 해왔다. 그러나 내게 기회는 닿지 않는다. 당신은 황자고, 나는 당신의 기사. 감히 꿈조차도 꾸어서는 안 될, 불경한 바람이었다. 꿈조차 죄이건만, 난 당신 몰래 죄를 지어오고 있었다.

“날씨 좋네.”

 당신이 앞서 걸으며 말했다. 난 당신의 발자취를 쫓는다. 뒤에 공기와 같이 늘 있는듯 없는듯, 그것이 내게는 가장 익숙하다. 이대로라면, 난 머지 않은 미래에 당신의 발자취조차 쫓을 수 없게 되는 것일까. 잔혹한 일이다. 그러나 명령이 우선이다. 내 의사 따위는 전혀 중요치 않은 것이, 바로 이 세계다.

“카린.”

당신이 나를 뒤돌아 본다.

“네, 황자님.”

“둘 뿐이니까, 말 편하게 해. 몇 년 째 듣는 건데도 도무지 존대는 익숙하지가 않네.”

난 미소를 보였다. 당신도 덩달아서 웃는다. 난 당신의 웃음이 참 좋다. 살짝 말려 올라가는 입꼬리와 부드럽고 둥글게 휘어지는 눈썹. 간혹 크게 웃을 때 깊게 패이는 보조개까지. 그 모든 것이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어찌하여 당신은 내게 웃음을 자주 보여주는 것일까. 그것은 즐거운 까닭일 것이다. 아주 어릴 적부터 당신과 내가 함께였기에, 당신이 나와 있으면 편안함과 즐거움을 느끼는 까닭일 것이다. 당신이 그러한 감정을 품는 것은 내가 유일하기에, 나는 그런 당신을 보며 말 못할 희열감을 느끼곤 했다. 이 역시 알려진다면 목이 달아날테지. 그렇기에 나는, 감정을 숨기는 것에 익숙하다. 당신이 여전히 웃는 얼굴로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나는 당신의 뒤를 쫓다가 말 뱉었다.

“오랜만에 바람을 쐬니, 기분이 썩 나쁘지 않지?”

“..그러게. 너무 건물 안에서만 지냈나.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기도 하네.”

당신이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걸음을 멈춘다. 어린 황태자다. 기껏해야 7살 먹은 어린 황태자. 어린 황태자는 무엇이 그리 바쁜지 정원을 내달리다가 멈춰섰다가 뒤를 돌아보고 다시 내달리기를 반복했다. 저 멀리서 아우성이 들려온다. 어쩌면 황태자는 어린 마음에 버거운 수업들이 지겨워 도망나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주먹을 꼬옥, 쥔다. 아, 그래. 저 어린 것은 당신의 모든 걸 앗아간 이였다. 그리고 어쩌면, 나까지도.

“...들어가자.”

“조금 더 있지 않고?”

“꼴도 보기 싫어.”

당신이 어린 황태자가 있는 방향을 등지고 선다. 난 어깨 너머로 황태자를 한 번 힐끗 본 뒤 당신을 뒤따라 나섰다. 당신의 방으로 향하는 기다란 복도. 당신이 복도 중간에서 멈춰선다.

“카린.”

당신이 내 옷소매를 붙잡는다. 아, 난 또 불경한 생각을 하고 말았다. 어쩌면 당신이 날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착각. 그리고.

“넌 내 것이잖아, 카린.”

당신이 날 영원히 곁에 두고 싶어한다는 것에 대한 맥락없는 성취감. 사랑이란 것 때문에 당신을 향한 내 욕심도 점차 커져가는 기분이다. 당신의 눈썹이 조금 찌그러진다. 당신은 참 욕심쟁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주지 않으면서 내게 바라는 것은 많다. 하지만 난 그런 당신이 밉지 않다. 내가 바라는 것은 당신이 영원히 줄 수 없을 테니까.

“그럼. 네 것이지.”

당신이 소매를 놓는다. 고개를 가만 떨구더니 다시 뒤돌아섰다.

“미안.”

미안할 필요 없다. 난 이 순간마저도, 당신과 함께이기에 행복하니까. 당신의 불안정하고 그릇된 감정들은 되려 날 살아있게 만든다. 그러나 이 말을 입 밖에 꺼낼 수는 없었다. 며칠이 지나 입 밖에 내지 않은 것을 조금 후회하게 되었다. 난 당신의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 뒤로 당신은 날 피했으니까. 이해가 간다. 당신은 내가 당신만을 바라봐주길 원했다. 하지만 난 당신을 떠났다. 또 다른 죄를 짓고야 만 셈이었다.

“카린.”

나도 모르는 당신의 모습이 생겨버렸다. 2년은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

“왜 날 떠났어?”

“죄송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 뿐이었다. 낯선 당신이 날 바라본다. 잔뜩 일그러지고 당장이라도 울음이 터질 거 같은 표정을 한 당신이다. 낯설다. 당신이 날 바라본다. 당신은 지금 화가 났구나. 당신이 검자루를 감아쥔다. 오른손으로 뽑은 다음 왼손으로 밑을 받치기. 아, 이것은 내가 익숙한 당신의 버릇이었다. 당신이 손가락을 폈다가 다시 접는다. 당신이 긴장할 때면 나오는 버릇이었다. 당신은 지금 이 순간에 무엇에 긴장하고 있는 거야?

“비켜, 카린. 아니면 나는…”

“하지만 황자님. 전 당신을 막아설 수밖에 없습니다. 제 임무는 황태자를 지키는 것이니까요.”

당신은 모든 걸 잃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당신의 어머니께서 한 줌의 재가 된 그 날처럼. 아래에서 위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사선. 당신이 가장 편하게 휘두르는 검의 방향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당신은 그리 휘둘렀다. 그러나 낯설다. 당신은 나를 보며 단 한 번도 그런 표정을 지은 적이 없는데. 늘 웃어주었는데,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을까. 내가 당신을 떠난 탓일 거다. 그리고 난 조용히 눈을 감았다. 미련은 없었다. 내 죄에 대한 벌을 이제야 받았을 뿐이었다. 되려 당신이 내게 벌을 내려주어 감사할 따름이었다.

안녕, 나의 임이여.


Q. 얘네는 또 뭔가요?

쿠헤...라는 친구의 자컾입니다. 어째 친구 캐 빌려온다 싶으면 다 얘네 애인 거 같은데 어쩔 수 없습니다. 제 지인 중에 그나마 자캐 덕질 열심히 하는 친구가 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여기 나오는 리안이가 제 최애입니다. 사실 취향 고백 하나 하자면 전 또라이에 정병 조금 있는 흑발 남캐를 좋아합니다. 아무튼 이 친구가 이거 받고 변태같이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 백업 후기도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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