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tter from your Consort, My Lord.

#로드_반려께서_연서를_보내셨습니다

당신은 스마트폰의 알림 음과 함께 깊은 명상에서 깨어납니다. 반쯤 감긴 눈으로 화면의 잠금을 해제하고, 방금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합니다. 오직 한 사람에게만 허락된 호칭과 당신을 부르는 두 글자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당신도 모르게 절로 입가에 부드러운 웃음이 퍼지는군요. 여보. 고작 두 글자일 뿐이지만 언제나 당신을 들뜨게 하는 발음입니다.    

[My Consort] 여보 

[My Consort] 집무실 책상 위에 편지 읽어줘

[My Consort] 사랑해 :)♡

집무실의 문을 열자, 책상 위 작은 편지 봉투가 당신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편지에는 당신이 직접 조향한 세상에 하나뿐인 향이 배어 있군요. 당신의 영원한 레이디 안쿠닌, 당신의 벨라트릭스가 보낸 편지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부군, 아스타리온 안쿠닌에게

좋은 아침이야, 아스타리온. 간밤에 불편하지는 않았어? 명상에서 행복한 기억들은 많이 돌아봤어? 지금 기분은 어때? 점심은 뭘 먹고싶어? 너와 수백 년을 함께했는데도, 나는 왜 이리 항상 네가 궁금할까? 왜 이리 너에게 하고픈 말이 많을까?

아스타리온, 하고픈 말 뿐 아니라 너를 부르고 싶은 말도 정말 많다는 것 알고있어? 나의 오랜 안식처, 나의 찬란한 우주, 내 심장의 하나뿐인 주인. 너는 나에게 이 모든 것들이고 또 그 이상의 존재야. 하지만 오늘은 그냥 나의 아스타리온이라 부를게. 매일 가볍게 부르는 이름이지만, 네 이름이 주는 울림은 내게 결코 가볍지 않으니.

나의 아스타리온, 변함없는 마음으로 너를 사랑하는 동안 어느새 마음을 전하기 위해 종이가 필요하지 않은 시대가 왔어. 영생을 사는 우리에게 시간의 흐름이란 무의미한 존재인데, 그럼에도 시대의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게 귀찮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해. 네 말대로 기계란 정말 편리한 물건이지만, 때로는 작은 화면 속 하얀 말풍선만으로는 내 사랑을 다 전할 수 없기에 이렇게 펜을 들어 너에게 꼭 전하고픈 말을 적어내려.    

내 사랑, 우리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아침을 함께 맞고 그보다 더 많은 밤을 함께 보냈어. 우리가 함께한 시간을 수놓는다면 얼마나 긴 태피스트리가 만들어질까? 우리의 사랑을 벽화로 그린다면 얼마나 광막한 벽이 필요할까? 너와 함께 수백 번의 계절이 흐르는 걸 보는 동안 내 무채색의 세계는 점점 너의 색으로 채워졌어. 봄날의 분홍빛 꽃, 여름의 푸른빛 하늘, 가을의 황금빛 길, 그리고 꼭 너를 닮은 겨울의 새하얀 눈까지. 아스타리온, 너는 모래시계의 모래처럼 아래로 떨어질 뿐이었던 내게 운명을 거스를 손을 내밀어 주었어.  

우리는 도시의 수많은 것들이 세워졌다가 무너져 내리는 걸 보았지. 너와 내가 치기 어린 연인들처럼 술에 취해 입을 맞추었던 달아오른 인어 주점은 작은 레스토랑이 되었고, 우리가 밤을 보냈던 엘프송의 2층은 커다란 호텔이 되었어. 한때 우리의 집이었던 발더스 게이트 하부 도시의 고성도 이제는 사진으로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지. 하지만 아스타리온, 너와의 추억만큼은 오늘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     

아스타리온, 낡고 또 단출한 말이지만 나는 너와 함께한 모든 순간을 어제처럼 기억해. 우리의 운명이 처음 얽힌 해변, 우리의 첫 야영지, 너와 처음 밤을 보냈던 조용한 숲, 네가 서툴게 사랑을 고백했던 호숫가…. 그리고 그중에서도 ‘그날’을 가장 선명하게 기억해. 네가 자유를 되찾은 날이자 내 심장이 멈춘 날. 우리가 영원을 맹세한 날. 우리의 첫번째 결혼식 말이야.

너도 기억하고 있을까? 너는 덜컥 겁이 나 어린아이처럼 떠는 내 손을 감싸 안고, 나를 안심시키며 손등에 다정한 입맞춤을 내려주었어. 그 순간 내 심장이 얼마나 큰 생의 마지막 고동을 연주했는지 너는 알고 있을까? 내 사랑, 내 숨을 앗아간 그날 너는 내 영혼의 주인이자 내 불멸의 세계가 되었어. 

아스타리온, 우리의 사랑이 항상 그날의 입맞춤처럼 달콤하지만은 않았던 건 알아. 한때는 너의 날카로운 말이 나를 찌르기도 하고, 무정함이 나를 아프게 짓누르기도 했지. 그럴 때면 아주 조금… 정말 아주 조금 너를 원망하기도 했어. (정말로, 정말로 아주 조금이야. 믿어줘!) 그래도 이것 만은 꼭 알아줬으면 해. 설사 네가 날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너는 언제나 나의 가장 눈부신 태양이라는 걸. 내가 너에게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해도 너는 언제나 나의 부군, 나의 주인, 나의 아스타리온이라는 걸. 너의 사랑은 나의 구원이고 너의 품은 나의 성역이야. 언젠가 아주 먼 옛날 내 친구에게 말했듯, 내 집은 너 하나야. 네 품 안에서 나는 내가 있을 곳을 찾았고, 네 사랑 안에서 영원을 찾았어.    

내 사랑, 편지는 이만 줄이려고 해. 여기까지 읽었다면 슬슬 내가 네 집무실 앞에 도착할 시간이고, 글솜씨가 없는 나로서는 꼭 말로 해야만 전해지는 마음도 있거든. 그러니 문을 열어줄래? 내가 기다리고 있으니. 

너의 아내, 

벨라트릭스 안쿠닌. 

추신. 내일 데이트 약속 잊지 않았지?



편지를 모두 읽은 당신의 마음은 금방이라도 하늘로 떠오를 듯합니다. 당신은 조심스럽게, 아내가 선물해준 심장에 손을 얹어봅니다. 수백 년 전에도 지금도, 당신의 심장에는 깊은 애정이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조금씩 커져가는 기대감으로 울리고 있습니다. 문고리를 잡는 손은 다급함을 숨기지 못합니다. 곧 문이 열리고, 당신의 하나뿐인 사랑이 품 안으로 뛰어듭니다.

“잊을 리가 있겠어? 내 아내와의 기념일인데.”

그녀와 눈을 마주하며 들뜬 목소리로 말합니다.

“결혼기념일 축하해, 여보.” 

결혼식의 밤에 했던 것 처럼, 당신은 그녀에게 입을 맞춥니다. You kiss her, just like you did on your wedding night.

품에 안긴 당신의 작은 세계, 당신의 가장 빛나는 별에게. To your little world in your arms. To your brightest star.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HL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