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급옥오(愛及屋烏)
화산귀환 / 백천청명
-백천청명 성인 앤솔로지 백년가약百年佳約 (@BCCM_anth)에 드린 축전입니다.
-시점은 혼례 바로 전날 입니다. 차후 짧은 후일담을 추가할 예정입니다.
-1300자 미만의 짧은 글
-이 글은 불시에 비공개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애급옥오(愛及屋烏): 사람을 사랑하면 그 집 지붕 위에 앉은 까마귀까지도 귀엽게 보인다는 뜻으로,
그 사람과 연관된 사람이나 물건까지도 사랑함을 이르는 말.
정인의 부름에 한달음에 방문한 백천은 청명의 방 탁자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서신을 발견했다. 누구나 쓸 수 있고 누구나 보내는 그런 서신이 많이 쌓여있을 뿐 유별나게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어째 묘한 불안감이 드는 건 왜일까. 슬프게도 이런 예감이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고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전에 현실로 마주했다.
“사숙, 이거 봐. 사숙이 내게 써준 서신이야.”
“이, 이 망둥아! 그, 그걸 본인 앞에서 읽느냐!”
서신 더미의 필자가 바로 저라는 사실을 알고 그의 헌앙한 낯은 부끄러움에 달아올랐다. 당황해서 그의 손에 든 서신을 빼앗으려 했지만, 백천의 정인이 누구던가. 자타공인 천하제일검이다. 금나수로 잡아채려는 제 사숙의 손을 가뿐한 몸놀림으로 피하고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삐죽 입술을 내밀었다.
“왜? 이거 사숙이 내게 줬으면서 줬다가 빼앗는 게 어디 있어? 뭐야, 설마 여기에 쓴 말 다 거짓이야?”
“청명아아……, 그럴 리가 없잖느냐….”
저 말이 놀리는 소리임을 알아도, 이 말은 해야겠다. 백천 그가 썼던 절절하고 진심 어린 사랑에 대하여 말이다.
청명에 대한 사랑을 자각했을 때 백천이 가장 먼저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고백이었다. 그리고 청명이 그건 사숙질 간의 정을 사랑으로 착각한 것이라며 부정했을 때는? 그는 서신을 썼다. 그의 사랑이 착각이 아님을 증명하듯이 쓰고 또 썼다. 그렇게 쌓인 서신만 수십 통… 참고로 서신 더미가 수백 통은 되어 보이는 까닭은 저기엔 그들이 연애 중에 백천이 쓴 서신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쓸 때는 ‘이 이상으로 마음을 전하는 서신은 중원에 또 없을 테지.’ 였지만, 지금 보니 간절함을 차치하더라도 어떻게 이리도 낯 뜨거워지는 글을 지었을까 싶었다. 일류고수의 반열에 든 백천의 몸에는 이젠 웬만한 칼날은 닿지도 않지만, 과거의 저가 쓴 서신은 그야말로 치명타였다.
“청명아, 내가 네게 하는 말은 조금의 거짓도 없다. 알지 않느냐?”
“알아, 사숙. 그냥 혼례 전에 내 보물을 보여준 거니까.”
정말로 놀리는 말이었다. 청명도 백천의 진심을 잘 알고 있으나 짓궂은 장난을 친 이유라면, 저 제일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미인의 얼굴이 오로지 자신 때문에 저리도 달아오른다는 것이 귀엽고 또 좋아서였다.
“……네 보물이었느냐?”
“응.”
“나의 보패(寶貝)의 보물이라니 더 부끄럽구나.”
“ 그야 내 심간(心肝)이 준 것인걸. 앞으로도 사숙이 준 건 모두 내 보물이 될 거야.”
내일이면 이 사내가 자신과 혼례를 올린다.
다정한 손길에 가슴이 간질거렸다. 처음에는 어색하기만 했던 접촉이었으나 청명은 이제 그 손을 맞잡을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계속하여 함께 걸어갈 이니까.
※주석
보패(寶貝): 보물을 뜻하는 말이며, 중국에서 사랑하는 이에 대한 애칭으로 쓰임. 귀여운 아이라는 의미도 있음.
심간(心肝): 심장과 간. 사람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인지, 중국에서 사랑하는 이에 대한 애칭으로 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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