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라리
2019
사쿠라우치 리코는 타의 모범이 되는 반듯한 행동거지와 더욱 반듯하게 일하는 이목구비, 그리고 번듯한 성적표 덕분에 학교의 모두가 알고 있는 인기인이라면 인기인인 사람이었다. 여기서 애매하게 인기인이 아닌 듯한 어감이 무엇이냐면 낯가림이 심한 성격과 그 특유의 품격 느껴지는 분위기로 다가가는 사람이 적었기 때문에 본인조차 자신이 교내의 이 사람 저 사람 입에 오르내릴 정도의 인기인인 사실을 몰랐다. 그래서인지 자신이 약간 평범, 아니 재미없는 학교생활을 하는 게 아닌가 생각 중인 뭐, 그런 학생이다.
사쿠라우치 리코의 번듯한 성적표는 이번 시험에서도 1의 자리를 놓아주지 않았다. 예체능계 학교라 그런 건지 의외로 공부에 몰두하는 학생은 없나 보네. 편차치는 높은 학굔데. 성적표를 받아 들고 하는 생각은 그저 예체능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학생이 많아 보이므로 자신도 공부 시간을 줄이고 피아노에 더 집중해야 하는 건가 하는 고민일 뿐, 자신이 공부를 잘한다는 생각이 전혀 없다. 전교 1등이 그래도 돼? 훌륭하게 보통 사람의 사고 회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역시 우수 인재는 사소한 생각부터 차이가 생기는 건가 보다.
사쿠라우치 리코의 주종목은 피아노. 이미 있는 곡을 자신만의 해석으로 치는 것을 너무나 잘하게 된 나머지 이젠 나의 곡을 만들고 싶어 하는 욕망이 앞서 클래식 수업과 작곡 수업을 동시에 들으면서 1등을 유지하고 있다. 결국 곡 해석도 작곡도 창의력의 문제인 거네, 머리가 좋으면 이것도 저것도 다 잘할 수 있는 거네 하는 소곤소곤 쑥덕쑥덕 소리는 정작 당사자인 사쿠라우치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으므로 상당히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바로 앞에서 얘기해도 모르는 게 말이 돼? 저건 분명 즐기고 있는 거야. 주위에서 얘기해도 우리의 사쿠라우치 양은 애초에 자신이 남들의 화제 대상으로 오른다는 생각조차 않는 사람이라서 다른 사람의 말을 상당히 잘 무시하고 있었다. 성격상 이런저런 쑥덕거림을 알고 있었다면 자퇴하고 홀연히 모습을 감췄을지도☆
당.연.히 천연 노이즈 캔슬링 기술을 탑재하고 태어난 사쿠라우치는 몰랐지만, 학우들의 화젯거리는 비단 사쿠라우치 뿐 아니었다. 우수 인재가 입에 오르내린다면 그의 대조군으로 반대 집단도 어딘가엔 있을 터. 그렇다. 이 학교엔 초 유명한 3명의 불량 학생이 있는데, 셋 다 소개하기엔 지면에 분량이 부족하고, 그 중 한 사람, 여러모로 유우명한 그 사람, 콕 집어 소개하자면 교내 모르는 사람은 몰라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그 사람, 와타나베 요우 되시겠다.
다들 학교에 그런 미신 같은 거 하나씩 있지 않은가. 어째선지 날라리들은 아이돌급으로 외모가 된다던가, 전교권에서 놀 정도로 공부를 잘한다든가, 운동선수 뺨치는 운동 능력을 가졌다든가, 일반 학생들에겐 잘해주는 인성이 된다니 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미신. 덕분에 그 요소를 충족하지 못하면 날라리가 되지 못하여 청정 클린한 학풍을 유지하고 있는 뭐 그런! 없다고요? 죄송해요… 근데 이 학교는 일단 있는 걸로 하기로 했어요.
이 학교엔 대대로 날라리 교본이라는 게 실제론 존재치 않으나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 신화처럼 남은 게 있다. 약간 소개해 보자면, ‘날라리가 되기 위해선 누군가의 우위를 점하는 능력이 필요하니 그것이 그들의 카리스마이며 날티의 증거다. 이 학교 1대 날라리들은 후대의 날라리들을 위하여 누구보다 열정을 불태울 날라리들을 위해 날라리의 자격을 전해두니 꼭 이를 따라 진정한 날라리가 되어라. 혹여 날라리의 자격에 부합되지 않는 자가 날라리라 칭하고 다닐 시 다른 학생들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뭐 거의 전설급 신화급 진위 확인 안 되지만, 그냥 뜬소문으로 치부하기엔 조금 애매한 이야기가 있다. 선배에서 후배로, 동급생 간의 수다로 어찌저찌 소문나서 꼭 입학하고 일주일 정도면 전교생이 알게 된다.
하지만 이 날티의 증거가 참으로 애매모호한데, 1년을 기준으로
외견 : 누가 봐도 수긍할 정도의 기품
성적 : 상위권을 벗어나지 않고 유지
운동 능력 : 교내 스포츠 행사 점령
인성 : 학우들과 친하게 지내는 자
구전되는 신화가 그러하듯 묘하게 자세하면서도 한편으론 기준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느낌밖에 없다. 이렇다 보니 위 기준에 맞는 날라리다 싶은 사람도, 내가 그 날라리다 들고 일어나는 사람도 없었으므로 학교는 참으로 청정 클린 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저 기준은 누가 봐도 모범적인 학생의 전형이므로 1대의 날라리는 사실 무언가의 동아리 모임으로, 당시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 집단이 ‘나기를 잘 난 이들’을 이상하게 줄여서 (혹은 동아리 이름 신청할 때 누군가의 오자로) 탄생한 동명의 모임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1대 이후 누구도 보지 못한 날라리의 탄생을 학생들은 기다려 왔다. 그리고 그때가 온 듯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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