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포커 CP 관계 해석] 평범하기에 특별한 하나 뿐인 마법
커미션 작업물
관계를 해석하기에 앞서 관계를 이루는 인물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기에, 빈센트에 관한 이야기부터 하고자 합니다.
주신 자료들을 보자마자 빈센트의 인생이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빈센트는 배경설정만 보면 슬리데린이려나? 싶은데, 실제로는 후플푸프죠. 이는 승리를 손에 넣고야 말 정도로 노력하는 것도, 패배에서 쓴맛을 느낄 정도라 이를 싫어하는 것도 가문의 후계자라는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 내야만 한다는 강박과 의무감에서 기인할 뿐 빈센트의 본질과는 동떨어져 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의무와 짐을 떼고 보면 빈센트는 꽤 자상하고 아량 넓은 사람이지 않을까 해요. 여느 후플푸프가 그렇듯이요. 불가피한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슬리데린이 아니라 후플푸프라는 것도 이 추측을 뒷받침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컨대 ‘겁쟁이 그리핀도르’와 같은 맥락에서 ‘야망 있는 후플푸프’인 게 아니라, ‘수많은 상황과 환경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후플푸프’인 게 아닐까 싶은 거네요. 물론 야망 있는 후플푸프라고 보이는 경우는 있었겠지만, 그건 표면적인 이미지에 불과했을 것 같아요.
그러니 빈센트는 자신의 삶을 혼자 힘으로 지탱하기가 무척 어려웠을 겁니다. ‘가주’라는 개념은 현대사회의 CEO랑은 개념이 많이 다르죠. 자의와 관계 없이 태어난 순간부터 사지에 매인 족쇄나 다름없는 가족에 관한 문제를 경영 수준으로 다뤄야 하는 직책이 가주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가족에 대한 애정만으로 소화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고, 능수능란한 경영능력만으로 소화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닌 직책이며, 정치적 균형까지 잡을 수 있어야 하죠. 이런 건 다정한 사람들에겐 상당히 버거운 짐입니다. 다정한 사람은 모든 사람을 고루고루 공평하게 바라보고 대하고 싶을 텐데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편을 들어야 하고, 편들었던 누군가를 내치기도 해야 하고, 그로 인한 결과를 책임지는 과정에서 마찬가지로 배신도 당할 것이며, 권위에 대한 견제까지 받아야 하니까요.
이런 상황에 놓인 빈센트가 자기만의 것을 욕망하는 건 당연하고 자연스럽습니다. 의무와 자리와 책임에 의해 따라오는 결과값이 아닌 오롯한 자기 소유의 무언가가 없다면 가주 자리를 수행해야 하는 자의 없는 인물, 가문을 위한 제물로 살아갈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심지어 빈센트는 처음부터 이 자리를 원한 것도 아니며 형의 ‘가출’로 인해 자리를 떠맡게 되었으니, 가문 구성원 즉 가족을 향한 애증을 유지한 채로 가주 역할을 수행하는 건 굉장한 스트레스였을 거예요. 애증만 있다면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르죠.
처음 만났을 때 루루에게 잘 대해준 건 그러므로 빈센트에겐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었을 것 같아요. 첫만남의 특별한을 부정하는 말이 아닙니다.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응당 주변 사람들에게 잘 대해줘야 하잖아요. 그런 맥락에서 루루에게 선의를 보이고 호의를 보인 게 특별하거나 예외적인 일이 아니었을 거란 의미입니다. 루루가 빈센트의 그 호의에 보답하여 빈센트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훨씬 더 큰 호감을 갖는 것도 자연스럽고 평범한 교우관계 선에서 벌어진 일이었을 것 같고요.
두 사람의 마법은 루루가 빈센트에게 손을 내밀어주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느껴졌습니다. 빈센트가 어두운 얼굴로 방학을 마치고 학교에 돌아왔을 때까지도 둘의 관계는 평범한 친구관계에 그쳤을 수 있었을 거예요. 아이들의 유년시절에는 아이들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일이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고, ‘가문’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해리포터 기반 세계에서는 유감스럽게도 더더욱 그런 편이니까요. 하지만 루루가… 빈센트를 외면하지 않아줬어요. 그러기는 커녕 빈센트의 태양이 되어주겠다고 약속했죠.
호의가 더 큰 호의로 돌아오는 일이란 참 믿겨지지 않는 사건입니다. 나에겐 별 것 아니었던 일이 상대에게는 굉장히 커다란 일이어서 내가 기대하지도, 상상하지도 않았던 보상으로 돌려준다니 거짓말 같잖아요. 상대가 나에게 그만한 호의를 줄 거라고 기대하며 도움이나 친절을 건넨 게 아니니까요. 설령 페이백을 예상하고 친절을 베풀었대도 빈센트가 루루의 손 내밈을 ‘당연함’으로 여기지 않고 ‘사랑에 빠지는 계기 중 하나’로 받아들였다는 지점에서 결국에는 빈센트의 예상 밖이지 않았을까라는 추측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니만큼 완벽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 아래에서 행동했을 빈센트는 처음에는 루루의 약속을 의심했을 것 같아요. 루루를 밀어내려고 하는 시도도 약간은 해봤음직 하고요. 하지만 루루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꾸며내기에는 무척 밝은 사람이고, 또 자신에게 그렇게 다정한 모습을 보였던 사람이 이렇게까지 침울해할 만한 일을 겪고 있다는 생각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보고 싶다는 결의에 가득찼을 것 같습니다. 빈센트가 주저하거나 할수록 그 결의는 점점 강해지지 않았을까 해요.
그리하여 빈센트에게 루루의 약속은 특별했을 테지만, 정작 루루는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려나 싶습니다. 자신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게 해 준 사람을 이번에는 자신이 도와준다. 명료하고 마땅하며 기꺼이 그러고 싶은 일인걸요. 루루에게 빈센트에게 모든 마음을 집중하는 건 이상한 일이 전혀 아니었을 거예요.
게다가, 루루가 겪었던 트라우마는 하필이면 쌍둥이의 죽음이에요. 그것도 어릴 때, ‘나 때문이다’라는 생각이 들 만한 상황이었고요. 같은 날 같은 때에 태어나 주변 사람들에게 쌍둥이라고 묶여 불리며 자랐던 자신의 반쪽의 죽음은 ‘내가 대신 죽었다면’ 내지는 ‘왜 나만 살아남은 거지? 쌍둥이면 같이 죽어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까지 도달하기 충분한 일입니다.
루루가 실제로 그렇게까지 자책하진 않았다면 다행이지만, 요지는 하필이면 쌍둥이의 죽음이었기 때문에 루루가 ‘나’를 사랑하는 일이 쉽지 않았으리라는 점이네요. 타인에게 다가가는 일을 두려워하고, 쉽사리 용기를 내지 못하며 모두를 동등하게 사랑하지도 못하고, 야심을 가지지도 못하게 된 데에는 루루의 타고난 성격도 물론 작용했겠으나 이 성장 요인이 작용했을 확률도 없지 않다고 봅니다. 빈센트와 부부가 되기 전에는 타인과 스킨십하는 것도 상당히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심지어는 꺼려할 수도 있다고 생각돼요.
그런 악몽 속에서 자신을 꺼내준 친구, 빈센트가 루루에게 얼마나 소중했을지 루루는 이루 다 표현하기 어려웠겠죠.
이런 삶을 거친 서로에 대한 호의가 사랑으로 발전하여 서로에게 같은 마음을 가지고 약혼과 결혼이라는 결실로 피워냈다니, 정말로 동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저는 해피엔딩을 좋아해요. 자신의 삶을 최선을 다해 버텨낸 사람들이 그에 맞는 보상을 누리는 결말은 따뜻하고 다정하잖아요.
심지어 빈센트와 루루는 각자만의 그늘과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밀어내거나, 상대로부터 회피하거나, 스스로에게 떳떳하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흘러갈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했는데 그러지 않았고, 상대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올곧은 형태로 유지했으며 마침내 전하기까지 했어요. 그런 두 사람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행복한 나날이 지속될 거라는 강한 확신이 듭니다.
호그와트에서 학창생활을 보내며 빈센트도 루루도 수많은 사람과 스쳐지나가고, 교류하고, 인연을 맺었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상대만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내가 바라보는 사람이 마찬가지로 나를 그렇게 바라봐 주었어요. 이런 마법 같은 일을 저는 ‘천생연분’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조금 진부한 단어일지도 모르지만, 진부하기 때문에 도리어 요즘에는 발견하기 힘든 관계잖아요.
둘의 서사에는 역사에 남을 만한 버라이어티 대신 서로에 대한 충실한 마음만이 존재하기에 저는 두 사람이 처음부터 이렇게 될 운명인 건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하게 되어요. 그렇기에 지금과 같은 평온하고 사랑으로 충만한 나날이 둘에게 앞으로도 계속되길 바라겠습니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