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비노기] 밀레시안 드림주 캐릭터 해석

커미션 작업물

R은 밀레시안으로서의 자기정체성이 가장 확고한 인물로 보입니다. 그런데 밀레시안이라는 건 사람의 그룹을 뜻하는 말이잖아요? 식물의 군집이나 동물의 종과 달리 사람은 저마다 개별개체이기 때문에 특정 그룹이 특정한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반드시 장담하긴 어렵고요. 다난의 세계를 살아가는 밀레시안이라면 더더욱 이러한 개별성, 특징성이 도드라지지요.

그러니 R이 ‘R’이라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의 자기정체성을 보유한 게 아니라 ‘밀레시안’이라는 점이 더 부각된다는 건 달리 말해 이렇게 표현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여기 있는 R은 물론 R이지만, R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R이라고 불리는 밀레시안이 있을 뿐.’

따라서 R을 이야기하려면 우선적으로 다른 인물들을 경유해 가며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야 밀레시안인 R에 대해서도, 개인인 R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을 거예요.

 


타인이라는 거울로 비추어 보는 R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있을 때엔 반드시 그 타인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이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같은 것들 말이죠. 이는 그 사람이 ‘내가 혼자 있는 게 아니라 다른 누군가와 함께 있구나’라는 감각을 느끼고 있다는 증표 역할을 합니다. 혼자 있을 때와 누군가와 있을 때의 행동에 차이가 없다면 그건 사실상 누군가와 함께 있다고 할 수 없는 건 이런 까닭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N은 타인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듯하면서도 타인을 무척 생각하는 편입니다. 전투할 때 주변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를 고려한다는 부분도 그렇고, 자신이 도와주었을 때 상대가 짓는 표정이나 감사가 좋고, 그걸 원동력 삼아 밀레시안으로서 살아간다는 부분이 특히 그렇습니다.

밀레시안은 에린에서 다양한 위험에 처합니다.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반복하고, 평범한 인간은 맞설 수 없는 상대와 싸우도록 강제적으로 상황 속에 내던져지기도 하며, 그런 경험을 거치며 결국 신으로부터 반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인간의 틀을 벗어나게 됩니다.

밀레시안마다 이러한 점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다른데,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도 시큰둥한 사람이라면 이러한 밀레시안으로서의 숙명이나 ‘일’을 대수롭지 않게, 별 생각 없이, 퀘스트가 주어졌으니까 한다는 느낌으로 지속할 겁니다. 

R도 물론 꽤 그런 편이지요. 하지만 셀 수도 없는 시간동안 이를 반복하는 동기가 타인이 보이는 감사라는 건, 거꾸로 말해 그정도가 아닌 마음이나 리액션은 R에게 가닿지 않는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R은 사람들에게 어필될 수 있는 면모를 매우 많이 가지고 있어요. 관능적인 몸매라던가, 이를 천박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수준에서 섹슈얼하게 내비치는 요령이라던가, 발군의 전투 능력이라던가, ‘밀레시안답게’ 죽음이나 죽음의 반복을 두려워하지 않는 점들이 그 예시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다난들의 호감을 가질 수 있고, 실제로도 가지고 있음에도 R은 그런 호감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대수로운 일로 와닿지가 않으니까요. 단순한 호의나 정욕 같은 건 R에게 아무런 ‘반응’이 되지 않는 셈입니다. 자신의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계기를 당신이 마련해 주었다는 감사야말로 R이 비로소 인지하게 되는 반응인 거예요.

이는 즉 R이 타인으로부터 느낄 수 있는 표현의 역치가 굉장히 높다는 뜻이 되며, R이 타인에게 무관심한 까닭은 정말로 그들의 삶이나 안녕에 관심이 없다기보단, 평소에 타인에게 관심을 가질 만한 이유를 충분히 얻지 못할 뿐이라고 볼 수 있게 됩니다. 실제로도 에린의 수호자이자 그림자 영웅 등으로 R은 에린의 유지에 기여하고 있는걸요. 에린을 방관하거나 에린의 파괴를 즐기는 게 아니라요.

그러면 이런 수준의 반응을 얻을 때에야 비로소 타인과 상호작용을 하게 되는 R이라는 사람은 어떤 인물인 걸까요?



본인이라는 거울로 비추어 보는 R

세간의 사람들이 ‘love yourself’, ‘구원은 스스로 해야 한다’ 등의 말을 하는 까닭은 자기 자신이 바라는 걸 정확하게 줄 수 있는 건 자기 자신 뿐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그 사람 본인일 수 없기에 그 사람이 원하는 걸 타인이 완벽하게 주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건 상대적인 얘기도, 주관적인 얘기도 아닌 그저 자연적인 진실이지요.

그런데 R은 상호작용을 위한 반응의 역치가 높고, 하필이면 R 본인이 밀레시안이라 스스로가 그 역치(니즈)를 채워주기가 쉽지 않습니다. 손 한 번 휘두르면 원하는 적들이 결국에는 쓰러지는데, 그 일이 자기에겐 아무 일도 아닌데 자기 자신에게 감사를 느낄 이유가 없잖아요.

남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걸 자기가 공급해줄 수 있는데, R은 그럴 수 없어요. R은 그간 가지고 싶어한 것들을 대부분 자신의 능력으로 다 가져 왔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에게 와닿을 정도로 강렬한 감사조차도. 영웅은 외로운 법이라고 많이들 이야기하지요. 딱 그런 꼴인 셈입니다. 

이 점은 R을 R 개인이 아닌 밀레시안으로서 존재하게 만드는 데에 완벽하게 힘을 보탭니다. 

세상 대부분의 것이 시큰둥하고 와닿지 않는 R은 결코 스스로를 만족시켜줄 수 없으며, 스스로에게 만족을 공급할 이유 또한 없습니다. 한편 다난들은 끊임없이 밀레시안을 필요로 합니다. 에린조차 밀레시안을 필요로 합니다. 그럼 R은 자연스럽게 지루하기만 한 자기 자신에게서 눈을 돌려 주변 세계를 응시합니다. 모리안이 기대한 ‘완벽한 밀레시안’ 그 자체예요.

그러므로 R에 대해 이야기하면 이야기할수록,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R이라는 개인에 대해 논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이라는 거울에 비추었을 때 거울에는 어떤 상도 맺히지 않습니다. 오로지 타인이라는 거울에 비춰볼 때에만 R이 존재합니다. 한없이 자기중심적으로 보이고 실제로도 그런 사람인 R인데, R의 존재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면 반드시 세계를 그 옆에 가져다 두어야 한다는 건 참 아이러니하면서도 룽한 지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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