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소설 샘플3
2차 GL 5000자 오마카세
아멜리아가 도착한 성당은 한적한 시골에 덩그러니 세워진 곳이었다. 가끔 배달을 위해 우체부가 잠시 들르는 것을 제외하면 찾아오는 사람 없는 외딴곳이었다. 믿음이란 사람이 모여서 생기는 것이었고, 성당이란 믿음을 가진 자들이 모여서 생기는 장소일진대. 이곳은 제가 오기 전부터 홀로 이곳을 지키던 수녀를 제외하면 이상할 정도로 아무도 없었다. 먹을 것을 구하려면 말을 타고도 삼십 분을 달려 내려가야 하고, 그 길마저도 좋지 못해서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엔 완전히 고립된다… 라고 그 수녀는 장난스러운 말을 건네는 것처럼 살포시 웃으며 말했다. 작년 겨울에는 눈이 어찌나 많이 내리는지 허리까지 쌓여서, 마침 떨어진 식량 때문에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바람이 새는 기도실에 들어가 기도만 했다고. 그랬더니 ‘그분’께서 응답해주시더라고. 이런 곳에 있으나, 이런 곳에 있더라도 ‘그분’께서는 저희를 굽어살펴주신다고. 그러니 믿어야 한다고. 같은 신을 모시는 사이였지만 어쩐지 께름칙할 정도였다. 이런 불손한 생각이 드는 것도 제 믿음이 부족한 탓이겠거니 싶어 아멜리아는 마음속으로 신부인 제가 수녀보다 신앙심이 부족한 것에 대해 회개했다.
“아멜리아 신부님.”
“네. 이나니스 수녀님.”
“걱정이라도 있으신가요? 안색이 안 좋아 보여요.”
“아… 날씨가 좋지 않아 그런가 봅니다. 걱정 감사합니다.”
당신에 대해 생각하다가 어쩐지 무서워졌다고 말할 수는 없어서 적당히 지어낸 핑계였지만 나름 잘 만든 이유라 생각했다. 창밖을 힐끗 보면 금방 뭐라도 내릴 것처럼 잿빛 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처지는 우중충한 날이었다.
“날이 좋지 않다고요?”
아멜리아의 대답에 이나니스는 경악했다. 마치 들어서는 안 되는 것을 들은 사람처럼. 아멜리아는 당황하여 뒤통수를 긁적였다.
“어… 곧 비라도 올 것 같지 않나요…? 여기는 다른 데보다 추우니까 눈이 오려나요.”
“그게 무엇이든 결국 그분께서 주시는 거잖아요!”
인간이 방주를 만들었을 때는 사특한 것들을 물로 쓸어버림으로써 믿는 자들을 구원하셨고, 인간이 감히 그분에 가까워지고자 했을 때는 탑을 무너뜨리고 언어를 교란해 벌하셨다. 그러니 물은 곧 정화의 상징이요, 그분의 뜻에 반하는 것은 죄악일진대. 지금 그 정화의 증거를 ‘좋지 않다’고 하시는 건가요?
이나니스가 그리 말했던가? 말했다기보단 뇌에 직접 정보가 집어넣어지는 기분이었다. 갑자기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웠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잿빛이었다가 노랗다가, 가시광선으로 만들어진 원인지 타원인지가 마구 겹쳐있는 빛으로 떠다니다 한 번에 밝아지며 눈부시게 울렁거린다. 보면 안 되는 영역을 들어버린 기분이며 알아버린 기분이었다. 아멜리아는 휘청이는 몸을 벽을 짚으며 겨우 고정했다. 별안간 시야가 붉어졌다. 코에선 무언가 흘렀다. 귀에서도, 입에서도.
“죄송합니다. 신부님. 신부님께선 몸이 약하신데…. 제가 너무 무리하게 한 것 같네요….”
이나니스의 사근사근한 목소리에 아멜리아는 힘이 쭉 빠지며 이마를 벽에다 박은 채 주륵 미끄러졌다. 고꾸라지는 몸뚱아리를 받는 것은, 굵다란 보라색의 많은 다리를 가진…… 신?
*
“신부님. 깨어나셨네요.”
“저어… 어떻게 된 거죠?”
“열 때문에 쓰러지셨어요. 원래 계셨던 곳보다 온도가 낮으니 몸에 탈이 왔나 봐요. 제가 좀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하지만 이런 것들도 새로운 곳에 온 신부님을 위한 그분의 시련이겠지요. 이나니스의 말에 아멜리아는 눈을 느리게 껌벅였다. 시련? 그런가. 그보다 내가 원래 지내던 곳이 어디지. 떠올리기 위해 집중했지만 좋지 않은 몸 상태 때문인지 머리가 아파왔다. 아멜리아는 이나니스가 건네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물… 유리잔 안에는 깨끗한 정화의 상징이 채워져 있었다. 문득 창밖을 보면 어둑한 하늘에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그를 보는 아멜리아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신부님. 어찌하여 눈물을 흘리시나요?”
“…너무 아름다워서요.”
신의 선물. 정화의 상징. 이나니스 자매님이 나눠주신 소중한 경험을 저 또한 겪어보고 싶었다. 굶주림 속에서 오로지 그분과만 함께하고 싶었다. 인간 감각을 초월하는 기분을 저도 느껴보고 싶었다. 아멜리아가 멍한 눈을 하고 있자 이나니스가 저녁으로 먹을 스테이크를 가져와 식탁을 차렸다. 날씨가 궂은데도, 이 계절엔 빵과 수프조차 제대로 먹을 수 없는데도. 하지만 그런 사정을 막 부임한 신부인 아멜리아가 알 리가 없었다. 스테이크는 먹음직스러워 보였고, 보고 있자니 없던 식욕도 돌았다.
“신부님. 식전 기도를 해주세요.”
이나니스의 수줍은 청에 아멜리아는 빙긋 미소 지었다. 이나니스는 저보다 차분하고 어른스러워 보였지만 역시 오랜 세월 혼자서 지내온 자 특유의 외로움이 엿보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를 위해 손을 앞으로 모아 정성스레 기도했다.
“주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곳에 둘러앉은 저희에게 주님께서 주신 음식을 먹고 마심으로써 육체가 강건해지고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게 해주시옵소서.”
스테이크의 맛은 훌륭했다. 다만 맛은 소인지 양인지 헷갈렸다. 닭도 아니고, 사슴이나 캥거루, 말도 아닌 것 같은 게… 무엇인지 당최 감이 안 잡혔다. 무슨 고기든 그게 문제랴. 육질은 부드럽고 육즙은 입에 감돌다 다음 입에 대한 아쉬움을 남기며 사라졌다. 추운 날, 둘만 사는 성당에서 단출할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식사가 이렇게 호화로울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었다. 이나니스는 이걸 어디서 구해온 걸까? 어찌 됐든 모든 것은 ‘그분’의 축복임이 틀림없다. 아아.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북받쳐오른 아멜리아는 이나니스가 접시를 치우고 테이블을 정리할 때까지 식후 기도를 이어갔다. 이나니스가 제 이마에 키스를 떨어뜨릴 때도, 그분과 영접한 것만 같은 순간에 환희에 차 몸을 떨 뿐이었다.
*
“수녀님. 안녕히 주무셨어요?”
“네. 밤사이에 눈이 많이 쌓였네요. 길을 좀 치우는 게 나을까요?”
아멜리아는 이나니스를 보며 묘한 느낌을 받았다. 사실 이 느낌은 이곳에 올 때부터 받았던 것이지만 이것이 ‘묘하다’는 것은 요 며칠 사이에 인지한 것이었다. 이나니스는 볼수록 묘한 사람이었다. 외딴 성당을 이 여린 몸으로 혼자서 지켰다는 것도 그랬고, 이곳에 내린 눈에 갇혀 아사하기 전까지 기도를 이어갔다는 것도 그랬고, 신부인 저에게 수녀가 깨달음을 거듭하여 준다는 것도 그랬다.
“…꼭 치워야 하나요?”
“네?”
“이대로 단식기도를 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서요.”
“그렇지만 곧 우체부가 올 텐데….”
듣기 싫었다. 아멜리아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이나니스의 어깨를 잡아 돌리고 그대로 끌어안았다. 세속에서 멀어진 수녀답게 이나니스에게선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체취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목덜미에 코를 박고 숨을 들이켜도 느껴지지 않았다. 제가 안고 있는 것이 이나니스인지, 혹은 인지 영역을 벗어난 다른 무언가인지도 분간이 되질 않았다.
“저어… 신부님?”
“이대로 있어 주세요.”
검은 옷을 입은 두 사람의 몸이 맞물렸다. 어쩌면 자신은 사람의 온기가 그리웠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또다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나니스는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 아멜리아의 등을 쓸어주었다. 아무런 향도 존재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온기만큼은 실재하는 사람이었다. 그 온기 한 자락을 놓치면 이나니스가 영영 사라질 것만 같아서, 아멜리아는 그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구주가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아멘. 이나니스는 제 중얼거림에 답하려는 아멜리아의 입술을 삼켰다. 어린양을 구원하는 일은 그리도 쉬웠다.
*
눈길을 치우지 않은 탓에 우체부는 펑펑 쏟아지는 눈 속에서 실종되었고, 머지않아 아멜리아의 식사로는 또다시 스테이크가 올라왔다.
“이 주변에 동물이 많은가요?”
“네?”
“여기 오기 전보다 스테이크를 더 많이 먹는 것 같아서요.”
“여기 오기 전이요?”
그 물음은 마치, 오기 전의 삶에 대해 묻는 것이 아니라 여기 오기 전의 삶이 존재하기냐 했냐는 듯한 말로 들려서. 그리고 그것이 매우 그럴듯하게 들려서. 아멜리아는 식전 기도를 하려다 잠시 멈추었다. 여기에 오기 전…? 그런 삶이 있었던가? 머리가 복잡해졌다. 스테이크 냄새에 속이 울렁거렸다. 먹으면 안 되는 고기를 먹은 것처럼.
“신부님.”
이나니스의 부름에 아멜리아가 고개를 퍼뜩 들어 그를 마주했다. 머릿속에 진리를 한 방울 떨궈 휘저은 것만으로도 복잡한 머릿속이 맑아졌다. 이나니스를 보는 건, 이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불손하지만… 마치 신과 마주하는 것과도 같았다.
“같이 기도드려요.”
아. 식전 기도. 아멜리아는 그제야 제가 따뜻하게 익은 고기를 두고 그분께 감사 인사조차 드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맛있는 냄새에 배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를 들은 이나니스가 빙긋 웃더니 먼저 기도를 시작했고 아멜리아는 어떠한 이상함도 느끼지 못하고 두 손을 모은 채 그를 바라보았다. 목소리를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지만 얼굴을 보면 더 좋아졌다. 너무 아름다워서요. 창밖에 내리는 그분의 선물을 보며 그리 말했었지. 이나니스를 보고도 똑같은 감상이 들었다. 기도가 끝났는데도 제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아멜리아를 보며 이나니스는 때가 되었음을 느꼈다.
“신부님.”
“네.”
“절 따라오시겠어요?”
아멜리아는 대답하는 대신 드르륵 의자를 끌며 일어나 이나니스에게 정중하게 손을 내밀었다. 귀여우셔라. 이나니스가 그 손을 잡고 일어나자마자 공간이 뒤집혔다. 떨어진다. 떨어지나? 익힌 고깃덩어리와 테이블, 의자, 은촛대와 촛불이 영겁에 걸쳐 떨어져 내렸고 아멜리아와 이나니스는 그 중간에 떠 있었다. 아멜리아가 이 상황을 제대로 둘러보기 전에 둘은 이미 어딘가에 존재해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외로움과 고독함에 잠식 당해 죽을 것만 같은, 보고 있으면 빨려들 것만 같은 까만 공간이었다.
“아멜리아.”
무언가 신부의 뺨을 감쌌다. 미끈거리면서 거친, 축축하면서 건조한, 섬뜩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다리들이었다. 아멜리아는 제 뺨을 감싼 그것 위에 손을 올렸다. 거대한 무언가와 마주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나니스의 몸은 어디로 가고 그 목소리만 울렸다. 거대한 무언가를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투명한 형태로 일렁거리기만 했다.
“아직은 안 돼.”
다리들은 아멜리아를 소중하게 감싸 제 ‘눈’ 앞으로 들어 올렸다. 이나니스는 아멜리아를 가만 바라보았다. 가여운 신부. 제가 어떤 걸 믿는지나 알고 이곳에 온 걸까. 제가 여기 와서 먹은 게 무엇인지나 알까. 하지만 이제 그런 건 상관이 없었다. 우리는 하나가 될 테니까.
아멜리아의 눈에서, 코에서, 귀에서, 입에서 신부 복과 같은 색의 검은 물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진리가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 이나니스는 제 크기에 비하면 먼지보다도 하찮은 아멜리아를 소중하게 끌어안았다. 뿌드득, 뿌득. 무언가 들린 것도 같았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너는 진리를 깨우쳤으니. 아멜리아의 접힌 몸뚱이가 검은 물 속으로 떨어져 내렸고, 공간이 다시 뒤집히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허억! 허억….”
아멜리아는 식은땀에 절은 몸을 웅크렸다. 이불이 몸에 닿는 감각이 낯설어 왜인가 했더니, 옷을 한 조각도 걸치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옆에는… 수녀인 이나니스가 헐벗은 채 누워있었다. 신부로서 죄악을 범해버렸다는 생각에 심장이 뜯어질 듯이 아파왔다. 하지만 어쩐지… 이 사실이 기꺼웠다. 몸은 어느 때보다 가벼웠고 정신은 새로 태어난 것처럼 맑았다. 아멜리아는 이나니스의 몸에 ‘감히’ 닿았다. 입술을 떼어내면 자는 줄만 알았던 이나니스가 그를 끌어안았다. 나체로 맞물렸지만 하나도 부끄럽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품 안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구주께서 그리 말씀하신 이유를 아멜리아는 몸소 깨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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