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마 서브 스토리 XX. [다리 밑 귀신 소동]
마지마+빌리켄+니시타니 위주 논CP
제로 기반 서브 스토리 풍 글입니다.
사투리를 몰라 전체적으로 야매 사투리입니다.
슬슬 다른 여자들을 더 구해야 켔네…. 마지마는 한숨을 쉬었다. 최근 선샤인 호스티스의 손님이 늘어났지만 동시에 고된 노동으로 호스티스들의 피로도도 늘었다. 그랜드의 신입을 끌어오는 것도 한계가 있어 원활한 운영을 위해 개정 시간 전까지 소텐보리 거리에서 일할 수 있는 여자를 찾고 있었다.
밤이 되어 불 켜진 가로등, 홍보용 간판 등으로 삐까뻔쩍한 거리엔 괜찮은 여자는 안 보이고 취객과 불량 청소년, 노숙자들만 지나가고 있었다. 기껏 사 온 명품 지갑이며 시계는 전부 짐짝 신세. 마지마는 담배가 땡겼지만 명품에 냄새 밸까 봐 주머니에 있는 담뱃갑만 만지작거렸다.
“어쩌지….”
“다리 밑에….”
“그치, 참 무섭다니까~.”
슬슬 시간이 다 되어 선샤인으로 향하던 도중, 비사문교를 보면서 속삭이는 여고생들이 보였다. 왠지 건너기를 망설이는 것 같은데….
▷무시한다
▶말을 건다
“어이, 거기서 뭐 하는 기고?”
꺄악—!! 비명을 지른 여고생들이 도망가는 것을 간신히 말렸다. 이대로 불심자라고 오해받으면 그랜드 지배인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얼른 진정시킨 후 설명을 듣는다.
여고생들의 말에 따르면 최근 다리 밑에서 교복을 입은 여자의 귀신이 보인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겁 많은 두 사람은 다리를 못 건너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요즘 여고생들이란…. 마지마는 정말 쓸데없는 일까지 도와줘야 되냐고 한탄했지만, 의도치 않게 겁준 것도 있으니(하지만 정장을 입고 안대를 쓴 커다란 남성이 밤에 말을 걸면 누구라도 비명을 지를 것이다.) 다리 건너편까지 데려다주었다. 손목시계를 보니 벌써 개장 시간이 코앞이라 서둘러 선샤인으로 향했다.
“뭐~ 그게 정말이에요?! 어떡해요?”
“하아… 그러니까요….”
선샤인 대기실에 들어가니 이번엔 유키랑 아이가 떠들고 있었다. 거울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인 유키를 아이가 등을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쓰다만 화장품으로 어지럽혀진 화장품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상황을 보니 화장하면서 노가리를 까다가 시무룩해진 유키를 아이가 위로해 주는 것 같은데…. 평소 같으면 빨리 치우고 준비하라 주의를 주겠지만, 오늘은 유키의 상태가 좋지 않아 보여 먼저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곧 개장하는데 무슨 얘기를 하나?”
“아, 마지마 씨! 글쎄 유키가 돈을 뺏겼대요!”
“뭐, 돈을?! 누구한테?”
감히 유키에게 돈을 뺐어?! 저번엔 단순한 오해였지만 (유키의 아빠를 사기꾼이라고 오해했던 일이다.) 이번엔 진짜다. 어떤 놈인지 얼굴보면 개박살내주겠다고 나서자 유키는 오히려 위험하니까 그만두라고 말렸다. 이건 또 무슨 소리고?
유키는 선샤인으로 가기 위해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소텐보리는 항상 사람으로 붐비지만 그때는 유독 행인이 적었다고 한다. 여자 혼자 다니기엔 위험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평소 다니던 길이라 두렵진 않았다.
다리의 중간에 도달할 때 쯤, 첨벙. 무언가 물에 빠진 소리가 났다.
누가 낚시를 하나? 낚싯줄을 던졌다기엔 둔탁한 소리. 유키는 호기심에 다리 밑을 보니 어떤 까만 형체가 물에 빠져있었다. 설마 사람인가? 유키는 그 형체를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난간 밖으로 고개를 더 내밀었다. 만약 사람이라면 구조를 요청해야 하니까.
그런데 그것은 점점 다리로 다가오고 있었다.
유키가 놀란 사이 그것은 순식간에 코앞에 다가왔다고 한다. 가까이서 보니 까만 형체의 정체는 길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물에서 나오자 찢어진 세라복을 입은 모습이 나타났다고 한다.
겁먹은 유키에게 그것은 제물을 내놓으라며 주지 않으면 대대손손 저주하겠다고 말했다. 유키는 가지고 있는 돈을 몇푼 주니 그것은 다시 물 속으로 가라앉아 사라졌다….
“요즘 시대에 귀신이라니 유키 너도 참...”
“그렇지만 보통 사람이 그렇게 쉽게 물에서 떠올랐다가 다시 들어갈 수 있나요? 소텐보리의 강이 깊은 건 마지마 씨도 아시잖아요~!.”
마지마는 기가 찼다. 귀신이라는 놈이 방법은 조금 다를뿐 삥쟁이들이 하는 짓과 별 차이가 없는 것에 어이가 없었다. 아무튼 누구든 유키를 삥뜯는다니 용서할 수 없었다.
“혹시 그거 아닐까요? 다리 밑의 귀신 전설이요.”
어떻게 잡을까 궁리하던 중 아이가 입을 열었다.
“귀신? 그러고 보니 여기 오기 전에 여고생들도 비슷한 말을 했었제…”
“마지마 씨도 아세요?”
“아니, 내는 잘 모른다. 아이가 설명 해 주라.”
몇십 년 전, 소텐보리 강 위로 여고생의 시체가 떠올랐다. 여고생을 끔찍하게 살해한 범인은 제대로 된 벌도 받지 않고 떵떵거리며 살았다고 한다. 억울한 여고생은 성불하지 못하고 그 강에 묶여 자신을 죽인 범인을 찾는다. 회사원, 양아치, 노숙자… 다리 위에 있는 사람은 그대로 끌고 와 죽였지만 범인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을 죽인 범인이 강에 빠져 죽었다. 아니, 이미 죽어있었다.
누가 범인을 죽인 걸까? 강에 빠트린 당사자는 보이지 않았다. 여고생은 기뻐했을까? 아니, 오히려 더 절망했다. 이걸론 여고생의 한을 풀기엔 부족했다. 여고생은 그 후로도 항상 다리 위를 쳐다봤다. 제물을 더 얻기 위해서.
“소텐보리 강에 그런 소문이 있었나?”
“진짜 모르세요? 이거 꽤 오래전부터 전해져 왔데요.”
“그, 그럼 나도 죽는 거야…?”
“그럴 리가 있나! 너거들은 얼른 준비나 해라!
마지마는 얼른 유키와 아이를 내보냈다. 황당한 소문에(제물을 원한다더니 실제로 뺏는 건 남의 돈이었다.) 겁을 먹는 유키를 보고 너무 순수해도 문제라고 탄식했다. 그런데 왠지 모를 찝찝함이 남아있었다. 이거 어디서 들어본 얘기 같은데… 답은 의외로 빨리 나왔다.
니시타니와 만나기 위해 접촉한 빌리켄 형사. 만나게 해준다는 조건으로 삼도천 투기장에서 싸운 뒤 형사가 들려준 딸 얘기가 생각났다. 연도는 그렇다 쳐도, 범인의 처벌과 후에 범인이 강에서 시체로 발견된 것까지 비슷했다. 혹시 그 형사라면 뭔가 아는지 싶어 찾아가 보기로 했다.
“고작 그런 소문을 확인하고 싶어서 부른 거냐? 형사를 이런 데에 쓰다니….”
다음 날 저녁 즈음, 마지마는 빌리켄 형사를 찾아갔다. 그는 언제나 비사문교 난간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고 있어서 찾는 건 쉬웠다. 마지마의 이야기를 들은 형사는 혀를 찼다.
“그냥 확인만 하고 싶었을 뿐이다. 우리 호스티스가 돈을 뺏겼거든. 당신은 형사니까 뭐 좀 아는 거 없나?”
“강에 버려진 시체나, 여자한테 삥뜯는 놈이나, 그런 새끼들이 어데 한둘이가. 그런 거 일일이 기억 못한다.”
“소텐보리도 참 흉흉한 동네구마….”
마지마를 등지고 서 있는 형사는 고개를 그쪽으로 돌아볼 낌새도 없이 계속 더러운 강물만 쳐다본다. 더러운데 뭐 볼 게 있다고 계속 쳐다보나? 마지마도 같이 다리 밑을 보다가 심상치 않은 남녀 한 쌍을 발견한다.
남자는 술에 취해있는지 면상이 벌겋게 익었고 몸이 비틀거렸다. 여자 쪽은 취하지는 않았지만 겁을 먹었고, 길목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금방이라도 강에 빠질 것 같았다.
“이, 이러지 마세요…!”
“아앙?! 잔말 말고 내 돈이나 내놔~!”
아무래도 남자가 여자에게 돈을 요구하는 것 같았다.
“저건 말려야 하는 거 아뇨?”
“그렇지. 참 귀찮게 하는 구마.”
“형사가 그런 소리해도 되는 거요?”
형사가 내려가서 말리니 남자는 내버려두라며 덤벼든 걸 마지마가 가볍게 정리했다. 그 후 자초지종을 들었는데 이 남자, 여자한테 선물을 주려다 돈을 다 써버린 것 같았다. 설마 소문의 근원이 이 남자는 아니겠지? 하려는 찰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마지마 군 아냐?”
“니시타니…!?”
오미연합 직계 귀인회 회장 니시타니 호마레. 마지마의 적이자, 친구라고 할 수 있는 남자. 하여간 미워할 수 없는 놈이었다. 니시타니는 내려가는 시간도 아까운지 계단을 뛰어내려 마지마 앞에 단숨에 내려왔다. 마지마가 남자와 싸우는 소리를 듣고 온 듯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당장이라도 한 판 붙을 듯한 기운을 뿜고 있다.
“마지마 군~ 나 빼고 쌈박질이라니 섭섭하데이~.”
“이건 그런 게 아니라…! 어이 아재! 아재가 한 말씀 해주이소!”
빌리켄은 말없이 핀 담배를 강에 버렸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니시타니. 이웃에게 폐 끼치지 않게 조용히 싸우그라.”
“걱정말그래. 위험하니까 아재는 좀 멀리 떨어지라.”
벌써 칼까지 꺼낸 니시타니를 보며 마지마는 한숨을 쉬며 자세를 잡았다. 결국 이렇게 되는 구마….
“역시 마지마 군은 언제나 강하구마….”
“어째 만날 때마다 싸우는 것 같네…. 그리고 거기 너!”
숨을 고르고 있던 중에도 몰래 빠져나가려는 남자를 마지마는 놓치지 않았다. 히, 히익! 비명을 지른 남자가 저자세로 기어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술은 진작에 깬 듯하다.
“자, 잘못했습니다…”
“니가 우리 유키를 괴롭힌건가?”
“예…? 아, 아뇨… 유키란 분은 누구신지…?”
“발뺌하지 말라! 네가 저번에 우리 아이한테 귀신 흉내 내며 돈을 뺏은 거 다 들었다!”
남자를 추궁하던 중 여자가 말에 끼어들었다.
“귀신 흉내라면, 혹시 그 소문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건 여기 비사문교가 아니라 저 돌다리에요.”
그러고 보니 무슨 다리라는 얘기는 못 들었지…. 마지마는 헛기침을 한 뒤 살짝 흐트러진 정정을 바로 입고 계단을 올랐다. (남자에게 다음부턴 그러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시간은 어느새 밤이 되어 하늘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유키가 그 귀신과 마주친 시간이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돌다리는 생각보다 지나가는 사람이 적었다. 가끔 여기서 댄스 배틀이 벌어지거나 행위 예술가도 있었는데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돌다리를 지나는 사람은 강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서둘러 다리를 건넜다. 생각보다 그 소문이 많이 퍼진 듯하다.
다리 밑을 조사하려던 찰나, 마지마 군~ 하며 살갑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아니, 방금 전까지 실컷 들었던 목소리였다.
“둘이 왜 따라온 거요? 형사 아재는 그렇다 쳐도 니시타니 니는 왜 따라왔나?!”
“우리 사이 아니가 마지마 군~. 마침 심심했는데 뭐 하는지 구경할려고~.”
니시타니는 자연스럽게 마지마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술 냄새가 진동을 했다. 실랑이하는 것도 시간 낭비라 가만히 있으니 니시타니는 별 영양가 없는 얘기를 주절주절 떠든다.
형사에 야쿠자에 카바레 지배인이라, 이상한 조합이군. 빌리켄의 중얼거림은 애써 무시하며 그 귀신을 어떻게 끄집어낼까 고민한다. 분명 혼자 다니는 노약자나 아이, 여성을 노린다고 했나?
마침 연세가 있는 빌리켄에게 귀신이 나타날 수 있게 혼자서 돌다리를 건너달라고 부탁한다. 삼도천에 다시 가준다는 조건으로(조금 수지가 안 맞는 것 같지만) 허락한 빌리켄이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마지마는 먼저 돌다리를 건너 소텐보리 거리 쪽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니시타니는… 입이 찢어지게 하품을 한 뒤 어디론가 가버렸다. 어디선가 여자라도 꼬시고 있겠지. 내버려두기로 한다.
빌리켄이 다리를 다 건너올 쯤, 무언가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다리 밑을 보니 정말 검은 형체가 있었다. 그러더니 서서히 위로 올라와 어느새 형사의 키 높이까지 올라왔다.
길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찢어진 세라복. 당첨이다.
‘저게 그 귀신이가…? 여기서 보니까 진짜 같긴 하네.’
감탄은 그만두고 마지마는 슬쩍 다리 밑을 살펴본다. 아마 범인은 다리 밑 길목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엔 의외의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아재~! 요놈들 맞제?”
니시타니는 언제 튀어간 건지 벌써 범인들을 잡은 모양이다. 범인들은 이미 몇 대 맞은 듯 얼굴에 멍이 들었고 잔뜩 쫄은 표정으로 쭈그리고 있었다. 귀신은 당연히 분장을 한 마네킹. 타깃이 가까이 오면 다리 위에 있는 사람이 신호를 보내고, 다리 밑에 숨은 사람이 도르래를 내려서 마네킹이 올리는 구조였다. 목소리는 스피커를 이용했다.
“너거들이 저 장치로 돈 뺏은 거 맞제?”
“네…. 그저 시험 삼아 해본 건데 겁먹고 돈을 주는 사람도 있어서 요, 욕심이 나가지고….”
“내도 더 이상 추궁할 생각은 없다. 다음부턴 그러지 말그래이.”
“가, 감사합니다…!”
그들은 우리를 잠시 살펴보다 일정 거리에 다다르자 재빠르게 도망쳤다. 니시타니는 이미 관심을 거두었는지 형사한테 담배를 하나 받아 불을 붙이고 있었다. 마지마는 그런 니시타니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의외로 빨리 보내줬네. 몇 대 더 팰 줄 알았는디.”
“저렇게 약해 보이는 놈들 상대론 설 것도 안 슨데이. 다들 딱 봐도 미성년자라 잡아가도 빵에 가진 않을 기고.”
유키의 돈은 잘 받았으니 걱정 말래이. 니시타니는 마지마에게 지폐 몇 장을 쥐어주었다. 얼마를 삥 뜯겼는 지는 모르지만 남는 건 자신이 가져도 상관없을 것이다.
“왠지 의외구마…. 뭐, 유키의 몫은 이걸로 다 갚았다고 보면 되겠제. …어쨌든 이번 일은 도와줘서 고맙다.”
“그럼 내일 마지마 군이 한 턱 쏘라! 내일 그 선샤인으로 놀러 갈게~.”
“좋데이. 대신 저번처럼 음란 행위는 금지다.”
내일 유키에게 안심하고 돌다리를 건너도 된다고 말해줘야겠다. 안심한 마지마에게 니시타니가 묻는다. 그 유키란 애, 이쁘냐? 함부로 건드리면 아주 뽀사뿐다! 소텐보리 거리에 니시타니와 마지마의 실랑이가 울려 퍼진다.
빌리켄은 그걸 보며 말없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서브 스토리 XX. [다리 밑 귀신 소동] [END]
마지마는 니시타니와 몇 마디 인사를 나눈 뒤 헤어졌다. 니시타니는 귀인회 사무소로 가는 동안 오랜만에 빌리켄 형사와 소텐보리의 밤거리를 걷기로 한다.(둘은 자주 만나는 편이지만 야쿠자와 형사라는 입장 상 둘이서 이렇게 느긋하게 걷는 일은 생각보다 드물었다.)
소텐보리의 밤은 오히려 낮보다 밝고 휘황찬란하다. 수없이 줄지어 세운 가로등, 온갖 업소의 간판 등등… 반대로 빛이 닿지 않는 곳은 더 짙은 어둠으로 가려져 있다. 뒷골목, 노숙자들의 쉼터, 아직 개발되지 않은 공터.
그리고 다리 밑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마가 그 소문에 나오는 여고생이 내 딸이 아니냐, 이렇게 묻더라.”
“아… 그러더나?”
니시타니의 말을 끝으로 둘 사이에는 침묵만이 이어졌다. 니시타니는 이 화제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 일단 재미가 없다.(삼도천의 수감자들 얘기가 더 취향에 맞았다.) 이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니시타니는 견디기 어려워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재, 아직도 다리 밑을 보나?”
“…늘 그렇지.”
그래, 이런 표정. 먼 곳을 바라보는 눈. 살짝 올라간 입꼬리. 그런데도 환하게 웃는 얼굴은 아닌. 딸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나오는 아재의 표정이다. 그걸 볼 때마다 니시타니는 벌레 물린 적도 없는 팔이 가려운 기분이었다. 왜 이리 불편해하는지 자신도 잘 몰랐다.
“아니 내는… 아재가 없어지면 내 뒤는 누가 봐주나?”
니시타니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뇌를 거치지 않고 튀어나온 말이라 자신도 무슨 뜻으로 한 건 지 몰랐다. 빌리켄은 그런 니시타니를 잠깐 쳐다봤을 뿐, 이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니시타니와 헤어진 뒤에도 빌리켄은 언제나 같은 곳에서 다리 밑을 바라본다. 더러운 물에는 항상 비슷한 게 떠오른다. 먹다 버린 쓰레기, 실수로 떨어진 고물 딱지,
■■의 시체.
빌리켄은 강물에 둥둥 떠있는 걸 바라보았다. 몸은 퉁퉁 불었고 입고있는 교복은 헐었다. 난도질 당한 얼굴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같이 가주길 바라는 걸까?
아니, 그걸 바라는 건 자신일지도 모른다.
순간 니시타니가 한 말이 떠올랐다. 작은 혼잣말은 빌리켄의 귀에 제대로 들어왔다. 그 새끼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말하는 건지…. 니시타니가 자신을 딸 때문에 자살하는 불쌍한 노인네 취급한 것 같아 뒷목이 땡겼다. 어차피 니시타니의 뒷바라지는 제 몸이 다 바스러질 때까지 계속 하기로 스스로 결정한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자식처럼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죄를 지었다. 죽을 때까지 그 아이에게 속죄하기로 했다. 그래서 빌리켄은 강에 몸을 던지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았다.
빌리켄은 제 몸을 던지는 대신 피고 있던 담배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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