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인격] 로널드와 추리 탐정

로널드가 탐용을 찾아헤맸다는 글

*그냥 로널드의 문드러진 속을 묘사하고 싶었다

*PTSD 묘사 주의


캄캄한 방 안에서 로널드가 몸을 뒤척였다.  꿈 속의 매퀘한 연기와 뜨거운 불길이 목을 졸랐다. 팔을 휘젓고 살려달라 비명도 지르지만 연기가 끊임없이 짓눌렀다. 이대로면 죽을 게 뻔했다. 불에 타 죽듯, 연기에 목이 막혀죽듯.

수많은 전우들의 시체를 밟고 살아남은 결과가 겨우 이거였다. 로널드는 분해서 도저히 눈을 감을 수 없었다. 분함은 곧 두려움이 되어 온 몸을 짓누르게 되었다.

그 때 가죽 장갑을 낀 손이 로널드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눈을 떠지고 새카만 방 안의 천장이 보였다.


'꿈.....'

 

로널드는 촛불 옆의 탁상 시계를 봤다. 4시, 어수선한 방 안에는 새벽의 어스름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암흑으로 가득 찬 방에서 잡동사니의 형태가 망막에 얼기설기 들어왔다. 그는 불을 키기 위해 오래된 침대 위에 걸터앉아 서랍 안에 있는 성냥을 찾았다. 성냥의 불은 차가워진 촛불을 밝혔고 그에게 안정을 주었다.

얼굴을 쓸자 눈을 감기고 악몽이 오래된 영화처럼 다시금 재생이 되었다.

 어둠이 선사한 끔찍한 꿈이었다. 그래도 마지막엔 그가 구해주었다. 현실에서도, 꿈에서도 자신을 끌어준 손의 주인. 자신의 상상인데도 얼굴을 보여주지 않은 것이 야속하기만 했다.

전쟁이 끝나고 몇해가 지났는가?

지금은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지만 몇 년 전엔 화약 냄새와 흙 냄새가 난무하는 전쟁터에 있었다. 그의 말끔한 얼굴과 잘 빠진 몸선을 보면 쉬이 추측하지 못하는 과거였다. 관중들은 로널드의 화려함과 연기력을 칭찬했다. 매혹적인 목소리는 물론이건 몸 안에 떠도는 감정을 무대 위로 토해내는 실력은 연극단의 에이스라 불려도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로널드의 과거 잔해는 몸과 얼굴에 선명히 남아있었다. 그윽함을 자아내는 속눈썹 뒤에는 피같이 붉은 자국이 남아있고 온 몸 곳곳에도 화약과 총알이 만든 상흔이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있었다. 도끼로 나무를 찍은 것처럼 죽을 때까지 남아있을 자국은 거울을 볼 때마다 과거를 상기시켜줬다.

사색에 잠겨있을 시간은 더 없었다. 로널드의 하루는 다른 이들보다 빠른 편이었다. 남들 앞에서 완벽한 누군가를 연기하기 위해선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로널드는 새벽의 추위를 이겨내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유명 배우가 생활한다는 거치고는 좁은 방이었다. 한 개의 침실, 한 개의 욕실, 한 개의 옷 방이 집을 이뤘다.  관중이며 극단 사람들이며 그의 이름을 높이 찬양했지만 여전히 생활 수준을 화려하게 바꾸긴 힘들었다.

로널드는 발길에 치이는 옷가지와 잡동사니를 적당한 곳에 밀어뒀다. 자기관리가 철저했지만 집은 깨끗함과 거리가 멀었다. 오랜 거짓 생활과 외로움에 속이 곪은 것이 방에 고스론히 나타나 있었다.

옷은 여기저기 널부러져있었고, 냉장고에는 먹을만한 음식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말끔한 공간이 딱 하나였다. 바로 온갖 서류가 쌓여있는 책상이었다. 누군가를 탐색하기 위한 흔적인 책상엔 오래 전 전우와 찍은 사진 한 장이 놓여있었다. 그 사진 속 주인이 누군지는 로널드만 알 것이라.

로널드는 욕실에서 밤새 땀으로 엉킨 머리칼을 깨끗한 물로 씻어냈다.

'휴일없이 이게 며칠째야. '

오늘 밤은 일찍 들어와 와인 한 잔이라도 들이킬 수 있다면 소원이 없을 거 같았다. 로널드는 면도를 하기 전 제 얼굴을 살폈다.

각진 거 같이 날카로운 턱선과 콧날, 늑대처럼 올라간 눈꼬리는 야성미를 줬다. 잠결에 헝크러진 다갈색 머리는 가을의 갈대밭을 보는 것처럼 촘촘했다.

문득 3년 전 얼굴이 떠올랐다. 분명 그 때보단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때깔이 좋았다.

역시 돈을 바르면 바뀌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시궁창의 쥐처럼 살아도 돈만 있으면 스포트라이트가 잘 어울리는 배우로 바뀌는 것이었다.

그런데 요즘 지친듯 했다.

로널드는 피곤에 물들고 시꺼멓게 물든 거 같은 금색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현실과 자기 자신을 혐오할 때 나오는 눈빛이었다. 남들이 자신을 무시하지 못하게 최선을 다해 살았다. 그런데 어째서 발버둥칠수록 가라앉는 기분인 것인가. 비웃음, 무시, 더러운 욕망을 버티느라 온 몸이 너덜너덜해진듯했다.  약해진 몸에 스미는 지독한 추위와 아픔은 등에 서려 심장까지 도달하는 듯하다.

불현듯 머릿속으로 꿈 속의 손이 떠올렸다. 꿈에서 그는 자신을 놀리듯 나타났다 사라졌다. 자신을 잊지 말라고 세뇌시키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저 망자가 되어 꿈에 온 것만 아니길 빌었다.

잘 다려진 셔츠는 돌처럼 단단해보이는 그의 몸을 감쌌다. 많은 이들은 로널드를 보며 남자주인공에 걸맞는 외향을 지닌 자라 칭찬했다. '평소에 관리를 어떻게 하시나요?' 묻고 로널드는 웃음 소리를 머금으며 '특별한 것은 안 합니다.' 라고 능청스럽게 말했다. 거짓말이 버터처럼 매끄럽게 잘 나오는 사람이었다.

로널드는 흉터로 가득한 팔을 바라보았다. 대리석을 깎은듯한 단단한 팔과 그 팔을 통과하는 나무뿌리처럼 거친 힘줄은 그가 생사를 오가는 곳에서 얻은 것이었다. 그 외에도 온몸에는 생채기같은 흉터가 가득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지나도 이 쇄기같은 생긴 흉터는 사라지지 않을 거 같았다.

소매 끝을 거칠게 쓸어내리고 제 팔을 자물쇠로 잠그듯 단추를 맸다. 화려한 장식이 달린 붉은 옷을 입고 잘 말려진 머리 위엔 모자를 쓰고 과거를 신비스럽고 덮어줄 가면을 썼다. 거울을 보며 스스로를 위한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진실된 속내를 보일 바엔 거짓된 화려함을 보이는 게 야생같은 사회에서 살아남기 좋았다.

시간이 되었다. 로널드는 머리를 난잡하게 만드는 생각은 거짓 미소를 지우며 바깥을 나섰다.  스스로에게 취하고, 관객들을 모았다. 막이 오르자 한껏 미소 지었다. 관객들은 환호하며 박수 갈채와 장미꽃송이를 던졌다. 제 속이 공허할지라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썩어빠진 눈빛을 버리고 승리의 스포트라이트에 설 때까지 모두를 화려한 자신에게 속일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최고의 자리에 올러서면 이 추위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커튼콜. 마지막으로 관중들을 바라보는 순간. 그 순간 3년간 죽어있었던 피가 솟으며 기쁨이 자신을 짓눌렀다. 커튼콜이 끝나고 곧장 무대 위를 벗어났다. 발소리가 춤을 추는 듯 하다. 오랜 연습으로 단련된 다리는 오늘을 위해 달리는 것만 같았다.

왜 찾아온 것일까, 어떻게 드디어 만날 수 있었을까. 

이때만을.

이때만을 그려왔던 거 같다.

그래, 그래서 꿈에 나타난 것일까? 그래, 이번엔 내가 잡아끌어야지.

그 손을 절대 놓치 말아야지.

"이게 누구에요? 공연이 끝나면 당신을 찾을 생각이었어요."

이 시린 추위를 나눌 수 있는 인간은 하나였으니. 

"로널드...?"

이름을 불러주는 목소리 한 번에 몸이 따뜻해진다. 

그는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탐정 앞을 막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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