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피테 (3)

데스피테 by 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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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젠장! 생각해 보니 이놈 길 모른다고 했지!

업혀서 뛰는 동안은 생각은커녕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어 떠올리지 못했다. 놈을 보니 망설임 하나 없이 여기까지 뛰어온 주제에 낯선 풍경을 보고 당황한 듯했다. 좀비한테 쫓기느라 정신없어서 그런 걸까?

“어…. 음, 여기 어디지.”

…그냥 당찬 바보인가.

완연한 밤이 하늘에 가득한데, 저 멀리 떨어진 가로등은 빛 한 줌 내보이지 않고 있다. 이 동네는 원체 시골이라 가로등이 드문 편이었다. 그런데 여긴 우리 집보다도 훨씬 후미진 곳인지 가로등 사이로 어둠이 존재하고 몇 개는 고장 나 제 기능을 못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까짓 길 좀 모른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나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 보려 발을 떼었다. 놈은 뒤통수를 한 번 긁더니 나를 쫓아오며 말했다.

“혹시 여기 어딘지 알아?”

“알겠냐.”

“아, 하긴 꽤 오래 뛰었으니까 모르는 곳일 수도 있겠다.”

그래, 오래 뛰었지. 마트에서 도망칠 때 체감상 3시간은 뛴 것 같았다. 거지 같은 승차감 탓에 길게 느껴진 걸지도 모르지만 적지 않은 시간을 도망쳤다. 길거리에서 좀비 하나 마주치지 않는 것은 이제 힘든 일이 되었으니까.

놈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지금까지 쉴 새 없이 떠들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뭐, 굳이 말 걸 생각은 없지만.


한참을 걸었다. 이상하게도 여전히 거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건물도, 사람도, 이젠 제법 흔한 좀비라는 존재까지도. 이렇게까지 아무것도 없을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길거리는 깨끗했다. 가끔 보이는 가로등만이 우리가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가 되어줄 뿐이었다.

쯧, 이러다가 노숙해야겠는데.

이렇게 긴 시간 외출하게 될지 모르고 물건을 많이 챙기지 못했다. 담요 한 장 없이 찬 바닥에서 자기는 힘들 것 같은데…. 건물이라도 보이면 도움을 청하든 뭐든 시도해 보겠지만, 이제는 그조차 보이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아까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야 하나. 우리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점점 외곽으로 가는 듯한 느낌이…. 하, 쟤는 왜 하필 이런 쪽으로 도망을 가서!

“저기….”

놈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조금 쉬어있었다.

“미안해.”

뭐?

사과를…,하네. 아는 사과라고는 먹는 사과밖에 없나 했는데 그건 또 아닌가 봐. 아예 쌩까기엔 저도 양심이 있나 보지?

걸음을 멈추었다. 고개를 돌리니 얼굴을 숙인 놈이 보였다. 약간 떨리는 목소리, 소극적인 태도로 놈이 말했다.

“내가 원래 목소리가 좀 커. 한 달 동안 그래도 나름 조용하게 다녔는데, 너 만나고 긴장이 풀려서 그랬나 봐.”

나를 언제 봤다고 긴장이 풀린대? 하! 헛웃음만 나온다.

“오늘 처음 본 사이에 이러는 게 거짓말 같을 수도 있지만 진짜야. 오랫동안 사람 하나 못 보다가 겨우 사람을 만났는데 그게 내 또래였다고…. 얼마나 반갑겠어, 이제 살아남은 사람은 나밖에 없나…. 생각했는데.”

뒷말은 소리가 작았지만, 고요 속에서 내 귀에 닿기에는 충분했다. 녀석은 쓴웃음을 지었다.

…….

누군들 그 기분을 모르겠나. 한때 나를 구성했던 사람 모두가 사라졌다. 연락은커녕 살았는지 죽었는지, …혹은 이도 저도 아닌 채 길을 배회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됐다. 만약, 정말 만약 아는 사람을 사람이 아닌 형태로 마주한다면….

헤어날 수 없는 늪에 잠겨버릴까, 생각한 날이 있다. 내 몸에 남아있는 한 줌의 숨까지 모두 앗아가 괴로움을 없애주었으면 했다.

…집안에 틀어박힌 것도 그런 이유고.

“음, 아무튼 그랬어. 정말 고의는 아니야. 길 잃은 것도 그냥 내가 길치라서 그런 거고, 앞으로는 진짜로 조심할게. 나 버리지 마, 같이 다니자. 응? 혼자 다니는 것보다는 둘이 다니는 게 좀 더 낫잖아. 안 그래?”

녀석이 내 팔을 붙잡고 말했다. 애절하게, 매달렸다.

솔직히 귀찮다. 이대로 버려두고 싶다. 이 녀석과 같이 다녀서 생길 리스크가 싫다.

“두고 가지 마~ 나랑 다녀. 응? 응~?”

불안한 건가. 뭐가?

정말 혼자 다니려 했다. 음식은 충분히 챙겼으니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

그런데…. 그에게서 아는 사람이 겹쳐 보여서, 비슷한 부분이 조금씩 눈에 띄어서. 아니면 그저 매달리는 사람을 내칠 정도의 단호함이 없어서-

“알았어! 안 버린다! 됐냐?”

한순간 내뱉어버렸다.

녀석이 멈춰 섰다. 들어 올린 얼굴에 환희가 깃들었다.

“…진짜지? 같이 가는거지?‘

“하…. 그래.”

“거짓말 아니지? 정말로? 진심이지?”

“…….”

“응! 알았어! 귀찮게 안 할게!”

놈은 곧바로 떨어졌다. 놈이 걷는 발걸음에 생동감이 깃들었다. 휴…. 그래도 눈치는 빨라서 다행이네.

…음. 괜한 짓 한 건 아니겠지.


또다시 긴 시간을 걸었다. 건물이 하나라도 보이면 바로 들어가려 했는데, 정말 한 개도 보이지 않아 멈출 수 없었다. 놈이 먼저 걸어가서 쫓아가는 것만으로 벅차기도 하고 말이야. 걸음은 또 왜 저렇게 빨라!

“어! 저기 건물 아니야?”

놈이 먼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잘 안 보이는데…. 놈이 가리킨 방향으로 걷다 보니 어딘가 허름한 별장이 눈에 들어왔다.

제멋대로 자라난 잡초 사이로 여기저기 창틀을 따라 자라난 덤불과 깨진 창문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목을 스치는 바람이…. 꽤 서늘하다. 벽을 이루는 검붉은 목재는 언뜻 보면 굳은 피로 착각할 것 같았다. 그런데도 실제로 묻은 피는 하나도 없는 걸 보면 여기까지 좀비가 오진 않았던 걸까? 혹은 내부에서 일이 있었나?

아무리 시골이라지만 마을에서도 한참 떨어진 곳에 홀로 있는 집이라…. 정말 수상해 보인다. 너무 오래 걸어와서인지 더 수상하게 느껴진다.

불은 꺼져있지만, 안에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외출했거나 자러 간 것일 수도 있고. 혹시 모르니 어느 정도 예의를 차려서 확인해 보자. 그래야 우리를 들여줄 생각이라도 들 테니.

“일단 안에 누가 있는지 확인을….”

쾅! 쾅! 쾅!

“저기요! 계세요!”

“아니 무슨…!”

놈이 문을 세게 두드리고 있었다.

…역시 혼자 다닐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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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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