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못죽

큰달의 꿈

작은 해프닝

오두막 by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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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달은 알 수 없는 곳에서 눈을 떴다. 의아함에 상체를  일으켜 앉으니 찰랑이는 물로 가득 찬 바닥이 느껴졌다. 시선을 내리자 색색의 물감을 뿌려놓은 듯한 마법소년의 교실이 뒤집힌 채 지금 자신이 앉아 있는 공간과 바닥을 맞대고 있었다.

그는 이곳이 자신의 정신에 연결된 공간이거나 혹은 꿈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물 표면에 비친 익숙한 외관이 '박문대'의 것이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몇 년 지냈다고 어느새 건우 형의 모습이 익숙해졌었나 보다, 하며 큰달은 오래간만에 보는 자신의 예전 모습에 새삼 놀라워했다.

한참을 물 속만 들여다보던 그는 문득 양손에 물을 천천히 담아 들어올렸다. 물은 투명하기만 할 뿐 딱히 특이해 보이는 부분은 없었다. 하지만 큰달은 그것을 다시 바닥으로 떨어뜨렸을 때 그의 손이 전혀 젖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손뿐만이 아니라 적어도 뒷면은 완전히 젖어있어야 할 옷과 발바닥도 물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떨어진 물은 표면에 몇 번 울림을 자아내고선 다시 잔잔해져 바닥 위에 얹혔다. 

몇 초 후 그는 새로운 사실을 하나 추측해 냈다. 물은 아마 자신이 있는 공간과 마법소년의 교실을 분리해두는 일종의 경계선인 것 같다고.

큰달이 아직 생각에 잠겨 있을 무렵 코 앞에 사람의 맨발이 생겨났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의 맨발이 물에 비쳤다. 큰달은 곧바로 고개를 들었다. 익숙한 얼굴이 그를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형···?"

안경은 없었지만 그 모습은 영락없이 류건우였다. 다만,그는 웃고 있었다. 큰달은 박문대가 되기 전까지 그의 웃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지 못 했다. 그가 아는 류건우는 늘 무표정에 항상 무언가에 깊이 짓눌려있는 듯 보였으니까.  큰달은 마음 한 구석에서 아릿함을 느꼈다.

그때 류건우가 갑자기 몸을 돌렸다. 그리곤 말 한 마디 없이 뚜벅뚜벅 물 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형? 어디로-"

류건우는 대답하지 않은 채 그저 빠른 걸음으로 앞을 향해 갔다. 큰달은 허겁지겁 일어나선 질세라 그 뒤를 쫓았다. 류건우는 잡힐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큰달을 몇 걸음 앞서갔다. 큰달은 팔을 내저으며 뛰어가다 문득 기시감을 느꼈다.

‘이상해. 꽤 뛴 것 같은데 전혀 숨이 차지 않아. 더군다나 이 공간··· 끝이 없어.’

한참을 달려도 앞에 펼쳐진 광경은 처음 이곳에서 눈을 떴을 때와 같은 무한하고,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었다.

‘역시··· 이건 꿈인 걸까?’

큰달이 잠시 생각에 빠진 순간, 류건우가 갑자기 발을 멈췄다. 큰달은 하마터면 넘어질 뻔하다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그가 당황해 시선을 위로 올리자 순식간에 공간이 뒤집혔다. 물이 얕게 찰랑대는 바닥은 어느새 천장이 되었고 주위의 풍경은 ‘마법소년’의 MV에 나오는 교실로 바뀌어 있었다.

류건우가 천천히 뒤를 돌아 큰달과 눈을 맞췄다. 큰달은 눈을 크게 떴다. 바뀐 건 공간뿐이 아니었다. 아직 소년티가 남아있는 얼굴의 청년이 짧은 금발을 흩날리며 그를 향해 옅게 웃어 보였다. 그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더 이상 류건우가 아니었다.

열린 창문을 통해 몽환적으로 빛나는 하늘이 보였다. 박문대는 가뿐히 창문에 걸터앉았다. 그의 입에는 은은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이윽고 감미로운 선율이 흘러나왔다. 바람이 투명한 커튼을 유유히 흔들고 교실 전체를 부드러운 노랫소리로 가득 채웠다. 큰달은 가만히 눈을 감고 그를 휘감는 음들을 느꼈다. 들으면 들을수록 몸이 점점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그는 마치 음악의 일부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점점 의식으로부터 멀어져갔다. 노래는 끝내 자장가가 되어 그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큰달은 보드라운 이불 속에서 다시 눈을 떴다. 이상하리만치 신비한 꿈이었다. 그는 잠시 멍하니 있다 황급히 스마트폰을 찾았다. 꿈의 여운이 다 가시기 전에 꼭 연락해야 할 사람이 있었다.

두 번의 짧은 연결음 끝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형!”

“어, 그래. 무슨 일이냐.”

듣기 좋은 차분한 저음의 소유자는 박문대, 그러니까 테스타의 현 메인보컬이었다.

“제가 꿈을 꿨는데요, 거기서 형이···.”

큰달은 빠르게 꿈의 내용을 요약해 설명했다.

“그러니까, 몸이 바뀌기 전 우리 둘 모습이 나왔고, 지금 모습으로 변한 뒤에는 내가 노래를 불렀다고? 너는 그걸 듣다 자연스레 꿈에서 깼고?”

“네! 점점 기억이 희미해지고 있어서 정확히는 설명을 못 하겠지만 꿈에서 형이 웃으실 때 엄청 행복해 보였어요···. 그리고 노래도··· 사람한테서 나온 거라곤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로 감미로웠고요···. 아, 그, 형이 평소에 못 부르신다는 게 아니라···!”

“그래, 그래. 알았다. 진정하고. 네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내가 그 꿈에서 꽤나 행복했나 본데.” 박문대가 작게 웃음을 흘렸다.

“네, 아마 그러셨던 것 아닐까요···? 아, 저기 형.”

“어.”

“이번 주에··· 혹시 시간 되세요? 아니면 다음 주라도···.”

큰달이 반쯤 들뜬 마음으로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사이 화면 너머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대문대, 뭐해? 갈비찜 왔어!

큰달은 반사적으로 목소리 주인의 얼굴을 상상하곤 스마트폰을 귀에서 떼 시간을 확인했다.

‘아, 그러고 보니 벌써 점심 먹을 시간이구나.’

“저, 형, 식사하셔야 하니까 나중에··· 얘기할까요?”

“아냐. 지금 얘기하자. 잠깐만.” 박문대가 잠시 뜸을 들이곤 전화기 너머 먼 곳을 향해 외쳤다.

“금방 나간다! 좀만 기다려!”

박문대는 방문 밖에서 들리는 잡다한 목소리들을 한 귀로 흘리며 빠르게 머릿속 일정표를 뒤졌다.

‘보자···. 이번 주는 좀 어렵겠고, 짬을 내면 다음 주는 가능하겠군. 오래는 못 있겠지만.’

“다음 주 수요일 가능할 것 같은데. 스케줄 때문에 하루 종일은 안 되고, 자세한 건 좀 더 지나봐야 알 것 같다. 넌 그때 시간 돼?”

“어··· 잠시만요. 네, 돼요!”

“그래, 그럼 그때 보자.”

“네!”

-문대문대, 안 오면 나랑 유진이가 네 것까지 다 먹는다!

다시 한번 이세진이 박문대에게 최후의 통첩을 날리는 소리가 들렸다.

“앗, 얼른 식사하러 가보세요!”

“그래. 너도 밥 챙겨 먹고.”

“네!”

큰달은 박문대가 전화를 끊길 잠시 기다리다 먼저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하여간 못 말린다는 말이 끝에 희미하게 들린 것도 같았지만, 오랜만에 형을 만난다는 기대감에 먹보 둘을 향한 박문대의 한숨 소리는 큰달의 머릿속에서 이내 먼지처럼 날아가 버렸다. 그는 곧 즐거운 마음으로 마법소년을 흥얼거리며 아침 메뉴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쓰기 전 정리해둔 것

빙의 전 박문대와 류건우의 모습.

바닥에서 물이 찰랑이고 그 아래에는 마법소년의 배경.

큰달은 처음에 류건우도 자기하고 같이 이 공간에 들어오게 된 건 줄 앎. 근데 류건우가 대답 없이 조용히 미소만 지어서 아니라는 걸 깨달음.

갑자기 류건우가 천천히 뒤를 돌음.

세상이 뒤집힘.

빙의 후 박문대, 큰달의 모습.

몇 초 전까지 서 있었던 공간이 뒤집힌 채 교실하고 바닥을 맞대고 있음.

다시 뒤를 돌아보는 류건우. 돌아봄과 동시에 머리카락이 서서히 금색으로 바뀌고 외형도 박문대의 것으로 변함.

교실의 창가에 가뿐히 걸터앉는 박문대. 은은히 웃으며 노래 시작.

큰달은 노래를 들으며 점점 정신이 몽롱해지고 잠들듯 의식을 잃으며 꿈에서 깸.

기억상 정확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꿈속의 박문대는 행복해 보였고 사람한테서 나온 목소리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감미롭게 노래를 불렀음.

후에 통화를 하며 꿈의 내용을 박문대(류건우)에게 전달. 잠들듯이 꿈에서 깨서 신기했다고 말함.

박문대는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나 의구심을 가지지만 이세진의 부름(문대문대 안 오면 우리가 갈비찜 다 먹는다)에 거실에 있는 테스타한테 감.

부제:작은 해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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