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요루] 담배

5,503.

DownByTheRIver by DD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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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는 대체 무슨 맛으로 피는 거예요?”

첫 담배의 맛은 고약했다. 맛이 궁금하다면 한번 펴보라는 린도의 제안으로 담배를 입에 대자마자 그대로 다시 뱉어버린 요루의 얼굴에는 짜증이 아니라 궁금증만이 가득했다. 무슨 맛으로 피냐고? 글쎄… 말꼬리를 길게 늘이며 린도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냥, 담배니까?”

두 번째 담배의 맛도 마찬가지로 고약했다. 담배도 못 피는 놈이 왜 갑자기 담배를 산 거냐는 린도의 물음에 요루는 그저 웃었다. “그냥, 담배니까요?” 그날의 대답을 똑같이 돌려받은 린도는 머리를 긁적였다. 무슨 일 있는 거냐고 물어도 요루는 그저 웃었다. “무슨 일이 있긴요. 평소랑 똑같아요.” 멍하니 담배를 응시하던 그는 결국 한 모금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담배를 치웠다. “좋아! 오늘은 맥주다!” 그런 그를 지켜보던 린도는 그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그를 자신의 방으로 이끌었다. 요루는 ‘오늘만’은 아니지 않냐고 되물으며 그를 따라 웃었다. 같이 마신 맥주의 맛도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결국 요루는 끝까지 담배의 맛을 알아낼 수 없었다. 흡연자들의 말대로 기분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담배를 피기에는 담배는 너무 맛이 없었다. 오히려 그 맛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아지면 모를까, 담배를 핀다고 해서 기분이 절대 좋아지지는 않을 거 같았다. 오랜만에 온 극동지부는 알고 있던 얼굴이 몇몇 없어진 걸 제외하면 변한 게 별로 없었다. 요하네스 지부장이 찾는다는 호출에 고개를 끄덕인 후 요루는 익숙한 홀을 걸었다. 여기저기서 오랜만이라며 인사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기분이 조금 괜찮아졌다. 국장실에 들르기 위해 엘레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작은 비명소리와 함께 어린 여자아이가 그의 품에 안겨왔다. 요루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어디 다친 곳은 없냐고 물었다. 겨우 10살이나 됐을까 싶을 정도로 작은 여자아이는 고개를 저으며 다친 곳은 없다고 대답했다. “죄송해요.” “괜찮아요.” 죄송하다고 말한 아이는 시선을 자꾸만 돌리며 긴장감을 표했다. 무슨 일 있냐는 물음에 잠깐 우물쭈물하던 아이는 엘레베이터가 내려오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자신의 입술에 검지를 댔다. “쉿!” 쉿…? 요루가 반응하기도 전에 아이는 곧장 옆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오! 선생님!”

“오야, 오랜만이네.”

엘레베이터에서 내린 사람은 에릭이었다. 그는 안부를 물은 후 머리카락을 넘기며 자신은 이제 지금까지 당신이 알던 에릭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이제 혼자서 중형 아라가미도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그의 말에 요루는 쿡쿡 웃었다. 변하는 것도 좋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좋다. “선생님께 꼭 보여드리고 싶군요, 이 에릭이 어떤 에릭으로 재탄생했는지!” 팔을 활짝 벌리며 턱을 치켜들던 그는 아차 하더니 혹시 작은 여자아이를 못 봤냐고 물었다. 작은 여자아이? 요루는 자기도 모르게 여자아이가 숨은 곳으로 시선을 던졌지만 에릭은 눈치채지 못했다.

“아주 귀엽고 똘똘한 제 여동생이죠! 술래잡기를 얼마나 잘하는지! 이름도 완벽하게 에리나! 한번 말씀드린 적이 있었던 거 같은데.”

“아, 네 여동생었구나.”

“오! 그럼 보신 적이 있다는 뜻? 에리나 어디로 갔나요?”

“아, 아하하… 일단 여기는 아니었…던 거 같아.”

상대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바로 거짓말이라는 걸 들켰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다행히도 에릭이었다. 그는 제 여동생이 얼마나 똑똑하고 귀여운지 설파하더니 다시 찾으러 가야겠다며 엘레베이터에 올랐다. “제 새로운 모습, 꼭 보여드릴 겁니다!” 마지막의 당당한 목소리도 빼먹지 않으며. 엘레베이터의 문이 닫힐 때까지 휘적휘적 손을 젓던 요루는 엘레베이터가 닫히자마자 에리나가 숨어들었던 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에릭에게 몇 번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기야 하나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뭣보다 에릭이랑 전혀 안 닮았다…. 고개부터 빼꼼 내밀더니 바로 토독토독 방에서 나오는 에리나는 에릭 말대로 귀여웠다.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오빠랑 사이 좋아보여서 좋네.”

요루를 빤히 올려다보던 에리나는 당신이 에릭의 선생님이냐고 물었다. “지금은 아니고 예전에. 지금은 린도 씨가 그를 맡고 있어요.” “흐음… 그래도 선생님은 맞다는 거잖아요?” 에리나의 눈은 반짝반짝 알사탕을 가득 담아놓은 것처럼 보였다. 요루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다는 욕망을 억누르며 고개만 끄덕였다.

“에릭 진짜 멋있죠?”

“응. 멋진 사람이죠.”

요루의 긍정하는 말에 에리나는 자신이 칭찬받은 것마냥 표정이 의기양양해졌다. “선생님이 보기에도 에릭이 멋진 사람이라면 에릭은 정말 멋진 사람이겠네요!” 동의를 구하는 듯한 시선에 요루는 하하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 앞이라서 너무 좋게 봐주시는 거 아니에요?” 갑자기 낯부끄러워졌는지 다른 소리를 하면서도 귀끝의 붉은기는 감추지 못한 어린아이의 서투름에 요루는 웃음을 그치지 못했다. 그런 그의 뒤로 엘레베이터가 한번 더 열렸다.

“아, 여기 계셨군요. 지부장님께서 찾으셔서….”

“아이고. 일부러 찾는 수고까지 끼쳐서 미안해요. 지금 들어갈게.”

수고라니, 아니에요. 에리나를 발견한 히바리의 눈이 평소보다 더 따스해졌다. 두 사람의 대화에 에리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지금 자기 때문에 지각한 거냐고 물었다. “아니에요. 오빠랑 숨바꼭질 잘하고 기회가 된다면 또 봐요, 꼬마 아가씨.” 요루는 히바리에게 눈짓을 한 뒤 지부장실로 향했다. 지부장실의 문에 노크를 하자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방에 들어가니 익숙한 인영이 푸른색 눈동자에 맺혔다. 그가 가까이 다가가자 보고서를 읽고 있었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오랜만이군. 순회는 순조로웠나?”

요루는 짧게 목례를 한 뒤 특별한 일은 없었다고 대답했다.

“네가 가르친 아이들이 각 지부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고 들었다.”

“아이, 저보다는 아이들이 잘해준 것뿐입니다. 걱정되는 거라면 서지부 출신인데… 똑똑한 아이들이니 알아서 잘 해주겠지만 교육을 못 끝내고 돌아와서요. 원래 서지부에 더 머무를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부르셔서 놀랐습니다.”

“아이들의 교육도 좋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생겨서 말이네.”

요하네스는 선반을 열어 종이를 한장 꺼냈다. 종이를 건네받은 요루는 목적 없이 재료만 나열되어있는 내용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뭡니까, 하고 요루가 묻자 요하네스는 기밀 사항이라서 목적을 표시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긴 했지만 요루는 더 이상 그에게 목적을 물어보지 않았다. 그런 그를 지그시 지켜보던 요하네스는 기밀 사항이니 그 누구에게도 네 임무를 들키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린도는 물론이고 사카키에게도 말이네.”

“어… 사카키 박사님께도요?”

“사카키는 좋은 친구지. 하지만 내가 가장 신뢰하는 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와 함께 해준 자네야.”

처음부터 끝까지? 기간으로 따지면 역시 나보다는 사카키 박사를 더 신뢰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요루는 금방 의심을 지웠다. 다른 사람도 아닌 요하네스 지부장이 하는 말이다. 그가 거짓말을 할 리가 없지. 이 재료가 무슨 목적으로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대의를 위한 걸 것이다.

“영광입니다.”

“…내가 영광이지. 자네같은 사람이 옆에 있어주니까.”

한번 더 재료 리스트를 훑어본 후 요루는 종이를 몇 번 접어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요하네스는 그에게 노아의 방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노아의 방주? 언젠가 들어봤던 적이 있는 거 같은데… 요루는 모두를 배에 태우고 폭풍우에서 탈출하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그 뜻도 맞지만 노아의 방주에서 중요한 건 자신을 믿는 자들을 데리고 새로운 세상으로 떠났다는 거지. 폭풍우의 위협이 없는 곳으로 말이야.” 요하네스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모아 꼬았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 새로운 세상에 대해서 말이야.” 모두를 데리고 새로운 세상으로 떠난다? 더 이상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세상으로? 모두와 함께? “그런 세상이 있다면 가고 싶네요, 모두와 함께.” 요루의 대답에 요하네스는 짧게 웃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그는 마지막으로 자네의 성과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요루는 평소처럼 당신의 기대에 부응하겠다고 대답했다. 당신의 기대에, 모두의 기대에, 서부에 두고온 아이들을 뒤로 하고…

이상하게도 담배가 피고 싶어졌다.

사면 또 못 피고 버릴 거라는 걸 알면서도 요루는 자기도 모르게 담배 앞에서 서성였다. 더럽게 맛이 없다는 걸 아는데 왜 피고 싶어지는 거지? 그저 담배니까? ‘담배는 대체 무슨 맛으로 피는 거예요?’ 요루는 자기도 모르게 에리나를 머릿속에 그렸다. 작은 에리나는 알사탕같은 눈으로 그에게 담배를 왜 피는 거냐고 묻고 있었다. 요루가 쉽게 대답하지 못하자 에리나의 얼굴은 점점 다른 사람으로 변해갔다. 담배는, 대체, 무슨 맛으로, 이미 이 세상에는 없는 얼굴들이 환하게 웃으며 그에게 묻는다, 피는 거예요?

“선생님!”

익숙한 목소리에 요루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를 부른 사람은 타츠미였다. 반가움을 숨기지 않고 계단을 내려오는 제자의 얼굴은 저번에 봤을 때보다 더 어른스러워져 있었다. 극동지부에서 별 일은 없었냐고 묻자 타츠미는 시원한 웃음을 터뜨리며 방위반에는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 “별 일이 있다면 히바리쨩이죠!” 음, 또 시작이군… 요루는 미소를 지었다.

“별 일이 없다면 난 이만…”

“히바리쨩의 목소리는 점점 예뻐지는 거 같아요! 히바리쨩이 오퍼레이터를 맡는 날이면 그야말로 당첨~ 선생님도 꼭 들어보셔야 한다니까요.”

히바리 목소리… 아까 들었는데 딱히 달라진 건 없었지. 좋을 때라고 생각하며 요루는 결국 타츠미에게 붙잡혀 히바리의 장점 nn가지에 대해 들어야만 했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 거라 쌓인 이야기가 많은지 몇 분이 지나도 타츠미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앗! 너무 붙잡은 모양이네요. 언제 한번 방위반 다 모여서 이야기나 해요, 선생님! 다들 선생님이라면 환영일 테니까!”

“하하, 나야 너무 좋지. 애들이랑 얘기 먼저 해보고 시간 정해지면 얘기해줘요. 그럼 내가 그 시간에 맞출게.”

넵! 씩씩하게 대답하던 타츠미는 곧장 출구로 향하는 요무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선생님, 지금 나가세요? 오퍼레이터들이 모르는 거 같은데.” “아아… 이번에 오퍼레이터 없이 나가요. 지부장님께 특별 허락 받았고.” “어, 진짜요? 오퍼레이터 없이는 너무 위험한 거 아녜요?” “에이, 괜찮아.” 요루의 대답에도 석연치 않은 듯 인상을 찌푸리던 타츠미는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나중에 보자고만 말했다. 적합률이 낮아서 시무룩하던 것도 엊그제 같은데 정말 많이 컸네… 그때보다 키가 크긴 했지만 요루에게 타츠미는 귀여운 제자일 뿐이었다. 조금 듬직해지긴 했지만, 대견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지켜줘야할 소중한 제자. 요루는 타츠미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걱정하지마. 서로 웃는 얼굴로 봐요.”

“넵! 방위반 멤버들에겐 제가 미리 말해놓겠습니다!”

“응, 부탁해요.”

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정도는 힘내야겠지. 타츠미의 걱정 어린 시선을 뒤통수로 느끼며 요루는 출구 쪽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들을 사지로 내모는 것보다는 내가 사지에 가는 게 마음이 더 편하니까. 내딛는 발걸음이 가볍지는 않다. 하지만 담배를 피고 싶다는 마음은 어느새 사라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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