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요루카렐] 첫키스의 맛

4,338.

누군가와 특별한 사이가 된다는 건 슬픈 날도 많아지지만 그 이상으로 기쁜 날이 많아지는 거라고 요루는 사쿠야에게 들은 적이 있다. 슬픈 날? 기쁜 날? 아직 그건 잘 모르겠지만 생각이 많아지는 건 확실한 거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카렐의 갑작스러운 고백, 그리고 갑작스러운 선택지, 모든 일은 그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급하게 흘러갔다. 마치 급류에 휩쓸리는 것처럼 그에게 휩쓸려버린 요루는 여전히 그와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사귀게 된 것에 대해 고민하는 건 절대 아니고 진도 문제. 진도. 그래, 그 진도 맞다. 연애할 때의 스킨십 진도. 카렐이 20살이 되기 전까지는 걱정할 게 딱히 없었다. 성인이 미성년자를 건드리는 건 안 되니까, 일단 지금은 어떤 스킨십도 안 돼, 오히려 명확하게 선을 그을 수 있어서 편했었다. 하지만 그 고민없던 시기는 고작 몇 달이었다. 그가 20살이 된 후부터는 요루는 고민이 많아지다 못해 넘쳐 흐를 지경이었다. 스킨십을 어디까지 해야 하는 거지? 아무리 20살이라고 해도 아직 애 아닌가? ‘네? 나이 차이요? 전 6살까지는 괜찮은 거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어도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물어봤다가 ‘너 연애하냐’ 소리를 들을 게 뻔해서 그나마 짝사랑 상담을 해줬던 타츠미에게 물어봤건만, 타츠미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제자나 스승이나 6살 차이로 연애를 하고 있으니 부전자전이 아니라 사전제전이다. 그날 요루는 답을 얻기는커녕 1시간 넘게 히바리의 장점에 대해 들어야만 했다. 그렇게 답을 내지 못한 채 시간은 조금 더 흘러갔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카렐은 무반응이었다. 스킨십에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그의 모습에 요루는 오히려 안심했다. 그래, 카렐은 아직 애라니까, 애…

“그래서 뭔데?”

“어?”

“뭐가 문제냐고.”

…애…인데. 갑자기 방에 찾아온 카렐은 인상을 쓴 채 어떤 대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문제? 문제라니? 몇 번을 되짚어봐도 그에게 잘못한 건 없는 거 같아서 요루는 어색하게 웃으며 살살 거리를 두었다. 돈 문제? 아니다. 요새 요루는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준 적이 없다. 자신에게서 반걸음 정도 더 떨어진 요루에 카렐은 인상을 더 쓰며 그에게로 한 걸음 더 다가왔다.

“하하… 진짜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그리고 들려오는 짜증 섞인 한숨 소리. 요루는 몸을 더 뒤로 뺐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문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결국 문과 맞닿은 등에 깜짝 놀라며, 그는 더 이상 물러나지도 못하고 날카롭게 서있는 카렐을 마주해야만 했다.

“그렇게 강아지 눈을 하고 있는데 못 알아챌 수가 있겠냐고. 할 말이 있으면 해.”

내가 퍼피아이즈를 했다고? 돌이켜 생각해보니 요새 린도, 사쿠야, 알리사에게 차례대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냐고 걱정을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이 강아지 눈망울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요루가 ‘아’ 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그게… 음, 아무 것도 아니야.”

“…뭐?”

“정말 별 거 아니라서, 카렐은 신경쓰지 않아도 돼요.”

“별 거 아니라면 그냥 말해.”

입밖으로 나오면 별 거 아니었던 게 눈덩이처럼 왕왕 커질 거 같은데. 대답하지 못하고 슬쩍 시선을 회피하는 요루를 짜증섞인 얼굴로 바라보던 카렐은 한 손으로 그의 얼굴 옆을 짚었다. “너, 당장 말해.” 생각해보니 카렐, 나보다 키가 커졌지. 요루는 약간 숙여진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처음 봤을 때보다 확실히 남자다워지긴 했다. 요루는 어색하게 어썰트를 쏘던 그의 모습을 기억한다. 날카롭지만 그럼에도 숨길 수 없었던 그 시절의 앳됨, 지금도 요루의 시선으로는 그 앳됨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찬찬히 자신의 얼굴을 훑어보고 있는 듯한 요루의 눈빛에 카렐의 눈썹이 험악하게 구부러졌다. 이제야 그의 인상이 더 사나워진 걸 눈치챈 요루는 황급히 입술을 뗐다. “아니, 진짜, 그… 나이 차이에 대해 생각한 것뿐이야.” 나이 차이랑 관련 있긴 하니까 이렇게 얼버무려도 괜찮겠지? 요루는 그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카렐은 납득한 눈치가 아니었다. “이제 와서?”

“…너 스킨십 고민했지.”

잠깐 생각에 잠겨있던 카렐은 결국 답을 맞혀버리고야 말았다. 카렐의 정답에 요루의 눈이 커졌다. 진짜 어떻게 안 거지. 요루의 반응에 자신의 대답이 정답임을 확신한 카렐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아니, 스킨십을 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진짜 그냥 나는 잘 모르겠어서….”

“얕보지마.”

정곡을 찔린 요루는 그에게 어떤 반박도 하지 못했다. 카렐의 고개가 그의 얼굴 쪽으로 기울어졌다. 위협적으로 가까워진 거리에 요루는 몸을 뒤로 빼고 싶었지만 이미 뒤통수가 문에 닿아있어서 도망갈 수가 없었다. 어색한 미소조차 짓지 못한 채 요루는 카렐의 화난 얼굴을 응시했다. 그의 숨결이 너무 가까이에서 느껴진다. 요루는 눈을 느리게 깜박였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아니, 세상에서 그들 둘만이 절단된 것처럼, 요루의 푸른색 눈동자엔 그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가 다가온다. 멈추지 않고 다가온다.

“요루… 어라?”

그리고 뒤에 있던 문이 열렸다. 문에 기대어있던 몸은 지탱대를 잃고 그대로 균형을 잃었고 그에게 다가가고 있던 몸도 기울어진 균형에 휩쓸려 같이 기울어졌다. 한손에 맥주를 한가득 들고 있던 린도만이 넘어지지 않았다. 요루는 넘어진 채 일어날 수가 없었다. 아니, 그는 손가락 하나조차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의 성격과 다르게 까칠하지만은 않은 그의 입술이 자신의 입술 위로 느껴졌다. 첫키스였다. 아니, 키스는 아니니까 첫뽀뽀였다. 요루의 사고가 멈췄다. 카렐도 순간 당황했던 건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멍하니 요루만을 응시하고 있던 그의 얼굴이 서서히 붉게 달아올랐다.

“미친.”

첫뽀뽀를 하고 내뱉는 말이 ‘미친’이라니. 린도는 바로 일어나지 않는 두 사람을 번갈아보았다. 카렐은 짜증을 내고 있긴 했지만 잔뜩 찌푸려진 그의 얼굴엔 묘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사고라고만 생각했던 린도의 얼굴에 깨달음의 빛이 스쳐지나갔다. “오….” 린도는 슬쩍 맥주를 들고 있던 손을 뒤로 뺐다. “이야, 내가 방해를 해버린 모양이네! 방해꾼은 이제 빠져줄게!” “리, 린도 형!” 퍼뜩 정신을 차린 요루가 그를 불렀지만 린도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사고가 또 멈춰버린 요루 대신 카렐이 그를 방안으로 잡아당겼다. 그는 문을 다시 닫았다. 여전히 카렐은 요루의 위에 있었다. 린도의 목격 장면과 다르게 요루의 몸이 아예 뒤로 넘어가진 않았긴 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좁은 건 똑같았다.

“젠장.”

‘미친’ 다음은 ‘젠장’이구나. 카렐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잡았다가 다시 풀었다. 그는 뭐라 말을 하려다가 다시 입을 닫아버렸다. 그대로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몸 위에서 일어나려는 카렐을 요루가 붙잡았다. 거리를 다시 좁히는 건 금방이었다. 카렐이 가까워진 거리에 반응하기 전에 요루는 그대로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문댔다. 맞닿은 입술에 바짝 서버린 그의 손이 느껴진다. 요루는 그의 손에 부드럽게 깍지를 끼며 입술의 틈을 찾아 헤맸다. 부드러운 혀가 입술의 열린 틈새 사이로 침입한다. 본능적으로 더 벌어진 그의 입술을 삼키자 이번엔 그의 몸이 뒤로 기울어졌다. 천천히, 천천히, 카렐의 뒤통수가 바닥에 닿았다.

첫키스는 알싸한 향이 나는 피톤치드 맛이었다. 그를 닮은 첫키스, 그와의 첫키스…

“어… 그냥…”

요루는 자신이 갑자기 왜 그에게 키스를 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뽀뽀로는 아쉬워서? 그것도 아니면 사실 내쪽에서 안달나있었던 걸까?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더듬거리는 요루에게 카렐은 그만 말하라고 했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붉었다. 그의 거친 손아귀가 요루의 뒷목을 잡아당긴다. 두 사람의 입술이 다시 맞붙는다. 입 안이 뜨겁다.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때, 카렐의 적안에는 눈을 감고 있는 요루가 맺혔다. 호흡을 빼앗긴다. 몸이 뒤로 더 밀리면서 카렐은 생각했다, 이자식 키스 왜 이렇게 잘하냐고. 손깍지를 끼고 있는 그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는 게 느껴졌다. 다시 눈을 떠서 그를 보니 그의 눈꺼풀도 그의 손처럼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한 번 더 해도 돼?”

입술을 제대로 떼지도 않은 채 요루는 젖은 목소리로 물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목소리다.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던 카렐은 마른 한숨을 쉬었다. 허락 굳이 안 받아도 되는데.

“다음 미션, 보수 높으면 나 데려가.”

“응!”

물론 그게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고. 바로 ‘응!’이라고 대답하는 요루를 보며 카렐은 허락 그냥 계속 받아야겠다고 생각해버렸다. 밀고 들어오는 그의 혀에서 과일향이 난다. 산뜻한 것보다는 단 맛이 더 강한 과일향, 키스도 지같은 맛이라고 생각하며 카렐은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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