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제연
*근데 아직 부화를 안 함 히메츠루는 제법 시간이 흘렀음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 용의 알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자연스럽게 용알을 지키는 사람은 닛코가 되었다. 알을 제 방에 가져다 둔 닛코는 많은 시간을 용알의 옆에서 보냈다. 곁에서 일을 보고, 조용히 책을 잃고, 한가롭게 휴식을 취할 때면, 알을 부드러운 손길로 가만히 쓰다듬곤 했다. 처음에는
등하불명 : 등잔 밑이 어둡다. 가까이 있는 물건이나 사람을 찾지 못할 때 쓰는 말. 늦은 밤이었다. 부키츠마루는 오랜만에 닛코와 지긋하게 마주하고 있었다. 닛코를 근시직에서 물린 지 꽤 시일이 지난 지금, 그가 불침번을 청해왔기 때문이다. 근래 장기원정이 잦은 닛코였기에, 그의 과로를 염려한 부키츠마루는 청을 거절하려고 했다.
어렴풋이 느껴지던 피냄새가 부키츠마루의 뒤를 쫓는다. 그에 붙잡힐까, 부키츠마루는 느린 숨이 벅차도록 다리를 움직였다. 두 번은 겪고 싶지 않았던 두려운 상황이 또다시 그를 찾아왔다. 1부대가 있던 자리는 그야말로 피바다였다. 그보다 더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소년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핏자국이 자욱했다. 깊은 부상으로 현현한 몸을
-산쵸모 어딘가 앳된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어떠한 감정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른다. 선택받아 깨워진 마음으로 목소리를 향해 날개짓을 한다. 그렇게 흑백의 공간을 가르고 도달한 곳에는 잠들어있던 저를 깨운 자가 있다. 청년이라고 부르기에는 어린 소년의 모습이 보인다. 그 진한 분홍색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산쵸모는 이 순간, 이
"지금 아빠한테 말 걸었다고 경계하고 있는거에요? 아, 너무 귀엽다. 아빠를 진짜 좋아하나 봐.“ 일반적으로 옆자리에서 인사도 없이 명백하게 자신을 째려보고 있는 아이가 있다면 부모에게 주의를 주는 게 보통이겠지만, 그 아비로 추정되는 자가 보기 드문 미남이래서야 나던 화도 눈 녹듯 사르르 녹아 없어지는 법이다. 닛코는 자신의 반대편에서 눈을
부키츠마루 이치몬지는 제 집단인 이치몬지 일가에게 숨기는 것이 없었다. 묻는 말에는 다 대답을 하기 마련이었고, 주인과의 일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여, 이치몬지들이 모여있으면 사니와와 부키츠마루의 이야기가 도마에 오르곤 했다. "주인은 우리가 모이는 걸 두려워했으니까, 심통이 난 것도 당연한 거다, 냐.“ "심통이 난 듯한 얼굴로는 보이지 않았다
"부키츠 형님.“ 친애하는 아우의 드문 호칭에 눈을 살짝 동그랗게 뜨던 부키츠마루 이치몬지가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근시를 정하는 것은 주인의 뜻이다, 하세베. 내게 말해봐야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 "크윽....기껏 형님이라고 까지 불렀줬건만...!!“ "그래. 듣기 좋았다 아우여. 앞으로도 꼭 그리 부르기를 희망한다.“ "
동이 트자마자 뜬 닛코는 한쪽 팔로 턱을 괴고는 이불 속의 소년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었다. 거의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아주 느릿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며 잠들어있는 모습은 평상시의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아직은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의 볕에 비춰진 그 모습을 보며 느끼는 감정의 이름인지 닛코는 아직 알지 못한다. 남자다운 기백을 은은
닛코 이치몬지가 빈사 상태로 혼마루에 실려왔다. 부키츠마루는 수리실로의 걸음을 재촉했다. 혼마루 복도를 가로지르는 사니와의 모습에 남사들의 시선이 소년의 뒤를 좆았지만, 누구 하나 사니와를 붙들고 질문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덜덜 떨면서 숨이 막힐 듯한 얼굴을 한 소년이 수리실에 도착하자, 수리실 안에 상처투성이의 닛코를 눕혀두던 산쵸모가 코토
"닛코, 너는 너의 생을 살아야한다." 영원히 소년일 이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한다. 그에 어떻게 반응할지 갈등하던 닛코는 헛웃음을 지었다. 평생 네 입에서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말을, 네가 한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의심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진짜 네가 돌아온 것인지, 나의 그리움이 만들어낸 환영인지, 드디어 내가 미쳐버리고 만 것인지. "알
부키츠마루는 조금 의아한 기분으로 제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딱딱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주인." "듣고 있다." "어깨를 보여줄 수 있는가." 부키츠마루는 별다른 망설임 없이 겉옷을 벗고는 셔츠 단추를 풀어 어깨를 드러냈다. 그렇게 드러난 어깨에는 커다란 손자국 같은 시퍼런 멍이 남아있었는데, 그를 보며 닛코는 면목 없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