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쵸부] 매와 작은 새
어렴풋이 느껴지던 피냄새가 부키츠마루의 뒤를 쫓는다. 그에 붙잡힐까, 부키츠마루는 느린 숨이 벅차도록 다리를 움직였다. 두 번은 겪고 싶지 않았던 두려운 상황이 또다시 그를 찾아왔다.
1부대가 있던 자리는 그야말로 피바다였다. 그보다 더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소년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핏자국이 자욱했다. 깊은 부상으로 현현한 몸을 잃은 채 본체들만 덩그러니 붉은 액체에 잠겨있는 모습들이 처절하기까지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파괴된 검은 없었다. 부키츠마루는 여섯 자루의 검을 하나하나 주워 끌어안았다. 그리고 헐레벌떡 달리기 시작했다. 적들을 모두 격퇴했기 때문에 천만다행으로 추격도 없었다. 그렇게 게이트에 닿기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억겁과도 같았는지 모른다.
불안에 억눌린 소년은 달리면서 온갖 잡념에 시달렸지만, 게이트를 넘어 혼마루에 닿고 나서는 안도했다. 누구도 파괴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말리는 것에 같이 출진하겠다고 고집부려서 다행이다, 생각보다 침착하게 바로 움직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와중에 저 중에 네가 없어서 다행인 것 같은, 날것의 생각마저도 들어서.
안도와 함께 긴장이 풀려 주저 앉아버리고만 소년은 이상기류를 느낀 남사들이 나와 그를 부축해줄 때까지, 그저 멍하니 품 안의 검들만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
산쵸모는 의외성이 주는 충격에 대하여 생각한다.
일상적인 출진에 일상적이지 않았던 건, 함께 출진한 작은 새와 그로서는 처음으로 마주한 검비위사의 존재였다.
검비위사, 의지를 잃고 그저 파괴할 뿐인, 이질적인 부류의 역사의 수호자라 불리는 존재. 살의로 가득찬 안광에 절로 피가 들끓었다. 허나 그것도 기세 뿐, 연속된 전투로 인해 상처 입고 지친 몸으로서는, 적을 쓰러뜨리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깊은 부상을 입은 동료들의 현현이 하나하나 풀려가는 것을 보며, 산쵸모는 자조했다. 지켜야할 것을 두고, 이게 뭐하는 추태인가. 이리도 무력할 수 밖에 없는가. 마지막으로 현현이 풀리기 전, 산쵸모는 제 작은 새를 바라보였다. 아연한 얼굴이 마치 송장과도 같았다.
물건이 파괴되는 것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적어도 사니와는 안전하게 본성으로 돌아가야했다. 그러지 않으면 제 할 일을 못 한 검날에 한이 맺혀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게 될 것이었다.
"이런, 말로 일 줄은......“
뭐라 할 말이 없군. 말을 잇지 못한 채 인간의 몸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서 잠시 암전, 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육을 잃고 나서 본체 상태로 돌아오니, 의식만은 선명했다. 그러기에 산쵸모는 느낄 수 있었다. 소년의 움직임에 따라 달그락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있는 다른 검들도 같은 것을 보고, 느끼고 있을 터였다.
작고 연약한 것이, 여섯의 검을 끌어안고 필사적으로 달리는 모습이 그려졌다. 보통의 인간보다 느리게 뛰는 심장이 터져나가도록, 숨이 벅차오르도록, 넘어져도 주저 없이 다시 일어나서, 멈추지 않고 뛰는 소리, 소리, 소리.
겨우 익숙한 기운의 본성에 돌아와서도 끌어안은 검들을 놓지 않고 주저앉은 품의 온기같은 것을 선명한 의식으로 산쵸모는 느꼈다.
보호해야하는 존재에게 지킴받았다. 그것은 이치몬지의 수장에게는 수치스럽고 불명예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산쵸모에게는 지독히도 강렬하고 인상적인 일이었다. 그는 영영 그 진한 분홍색 눈동자가 지은 아연한 표정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 긴박한 숨소리가, 땀에 미끄러질새라 부둥켜 끌어안던 감각이, 끊임없이 뛰던 맥박이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한순간의 지나가는 감정으로만 두고 싶지 않은 산쵸모는 어떤 이름으로 붙잡아둬야할까 생각하고는, 금방 결론을 내렸다.
원래도 제 일부처럼 느껴 아끼고 소중히 여겼던 작은 새다. 반려 관계인 한 쌍은 본디 한 몸과도 같은 것이다. 제가 나가 있는 동안 둥지를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주인이라는 것을 늦게나마 깨닫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완벽한 관계란 말인가. 스스로가 내린 결론이 만족스러워 이치몬지의 수장은 웃음을 터뜨렸다.
매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여우에게는 이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가 없다.
어쨌거나, 산쵸모는 제 작은 새에게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걸 평범하게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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