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쵸부] 산쵸모와 부키츠마루
-산쵸모
어딘가 앳된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어떠한 감정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른다. 선택받아 깨워진 마음으로 목소리를 향해 날개짓을 한다. 그렇게 흑백의 공간을 가르고 도달한 곳에는 잠들어있던 저를 깨운 자가 있다.
청년이라고 부르기에는 어린 소년의 모습이 보인다. 그 진한 분홍색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산쵸모는 이 순간, 이 장소에서 눈을 뜨게 된 이유를 깨닫고 납득한다. 하여 입을 열어 제 '주인'되는 자에게 말을 걸었다.
"아아, 작은 새가 불렀나. 우에스가 가 수선 35자루 중 하나, 무명의 이치몬지. 호칭은 산쵸모다. 내 집의 새들은 모여있나?“
아니다. 주인 되는 자가 아니다. 눈과 눈이 마주친 순간부터 산쵸모는 알 수 있었다. '저것'은 제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다. 작고 연약한 것, 그리하여 지키는 것이 아니라 보호해야하는 것. 제 날개 밑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할 것이 길을 잃고, 자리를 잘못 찾은 채로 헤매고 있노라. 산쵸모는 분명 그리 느낀다.
"사니와, 부키츠마루다.“
고저 없는 목소리로, 원하지 않는 질문에 답하지 않는 것이 단호하다. 그 모습을 보며 산쵸모는 소리 없이 웃었다. 선택받아 깨워진 마음은 원하든 원치 않든 소년을 향해 흘러갈 것이다. 어리고 애처로운 것이 서 있는 둥지는 어떤 모양새가 되련가, 일그러진 모양이라도 날개를 모두 모이게 될 터. 이미 이곳은 그의 둥지였으니.
소년이 등을 돌려 멀어진다. 산쵸모는 웃음을 지으며 그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
산쵸모는 그 기묘한 혼마루에 빠르게 적응했다. 이미 이치몬지의 새들이 산쵸모를 제외하고 모여있었던 덕분이기도 했다. 은거할지라도 정정한 어르신, 왼 날개와 오른쪽 날개, 새끼 고양이까지. 제 소중한 일가의 일원들이 모여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움을 느끼는 가운데, 산쵸모는 자신의 주인을 보았다. 푸른 머리카락과 짙은 피부. 무표정한 얼굴을 혹자는 딱딱하다고 평할지 모르지만, 산쵸모에겐 어리고 앳된 얼굴일 뿐이었다.
"코토리.“
"......“
작은 새는 작은 새라 불리는 것을 싫어했다. 불평의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상대하기 싫다는 듯 입을 다물어버리는 것이다. 턱을 매만지며 대답을 기다리던 산쵸모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주인? 하고 부르자 그제야 무슨 일인가. 하고 고개를 돌린다. 새끼 고양이-난센 이치몬지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앙탈부리는 것만 같은 모습에 산쵸모는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런 그의 얼굴을 보는 소년의 미간은 이상한 것을 본다는 듯이 찌푸려져 있었다.
"나를 싫어하는가?“
부키츠마루는 대답을 피하는 일이 없다. 거짓말도 못 한다. 산쵸모에게 밀리거나, 지는 듯한 것도 참지 못한다. 분명히 대답하겠지. 그는 즐겁게 기다렸다.
"'산쵸모'는 싫어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싫어하는 것은 '이치몬지의 수장'인가?“
이번에는 대답이 없다. 정곡을 찔린 듯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것이 귀엽기 그지없다. 괴롭히려는 의도는 아니었기에 산쵸모는 소년에게서 시선을 돌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푸른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 날이 참 맑았다. 이런 맑은 날씨에는 아무리 먼 곳에 있는 것도 눈앞에 있는 것처럼 훤히 보일 터였다. 언뜻 보면 일그러져있는 것 같은 제 작은 새의 마음 같은 것도.
"나는 주인을 제법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인연들이 사람의 몸을 가지고 현현하여 얼굴을 마주하고, 본체를 맞대고, 함께 웃음을 터뜨리고, 여유롭고 긴박한 시간을 보낸다. 이 둥지는 산쵸모에게 생각보다 더 귀중한 장소였다. 그런 곳을 만들어준 자를 홀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랑스럽다고도 생각한다.“
처음 봤을 때부터, 제 일부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이리 어리고 앳되어, 작고 연약한 것이다. 애처로운 것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사랑을 느끼지 않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보고 있으면 조마조마하고, 보지 않고 있으면 생각난다. 다른 것에 관심을 줄 때는 서운하기도 하고, 솔직하게 굴때에는 마음이 충만해진다. 그러니, 사랑스럽다 라고 표현할 수밖에. 작은 새는 솔직하다가도 입을 다물어버렸지만, 산쵸모는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말하기로 했다. 그것이 이끄는 자의 도량이기도 한 것이다.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부키츠마루는 표정을 구기고 있었다.
"징그럽다.“
"하하. 그런 얼굴을 하니 제법 제 나이 같군, 코토리.“
여우가 어디로 숨은 들, 매의 눈을 벗어날 수 있겠는가?
부키츠마루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산쵸모는 그저 웃었다.
- 카테고리
-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