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부] 꿈의 파편1
<여우와 포도의 꿈>을 배경으로 하는 외전
동이 트자마자 뜬 닛코는 한쪽 팔로 턱을 괴고는 이불 속의 소년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었다. 거의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아주 느릿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며 잠들어있는 모습은 평상시의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아직은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의 볕에 비춰진 그 모습을 보며 느끼는 감정의 이름인지 닛코는 아직 알지 못한다. 남자다운 기백을 은은하게 내뿜는 분위기에 평소에는 잊고 있기 마련이었지만, 소년답게 젖살이 아직 완전히 빠지지는 않은 뺨과 긴장이 풀려 느슨하게 늘어진 단단한 눈매를 보고 있노라면 무심코 웃음이 새어나오고 만다. 그저, 이리도 가까운 곳에서, 같은 이부자리 안에서 소년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즐겁고 기꺼웠다.
간밤의 일은 닛코로서는 충동적이면서도, 오랫동안 갈구해왔던 행위였던 것 같기도 했다. 집착의 빛은 이리도 선명한데, 감정의 이름이 사랑인지, 증오인지, 질투인지, 동경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 감정에 따라오는 행위들을 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이름을 부르고, 눈을 마주치고, 하루에 한 번씩 입술을 맞대고...그런 나날이 자연스럽게 지난 밤의 정사로 이어졌다.
- 주인은 연약하니, 내가 인기도록 하겠다.
밤의 밀회를 청하는 명 아닌 명에, 소년은 딱히 거절하지 않았다. 다만 다소 엉뚱하게도, 저보다 머리가 하나 반은 더 큰 사니와의 몸을 걱정하며 스스로 안기는 쪽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 말을 들은 닛코는, 새삼스럽게 자기보다 소년이 훨씬 더 남자답지 않을까 생각했다. 인간과 도검남사이니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연약, 연약인가. 그래도 성인 남성의 몸이다. 그런 그를 쥐면 꺼질까, 불면 날아갈까 취급하는 부키츠마루의 말은 언제나 닛코를 즐겁게 했다.
소년의 짙은 피부 위에는 꽃이 피어난 것마냥 붉은 자국이 남아있었다. 소년의 몸 어디 한군데 입술을 대지 않은 구석이 없었던 것 같다. 어깨를 깨물었을 때는, 드물게 소리를 냈던가. 왜 그런 곳을 깨무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던가.
"주인.“
"일어났나.“
품 안의 소년이 예고 없이 눈을 떴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분홍빛 눈동자에, 닛코는 턱을 괴고 있던 손을 내려 부키츠마루의 뺨에 손등을 대었다. 간밤의 열기가 어디론가 사라져, 미지근해졌다.
"무슨 생각을 하지.“
"내가 안기는 쪽이라 다행이었다. 주인이 내게 안겼다면 사흘은 일어나지 못했을 테지.“
"많이 힘든가?“
"수리가 필요할 정도는 아니다.“
"부키츠마루.“
소년의 이마에 입술이 닿는다. 미끄러지듯 얼굴을 타고 내려간 입술이 소년의 부은 눈가를 훔치다가, 콧등에 떨어졌다가, 입술에 도착했다. 쪽 소리를 내고는 떨어진 주인의 모습에, 멍하니 뭔가를 생각하면 부키츠마루가 고개를 들어 닛코의 맨 어깨에 이를 세웠다. 아주 살짝, 깨물고 떨어지자 닛코가 간지럽다는 듯이 웃음소리를 흘렸다.
"좀 더 세게 깨무는 편이 좋은데.“
"주인의 몸은 연약하다.“
"네 생각만큼 연약하지는 않다.“
부키츠마루가 베개 맡을 더듬어 닛코의 안경을 손에 쥐고서는, 고개를 숙이라는 듯 눈짓했다. 부키츠마루가 씌워준 안경을 쓰고 좀 더 명료한 눈빛으로 제 검을 바라본 닛코는 그럴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혹여 감기가 들까 부키츠마루의 위로 이불을 폭 덮어버렸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은 소년이 이불 속에서 주인에게 질문해왔다.
"그래서 주인, 알고 싶었던 건 알게 되었나?“
사랑일까, 증오일까. 질투일까, 동경일까.
배를 맞대었는데도 아직도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아직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어렵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어느 것 하나라도 가까운 것을 잡아내면 좋겠는데. 그리 생각하는 닛코의 귓가에 이불 속에 파묻힌 소년의 말이 파고 든다.
"너무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의 모든 것은 주인의 것이니.“
그 말을 들은 닛코는 이불 채로 소년을 끌어안았다. 이불 안의 소년이 답답하다고 볼멘소리를 해왔지만, 그저 닛코는 하나만을 생각했다.
사랑이면 좋겠다. 사랑이면 참 좋을 것이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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