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토우] 曖昧

23.06.27 / 씬은 없는데 소재가 그쪽 결임

호흡곤란 by 멍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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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불러주실래요?


 그런 목소리가 들렸던 것도 같다.

曖昧

나츠메 미나미x이누마루 토우마

 기지개하는 것처럼 긴 침음을 뱉으며 푹신한 침대에서 눈을 뜬 토우마는, 반쯤 감은 눈으로 햇빛이 은은하게 들어오는 커다란 창을 바라보았다. 밝기를 보아하니 정오까지 간 것 같지는 않고, 대충 일곱, 여덟 시쯤일까. 늦잠을 잔 것 같지는 않으니 다행이라 생각하며, 제 손을 들어 올려 마른 얼굴을 쓸었다. 가만히 누워있자니 참새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생각하며 무심코 천장을 바라보았는데.

 뭔가 이상했다.

 어라? 우리 집 천장이 이랬던가?

 눈꺼풀을 두어 번 들어 올렸다가 내렸다가를 반복하자, 그제야 위화감이 피부로 느껴졌다. 아니, 모르는 천장인 게 당연했다. 침대도 저의 것이 아니었고, 커다란 창문?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어쩐지 채광이 지나치게 좋다고 생각했다. 베개와 이불이 훨씬 푹신하다고 생각한 것도 그만큼 저가 지쳐있었거니, 하고 생각했더만 정말로 다른 집이었단 말인가. 스스로가 처한 환경을 깨닫고 나니 골이 아파지는 것 같았다. 아니, 진짜로 아팠다.

 “……잠깐.”

 진짜로 아프다고?

 이누마루 토우마에게 편두통은 없다. 감기에 걸릴 만큼 면역력이 망한 몸도 아니었고, 걸릴만한 짓을 한 기억도 없다. 그런데도 두통이라면,

 “…진심으로? 숙취?”

 정신이 나갔지. 다음 날이 오프라고는 하나 정말 지독하게도 마셨던 모양이었다. 뭐가 좋아서 그렇게나 마셨지? 혼자 그만큼이나 마셨다고?

 이를 과거형으로 칭하며 제삼자처럼 의문형을 붙여 생각하는 이유는, 그래, 정말로 전날 밤에 대한 기억이 거의 소거되었고, 지금의 자신에게 지금 이 상황이 정말 남의 일처럼 느껴졌기에 좀처럼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셨으면 마시고 나서 곱게 집이나 들어갈 것이지, 여긴 또 어디란 말인가. 의아함을 얼굴 표면으로 올려보낸 토우마는 느릿하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정확히는, 일으키려고 했다. 두통 이상으로 밀려오는 원인 불명의 요통이 아니었다면 일어나고도 남았을 터인데. 어렵사리 내뱉은 숨을 다시 몰아쉬며, 가까스로 상체만을 침대 헤드에 기대는 것에 성공했다.

 ……자, 이제 지난밤을 떠올려 보도록 하자.

 “……일어나셨네요.”

 진짜 그럴 생각이었는데. 토우마가 생각할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들려오는 익숙한 어조에, 그대로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모르려고 해도 모를 수가 없다. 목소리의 주인은 같은 그룹의 멤버이자, 저가 속한 그룹─주르의 소중한 작곡가인 나츠메 미나미였으니까. 하지만 그는 어쩐지 떨떠름한 표정으로, 간이 주방으로 보이는 곳에서(이때, 이곳이 꽤 괜찮은 호텔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한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미나미는 평소 이상으로 조심스럽고, 다가오기를 주저하는 표정을 하고 있었기에. 토우마는 저의 어딘가 많이 이상한 몸 상태를 잊은 채 그를 향한 걱정부터 얼굴에 띄웠다.

 "그런 얼굴로 보지 마세요. 다친 곳도, 아픈 곳도 없답니다. 되려, 그, ……. 이누마루 씨야말로 괜찮으신가 싶어서요."

 내가 내 몸 상태 얘기를 했었나? 아니면, 내 얼굴이 그 정도로 심각하다는 걸까. 미나미가 독심술을 하는 것처럼 토우마의 상태를 파악해 오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으니 이제와서 새삼스러울 건 없었지만, 그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지난밤에 대해 뭔가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이 스친 토우마는 약간의 안도감을 담은 채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다행……아니, 잠깐. 묘하게 내 목 갈라지지 않았어? 이 정도로 마셨단 말이야?! 거기다가, 상황을 보아하니 미나까지 잡고 달린 모양인데……. 그, 진짜 미안! 가만 생각해 보니 미나랑 한참 잘 마셨던 건 기억이 나거든? 그런데, 이후에 무슨 추태를 부렸는지는, 그, 기억이…없어서."

 "……. 기억이 없으시다고요?"

 "……아니, 잠시만! 떠올려 볼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 봐."

 굳이 떠올리려고 하지 않으시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하고 낮게 읊조리는 그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 같지만, 자신의 추태를 모른 채로 같은 팀 멤버(그것도 한 살 어린!)에게 그만한 짐을 짊어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잘못한 것에 대해선 확실히 기억해 내고, 제대로 사과를 해야 맞는 거지. 적어도 토우마는 그렇게 생각하며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다.

 내일(그러니까 오늘.)이 토우마의 오프였고, 미나미는 저녁 스케줄 하나만 있는 꽤나 널널한 날이었다. 드문 일이기도 하고, 마침 저녁을 먹지 않았다는 미나미의 말을 듣고 '그럼 뭔가 먹으러 갈까?' 하며 적당한 식당에 들어갔던 거 같다. 

 나베를 먹었던가. 뭔가 따뜻한 국물이 있는 걸 먹고 있자니 문득 술이 마시고 싶어져서 미나미의 동의 하에 가볍게 반주를 걸쳤고…. (이때까지는 꽤 기분 좋게 올라온 상태였던 것 같다.) 서로 스케줄이 없는 시간이 겹치는 것도 드문 일인데, 간만에 마시러 갈래? 하는 흐름이 되었던 것까지는 확실하게 떠올랐다.

 문제는 딱 거기까지라는 것이다. 그 이후로 바에서 한 잔씩 걸치면서 즐겁게 담소를 나누었다는 건 기억이 나지만, 무슨 얘길 했는지, 얼마나 얘기했는지는 물론이요,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도 영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놈의 술이랑 연을 끊던가 해야 하는데….

 "아."

 잠깐. 

 떠올려서는 안 되는 장면이 스쳐 지나간 것 같았다.

 군데군데 끊겨 있는 기억의 편린들에 시트를 그러쥔 저의 손, 닿은 손의 열기, 좁혀질 것 같지 않았던 두 사람의 거리가 숨을 쉬는 것도 잊혀질 만큼의 열기를 품고 있었다는 것과, 그걸로 그치지 않고…….

 "표정을 보니, 어느 정도는 떠올리신 모양이네요. 그래서 기억하지 않는 편이 좋을 거라고 말씀드린 건데."

 "……이유는, 납득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기억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그, 그런 거까지 해놓고 기억 못 하면 내가 진짜 나쁜 놈이잖아…!!"

 "아뇨……. 엄밀히 말하면, 피해자는 당신이라고 생각해서. 물론 계속 기억해 내지 못하신다면 심술 좀 부릴 생각이었지만요."

 "그런 무서운 소릴 아무렇지 않게……. 아니, 피해자라니? 난 딱히…."

 "이누마루 씨의 상태를 보면 감이 오실 텐데요. 나름대로 이성은 있었던 거 같은데……. 아무래도, 조절하는 게 조금 힘들었어서."

 그렇게 말하는 미나미의 얼굴은, 여유가 흘러나오는 평소와 달리 묘한 초조함을 담고 있었다. 그는 어쩐지 계속 토우마의 눈치를 보는 듯했고, 그의 기분을 살피는 듯 조심스러웠기에 다시 입을 열려던 토우마는……. 무언가를 깨닫고, 다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거구나~….

 아니 잠깐. 내가 아래야?!

다른 것보다 그걸 더 믿을 수 없었다. 그야 뭐, 음, 전에도 딱히 위였던 적은 없었던 것 같지만. 미나미가 상대라면 자신이 위였을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해 버렸기 때문일까. 자각하고 나니 몰려오는 현실감에 다시 머리가 지끈거려 오는 것 같았다. 현자 타임이라고 불리는 그것과 함께, '여기까지 왔으면 내가 미나를 책임져야' 같은 생각이나 하고 있던 자신에게 실소를 흘렸다. 누가 누구를 걱정하고 있던 거야? 아니, 아래라고 해도 역시 책임을 져야겠지? 그런 구시대적 발상 속에 잠겨가고 있는 토우마를 끌어 올린 건, 아니나 다를까 미나미였다.

 "괜찮아요. 이걸로 이누마루 씨한테 뭘 요구할 생각도 없고, 좋은 기억도 아닐 테니 없던 일로 해도 되니까요. 물론 없던 일로 한다고 해도 정말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지만…. 저희 둘 다 많이 취해있었고, 지극히 본능적인 행동이었고……."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한 화법을 쓰던 그답지 않게 망설임이 가득한 말이었다. '없던 일로 해도 된다'는 말은 분명 거짓이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개운한 답이 되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이내 토우마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좋은 기억이 아닐 것이다……. 그야 평범한 경우는 아니다. 미나미랑은 딱히 교제하는 사이도 아니고, 흔히 말하는 썸을 타는 관계도 아니었으며, 굳이 따지면… 아니, 역시 소중한 동료라는 인식 정도다. 그건 미나미도 마찬가지일 것이리라.

 그렇다면 역시 이건, 미나미한테 더 손해인 경우가 아닌가?

 전에 비해서 미나미를 비롯한 멤버들이 토우마에게 다소 친근(?)하게 구는 경향이 생기긴 했으나 어디까지나 그뿐이다. 셋 다 솔직하지 못한 녀석들이라고 생각은 해도, 자신을 싫어하진 않는 것 같다고 여겨도 그들의 본심이 어느 정도인지, 어느 정도의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니까.

 그러니 굳이 따지면, 내 애정이 더 크지 않을까. 어렴풋하게 추측하면서 토우마는 느릿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이런 상황에, 누군가 들으면 어이없어 할 것 같은 생각을 하나 서술하자면, 토우마는 지난밤이 딱히 싫지 않았다. 온전한 기억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싫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오히려 그 이상으로.

 동료라고 하는 로맨스의 '로'도 담겨있지 않은 관계임에도 몸을 섞은 게 '나쁘지 않았다' 이상의 생각을 불러온다면, 이건 아무래도 문제겠지…. 딱히 그런 파트너도 아니고, 그런 관계가 되는 것도 사양이었다. 그러니 '좋았다' 같은 말을 내뱉을 수는 없고, 언제나처럼

 "그……. 미나가 후회한다면, 그렇게 해도 괜찮고."

 자연스럽게 주도권을 상대에게 넘기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뒤에 마주하게 될 미나미의 표정은 어느 정도 각오한 바였다. 그는 곧 미묘하게 미간을 좁히더니, 느릿하게 한숨을 내쉬며 토우마가 있는 침대와는 반대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고, 내렸다.

 "……글쎄요. 후회하는 점이 있다면, 서로 제정신이 아닐 때 당신을 취한 것뿐이라서."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대답에 저절로 식은땀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후회한다는 건가? 그런 거치곤 일부만을 부정한 형태고, 후회라는 단어를 담은 시점에서 후회하긴 한다는 것 같기도 하고……. 이 녀석들의 화법은 늘 토우마를 곤란하게 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건 역시 귀여운 수준이었던 것 같다. 이런 사안에는 좀 확실하게 얘기해 주면 좋겠는데!

 꽤나 한참을 침묵과 침음으로 보내다가, 이내 토우마 쪽에서 비장한 얼굴과 함께 미나미를 바라보았다. 다소 긴장한 듯한 미나미와 눈이 마주치면, 느릿한 웃음을 머금고는 언제나처럼 말끔하게 내뱉고 마는 것이다.

 "일단 밥부터 먹고 생각할까!"


사람 맥 빠지게 하는 건 천부적인 재능일까. 토우마가 내뱉은 그 말에 저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평소처럼 기가 찬다는 얼굴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나미는 그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선 어떤 결론도 낼 수 없을 것이란 걸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 사람한테 뭐든 먹이고 시간을 버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저 '상관없지만, 한 번 더 씻으시는 게 좋을 거예요.'라고 덧붙이는 것이 미나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다. 그래도 어떻게 뒷처리를 하긴 했는데, 해본 적 없는 일을 능숙하게 했을 리가 없으니 만약을 위해서. 리더가 배탈로 고생하는 걸 보게 된다면, 여러 의미로 조금 죽고 싶어질 것 같았으니까. (물론 어디까지나 비유다.) 거기다 그런 건 본인이 하는 게 가장 확실하지 않은가?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토우마는 잠시 의아한 듯이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다가,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이 헛기침하며 그 배려에 응했다. 

 그가 샤워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미나미는,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숨이 트였다. 토우마가 저를 거부한다면, 밀어내게 된다면 그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 자신을 괴롭힐 것 같았기에 선택권을 그에게 쥐여주었다. 이런 식으로 타인에게 선택권을 넘기는 건 익숙하지 않았기에 말이 매끄럽게 나가진 못했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으니까. 중요한 건, 그가 정신을 차리고도 저를 밀어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

 조금 기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건 나쁜 마음일까.

 리더를 향한 마음을 품은 지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언제부터 좋아했다, 같은 걸 인식할 여유 같은 건 없었으니까. 그만큼 저는, 주르는 절박했고, 아등바등 악을 쓰며 살아왔다. 그 행보가 마냥 옳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치열했다는 것만큼은 바로 내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변명이 하나 있고, 또 하나는 상대방에게 있다. 

 지나치게 사람이 좋고, 사람을 좋아하고, 단단하지도 않은 그 벽이 한 번 허물어지면 잘 따르기까지 한다. 그런 토우마였기 때문에 미나미를 포함한 다른 두 사람도 그를 의지하며 따라온 거겠지만, 리더로서는 정말 모자람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연인으로서는 미묘한 이야기다. 

 그야 사람 좋고, 배려심도 있고, 매너도 좋은데다가 타인을 세심하게 신경 써 주는 사람이니 막상 사귀고 나면 또 다를지도 모르지만,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누구에게나 신경 써 주는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직장 동료로서는 훌륭한 인품일지 몰라도 연인으로선 정말, 정말 백번이고 천번이고 생각하게 되는 조건이다.

 게다가 나츠메 미나미는, 더 이상 뒷전의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연인이라면, 자신을 우선으로 생각해 주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는 '다행'이라고 치부되어야 할 일이었다. 한 살 차이라고 해도 성인이라는 간격은 생각보다 컸고, 법적으로 혼례를 치러도 문제없는 나이라고는 하나 이쪽은 성이 같기도 하고, 그와 함께 술 한 잔도 기울일 수 없는 상태에서 만났으니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막내가 성인이 되는 걸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을 보며, 세월이 야속하다고 느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뭐, 애초에 토우마와는 한 살 차이였고, 따라서 술을 마실 수 있게 되는 것도 금방이었으니 야속하다고 말할 것도 없긴 하지만.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다'가 통하지 않게 되는 것이 문제가 되어버린다. 저를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달리 존재하지 않으니, 개인의 양심과 절제만이 최선이었다. 

 그 사람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면 쉬웠을 텐데. 항상 제 가슴은 저를 따라주는 적이 없다. 지금만 해도, 문 너머로 울리는 샤워기의 물줄기 소리가 저를 또다시 어지럽히는 것 같은데.

 "……적당히 고기면 되려나."

 본래 같으면 밖으로 나가거나 토우마가 샤워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겠지만, 그와 맑은 정신으로 메뉴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어려울 것 같았다. 고삐가 한 번 풀리니까 진정할 생각을 안 하는구나. 저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던가. 

 낮은 한숨을 내쉬며 객실 내선 전화의 수화기를 들어 적당한 메뉴를 골랐다. 일어나자마자 고기는 거북할까 싶었지만, 그는 분명, 맛만 있다면 태연하게 접시를 비울 것이리라.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풍경을 애써 머릿속에서 비워내며 주문을 마치고는, 간이 테이블 옆에 있는 의자에 몸을 앉혔다. 

 정말 어렵다.

 마음을 전할 생각도 없었는데, 그보다 더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으니.

 "술이랑 연을 끊던가…."

 우연한 결과라고 해도 마음은 달리기 시작했다. 미나미는 브레이크를 밟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때'도 그 사람이 사라졌기 때문에, 경로를 이탈하고 이리저리 부딪히다가 겨우 멈췄을 뿐이다. 조금 더 단순하게 생각하자면, 고급 요리를 먹어보지 않은 이들은 그 존재를 부러 떠올리지 않지만, 한 번 입에 넣어버린 이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해 갈망하게 되지 않는가. 지금의 그가 딱 그런 처지였다.

 토우마는 기억하지 못하는 지난밤을 떠올리며, 미나미는 제 입술을 검지 손가락으로 가볍게 눌렀다. 그 위에 온기가 아닌 열기가 남아있다. 이건, 평생 지워지지 않을 화상일 것이다. 

 바에서 가볍게 한잔 기울인 것까지는 토우마의 기억대로가 맞았다. 그 이후로도, 사실 이렇다 할 만큼 분위기가 반전될 만한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어서…. 그래서, 잠시 긴장이 풀렸던 것 같다. 술이 약하지도 않고, 미나미 스스로가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있었으니까.

 계산을 마치고(기어코 토우마가 내겠다고 하길래, 후에 정산할 생각으로 그러라고 했다.) 나서니 그가 바로 크게 휘청거렸다.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바로 그를 단단히 잡고, 바가 위치하고 있는 3층에서 두 층 더 위로 올라갔다. 위는 바로 옥상과 연결되어 있긴 하지만 문이 잠겨있어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도 모두 아래로 내려가므로 남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그건 여러모로 훌륭한 판단이 되었다.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며 연신 괜찮다고 하던 그를, 그저 벽에 기대게 도와줄 생각이었다. 술이 조금 깰 때까지 기다리거나, 뭣하면 토라오를 부르든지 택시를 찾을 생각까지도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작은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면, 벽에 기대면서 흐트러진 토우마의 머리를 정리해 주려고 손을 뻗었던, 그 별거 아닌 행동이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과정이 되어버렸다는 것일까.

 가볍게 그의 머리를 넘겨줌과 동시에 떨어지려는 미나미의 손에, 토우마의 얼굴이 닿았다. 그는 저의 손에 가볍게 얼굴을 대며, 미나 손은 시원해서 좋네-. 같은 말이나 하고 있었다. 그로서는 당연히 큰 의미 없는 말일 것이고, 그저 평범한 애정 표현일 것이다.

 이 상황에서, 앞서 변명했듯이 한 번 더 변명을 늘어놓자면, 정말 제대로 긴장이 풀려있었다. 술이란 그런 거 아니던가? 정신을 잡고 있지 않으면 금방 속을 드러내게 되어버린다. '나'를 잃어가는 과정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그래서. 잠시간 충동에 잡아먹히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닐 것이다. 아니, 필시 불가항력이라 불리는 녀석이다.

 그렇게 입술이 닿았다. 

 겹쳐지고,

 당연한 수순처럼 얽혔다.

 그래도 강압적이진 않았다고, 그것만큼은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토우마 쪽에서 밀어내려면 얼마든지 밀어낼 수 있었을 것이고, 술 때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도 밀어내려는 감각이 느껴졌다면 당연히 멈췄을 것이다. 욕망보다도 그의 곁에 오래 남아있고 싶었으니까, 그렇기에 맞닿은 입술이 포개어 겹치는 순간까지도 그의 기색을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이도 오래 가지는 못했다. 밀어내기는커녕,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입을 벌려 혀를 얽어오는 것은 물론이요, 그쪽에서 먼저 한쪽 팔을 미나미의 목에 둘렀기 때문에. 

 "미나?"

 그리고 지금 그는, 멀끔하고 태연한 얼굴로 저를 바라본다. 표정이 심각한데? 그렇게 덧붙이면서.

 "역시 이누마루 씨 때문이 맞는 것 같아서요."

 "가, 갑자기?!"

 그의 머리카락에서 느릿하게 떨어지는 물방울로 시선이 돌아갔다. 느긋하게 말려도 괜찮았을 텐데, 저를 신경 써서 일찍 나온 걸까. 그 행동이 되려 저를 말라가게 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아마 평생 모를 것이다. 

 미나미는 아무 말도 없이 그를 응시하고는, 느릿하게 걸음을 옮겨 그의 앞에 섰다. 두 사람 사이에 긴장이 생겨났다. 이런 변화도 이제는 기쁘게만 느껴지다니.

 천천히 뻗은 손이 토우마의 머리카락으로 향했다. 그의 머리카락에 맺혔던 물방울이 저의 손을 타고 떨어진다. 가볍게 내린 저의 눈동자 위로 그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이,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 이제까지와는 다른 박동을 만들어 낸다.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던 손은 서서히 토우마의 뺨을 향해 움직였다. 서서히, 조금씩, 먹이를 포착한 뱀처럼 신중에 신중을 가한다.

 "미……."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다급하게 몸을 뒤로 빼는 그를 눈에 담는다. 항상 아무렇지 않게 웃어주고, 별거 아닌 일로도 당황해하는 그였지만 지금의 토우마는, 그것과는 명백하게 다른 얼굴이었다. 

 "아침부터 사람 힘들게 하시네요."

 그럼에도 미나미는 쉽사리 거리를 좁힐 수 없었다. 귀 끝까지 붉어진 그의 얼굴, 젖어있는 머리카락, 모든 필요 이상의 자극에 이 이상 다가갔다간 정말로 일을 낼 것 같았으니까. 

 "룸서비스 불러뒀어요. 밖에 나가서 먹기는 힘드실 거 같아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둘 다 이 관계에 어떠한 정의도 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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