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
사랑의 유통기한이 삼년이란 말 듣고 권태기 온 보쿠토 보고 싶어(이별 조각글 두개가 분위기 비슷해서 걍 합쳤습니다)
고백하고 사귀는 사이가 된지 3년째
감정에 유통기한이 있단다. 보쿠토는 처음에 한귀로 듣고 흘렸다.
그것이 문득 떠오른건 저와 함께 있는 여자친구를 보고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 때. 평소처럼 같이 소파에 기대어 앉아 영화를 보고 있었고, 영화도 로맨스로 제대로 선택했는데, 이상하리만큼 두근거림은 느껴지지 않았다.
음, 많이 피곤한가? 머릿속에 떠오른 유통기한을 최대한 지워내며 보쿠토는 여친을 끌어안고 침실로 향했다. 같이 자자! 밝은 얼굴이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조금 두근거렸던 것 같았다. 곤히 자는 얼굴에 키스세례를 내리고 보쿠토는 옷을 꿰어입고 나섰다. 역시 착각이였어! 하고 그날은 넘겼지만 이후로도 보쿠토는 지워진 잔재 위에 몇번이고 덧쓰고 다시 지워내야만 했다.
보쿠토는 점차 이어지는 하루와 데이트의 반복에서 결국 제 사랑의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생각하고, 그 위에 지우개질하는 것을 그만뒀다. 마음을 정하고 나니, 더이상 여친과 함께하는 시간이 소중하지 않았다. 당연히 멀어지고, 점차 거리가 생기고,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단순한 보쿠토가 숨기는데엔 한계가 있어서. 결국 여친이 붉어진 눈가로 이제 날 사랑하지 않아? 하고 물었을 땐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3년하고 몇개월이 더 이어진 연애는 끝났다.
동거하던 여친은 하룻밤새 모든 짐을 챙기고 쓰레기통에 쑤셔넣고, 자신의 모든 흔적을 들고 사라졌다. 정말, 사라졌다.
하루는 그렇구나, 그애가 없구나 하고 말았다.
이틀이 되자 익숙한 안부인사를 허공에 전했다가 아, 없구나 하고 다시한번 깨달았다. 가슴 한구석이 허전했다.
삼일째에는 익숙하게 2인상을 차리다가 깨닫고 차리던 상을 모두 엎어버렸다.
일주일째에도, 이주일째에도, 삼주, 한달...
가슴한구석이 허전하고 일상을 도려낸 것 처럼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나마 몸을 움직이는 훈련이 되고 경기가 되면 머릿속은 맑아졌지만, 그만큼 맑은 머릿속에서 그 아이는 점차 선명해졌다.
그제서야 알았다.
산책을 하면 두근거림은 없었지만, 놀이공원을 가면 두근두근 즐거웠다.
집에서 둘이 가볍게 술을 마실땐 두근거리지 않았지만, 바깥에서는 두근거리며 즐거웠다 그냥, 너와의 일상이라서 두근거리지 않은 거고, 너와 새로운 걸 한다는 것에 설렜던 것이다. 너와의 일상이 너무 내 일생에 녹아들어 그것을 내가 깨닫지 못 한 것이었다.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이젠 그것이 당연하지 않게 변했으니 더욱 소중해 진 것이다.
너무 늦게 깨달았다.
보쿠토는 멍하니 제 빈 집을 바라봤다. 그리고 제 손안에 휴대폰을 바라봤다. 도려내진 일상속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은 그애의 휴대폰번호 뿐 이었다.
헤어지자고 해놓고, 먼저 끊어낸건 나면서, 이제와서, 염치 없이?
질끈 눈을 감으면서, 상념을 끊어내며 통화 버튼을 꾹 눌렀다.
' 이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
냉정한 기계음은 다시한번 너를 내게서 도려낸다.
보쿠토의 상태는 확실히 이상했다. 경기날이 되면 온 관중석을 스캔하듯 쳐다보질 않나, 연결도 되지 않는 번호에 하루에 수십번 전화를 하곤 했다. 그러고선 제 머리를 마구 헤집고,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참다못한 팀원들이 그에게 털어놓으라고 종용하고 나서야 그는 무겁게 입을 열었고,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에 입을 다물었다.
보쿠토의 여친은 그들에게도 익숙했다. 요 근래 안보인다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헤어졌으리라곤 생각도 못 해서, 당황하는 사이 아츠무만 그래서 우째됬노? 하면서 입을 열 뿐이었다.
여친, 메일도 바꿨드나?
아츠무가 던지듯 한 말에 보쿠토가 고개를 들었다. 여친의 메일주소는 변한적이 없었다. 아주아주 어린 그 시절부터 최근까지, 헤어지기 전까지, 언제나 둘은 전화로 이야기를 나눴던지라 메일까진 미처 생각하지 못 했었다. 츠무츠무는 천재야!! 하고 보쿠토는 후다닥 옷을 챙기면서 메일을 남겼다.
ㅁㅁ, 내가 잘못 생각했어. 이야기할 수 있을까
-
어디를 가도 네가 있다. 후회는 걸음마다 쌓이고 돌아보면 추억과 후회가 뒤엉켜있다.
그건 악몽이되어 저를 따라와 악몽이 되어 과오를 되돌아보게 하며, 하루하루를 질적이는 후회와 반성으로 시작한다.
일어나 씻으러 화장실로 가는 걸음에도 발랄한 네 목소리가 들렸고
식탁에 앉아 수저를 들면 꺄르르 웃으며 이번에는 계란을 태우지 않았다는 자랑이 들렸다. 식탁에 계란따위는 없지만, 기억속에 너는 그렇게 웃었다.
나가려 옷을 꿰어입으면 이게 더 예쁘지 않냐는 상냥한 목소리가
신발을 신을 땐 나가기 전에 뽀뽀를 해달라며 붙드는 애교섞인 목소리가
문을 닫기 직전까지 다녀오라며 인사는 네 목소리가, 내 일상에 녹아있다.
그 곳에 네가 없음에도, 내 일상을 너를 되풀이 하며 반복했다.
훈련중에는 네가 도시락을 싸왔다며 부르는 소리가 들려 후다닥 달려 나갔지만, 네가 기다렸던 벤치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었고
경기중에는 관객석에서 응원하는 네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화들짝 놀라 관객석으로 달려나가 너를 찾지만, 팬들만 열렬하게 환영해줄 뿐, 언제나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는 너는 없었다.
아무리 고개를 저으며 부정해도, 내 일상은 네 모든걸 담고 있다.
그리고 네가 빠져버린 이 일상은, 내 모든 걸 앗아간다.
너와 함께였기에, 너와 손을 잡고 걸어간 거리였기에, 너와 함께 먹은 음식이기에, 함께한 시간이기에 사랑스러운 거리고, 음식이며 추억이었다.
너무 뒤늦게 깨달아버린 내겐 부숴져 조각만 남은 일상만 남아있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