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캐글백업

로켓 속에는 영원이 들어있다

어떤 후일담.

은세공 장인 토머스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술을 마시면 그 이야기를 하곤 한다.

이야기는 언제나 거대한 저택이 무너지고 나서 일주일 뒤의, 비내리는 날의 한밤중에서 시작된다.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새카만 옷을 입은 여자였지. 5피트 반쯤 되는 키였던가. 정말이지 유령처럼 발소리가 없었다고. 봐, 저쪽 문 앞에서 여기 내 모루 앞까지, 장정이 걸어도 서너 걸음은 필요한 것을 마치 미끄러지듯이, 눈 깜짝할 사이에 다가왔지. 신이시여, 나는 그 여자가 내 목을 물어버릴 줄로만 알았다니깐?"

토머스는 오늘 있었던 셈을 내일 틀릴 정도로 오락가락하는 술주정뱅이였으나, 그 기억만은 인두로 지진 낙인처럼 강렬했다. 나는 가끔 그녀가 황야의 요정이라도 되어, 토머스의 혼을 10년 전의 그날의 붙들어두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토머스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녀에 대해 말할 때에는 토씨 하나도 틀리는 법 없이 똑같이 말했으니까. 덕분에 이제는 나도 그 말을 줄줄 외울 정도가 되었다.

숨막힐 정도로 짙은 장미 향기를 휘감고, 상복처럼 검은 옷을 입고 흠뻑 젖은 채로 검은 베일을 쓰고 나타난 여자. 뭍에 나타난 인어처럼, 혹은 울다 목이 갈라진 밴시처럼 그 여자는 숨쉴 공기를 찾으려 몇 번 입술을 뻐끔대었고, 모래를 호흡하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이 세상에 숨쉴 자격을 얻지 못한 것처럼.

"―뼈 약간을 가루내어 주실 수 있을까요."

그건 분명 인골이었어. 크기로 보아 아마도 손가락 뼈였지. 라고 토머스는 말했다. 살에서 발라낸 지 얼마 되지 않은 인골이었다고. 그녀는 품에서 소중한 것을 아까워하듯 몇 번인가 망설이다가 그것을 건네주었노라고. 나는 말했지. 여기는 약재상도, 마녀의 집도 아니고 은세공 장인의 집이오. 라고…

"고명하신 은세공 장인의 댁임을 알고 있어요."

과거와 현재의 목소리가 겹쳤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눈앞에 선 여자를 바라보았다. 10년 전부터 계속해서 토머스가, 이제는 은퇴한 내 스승이 술만 마시면 떠들어대던 여자가 거기에 있었다. 10년 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숨막히는 듯한 장미 향기를 휘감은 채.

그녀는 목에서 무언가를 풀어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겉이 용접된 은세공 로켓이었다. 잠자다가도 알아볼 스승의 솜씨였다. 가엾게도, 토머스. 술에는 안 취했지만 무서워서 덜덜 떨며 작업했군요. 그 스승이 했다고는 믿을 수 없이 졸렬한 세공에 헛웃음이 나왔다. 안에 뭐가 있을지는 10년 간 계속해서 들어와, 이미 알고 있었다.

달그락. 그녀가 무언가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은으로 만들어진 십자가가 몇 개. 세공으로 보아 상당한 고급품이었다.

"녹여주세요. 녹여서."

검은 장갑을 낀 손끝이 천천히 로켓 목걸이를 어루만졌다. 연인의 애무, 혹은 증오해 마지않는 것을 어루만지는 손길. 그런 종류의 비밀스러운 것을 함부로 엿보는 듯한 기분에, 나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만이 따라붙었다.

"이 위를 덧씌워 주세요. 탄환 모양으로."

10년 전에는 인골을 구워 가루낸 뒤 로켓에 넣고 용접해달라고 했던가. 10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기묘하기 그지없는 주문에 나는 할말을 잃었다.

나는 분명 처음 볼 터인 그 여자를 굉장히 잘 아는 듯한, 기묘하기 그지없는 감각과 함께 말을 입을 열었다. 빌어먹을 스승, 이 자리에 당신이 서있어야 했는데. 그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토머스가 그 여자를 다시 만나면 할 것이라고 술주정의 마지막에 몇 번이고 덧붙이던 말이 절로 흘러나왔다.

"데리고 계신 망자는 안녕하신지요?"

여자가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베일 밑으로 얼핏 보이는 입술에는 화장기가 전혀 없었고, 웃음짓는 모습이 소녀 같기도, 노파 같기도 했다. 토머스의 이야기와는 달리 비에 흠뻑 젖어있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내 눈에는 그 여자가 뒤집어쓴 베일이 개지 않을 먹구름처럼 보였다.

"주의 구원과 영혼의 안식에서 잠시 건져내―품에 두고 싶어 데리고 있어요."

여전히 모래를 호흡하는 듯한 목소리로, 장미 향을 혈향처럼 풍기는 여자는 말했다.

십자가를 집어들며 나는 예감했다.

아마도 내 빌어먹을 스승처럼, 나 또한 10년이 더 지나도 이런 밤이 오면 뇌에 화인이라도 찍힌 듯 오늘 밤을 되풀이해 말하리라고.


이쯤되면 1000자나 1500자 챌린지여야 하지 않나? 800자 완전 실패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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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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