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에 다른 사람이 서 있다
리비오의 아침은 요란한 알람 소리로 시작한다.
어렸을 때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다시 잠드는 일도 종종 있어 니콜라스가 특단의 조치(이부자리 뺏기)를 취하곤 했지만, 이제는 별 일이 없어도 같은 시각에 눈이 뜨일 만큼 몸에 밴 습관이었다. 오른쪽 위로 손을 뻗어 알람 시계의 버튼을 누르면 그때까지 이어지던 규칙적인 기계음이 멎는다.
몸을 일으켜 늘어져라 기지개를 한 번 펴고,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한다. 가끔은 목이 말라 욕실에 들어가기 전 물 한 잔을 마실 때도 있다. 욕실 등을 켜고, 전날 카페에서 들었던 멜로디를 흥얼거리면서 파란 칫솔에 치약을 짜 입에 문 다음 고개를 들면... 거울 너머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과 눈이 마주친다.
눈을 깜빡이던 리비오가 손을 살랑였다. 기다렸다는 듯 거울 너머에서는 손을 흔드는 대신 팔짱을 낀다.
"조은 아힘, 라즐로."
[좋은 아침이고 나발이고 내 얼굴에 치약 튀기지 말라고.]
여전히 칫솔을 입에 문 리비오가 못 들은 체 휴지를 뜯어 거울을 닦았다. 거울 속 얼굴이 불만스레 일그러졌지만, 이젠 이마저도 일상 같기만 한 리비오는 익숙하게 넘겼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보육원에서 지내던 아주 어린 시절부터 거울 속에 모르는 사람이 서 있었다. 술에 취한 니콜라스가 종종 주절거리는 '니 요만했을 때는 무섭다고 거울도 못 봤었는데' 에피소드에 따르면, 모르긴 몰라도 어지간히 옛날부터 그랬겠거니 싶을 뿐이다.
대신 처음 인사를 건넨 날은 똑똑히 기억한다. 그 날은 유난히 이른 새벽에 잠에서 깼다. 아직 꿈 속인 듯 몽롱한 정신으로 욕실 거울 앞에 가 서면 기다렸다는 듯 그 사람의 형상이 드리워 있었다. 그 당시의 리비오는 늘 그 광경을 못 본 체 도망치듯 욕실에서 나오거나 최대한 거울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애를 썼는데, 그날따라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거울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섰다. 그리고 그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정말 똑같이 생긴 얼굴이었다. 쌍둥이처럼. 그래도 저 이상한 문신에 처음 보는 헤어스타일은 매번 봐도 적응이 안 됐다. (물론, 이상하기는 했지만 꽤 멋있는 것 같다고 어린 리비오는 떠올렸었다.) 문신은 아프다던데, 언제 한 걸까. 헤어스타일도 그랬다. 보육원 아주머니 혹은 니콜라스가 잘라 주는 머리는 늘 비슷했던 탓이다. 고아원 아주머니는 그래도 상황이 나았는데, 저번의 리비오는 별 생각 없이 니콜라스에게 가위를 맞겼다가 꼼짝없이 까까머리 신세를 지고 있었다.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어 리비오가 손을 들어 까슬까슬하고 짧은 제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거울 속의 사람도 똑같이 했다.
색은 같지만 길이는 다른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천천히 거울 속의 사람을 살펴보던 그는, 곧 같지만 다른 얼굴에서 하얗게 바랜 오른쪽 눈을 발견했다. 머리카락에 가려 이제껏 잘 보이지 않았는데... 놀란 리비오가 눈을 크게 뜬다. 그의 왼쪽 눈도 꼭 그랬던 탓이다. 시력에는 지장이 없지만 꼭 왼쪽 눈만 물이 빠진 것처럼 흰 색을 띄었다.
그걸 알아차리고 나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꼭 거울 속의 그 사람이 리비오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충동적으로 리비오가 손을 들어 인사했다. 안녕.
거울 속의 사람은 움직이지 않다가, 한 박자 느리게 손을 들어 대꾸했다. 똑같이 생긴 얼굴이 씩 웃는다. 안녕.
그리고 리비오는 그대로 기절했다. 다음날 아침 보육원의 아이들은 리비오 형이 욕실에서 잠들었다며 일주일 내내 놀려먹었다. 리비오는 얼굴이 벌게지면서도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거울에 대고 인사했더니 대꾸가 돌아오는 바람에 놀라 기절했다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 편이 나았다.
지금 생각하면 라즐로에겐 억울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지가 먼저 인사해놓고 기절하는 바보같은 놈이 여기 있네... 어쨌든 리비오가 용기를 내어 다시 거울을 볼 수 있게 된 건 이틀이 지난 후의 새벽이었고, 이번만큼은 기절하지 않은 채 인사와 통성명까지 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라즐로였다. 넌 누구냐, 몇 살이냐, 왜 거울 속에 보이냐... 호기심으로 무장한 어린아이의 물음에 적당히 대답을 늘어놓던 라즐로는 정확히 삼십 분이 지나자 리비오를 내쫓았다. 거울 작작 들여다보고 가서 잠이나 자라면서.
불만스러운 얼굴로 침실에 돌아오긴 했지만, 그날 리비오는 한 숨도 자지 못했다. 리비오, 라즐로. 묘한 울림을 주는 그 이름을 되뇌면서... 거울 속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성인이 되면서 리비오는 독립했다. 사실 더 이르게 할 예정이었지만 이런저런 사정이 겹쳐 미뤄진 게 그 때였다. 번듯한 일자리도 생겼고, 도시 근처에 작은 방을 구해 혼자 살기 시작했다. 니콜라스는 얹혀 살아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의 풀 네임이 울보 리비오가 되는 건 사양하고 싶었기 때문에 거절했다. 물론 늘 고생하는 형에게 더 손을 뻗고 싶지 않았다는 이유도 있었고...
책상 옆에 둔 기다란 전신거울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책상에 앉으면 의자에 앉은 모습이 발 끝까지 보이는 거울. 그러니까, 라즐로의 모습이.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리비오가 털석 의자에 주저앉는다. 라즐로도 마찬가지로 늘어져라 의자에 기댄다. 그 모습이 새삼스러워서 리비오가 낮게 웃었다. 이렇게 비친 모습이 다를 때마다 리비오는 꼭 거울이 아니라 유리창을 보고 있는 기분에 휩싸였다. 다른 사람과 연결된 유리창.
리비오는 최근 햄버거 가게 일을 돕고 있었다. 유명한 체인인 탓에 도시 외곽인데도 늘 사람이 많고 일이 고된 곳이다. 체력과 힘과 건강이 전부인 리비오에겐 나름 할만한 일이었다. 다만 리비오도 얼굴에 힘이 들어가면 제법 날카로운 인상이 되는 까닭에, 사람을 대하는건 아직은 낯설기만 했다. 다행스럽게도 가게 매니저는 좋은 사람이라 - 혹은 성격 좋고 힘 좋고 진상 퇴치에도 효과적인 훌륭한 직원을 놓칠 생각이 없어서 - 그런 건 천천히 배워 나가도 된다고 등을 팡팡 두드렸다.
오늘은 유난히 손님이 많았다. 드물게 지친 리비오가 의자 위로 주르르 미끄러진다. 거울 속의 라즐로가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가, 알만하다는 듯 다시 시선을 거둔다. 리비오가 그 모습을 흘긋 바라보고는, 책상에 턱을 괸 채 거울 안쪽을 들여다본다.
"이상하단 말이지."
[뭐가.]
"분명 같은 얼굴 같은 몸인데 근육량은 네가 더 많아 보이잖아."
[착각이다, 이 자식아. 그럴 리가 있냐.]
라즐로가 일갈했고, 리비오가 고개를 기울였다. 피곤해서 그런가, 말이 별 생각을 거치지 않고 툭툭 튀어 나오는 것 같았다.
[...피곤하면 일찍 자라.]
"아직은 괜찮아. 내일은 오프기도 하고."
그러면서 대책 없이 웃는 모습을 보면 라즐로는 어쩔 수 없이 속이 터지는 것이다. 이 놈이 원래 이런 성격이었나. 아주 예전에는 안 이랬던 것 같은데. 그때는... 상황이 상황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쳐도. 아니다, 그 때도 그랬다. 괜찮다면서 무리한 몸을 이끌고 돌아가는 건 늘 라즐로의 몫이었으니... 멍청한 리비오 같으니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달리 방법이 있나.
총으로 상처 입을 일도 남을 상처 입힐 일도 없는 삶,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 떠넘기는 대신 스스로 거부하면서 살아가는 와중에도 거울에 얼굴을 들이미는 자식이었다. 겨우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 무섭다고 기절까지 한 겁쟁이 주제에. 그렇게 이름을 묻고 궁금해하고, 아직 라즐로가 누구인지 어떤 인간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주제에... 일상을 나누고 하릴없이 웃는 꼴을 보면 아무리 라즐로라도 결심하게 되는 것이다. '옛날' 기억 따윈 그가 모두 떠안고 가 주겠다고. 그가 제일 잘 하는 일이다.
나중에 진실을 알게 되면 화를 낼지 짜증을 낼지 부끄러워할지는 잘 모르겠다만... 어쨌든 자업자득이다, 리비오.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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