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청춘과 벚꽃의 계절

로사리오, 모든 구슬에 장미꽃 송이

성인2 기간 역극 로그

※Trigger Warning: 고문 묘사, 대량 살인(의도), 폭력, 오해·몰이해·멸시적 태도, 정서 전염, 정신질환 비하적 표현

타 러너 캐릭터에게 중요한 사건을 주인공 캐릭터가 잊어버리고 있으며 이로 인해 자신에 대한 감정을 다소간 오해하고 있습니다.

※1학년 중 다른 캐릭터에게 보낸 로그(https://glph.to/opq8b9) 일부가 약간 변형되어 인용되어 있습니다.


―예전에.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적 언젠가, 평소보다 집에서 조금 멀리 놀러 나갔던 어느 날에, ■¿Å는 물에 빠진 제 또래의 머글 어린애를 발견하고 꺼내준 적이 있었다. 이상하게도. ■¿Å와 별 차이도 없는 키, 별 차이도 없는 몸집인데, 그 몸은 너무 작고, 가볍고, 보드라워서, 힘주어 꺾으면 그대로 부러질, 자신과는 전혀 다른 생물 같았다. 만약 다른 모두에겐 자신도 이런 모습으로 보이는 거라면, ■¿Å가 여섯 살밖에 안 됐으면서 벌써 손윗형제들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빠르고 힘도 센데도 애들이 자꾸 얕잡아보고 시비를 걸어오는 것도 이해가 됐다. §◈¶◎가 (열받게도!) 내색은 결코 하지 않을지언정 늘 어딘가 불안하고 조마조마한 눈으로 그를 뚫어져라 지켜보고 있는 것도. 이런 게 눈앞에서 계속 얼쩡거리니까 그러는구나.

낯선 사람을 만나면 몸을 숨기고 서둘러 집으로 뛰어오라고 배웠지만, ■¿Å는 딱딱하고 울퉁불퉁한 돌들 위에 배를 깔고 누워, 쉼없이 부지런한 파도로 해안을 덮으며 부서지는 먹빛 바닷물에 반나마 몸을 묻은 채로 그 아이를 한참이나 더 요모조모 뜯어보았다. 아직 이름도 받기 전이었던 여섯 살의 핀갈 모이레가 최초로 맞닥뜨린 연약함, 그의 절반을 이루는 낯모르는 세계를 구성하는 연약함이었다. 그 세계로 손목을 붙들려 질질 끌려가게 될 줄은 전혀 예감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그 세계의 문턱에서 두 번째로 만났을 때 핀갈 모레이는 에스마일 시프를 넘어뜨리고 목을 졸랐다. 그가 아가미를 감추기 위해 걸고 다니던 귀걸이에 손을 가져다댔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핀갈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적의를 살 만한 일이었으나, 그는 더 나아가 이 괴상한 소년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 자신도 만만치 않게 괴상하다는 자각은 없었다.) 에스마일은 하늘하늘한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모든 것이 싸구려 연극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불나불 해설을 늘어놓았다. 눈을 보여주지 않고, 마음을 보여주지 않고, 살갗을 붙이지 않았다. 몸으로 부딪히며 뒹구는 것은 고사하고 싸움의 이야기조차 무서워했다. ‘창잡이’들이 대상의 신뢰성을 가늠하기 위해 사용하는 모든 단서를 감추고 피하면서 연기처럼 불확실한 존재감을 고집했다. 핀갈 모레이는 생각했다. 더러운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니고서는 저렇게 꽁꽁 숨어다닐 리가 없다. 그 생각은 그에게 처음으로 정신 지배의 굴욕을 알려주었던 겨울의 밤, 이 밉살스럽고 속모를 녀석의 *진짜* 말을 들었을 때에야 뒤집혔다. 에스마일 시프는 숨겨진 악의나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거리를 두지 않고 세상에 접하는 걸 견딜 수 없을 만큼 약하고 겁이 많은 거였다. 핀갈 모레이는 생각했다. 대체 뭐 이런 게 다 있지?

그들은 한 방에서 뒹굴며 자랐고 서로의 잠버릇과 아침의 습관들을 알게 되었다. 에스마일은 핀갈이 명백히 흘리고 다니는 온갖 수상한 징조들을 눈치채지 못한 척 무시해주었다. 핀갈은 믿지 않았다. 약한 것일수록 주위의 동향에 기민한 법이다. 하지만 또한 의심하지도 않았다. 기실 그 방의 모든 사람이 핀갈 모레이의 비밀을 알면서 지켜주었다. 입장이 반대였다면 핀갈 역시 그랬을 것이다. 에스마일 시프가 여전히 이해할 수 없고 마뜩잖은 것과 별개로 그들은 일종의 ‘식구’였다. 서로를 보호하는 사이였다. 상대가 있는 지척에서 마음놓고 잠들 수 있는 관계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여럿’이 거하는 ‘공동체’의 문제였다. 핀갈 모레이와 에스마일 시프 두 사람의 양자관계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언제부터 그가 이렇게 당신에게 전전긍긍하기 시작했느냐면.

시초는 분명 그 연회장의 새벽이다. 죽음을 먹는 자들의 동시다발적 공격 때문에 생각지도 못하게 기숙사에서 격리되어 몸을 처치하지 못한 핀갈이 여기저기 가려워오는 살갗을 긁으며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을 본 에스마일이 벌컥 화를 냈다. “당신이 저를 보면 이런 기분인가요?” 핀갈은 생각했다. 오, 뭔지 몰라도 내가 지금 보통 답답하게 굴고 있는 게 아닌가본데. 그로 위장한 메타모프마구스가 그의 부재를 감춰주는 동안 핀갈은 빠져나가 호수에 몸을 담갔다. 그게 4학년 여름방학을 며칠 앞두고서였다.

그 일을 계기로 그를 제 방식의 ‘보호 대상’으로 인식했는지, 다음 학기부터 에스마일은 그를 쫓아다니며 그가 하는 온갖 일에 대신 웃고 울어주기 시작했다. 그가 아는 이들과 아는 것들의 사체로 까맣게 뒤덮인 아는 바다가 《예언자 일보》에 사진으로 실린 날에 에스마일 시프가 그의 옆에서 울었다. 무슨 생각을 하면 좋을지, 뭘 느끼면 좋을지 알 수 없어 마치 표백된 듯한 무표정으로 하염없이 멍하게 앉아만 있는 그의 모든 감정을 대신하기라도 하듯이 펑펑 울었다. 조닐 노벤드라스가 썼듯이, 그가 입초시에 오를 때마다 “발작적으로 화를 냈다”. 필사적으로 도망다니는 그를 끈질기게 쫓아다니면서 그의 얼굴이 일그러질 때마다 그보다 더 괴로워했다. 고통을 잘 견디는 것도 아니고 견디지 못하면 죽지 않는 것도 아니면서 가까이 와서 좋을 게 없는 해악의 수렁에 따라들어왔다.

덜어줄 방법이 있는 게 아니라면, 애초에 괴로운 건 한 사람으로 족하다. 타인에게 고통을 호소한다는 것은 그에게는 생경한 일이었다. 누군가 그에게 아픔을 토로하면 그는 무언가를 해주겠다 제의하거나 아니면 조언을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는 아예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런 때는 무슨 말을 해도 면목이 없을 뿐이기 때문이었다. (엔야 헤이즈는 예외였다. 그와 어깨를 기대어 앉음은 최소한 여기에 동포가 있다는, 이 낯설고 적대적인 세계에 이방인으로서 혼자 버려진 것이 아니라는 확인의 몸짓이었으므로.) 그러므로 그는 그것을 에스마일 시프가 늘상 하고 다니는 ‘누구에게도 이득 없이 저만 손해보는 다종다양하게 성가신 짓’들의 일환으로 여기고 쫓아버렸어야 마땅할 텐데,

싫지가 않았다. 아니, 조금쯤은 기뻤던 것 같다. 에스마일이 옆에서 머리쓰개가 다 젖도록 빽빽 울고 있든지 아니든지 그의 곤경은 조금도 덜어지지 않는데, 그러니까 일없이 힘만 낭비하게 하는 저 짓을 빨리 그만두게 하는 게 좋을 텐데, 어째서인지 마음의 어딘가가 부드러운 빛으로 밝아지는 기분이었다. 그 빛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느냐고 하면, 전혀 아니지만, 오히려 없는 편이 좀더 운신이 자유로웠다는 생각이지만, 원하냐고 하면 그다지 그렇지는 않다는 느낌이지만, 그러니까 그런 기분을 위해서 그가 빠진 진창에 에스마일을 끌고 다닐 가치가 있느냐고 한다면 여전히 의심스러웠지만……


에스마일의 일족은 농부이며 개척자다. 아주 연약한 것을 키워서 별빛처럼 영원한 것을 만든다. 에스마일 시프가 제 마음을 쓰고 살을 헐어 그를 보호했다. 그의 마음에 씨를 뿌렸다. 공을 주고받는 놀이처럼 마음이 오고감이 인간의 이치이니 그도 당신도 원치 않더라도 열매는 가차없이 떨어질 것이었다. 그 빛을 잃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당신에게 헌신하기로 해서가 아니라, 벽에 부딪힌 공이 되돌아오는 그런 손쓸 수 없는 이치로, 에스마일 시프 역시 핀갈 모레이에게 보호할 상대, 생명을 상해서라도 보호할 상대가 될 수밖에는 없는 것이었다.

소중한 것이 해 입을까봐 제정신을 잃을 만큼 겁을 먹은 인간의 얼굴은 터무니없이 연약하고 무력해서 그를 불쾌하게 했다. 인간으로서 제법 관록이랄 게 붙은 지금에도 그 얼굴은 도무지 가깝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에스마일 시프가 해를 입는 것은 매번 한결같이 그를 제정신을 잃을 만큼 분노하게 했다. 에스마일 시프가 동생의 복수에 나섰을 때 그는 죽음을 먹는 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희생자들의 공통점을 알아차렸다. 누르 시프가 죽었을 때 그 장소에 있었던 자들을 아무 의미 없이 머리속에 어림해보았기 때문이다. 정직하게 이르자면 그것과 유사한 계획을 잠재적으로 염두에 두지 않고서는 그렇게 했을 이유가 없다. 누르 시프와 그 사이에 오간 건 그의 일방적인 오해와 여러 해 전 몇 마디의 험악한 시비가 고작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짓이었다. 그리고 그는 에스마일이 발각되지 않도록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눈에 띄는 대로 파괴하거나 조작했다. 약속을 깨뜨리는 배신인 것은 차치하고라도, 죽음을 먹는 자들이 승리하지 않으면 내년도 넘기기 어려울 처지에 단순히 애착 때문에 저지르기에는 이것 역시도 어처구니없는 짓이었다. 하지만 정말이지 어쩔 수가 없었다. 그의 눈앞에서 묶여 매달린 채 고통에 몸부림치며 숨이 넘어갈 듯 헐떡이다 몇 번이나 실신하고 깨어나길 반복했던 기사단원이 사실 변신한 에스마일이었음을 깨달은 순간 그는 그 문제의 며칠 동안 그곳에 다녀간 모든 자를 언젠가 반드시 죽이기로 결심했다. 에스마일이 다 해치우지 못한다면 그가. 누구나가 그 사유를 알 수밖에 없을 방식으로.

변신이 풀린 에스마일이 그의 눈앞에서 두 번째로 생포되려 했을 때 그는 그에게 익숙하듯이 빠르게 결단하고 돌아보지 않는 대신에 뻔하게 존재하는 정답을 두고 어쩔 줄 몰라 갈팡질팡하다 결국 전력으로 오답을 실행했다. 그 기행에 대해 에스마일이 당연한 이의를 제기하자 그는 논리적인 답을 하는 대신에 엎어쳐버렸다. 누르 시프가 에스마일을 알아보고 포박을 풀려 하다 살해당한 순간에 그가 거기에 있었더라면 그는 아마 40번째의 가을을 맞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거기에서 에스마일을 빼내려면 나중에 기억 마법 따위로 얼버무릴 수 있는 미온적인 방법으로는 안 되었을 테니까. 그는 아마 그 방에 있던 전원과 다른 층에 있던 인원의 절반쯤을 죽이고 에스마일을 어깨에 떠멘 채로 도망쳐나와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째서 이런 정신나간 짓을 해놓고 후회가 들지 않는지 의아해하면서 대책없이 죽어갔겠지. 에스마일 시프가 상습적으로 한들한들 죽음을 향해 걸어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 격으로 대책없이.

에스마일이 어떤 경위로 혀를 잃었는지 들었을 때는 실제로 지팡이도 아닌 작살과 창을 들고 대책없이 마왕을 죽이러 갈 뻔했다. 지팡이를 든 마법사들은 서로 이름을 부르고 말을 한다. 아니면 적어도 주문이라도 읊는다. 그를 사로잡은 즉각적인 보복의 추동에는 그 몇 초의 지체조차 들어설 여지가 없었다. 모르가나 가민이 그로서는 상대도 되지 않는 강자이며 목숨으로 갚아야 할 빚을 진 은인이라는 사실도 그 순간에는 무의미했다.

그러니까, 그야말로, 대책이 없다.

그건 긍지와 지혜의 너머에 있는 일이었다. 오히려 어떤 생리, 어떤 결과에 더 가까웠다. 그를 연약하게 하지 않았으나 어떤 의미로는 절대적으로 무력하게 했다. 어리석고, 무용하고, 치명적으로 해로울 짓을 앞도 뒤도 보지 않고 저지르게 했다. 그는 임페리우스 저주조차 몇 분 정도는 거스를 수 있을 때까지 스스로 단련했으나 이 작용에는 저항할 수 없었다. 용맹도 분별도 전혀 발휘할 수 없게 만드는 그것, 이치도 책무도 잊게 만드는 그것은, 그러니까, 바람도 두려움도 아니라……


물에 떨어진 빛이 위로 비추이듯. 당신이 분별 없게도 여전히 그를 위해 눈물 흘리고 슬퍼하므로, 그의 죽음을 두려워하고 삶을 바라므로, 제 삶조차 다 감당하지 못할 만큼 잔약한 마음과 몸을 내어 감히 그의 고통과 무게를 감당코자 하므로…… 결과 없는 일은 없다. 이치가 그렇다. 타인을 일방적으로 유린하고 보복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자는 어리석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그에게 가난한 과부의 동전을 주었고 창잡이들은 문자로 환산되지 않는 육성의 무게로써 회화하는 자들이니 이것은 절벽에서 되돌아오는 소리다. 주저함이나 흔들림이라는 말로 담기에는 너무 강대하고 너무 무거울지언정, 그 폭풍우를 뒤흔드는 것은 틀림없이, 틀림없이 당신이라는 미풍이다.



“그럼, 한 번만 비겁하고 추악하게 빌어볼까.”

그는 위협이 되지 않을 만큼 천천히 손을 내려, 지팡이를 겨눈 당신의 손을 제 손으로 신중하게 감싸 덮는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애원하는 건 두번째다.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아 생경했다.

“네가 나의 미련이다, 에스마일 시프. 그러니까, 네 신념이 어떻고, 소망이 어떻고, 동생이 어떻고, 고향의 일족이 어떻고... ... 몸과 마음이 어찌되었든 간에, …… 해 입지 말고 살아있어줘. 네가 요구한 발버둥이니 받아줘라. 누군가에게 무언가 설득한다면 그걸 하고 싶어.”

어쩌면 이 마음은 그를 죽일 것이다. 주저는 살육자에게 이롭지 않다. 생존하고자 하는 것이 생명의 근간인 바, 그를 살리지 못할 마음을 품고 가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생각한다. 너의 세계에 와서 너를 만나고 이 마음을 알게 되어서 다행이다. 간직할 것들을 발견했다면 좀 돌아가는 길이라고 해서, 오물과 가시를 뚫고 간다고 해서 길이 아니라고, ‘없었어야 할 것’이라고 여길 수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것을 잃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여전히 마음 어딘가에서는 잘못된 일이었다고 외치는 목소리도 있다. 에스마일 시프가 여전히 슬퍼하듯…….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는 무익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미래를 막기 위해 발버둥을 치겠지. 그럼에도 그 여정을 한 번 더 겪는 것과 당신을 ‘없었던 것’으로 만드는 것 중에서 고르라고 한다면 그는 전자를 고를 것이다. 주저 없이…… 그리고 대책 없이. 피를 피로 씻는 원수가 된 세계라도, 네가 그것의 일부라면 용서하지 못할 것도 없다.

찰나의 반짝임일 뿐이라 해도 이따금 바다에는 별빛이 내리고, 서로 섞일 수 없는 세계의 사이에서 아름다운 것이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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