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무제
에스마일 시프>줄리아 라이네케
트리거/소재 주의:
1) 퀴어(트랜스젠더,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혐오/박해/직접적(물리적) 폭력 등의 언급 및 묘사
2) 따돌림 및 집단적 폭력, 고문 수준의 괴롭힘의 언급 및 묘사
3) 감금, 고문, 학대, 학살 등 국가폭력과 연관된 묘사
4) 트라우마, 우울, 자기혐오, 자살사고 및 자살 시도, 기타 연관된 소재가 등장하는 독백
전반적으로 열람에 상당한 주의를 요하며, 젠더퀴어 및 퀴어, 혹은 정신 질환/장애 당사자이거나 위에서 언급한 항목과 연관된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정신적으로 안정된 상태이실 때 일독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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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lentin Arregui: Stop crying! You sound just like an old woman!
Luis Molina: It's what I am! It's what I am!
Valentin Arregui: Then what's this between your legs, huh? Tell me, “Lady"!
Luis Molina: It's an accident. If I had the courage, I'd cut it off.
Valentin Arregui: You'd still be a man! A MAN! A MAN IN PRISON! JUST LIKE THE FAGG*TS THE NAZIS SHOVED IN THE OVENS!
-Héctor Babenco. (1985). <Kiss Of The Spider-woman>. Based on the novel by Manuel Pu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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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 델피니 라이네케. 당신은… 여전히 키가 작죠. 하지만 사람이 당신 앞에 거꾸로 매달려 있을 때 그것은 중요하지 않게 되고, 저는 최선을 다해 단신을 가장하나 사실 당신을 내려다볼 수 있게 된 지 오래입니다. 이게 지금 무슨 상관이냐고요? 조금 더 들으시면 알게 될 수도 있죠. 어쨌든 지금 우리의 위치가 이러하니(말그대로 물리적으로요) 가장 아래에서 시작해 위로 거슬러 올라갈까요. 조금 긴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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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셋. 남겨진 자들은 무엇을 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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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은 곳에서부터 시작해보자.
에스마일 시프는 지난 가을, 줄리아 라이네케가 다른 후플푸프 몇 명과 함께 그의 머리를 검은 호수에 집어넣으라 지시받았던 사건을 유감스러울 만큼 선명히 기억했다. 다만 그는 당신이 그렇게 지시받은 이유를 아는지, 안다면 얼마나 명확히 아는지는 알지 못했다. 실은 그것은 그가 머글 태생이라는 것과는 조금밖에 관련이 있지 않았다. 그에게는 불행 중 다행스럽게도 방과후에 하곤 하는 어떤 활동과도 관련이 있지 않았다. 그가 이 년여간 모든 친구를 배제하고 사방에 적을 만들어내며 “의도적으로 미움받기를 원하는 것처럼“ 군 것과는 어느 정도 관련이 있었으나, 그조차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여자처럼” 나긋하게 말하고, “여자처럼” 다리를 모아 앉고, “여자처럼” 바느질과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하고, (하지만 그는 “남자처럼” 말할 때도 있었고, 때론 “남자처럼” 바지를 입기를 좋아했고 또래의 “남자들”에게 요구되는 미덕과 미숙함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것은 일반적인 “여자아이들” 또한 으레 갖곤 하는 것이었다.) 남성보다 여성들의 얼굴을 자주 훔치며 긴 머리와 치마 차림을 하고 무도회에 참석한 것을 넘어 5학년의 가을부터는 스스로가 “원래부터 여자”라고 감히 주장했기 때문이었고, 기숙사를 옮겨 달라 요구하며 누군가 그를 시프 “군”으로 부를 때마다 집요하게 정정을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또 추정컨대 그들 중 한 명이 남몰래 좋아한 7학년 남학생이 (그가 에스마일을 과연 무엇으로 보았는지는 아무도 확답하지 못했지만) 통상적으로 남자가 여자에게 품어야만 마땅하다 여겨지는 감정과 비슷한 류의 감상을, 그에게 잠시 품은 것과 관련이 있었다. 아주 단순히 말하면, 그가 최선을 다했기에 그들의 눈에도 그는 이따금 여자아이로 보였으나 그들의 머리는 그것이 아니라고, 그것은 잘못되었으며 부자연스럽고 역겹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당신과 그가 모두 알다시피 그는 그리 강한 편이 아니었다. 그러니 밤늦은 시간 복도로 유인되어 끌려나갈 때부터 이미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잘못을 빌고 있었고, 마법으로 거꾸로 매달린 채 물속에서 두어 번째 다시 꺼내질 때부터 심하게 울다 종국에는 축 늘어짐으로써 그들을 불안하게(그리고 조금 찜찜하게) 했다. 따라서 그들은 일을 빨리 끝내려는 조급함으로 명백히 스스로의 힘으로 헤엄칠 상태가 아닌 희생자에게서 손을 떼고 물속에 던져넣었고, 과연 무사히 물가로 나오는지 확인할 생각 없이 등을 돌리려 했다. 핀갈 모레이가 마침 그날 밤에도 검은 호수에서 수영하고 있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것이 그의 마지막이었을 수도 있었다.
줄리아 라이네케는 그날 지팡이를 휘두르지 않았다. 시작부터 끝까지 그는 옆에 비켜서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았고, 단지 에스마일이 쉽게 도망치지 못하도록 하는 한 명분의 압박을 제공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 없는 법 아니겠어, 누군가는 낄낄거리며 말했다.) 어쩌면 아주 약간은, 조금은, 연민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에스마일은 당신의 창백한 낯이 그것을 의미한다 믿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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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은 시작이었다. 또한 결말이었다. 부정할 바 없이 장난보다는 고문에 가까운, 그런 노골적인 집단적 괴롭힘이 익숙하지 않았을 뿐, 줄리아 라이네케는 이미 3학년 즈음부터는 루드밀라 잉크워스를 필두로 한 무리행동의 일부가 되었으니까. 보이는 곳에서 사람을 매달고 무릎꿇리는 법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람이 가장 약하고 수치스러운 곳을 낱낱이 찌르고 쑤시며 상처입히는 법을 천천히 배우고 있었으니까. 당신은 약한 것들을 혐오했기 때문에 강한 이들의 옆에 섰다. 아직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집에 있는 머글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고는 했으나 당신은 이미 잡종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표하지 않았고, 감히 말하건대 에스마일은 당신보다 먼저 당신이 설 곳을 알았다. (세상은 우리를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데려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향하는 곳으로 데려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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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러지 않았던 시절 또한 있었다.
그 시절에 나는 당신에게(사실 당신보다는 어디선가 구한 초급 독일어 책에게) 독일어를 배웠고 당신은 나에게 십자수를 배웠다. 나는 당신에게 공포 속에서 숨을 쉬는 방법을 가르쳤고, (일곱, 들이마시고, 둘, 멈추고, 아홉. 내쉬고…) 당신은 나의 요구대로 독일인 극작가 아버지에게 나를 소개시켜 주었다.
…조금 과장을 보태 설명하자면 나는 당신의 “아버지”가 처음 돌아보며 인사했을 때부터 알았다.
아. 당신은 나와 같은 병*을 앓고 있군요.
*Robert Spitzer 외. (1980).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Third Edition). American Psychiatric Publishing. “Transsexualism”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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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만남은 마지막 만남이 되지 않았다. 나는 당신이 자리를 비울 때면, 어느덧 당신보다도 능숙하게 된 독일어로(어린아이들은 관심이 있는 것을 빨리 배우죠.) 그와 오래 대화하고는 했다. 어느 날은 우연히 그의 팔에 있는 숫자 문신을 보았고, 그것에 대해 묻지는 않았으나 그의 눈빛에 있는 깊은 우울을 보았다. 아직 쿠피예와 선글라스를 벗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우리 둘 다 아직 최소한의 존엄이 남아 있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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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시간이 조금 흘렀다. 숨이 가빠지려 하니 본론으로 들어가야겠다. 다시 반환점을 돌아 현재로 돌아오기 전 마지막으로. 가장 깊은 곳. 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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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둘. 드러나지 않은 상처는 무엇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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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 혹은 1975.
당신의 보가트가 “거의”(그리고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만성적 실패자들은 가장 큰 실패에조차 가끔 실패하고는 하죠. 아이러니하게도….) 실현되었던 날. 당신은 수업 중 급하게 호출을 받아 런던으로 향했다. 가끔 어떤 오러나 정치인, 기자, 혹은 겉보기엔 평범했으나 비밀을 감추고 있던 어른들의 자녀가 받곤 하듯. 하지만 당신의 아버지가 전사했다는 소식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과 비슷하게도 당신의 짐은 뒤늦게 당신의 친구 혹은 룸메이트에 의해 가방에 담겨 학교 밖으로 보내졌으며, 당신은 오래 돌아오지 않았다. 당신의 빈자리에는 소문이 돌았다.
마법사들의 은행과 저택에 잠입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십대라면, 머글 병원에 침입하는 것은 너무나 쉽다. 도착한 병원에는 당신이 없었다. 대신 창백한 손목 하나가 침대보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율리안 라이네케는 에스마일 시프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또다시 알아보았으며…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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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죽기 전 유언을 듣듯이, 에스마일은 숨도 쉬지 않고 부헨발트에 대해 들었다. 형법 175조에 대해 들었다. 줄줄이 닫히던 클럽과 바의 문과 알고 있는 다른 Homosexuell(*동성애자를 가리키는 독일어 멸칭)의 이름을 불면 구타를 끝내주겠다는 불공정한 거래와 어떻게 거세가 비정상성에 대한 징벌인 동시에 형량을 줄여 주겠다는 유혹으로 사용되었는지에 대해, 서로에 대한 사랑과 연대로 살아남았다는 수용소 안에서조차 줄무늬 죄수복에 붙은 그 분홍색 삼각형으로 인해 그들이 어떻게 고립되었고 간수뿐 아니라 동료 죄수들에게조차 폭력과 공개적 수치의 대상이 되었는지, 어떻게 그나마 대부분의 수용자들과는 다르게 독일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만이, 몸이 약한 율리안이 육체노동이 아닌 다른 곳에 배정되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원인이 되었는지… 들었다. 그 또한 거세를 제안받았는지는 듣지 못했다. 차마 물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자리를 비웠던 당신이 돌아왔고, 에스마일은 당신에게 고소와 죽음을 포함해 온갖 협박과 폭언을 들었으나 방어할 수 없이 병원 바깥으로 쫓겨났으며, 이후에는 그는 당신의 첫 번째 금기-아버지에 대해 언급하지 말 것-의 가장 빈번한 위반자가 되었으나 정작 당신을 오래 마주하지 못하고 공포에 질려 하려던 말을 잊어버리고는 했고, 그리하여 대화라고는 더듬거림과 저주만이 우리의 사이에서 오갈 수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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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하나. 침묵당한 기억은 어디로 가는가?
반문 하나. 깊은 숲 속에서 나무가 혼자 쓰러지면, 그것은 소리를 낼까요?
반문 둘. 만일 소리가 났지만 아무도 그걸 듣지 못했다면, 그 소리는 “실존”했는가?
따라서 저는 답합니다… …. 그것은 무존재로 갑니다. 즉, 모든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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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자주 간과하는 것은, 약한 것들이 얼마나 스스로의 약함을 혐오하는지입니다.
세상은 강함을 선망하며 강한 이들에게 자원과 지지뿐만 아니라 마음 또한 주고는 하고, 그 반대 급부로 세상 모든 이들이 약함을 혐오하며 경멸하지만 그 이전에 그 약함에 대해 가장 뼈아프게 아는 것이 누구이겠습니까. 할 수만 있다면 가장 먼저 우리 스스로의 의지로 그 절멸을 해내고야 말았겠지만, 그저 그 뒤에 올 영속하는 꿈의 내용이, 어떤 여행자도 돌아온 적 없는 그 발견되지 않은 나라가 두렵기 때문에 몇 번이고 실패하고야 마는 감정을,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삶이며, 동시에… 동시에. 갈망하기를 멈출 수가 없는 것이 삶인 기분을… 그 정도로 나약해본 적 없는 이들 말고는 누구도 이해하지 못해요.
쥘 린드버그는 악한 이들이 상처받았기 때문에 악하다고 말했죠. 만약 “악함”을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그것은 때로 맞습니다. 그렇다면 약함은 또한 악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약한 것은 스스로 살 수 없으며 주위에게 도움을 요구하게 되니까요.굶어죽어가는 이가 하늘을 움키듯 그 절박한 손짓에, 피로 자아낸 그물에 때로는 더 약한 이들이 걸리기도 하며, 전혀 적절하지 못한 대상이-예를 들면 어른이 되지 못한 이가 살아남아 세상으로 낳아버린 어린 딸이-옭아매지기도 합니다. 약한 자는 악하지 않으나 선하지도 않아요. 그것은 명백합니다.
하지만 줄리아 델피니 라이네케. 실은 저는 대단한 도덕이나 이상 같은 것은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늘 그저 약한 것들을 좋아했습니다. 약한 것들은 자주 아프고, 또 쉬이 죽으니까요. 약한 것들은 구더기가 시체에 이끌리듯, 까마귀가 반짝이는 것에 이끌리듯 자성처럼 죽음에 이끌리는 습성이 있고 저는 죄목을 공유하나 책임을 공유할 수는 없어 당신의 상처에 대신 사죄해 드릴 수는 없음이 슬플 뿐입니다. 다만 어떤 고통은 비명을 지를 수 없도록 혀를 붙들고 입을 막으니까, 내뱉지 못한 기억은 흩어져 만물로 돌아가 버리고 죽은 이들에게는 말이 없으니까. 대신 절규해줄 사람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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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곁에 당신을 염려하는 이들이 있다는 말이, 염려를 지긋지긋하게 여기는 당신에게는 더욱 잔인할 이유가 되겠죠. 당신이 나약함을 혐오하는 이유를 뼈저리게 아는 만큼, 지금 당신에게 자비를 애원해도 그것을 기대할 수 없음을 저는 압니다. 이 사실이 그 자체만으로 무언가를 바꾸기엔 아마 너무 늦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른이 되기 전에 우리가 설 곳을 정했으니까요. 불길한 예언을 할까요. 저는 오래 살 것이라 생각한 적이 없었고, 사실 당신조차도 나는 위태로워 보입니다. 다만 제가 오늘 말해드린 것은 당신이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 이런 고통이 있었습니다. 지금 당신이 다른 이들을 거리낌없이 해치듯이, 세상이 그 사람을 해치고 그 사람이 당신을 해쳤으매 즉 세상이 당신을 해쳐서. 당신은 이런 연원으로 아팠습니다. 내가 그것을 우연히 알았고, 그래서 나 또한 아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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