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켄란부

너의 시작과 끝을

도검난무 헤시사니 드림 (현패러)

by 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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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조금 더 나이가 들고서 마냥 다정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언제까지나 다정한 사람이었다. 둘뿐인 가족, 아버지는 정말 모든 인생을 나를 위해 바쳤다. 아버지가 하는 모든 일, 모든 선택은 전부 나를 위한 것들 뿐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선택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어린 아이의 맹목적인 애정을 둘째치고서도, 아버지는 정말 똑똑하고 대단한 사람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잘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집 밖에서는 다소 무례하게 느껴질만큼 엄격한 성격이었으나, 그만큼의 결과를 내는 사람이기에 어디에서든 대접 받곤 했다. 그런 사람이 오로지 나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애정을 태어난 이후로 당연하다는 듯 받아왔던 나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만큼 나를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은 절대 만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많은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아버지는 외모 또한 출중했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나이를 종잡을 수 없는 젊은 외모였다. 홀로 아이를 키운다는 큰 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와 함께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정말 나 외에는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어서, 그 수많은 권유에도 눈 한 번 깜박이지 않았다. 나는 한번도 누군가에게 아버지를 뺏길거라는 불안함조차 느낀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언젠가, 아버지가 내 가까운 친구에게 불합리하게 화를 내는 날에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아마 아버지는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 친구와 나는 연인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충분한, 묘한 긴장감을 가진 사이였다는 걸. 불합리하게 화를 내는 아버지의 모습에 반발심이 생기면서도 나는 아버지의 불안한 마음을 이해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그 후로 그 친구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누군가 들으면 징그럽다고 생각할 걸 알면서도, 나는 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싶었으니까. 언젠가 나는 결국 아버지를 떠날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도 언젠가는 나를 누군가에게 보내줄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적어도 그때까지만은, 함께 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자고. 서로 말은 없었지만 아버지도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새 나는 누군가를 만나 새로운 가정을 꾸려도 어색하지 않을 나이가 됐다. 하지만 좀처럼 좋은 상대를 찾을 수 없었다. 어떤 상대를 만나도 아버지와 비교가 됐기 때문이다. 아버지보다 똑똑한 사람, 아버지보다 뛰어난 사람, 아버지보다 성실한 사람, 그리고, 아버지만큼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 한들 평범한 나를 사랑할리는 없을 것이다. 나는 결국 아버지 외에 다른 사람과는 함께 할 수 없는 걸까. 그렇다면 아버지가 떠난 후 그 긴 시간은 혼자 지낼 수 밖에 없는 걸까. 하지만 귀신같이 젊은 외모를 항상 유지했던 아버지는 요즘 들어 부쩍 나이 든 티가 나기 시작했고, 나도 아버지의 도움 없이 혼자 살기엔 여러모로 모자란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눈을 낮춰 적당히 결혼해야 하는지, 앞으로 혼자서 살아갈 각오를 해야 하는지-

그렇게 생각하던 차에 만나버리고 말았다.

그 사람과.

그 사람은 처음 봤을 때 들었던 감상은, 놀라울 정도로 아버지를 닮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직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어쩌면 친척이 아닐까, 아니, 잃어버린 아들일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 사람은 아버지의 젊은 시절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아버지와 닮지 않았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던 나는 어쩐지 기분이 좋지 않아 처음에는 그 사람을 피해 다녔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사람과 나는 자꾸만 우연히 얽히기 시작했다. 사소한 이야기를 시작해도 얘기가 잘 통했고, 내가 말하지 않은 것까지 잘 알아차리는 눈치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람은 아버지를 닮은 냉정한 얼굴을 하고 나에게는 항상 상냥한 태도를 취했다. 다른 사람들과 나를 대하는 태도가 확연히 다르니 나 역시 자제하려 해도 자꾸만 들떠버릴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와 닮았고, 하지만 아버지가 아닌 사람. 나와 나이가 비슷하고, 나에게 호감을 보여주는, 아버지와 너무나 닮은 사람. 혹시 이 사람이 나의 운명은 아닐까. 누구나 탐낼만한 사람을 두고 나는 그렇게 생각해버린 것이다. 어느새 나는 그 생각을 감추지도 못할 만큼 그 사람을 좋아하게 돼버렸다. 그리고 딱 그 때, 그 사람은 나에게 고백했다.

그 순간만큼은 항상 내 머릿속을 차지하던 아버지가 떠오르지 않을 만큼 기뻤다. 살면서 처음으로, 나의 시간이 아버지 외의 사람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틈이 나면 항상 그 사람을 만나러 가니 아버지를 보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아버지는 예전과 달리 나에게 눈치를 주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까, 내가 지금 운명 같은 사람을 만났다는 걸 알아줬을까. 나는 아버지에게 그 사람 얘기를 꺼내기를 껄끄러워 하면서도, 언젠가는 아버지에게 꼭 그 사람을 소개시켜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도, 그 사람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세상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까다로운 아버지라도 그 사람은 분명 마음에 들어할 것이다. 그만큼 그 사람은 어떤 조건도,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마음도 아버지 못지 않은 사람이었다. 분명 아버지도 내가 그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기뻐할 거야.

프로포즈를 받은 건 딱 좋은 시기였다. 내가 항상 꿈에 그리던 장소에서, 완벽한 타이밍에, 그 사람은 나에게 앞으로도 함께 살아가자고 청혼을 했다. 눈물이 날 만큼 기뻤지만 대답은 쉽지 않았다. 아무리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도, 내 인생에서 아버지는 여전히 중요한 사람이었다. 나는 너무 기쁘지만, 아버지의 의견을 들어보고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그 사람은 조금 아쉬운 표정을 하면서도 흔쾌히 나와 아버지의 대답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 점까지도 정말 내가 사랑한 사람다웠다. 아버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어요. 앞으로 그 사람과 함께 살아가고 싶어요. 아버지라면 분명 그 사람을 마음에 들어할 거예요. 나는 상기된 얼굴로 집에 달려가 이때까지 있었던 그 사람과의 모든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다. 아버지는 인내심 있게 모든 이야기를 듣고, 조용히 웃으며 결혼을 허락한다고 말했다. 조금은 놀랄 줄 알았는데, 내 쪽에서 놀랄 정도로 차분한 태도였다. 아, 어쩌면 아버지도 이 순간을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가장 사랑하는 아이가, 자신 외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날까지. 나는 드디어 그 사람을 아버지에게 소개시켜 주기로 마음 먹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나는 날이라니, 너무 두근거려서 잠도 이룰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날, 아버지는 사망했다.

갑작스런 사고로. 마지막 인사를 나눌 새도 없이.

심하게 훼손된 시체라 얼굴을 확인할 수도 없었다. 나는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울었다. 살면서 너무 많은 행복을 받아서, 너무 큰 행복이 동시에 오는 걸 신이 허락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장례식장은 겨우 자리만 지키는 수준이었고, 모든 일은 그 사람이 대신 처리해줬다. 내 얼굴을 모르는 아버지의 손님들은 그 사람이 아버지의 아들이라 착각할 정도였다.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다. 아마 그 사람이 없었다면 나 역시 슬픔과 절망에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람은 내가 기운을 차릴 수 있게 뭐든지 했다. 그리고 내가 아버지의 죽음을 겨우 받아들인 때, 다시 한 번 프로포즈를 했다. 그래, 이제 아버지는 없지만 나는 이 사람과 함께 살아갈 수 있어. 나에게는 새로운 가족이 있다. 누구보다 사랑하는,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은 나의 사랑하는 가족이.

…정말 그렇게 해도 괜찮겠어요?

“네, 우리가 결혼하면, 내가 당신의 성을 따르겠습니다.”

“그럼 당신도 계속 아버지와 함께 한다고 느낄 수 있겠죠.”

“아버지가 물려준 소중한 성을 가지고, 나와 함께 살아가는 거예요.”

아, 아버지. 당신이 없지만 나는 정말 행복해요. 이렇게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고 있어요.

아버지만큼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과…

“그렇다면 나의 이름은 이제 하세베 쿠니시게가 되겠군요.”

“잘 어울리나요? 마음에 든다면,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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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이상한 꿈을 꿔서 정말 오랜만에 2차 창작을…

하세베 생각 너무 많이 해서 저까지 이상해진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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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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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패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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