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과 설원

[라하히카] Mono Poisoner

라하네스 / 가이드버스 AU

  • FF14 그라하 티아 HL 연인드림 연성입니다.

  • 드림주는 달 여코테. 드림주 이름 나옵니다. 네임리스 아닙니다.

  • 드림에 예민하신 분들은 뒤로가기 눌러주세요.

  • 가이드버스(통칭, 센가버스) AU 연성 중 일부입니다.

  • 초반 부분만 업로드 합니다. 현재 25,000자가 넘었으나 총 몇자가 나올지 예상 불가능. 19금 예정입니다.

  • 업로드 분량 : 공백 미포함 6,340자


Mono Poisoner

G‘raha Tia × Areunes Eldis

copyright by. Mer

콰앙! 폭발음과 함께 화염이 치솟았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잿빛 연기 뒤로 은백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젠장! ‘화이트 위치’다!”

“튀어, 튀어!”

 

사색이 된 적들이 사방팔방으로 분산되어 도망가지만 뒤에서 무자비하게 날아오는 얼음 창에 꿰뚫리며 하나 둘 쓰러졌다. 괴물이라고 외치며 도망가는 비명이 들렸지만 그녀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그저 저 앞에서 거슬리는 피라미를 빨리 처리하고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만이, 그녀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기에……. 그 때, 치지직 잡음과 함께 무전이 들려왔다.

 

코드네임 화이트 위치, 복귀해라.

“……섬멸이 코앞인데 저걸 놓아주라고?”

놓아준 적보다 지금 눈앞에 있는 폭주직전의 에스퍼가 더 위험해.

“괜찮은데.”

지금 위험수치라고 경고등 미친 듯이 뜨고 있거든?

 

당신 약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어! 또 실려서 복귀하고 싶어?! 오퍼레이터의 비명 섞인 잔소리를 무시한 채 얼음 창을 소환하는, 화이트 위치라고 불린 여성. 결국 그녀는 열이 잔뜩 오른 상태로 금방이라도 터지기 직전인 폭탄마냥 실려서 본부로 복귀했다.

 

- 당신 내가 뭐랬어?! 복귀하랬지!

“…….”

- 당신이랑 맞는 가이드 찾는 동안 이렇게 약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야!

 

금방이라도 토하려고 하는 가이드를 쫓아내듯 내보낸 오퍼레이터가 인터폰을 통해 한껏 잔소리를 쏟았다. 언제 폭주할지 모르는 에스퍼이기에 처치실에는 비전투 에스퍼인 오퍼레이터가 들어갈 수 없는 상태여서 어쩔 수 없는 광경이었다. 똑똑 떨어지는 링거를 무심하게 바라보던 여성은 이내 영혼 없는 눈동자를 굴려 오퍼레이터를 흘기듯 바라봤다.

 

- 가이드 매칭, 아직도 대상자 찾고 있는 거야?

“하나 남았어. 당신과 똑같은 S급.”

 

거기도 특이해. 그렇게 높은 랭크를 가진 가이드는 귀한데 매칭률이 50%를 넘지 못해서 상급 가이드는 오히려 함부로 가이딩을 못하거든. 이번에 드디어 당신이랑 매칭률을 확인할 수 있는 스케줄이 잡혔어. 당신이 워낙 바빠야지. 종알종알 떠드는 목소리는 이제 익숙하다. 대충 무시하고 잠에 들려는 순간 빼액 오퍼레이터가 소리쳤다.

 

- 아르네스! 지금 내 말 안 듣고 자려는 거지?!

“……자게 둬.”

 

아르네스라고 불린 여성. 에오르제아 연맹(약칭, EGU) 내에서 현존하는 유일한 S급 에스퍼이자 유일한 삼대 원소 능력자로 이름난 코드네임 화이트 위치. 그녀는 여기서 막지 않으면 오퍼레이터가 종일 잔소리를 하든지 떠들던지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는 잠을 잘 테니 꺼지라는 눈빛으로 오퍼레이터를 쫓아내고는 눈을 감았다. 팀 ‘새벽의 혈맹’ 내에서 랭크 탓에 본래 단독임무를 많이 맡아왔던 그녀이지만, 최근에는 유독 빈도수가 늘어서 몸이 축나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다. 그렇지만 그녀에게 높은 매칭률을 보이던 유일한 가이드는 이미 몇 개월 전, 전선에서 그녀를 지키다가 사망한지 오래였다. 바보 같은 사람. 저가 죽는 것이 얼마나 큰 손해인지 알면서……. 고작 S급 에스퍼 하나 죽는 것이 뭐 대수라고……. 사실 대수가 맞았지만……. 그녀는 약으로 인해 서서히 찾아오는 잠기운을 억지로 뿌리치지 않고 이내 눈을 감았다. 오늘도 악몽은 확정이었지만 그래도 또 싸우러 나가려면 잠은 자야했고, 수치도 안정화가 필요했다. 가이드가 없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음 매칭 상대는 좀 어느 정도 맞았으면 좋겠네.”

 

50%만 넘어도 높다고 볼 수 있는 S급 에스퍼의 가이드 매칭률이었다. 기존 가이드가 죽은 뒤 계속 10% 내외였으니 30%만 넘어도 기적이라 볼 수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는 그대로 잠들었다.

 

* * *

 

그라하 티아가 가이드가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시간 회귀를 겪으며 기존 A급에서 S급으로 재판정을 받게 된 희귀한 케이스였다. 물론 그가 시간 회귀를 겪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를 특수 케이스로 분류하는 이유는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바로 제 1 방어도시 크리스타리움의 중심에 위치한 크리스탈 타워를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관리자라는 위치 때문이었다. 덕분에 그는 비록 지금은 아닐 지라도 먼 미래 멸망해가던 시간대에서는 한 도시의 수장 역할도 겸임했었던 기억도 있었다. 그가 시간 회귀를 한 이유는 오직 하나, 멸망해가던 세계를 바로잡기 위해서. 그리고 이 세계가 멸망의 지름길로 빠져든 이유 중 가장 결정적인 원인으로 그는 EGU 내 유일한 S급 에스퍼였던 코드네임 화이트 위치의 폭주를 꼽았다. 회귀 전의 그 또한 화이트 위치라고 불리던 아르네스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크리스탈 타워를 제어하기 위해 크리스타리움을 벗어날 수 없는 입장이었고, 그녀는 전투 도중 자신의 가이드를 잃은 이후 약물로 버티다 결국 정신이 무너져 그가 손 쓸 틈도 없이 폭주하여 일대를 날리고 사망했었다는 기억만이 강렬하게 존재했다.

 

*

 

사망 직전의 그녀의 모습은 아직도 생생했다. 피눈물을 흘리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태우고 얼리는 가공할 만한 위력의 능력을 선보이며 그 자신의 몸마저 불태우는, 분명 겉으로는 괴상한 고함밖에 들리지 않았으나 그는 이상하게도 그녀가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르고 우는 것 같았다고 생각했다. 같은 S급 가이드의 가이딩도 먹히지 않던 그녀는 이미 가이딩을 하기엔 너무 늦어 사살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으나, 놀랍게도 당시 A급이었던 그라하의 가이딩에는 반응을 보였다. 아주 조금이나마 힘이 줄어들었던 그 때.

 

“사살하라……!”

 

탕탕! 연달아 들려오는 총격에 의해 심장을 가격당한 그녀는 그대로 힘을 잃고 스러졌다. 아주 잠깐이지만, 눈이 마주쳤다는 느낌을 받았다. 멀리 있어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는 그녀가 저를 보며 웃고 있다고 생각했다. 웃어? 그 얼음의 마녀가? 그렇지만 그는 잘못 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인지 모르지만 마지막으로 시신을 수습하러 갔을 때의 그녀의 얼굴은 평온 그 자체였기에……. 그녀의 마지막은 도시 하나를 괴멸시킨 후 허망하게도 끝이 났다. 그 뒤로는 멸망으로의 급행열차를 탄 듯이 빠르게 멸망을 향해 이 세계는 나아간 것이었다.

 

*

 

그라하 티아가 시간선을 되돌린 것은 어디까지나 그가 크리스탈 타워의 관리자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탑과 자신을 동기화 하고 오랜 시간동안 시간을 되돌릴 방법을 연구한 끝에, 그는 발견했고, 오차 범위를 가정하여 계산한 연도로 시간회귀를 시도했다. 가정하여 시도했음에도 도착했던 시기는 그가 가이드로 발현한지 조금 되었을 즈음이었다. 아, 아직은 그녀의 가이드가 존재하는 시간선이었기에, 그는 기다리기로 했다. 그녀의 가이드를 구한다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단지 그 폭탄의 곁에서 그녀의 안식처가 되어주는 사람이 자신이었으면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는 마지막의 순간, 저를 보며 웃는 그녀의 모습에 그대로 사랑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것은 어찌되든 좋았다. 그녀가 저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저는 그녀의 유일한 안식처가 되길 희망했고, 실제로 그녀의 유일한 안식처가 될 가능성이 높음을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회귀 전, 마지막의 그 때, 다른 S급들의 가이딩은 먹히지 않았음에도 오히려 당시 A급이었던 그의 가이딩은 효과가 있었으니까. 하물며 지금의 그는 S급이었다. 오히려 S급으로 등급이 격상된 것이 어떤 차이를 가져다 줄지는 그는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확신은 그녀와 그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에스퍼와 가이드의 관계가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자신이 그녀에게 감히 사랑을 받을 거라는 사실은 물론이요 사랑을 넘어 심한 독점욕까지 보게 될 미래가 그에게 찾아오리란 것을……. 본래라면 그는 크리스타리움을 멀리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회귀한 지금, 타워와 멀리 떨어져 있어도 타워에 누가 접근하는지 정도는 알아차릴 수 있는 시스템을 심어둘 수 있을 정도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상태의 그는 크리스타리움에서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었고, 비록 그 시스템을 심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하였지만, 그는 그토록 오랫동안 갈망하던, 그녀와의 가이드 매칭률 테스트를 위해 EGU 본부로 향하게 된 것이었다.

 

* * *

 

“S급 가이드 그라하 티아 입니다. 반갑습니다. 오늘 매칭률 테스트 잘 부탁해요.”

 

그라하 티아의 첫인상은 강렬한 빨강이라고, 아르네스는 생각했다. 그의 인사에 형식적으로 고개를 까닥이며 제 등급과 코드네임을 읊은 그녀는 이내 테스트 기계 앞으로 향했다. 참으로 얼음의 마녀다운 모습이라며 그라하가 쓰게 웃는 것을 보며 오퍼레이터가 옆에서 속이 터진다는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사과의 말을 건넸다. 그라하는 신경 쓰지 말라는 말과 함께 마찬가지로 테스트 기계 앞으로 향했다. 오퍼레이터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제발 매칭률 50%만 넘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빌기 시작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수치가 가능하지?”

“매칭률 98%입니다. 이정도면 거의 100%라고 봐도 무방해요!”

 

이 수치는 역대 가이드 매칭률 테스트를 진행하면서 처음 보는 수치입니다! 그라하는 수치 데이터 결과값을 들으며 과거에 한 번이라도 매칭률 테스트에 응했더라면 미래는 달라졌을까 라는 생각을 하다 고개를 저었다. 흘금 테스트를 같이 진행했던 상대를 바라보니 드물게도 놀란 눈동자를 하고 데이터를 바라보는 모습이 보였다. 아, 저 얼음의 마녀가 표정이 변할 때도 있구나. 이미 알고 있었지만 새삼 놀랐다고, 그는 생각했다. 유리창 밖에서 제발 매칭률이 잘 나와 달라고 기도하던 아르네스의 오퍼레이터는 거의 유사 비명에 가까운 환희를 내지르고 있었다. 드디어 약으로 안 재워도 된다! 우리 애 터질까봐 걱정 안 해도 된다! 폭탄 취급 안 해도 된다! 흡사 다른 사람이 느끼기엔 크게 실례가 아닐까 우려가 될 정도의 발언을 서슴없게 하는데도 아르네스는 시끄럽다는 눈치만 줄 뿐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일상인 듯 싶었다.

 

“이대로 바로 전속 가이드로 계약을 체결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화이트 위치 본인의 의견은 듣지 않는 건가요?”

“저 녀석은 매칭률만 좋게 나오면 아무래도 좋다는 녀석이라…….”

 

이전 가이드도 실제로 매칭률 자체는 60%를 겨우 웃돌던 정도였는데 워낙 행동 패턴이랑 마음을 잘 읽던 사람이라 부족한 매칭률을 커버할 수 있었던 거구요. 엄청 활발한 사람이었는데 전장까지 쫓아오지 말라고 그토록 말을 해도 늘 쫓아오더니만……. 말을 흐리는 오퍼레이터의 말에 그라하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가이드가 누군지 알고 있었기에……. 그렇지만 이제는 저가 전속으로 붙을 예정이었다. 전의 가이드가 누구였는지, 어떤 관계였는지는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연인관계는 아니었다고, 오퍼레이터도 화이트 위치 본인도, 그 당시 가이드 본인도 누누이 말을 해왔기에……. 그럼 가이딩을 어떻게 한 거지? 그는 오퍼레이터를 지나쳐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기 위해 말을 걸었다.

 

“이전 가이드는 가이딩을 어떻게 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

 

잠시 침묵하던 아르네스는 이내 손잡기, 포옹 정도 수준에서 끝냈었다며 차갑게 일갈하고는 상태에 따라 더 진행하는 것은 상관하지 않으나 되도록 너도 그 수준에서 끝내라. 라는 말만 남기고 이내 테스트 실을 나가버렸다. 오퍼레이터가 미안하다고 연신 고개를 숙이는가 싶더니 너 자꾸 이럴 거야?! 하고 비명에 가까운 호통을 치며 쫓아 나갔다. 너 지금 또 출동하면 또 실려와! 미쳤어?! 뒤이어 들려오는 외침은 앞으로 다가올 그의 미래를 암시하는 듯 싶었다.

 

“테스트는 이만 끝났으니 돌아가셔도 됩니다.”

 

아무래도 연맹 내에서 정식으로 화이트 위치의 가이드로 배정을 할 것 같으니 그렇게 알고 계시면 되실 것 같습니다. 전속 가이드를 위한 숙소 및 안내 사항 관련해서는 옆의 사무관을 통해서 전달 받으시면 되실 것 같습니다. 감격에 겨운 목소리를 억누르지 못하고 들뜬 상태로 빠르게 안내를 마친 연구원은 이내 옆에 있던 사무관에게 그라하를 인계하고 자리를 떴다. 저 들뜨고 신난 모양새를 보아하니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하여 동료들에게 자랑할 생각인 듯 싶었다. 그래, 둘의 매칭률이 높다는 것이 널리 퍼지는 것은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그의 자리를 넘보는 허튼 놈들은 사라질 테니까……. 단지 쓸데없는 입은 놀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라는 생각을 하며 그는 사무관의 안내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 * *

 

- 코드네임 수정공, 호출입니다.

“……또? 이번에는 상태가 어떻대?”

-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닌데 혼절은 했다고 하더군요.

“……터지기 5초전의 상태는 아니지만 혼절할 정도로 힘을 썼다는 소리군.”

 

그라하가 아르네스의 전속 가이드로 들어가게 된 지 어느덧 한 달. 이런 식의 호출만 벌써 네 번째였다. 평소에는 피투성이-참고로 본인의 피가 아니다-로 돌아와 씻고 그와 같은 공간에서 그의 가이딩을 받으며 편안하게 눈을 감고 있는 정도나 손을 잡고 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가끔 이런 식으로 혼절한 채 실려 들어와 그를 호출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럴 때는 손잡기 정도로 해결되지 않아서 침상에 누워있는 몸을 부드럽게 안아들고 품에 안은 채 가이딩을 해야 했다. 그나마 매칭률이 높았던 탓에 단기간에 상태가 좋아진 것은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지만 그만큼 위험한 임무를 많이 나가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해서 그라하의 마음은 썩 편하지만은 못했다.

 

“내가 네 돌아올 곳이 되길 희망한 것은 맞지만, 이런 식으로 돌아오길 바란 건 아니었어.”

“……그럼, 어떤 식으로 돌아오길 원하는데.”

“……?! 아, 정신을 차렸어?”

 

고개를 내리니 눈과 같은 시린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아니, 분명 시린 눈동자인데 오늘따라 시리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그래서, 어떤 식으로 돌아오길 원하는데……? 다시금 되물어오는 물음에 그라하는 멍하던 정신을 되돌렸다. 어떤 식으로 돌아오기를 원하냐니? 당연한 것 아닌가?

 

“네가 이렇게 실려 오지 않고 두 발로 제대로 걸어서 돌아오는 거.”

“……어려운 주문이네.”

 

요즘 임무 난이도가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아. 차갑게 일갈하는 목소리에는 어쩐지 씁쓸함이 배어있다. 최근 본부에서 유독 그녀에게 높은 등급의 임무를 단독의뢰로 맡기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그도 알고 있었기에 침묵했다. 그녀가 능력 있고 강한 에스퍼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지만 걱정이 되는 이유는 오직 하나, 좋아하는 사람이 위험한 전선에 나가서 싸우기 때문이리라. 사실 가장 좋은 것은 전장에 쫓아나가 필요할 때 제때 가이딩을 해주는 것이 가장 좋지만, 그것은 그녀가 허락하지 않았다. 이미 그렇게 가이드를 잃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기에 트라우마로 남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그녀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러나 최근, 그라하는 역시 무리해서라도 전장으로 쫓아가야 했던 것이 아닐까 하고 심각하게 고민하는 중이었다.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는데, 안 돼.”

“네가 왜 안 된다고 하는지 충분이 이해하는데, 네 꼴을 보니 자꾸 반항하고 싶어지네.”

“내 꼴이 뭐 어때서.”

 

상처투성이가 되어서 돌아오거나 하지는 않잖아. 어쩜 이리 뻔뻔할까. 요 한 달간 그녀와 친해졌음을 부쩍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말을 거의 하지 않고 고갯짓이나 손짓으로 대꾸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점차 말이 느는가 싶더니, 최근엔 불퉁하게 툴툴거리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한 달 사이에 관계가 장족의 발전을 이루는 중이었다. 최근 제법 제정신으로 멀쩡할 때는 꼬리를 살랑이며 장난을 치는 경우도 간헐적으로 있어서 그녀가 마음의 문을 열고 있다는 사실이 느껴져 그것은 기뻤지만……. 그것과 걱정은 별개의 문제다.

 

“자꾸 그렇게 굴면 나 정말 몰래 쫓아가는 수가 있어.”

“어디 한 번 감금당하고 싶으면 해봐.”

 

아, 저건 진심이다. 그라하는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아르네스는 한다면 하는 여성이라는 것을 한 달 사이에 몸으로 직접 겪었기 때문이었다. 보통은 눈을 뜨면 바로 품에서 벗어나던 그녀가 한참을 안겨 있다가 드디어 몸을 일으켰다. 일으키더니 하는 말이 아주 청천벽력과도 같다.

 

“나 내일도 임무 있어.”

“……또?”

 

이번엔 어딘데? 얼마나 위험한 곳인데? 걱정스러운 마음에 그라하가 자꾸만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침묵하던 아르네스는 이내 뭐 어차피 말해주려고 했으니까……. 라는 말과 함께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을 이었다.

 

“크리스타리움으로 갈 거야. 임무지역이 그 인근이라서.”

“아?”

“네가 관리자로 있는 타워를 노리는 잔당들 처리하러 간다고.”

“……거긴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빼앗길 도시가 아니야.”

“아는데, 내가 받았어.”

 

임무등급 D지만, 네가 있던 도시잖아……. 어쩐지 쑥스럽다는 듯 말하는 모습에 그라하는 한순간 멍한 얼굴을 하다가 작게 미소 지었다. 생각해서 임무를 잡았다는 말이 괜히 그에게는 기쁘게만 들렸다. 나 때문에 생각해서 잡은 임무야? ……조용히 해. 일어나, 숙소로 돌아 갈 거야. 짐 싸야지. 괜히 민망하다는 듯 일어나 저 멀리 저벅저벅 처치실 밖으로 향하는 뒷모습을 보며 그는 푸슬푸슬 웃음을 터트렸다. 흰 피부 탓에 홍조가 지면 유독 더 붉어 보인다는 사실을 이제는 좀 스스로 깨달았으면 하는데, 아니, 아예 모르고 있어도 제법 재밌을 것 같다는,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그는 빠르게 뒤를 쫓았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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