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4박 5일 후쿠오카/유후인 여행기(完)

아니 내일이 7월이라니 말이 되냐

지난 편에도 언급했지만, 우리가 묵었던 료칸은 산중턱에 있다. 그게 무슨 말인가 하면 아침에 온갖 새들의 지저귐과 함께 눈을 뜰 수 있다는 뜻이다. C양은 ‘녹음했다 트는 것 같은 완벽한 새소리’라고 표현했다. 나는… 뭐가 완벽하고 뭐가 완벽하지 않은지 알 만큼 새들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그냥 온갖 새소리가 들렸다 정도로 해 두겠다.

새를 좋아하는 C양은 밖에 나가 보자고 했다. 비슷하게 눈도 떴겠다 아직 밥 먹을 시간 안 됐겠다 아침 산책이 퍽 좋아 보였다. 4월 말이라도 벌써 날은 꽤 더워져 있었으나, 산중턱의 아침은 약간 쌀쌀한 듯도 해서 료칸 하오리를 위에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유후인에서는 온천 증기가 곳곳에서 연기처럼 모락모락 오른다. 불이 난 게 아니다… 풍광이 근사했으니 한 장 더.

C양은 뭔가 새로운 새를 몇 종류 봤다는 것 같았고, 나는 돌아서면서 그 새 이름을 까먹었다. 휘파람새였나? 풀도 나무도 많고 새도 많고 벌레도 많았다. 아침은 소란스럽게 고요했고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신나게 전신주며 나무에 앉은 새를 좇다 보니 밥 먹을 시간이었다. 아 주는 밥 먹어야죠. 우리는 료칸으로 돌아갔다.

왜요? 제가 먹으려고 일본까지 간 사람처럼 보이시나요? 그런 정확한 말씀을.

농담이지만 주는 건 잘 먹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아침을 든든히 잘 받아 먹고 방으로 돌아와서 과자와 주스를 땄다. 료칸에서 생수하고 주스하고 맥주를 무료로 주는데, 이 생귤 주스가 생각보다 너무 맛있었다. 5년 전에는 이런 것 없었던 것 같은데…! 우리는 외출하러 나가면서 카운터에 주스를 몇 병 더 넣어 달라고 요청한 후 열쇠를 맡기고 료칸을 나섰다. 목표는 긴린 호수와 민예거리다.

내려가는 길이 멋있으니 한 장 올리고.

가족들과 왔을 때는 호숫가를 한 바퀴 돌았던 것 같으나, C양은 호수 주위에 사는 새면 모를까 호수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냥 물이구나,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원래 긴린 호수는 아침나절의 물안개가 아름답다고 하는데… 음, 나도 그건 본 적이 없어서 뭐라 말을 못 하겠다. 게다가 이날은 날이 흐려서(나중에 결국 비도 왔다) 그런 분위기가 좀… 아니긴 했다. 결과적으로 긴린 호수 쪽에서 찍은 사진은 이게 전부다.

하지만 예쁘죠? 저 노란색 울타리는 무슨 목욕탕(?) 같은 거였는데 료칸 묵은 사람만 들여보내 준다고 했다. 목욕탕은 우리 료칸에도 있으니 괜찮습니다. 우리는 그 앞을 지나쳐서 민예거리 쪽으로 갔다. C양은 여기서 몇 가지 기념품과 과자를 살 계획이 있었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작은 가게들이 많았던 기억이니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면 한두 시간쯤은 때우지 않을까 싶었다. 료칸에선 점심을 안 주니까 근처 식당에서나 군것질거리들로 한 끼 적당히 때울 수도 있겠고…

그래서 먹는다 만두. 정식 이름은 유후인 오야키라는데(아니 이게 가게 이름이고 고보가 이름인가) 먹어본 감상은 그냥 고기만두 같다.

념념 먹고 아래로 계속 내려갔다. 강아지 관련 물건이 많은 가게도 들르고 충격의 숯 라떼도 보고(이거 C양이 나중에 먹어본다 했는데 비가 와서 결국 못 먹었다) 하다가 어째 좀 이질적인 가게에 들어가게 됐다. 이름하여 튀르키예 상점(정식 이름은 아니다).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은 아름다운 찻잔들. 형태는 익히 아는 찻잔 모양과 중간이 잘록한 물항아리 같은 모양으로 크게 나뉘고, 찻잔 모양도 옆에서 봤을 때 실루엣이 사다리꼴처럼 직선인 녀석과 옆라인이 곡선으로 빠지는 녀석으로 또 나뉘었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보일 것이다… 저 섬세하고 화려한 문양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가게 주인이 이 찻잔의 튼튼함을 과시하며 바닥에 던졌다. 분위기 봐선 안 깨질 것 같긴 했는데 - 실제로도 안 깨졌고 - 그 짓을 하는 걸 보는 것만으로 심장이 벌렁벌렁한다. 이 정도로 튼튼하면 캐리어에 대충 구겨박아서 가져가도 한국에서 멀쩡하게 꺼낼 수 있으려나? 그런지 어떤지 좀 보고 싶긴 했는데… 나는 차를 안 마신다.(…) C양은 고민을 좀 해 본다 하여 일단은 패스. 그 외에도 악마의 눈이라든가 페르시안 무늬 카페트가 예뻤긴 했는데… 나는 부적도 안 들고 다니고, 카페트는 한국에 가져갈 방법이 없으니(빨래는 또 어떻게 할 것이며…) 역시나 패스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몇 걸음을 가던 중 C양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여기가 지옥인 티셔츠.(두둥)

C양 : 저걸 입고 회사에 출근하면 어떨까

나 : 음…

C양은 아예 티셔츠를 색깔별로 5개쯤 장만하고 싶은 사람 같았다. 아니 뭐 진지한 얼굴은 아니었지만… 그가 입어볼 수 없는 티셔츠의 사이즈를 고민하는 동안 나는 다른 웃긴 티셔츠를 구경했다. 저 사진에도 같이 찍힌 ‘NIKU’(고기가 그려져 있고, 그 밑에는 JUST EAT IT 이라고 적혀 있다), FAMA(머리에 곱슬 가발을 쓴 푸마가 그려져 있다), AJIDESU(전갱이를 표현한 생선 그림이 그려져 있다) 등등… 꽤 여러 가지 있었는데 그새 다 까먹었다. C양은 매일지옥 티셔츠와 한참 눈싸움을 하다, 아무래도 회사에 못 입고 갈 것 같다며 포기했다.

그 뒤로도 민예거리 탐방은 계속되었다. 우리는 온갖 과자를 들었다 놨다 하고, 가게를 들락거리고, 단고를 사먹고, 진저에일과 고로케도 먹었다.

인테리어가 참 예뻤던 진저에일 가게.

사실 나는 생강을 그리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적당히… 탄산 같은 걸 마시고 싶었으나 C양이 진저에일을 따뜻한 거 하나 시원한 거 하나 시켰으므로 같이 나눠먹게 되었다. 꽤 긴장을 많이 했는데 먹어보니까 의외로 괜찮았다. 나 혼자 어딜 가서 시킬 것 같진 않지만… 이런 여행이 아니면 하기 어려운 멋진 경험이었다.

먹었으면 이제 또 가야죠. 우리는 민예거리의 모든 상점을 샅샅이 훑을 기세로 진격했다. 5년 전에 와서 본 가게도 꽤 많았지만 잘 모르는 가게도 있었다. 어떤 할머니가 운영하던 빈티지 샵 같은 게 대표적이었다. 여러 가지 생활 소품 같은 걸 파는 곳이었는데, 그분 말씀에 따르면 그 자리에서 30년이나 운영을 하셨다고 한다. 그러면 내가 5년 전에 왔을 때도 있었을 텐데 들러 보지 않아서 몰랐다. C양은 그 사람과 또 유창한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는 엽서를 몇 장 샀다… 그분은 평상복 위에 료칸 하오리를 걸친 우리 모습을 보고는 ‘뉴 룩’이라며 웃으셨다. 저 좀 괜찮은가요?(괜히 으쓱) 음 사실 그냥 약간 쌀쌀했던 거긴 한데… 날이 흐려서 망정이지 안 그랬음 지금쯤은 더웠을 거예요…

그러고 났더니 유후인 기차역 근처까지 내려와 있었다. 나는 되짚어 올라가면서 아까 점찍어 두고 들르지 않았던 가게들에 들러 쇼핑을 마치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C양은 관광객들이 잘 가지 않는 길로 가 보고 싶어했다. 탐험가 정신이다. 보고 싶다는데 못 볼 것? 없죠? 그래서 우리는 큰길에서 갈라져 나온 골목으로 방향을 틀었다.

충격실화 저 오른쪽 노란색 학교 같은 건물 = 호텔… 누가 얼마나 묵을지는 잘 모르겠다. 유후인 오면 보통 료칸 잡는 것 같으니까… 차가 제법 있는 걸 보면 나름대로는? 장사가 되는 걸지도…?

그러고는 저 호텔 앞을 지나쳐 계속 걸었다. 정말 사람이 없었고, 더구나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못 만났다. 고로 이 뒤로는 누가 여행기에 잘 안 올릴(것 같은) 풍경들이다.

더 가려면 갈 수 있었는데 이 시점에서 비가 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번에야말로 왔던 길을 되짚어 점찍어 뒀던 가게에 들렀다. C양은 선물로 가져갈 과자를 사고, 무슨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군고구마도 샀다. 나는 속에 크림이 든 롤케이크 조각을 샀다. 저녁 먹기 전에 먹어야지.

(이케요)

이날 료칸에 다시 돌아와서 열쇠를 찾으면서 역으로 가는 택시를 부를 때 카드가 가능한 기사님을 불러 달라고 다시 한 번 카운터에 부탁을 했다. 웬만하면 될 텐데, 하고 주인분은 놀라시는 눈치였다… 아니 그럼 우리를 실어 온 그 사람은 뭐냐. 어쨌든 확답을 받고 나는 안심했다. 이것으로 내일 오전에는 C양의 현금을 축내지 않아도 된다.

아무튼 먹고 놀았으면 탕에 들어가고 해야죠. C양은 원래는 대욕장에 관심이 없었는데,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얘기를 듣고는 좀 혹한 눈치였다. 그리고 한 번 가 보더니 오히려 개인탕보다 넓고 쾌적하다며 대욕장을 훨씬 마음에 들어 했다. 나도 밥 먹기 전에 다시 한 번 가 봤다. 역시나 오늘도 사람이 없다. 그 와중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수건을 놓고 오는 바람에 물을 닦지 못 하고 거기 서서 말렸다(…) 이런 멍청한 짓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동안에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나는 방으로 돌아가 OK사인을 보냈고, C양은 저녁 이후 대욕장에 가기로 했다.

아주 잘 먹고 다니고 있다. 여행 전반부가 온갖 잡념과 분주한 걸음으로 점철되었던 걸 생각하면 다른 여행 수준이다(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이쯤 되면 전반부는 관광 후반부는 휴양 아닌가…? 아니 전반부는 쇼핑 후반부는 휴양이라고 해야 하나…?

료칸의 풍경은 해질녘에도 아름다웠다…

그날 저녁 C양이 물었다. 로프트에 곰을 사러 갈 거냐고. 나는 좀 고민 중이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그 정도로 마음에 들면 사라고 했다. 나는 원래 혼자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같이 가 준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마음을 좀 굳혔다. 그래. 곰을 데리러 가야겠다.

다음날 우리는 또 좀 일찍 일어나서 대욕장과 개인탕으로 흩어졌다. 2박 3일을 묵었는데 수온 맞추는 기술이 좋아지지 않는 건 도통 이유를 모르겠다. 이 물에 몸을 담글 일도 최소 몇 년은 없을 테니 아쉬움을 남기지 않으려고 좀 오래 머물렀다. 체크아웃하고 나면 짐과 함께 유후인 역 앞에 떨어질 텐데 어딜 가서 뭘 하며 12시까지 있어야 할지 좀 고민이었다. 물론 나의 고민과 상관없이 아침밥 시간은 찾아온다.

잘 먹겠습니다.

그 뒤에 짐을 꾸려서 체크아웃을 하러 나왔다. 우리 말고도 한 팀이 체크아웃을 하는 중이었다. 짐은 료칸 직원들이 받아다가 택시에 실어 준다. 그런데 계산할 것 다 하고 나가서 택시를 타려고 보니 직원 한 명이 무척 당황한 얼굴로 막 손짓하고 있었다. 나를 부르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이쪽이 부용입니다!’ 아, 짐이 다른 택시에 실린 모양이었다. 나는 내 캐리어가 실린 택시 기사와 원래 우리가 탔어야 할 택시 기사와 당황한 료칸 직원을 마구 번갈아 보다 ‘카드 되는 분으로 부탁드렸는데요’ 같은 소리나 했다. 다행히도 내 캐리어가 실린 쪽 택시 기사가 자기도 카드 받는다고 했다. 다시 짐을 옮기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안심하고 택시에 올랐다. 그리고 5분(체감)만에 기차역 앞에 던져졌다.

유후인노모리 기차에서는… 에키벤을 살 수 없다. 미리 사 둔 도시락 수령만 가능하다. 그걸 미리 알았더라면 뭐 어떻게 일찍 샀을 텐데 그걸 몰랐다. 그럼 유후인 역 근처에서 도시락을 사면 되지 않나 생각하겠지만, 바로 근처에서는 가게가 안 보인다. 있을 수도 있는데 일단 나는 못 찾았다. 게다가 C양의 캐리어는 든 게 많아서 그냥 딱 보기에도 무거워 보인다… C양은 근처에 있는 가게에서 시간을 때우자고 했다. 물품보관함 가격이 워낙 비싸서 차라리 그게 이득일 것 같았다.

…망할 놈들이 또 카드를 안 받는다. 유명한 주제에! 유후인에만도 지점이 두 개나 있는 주제에!!

(참고로 C양의 한줄평 : “유명한 것치고 맛은 평범하네“)

어쨌든 가방을 맡겨 두고 쉴 수 있었으므로 괜찮았던 것으로 치기로 한다.

그리고 시간이 되어서 기차를 타러 갔는데… 유후인 역에서는 기차를 돌릴 공간이 없다. 다시 말해서, 기차는 들어온 후 앞뒤 방향을 바꾼다. 이제까지 머리였던 곳이 꼬리가 되고, 꼬리였던 곳은 머리가 된다. 말로 설명하긴 좀 난해하니 그림으로 그리자면 대충 이런 느낌이다.

요컨대… 유후인에 올 때 1호차 1열 ab가 명당이었다면 유후인에서 하카타로 돌아갈 때는 4호차 14열(맞나? 아무튼 맨 마지막 열) ab가 명당이 된다. 나는 열차가 뒤집힐 것을 고려해서 좌석을 잡은 거였는데… 실제로 잡은 좌석은 ‘1호차’ 13열 ab였다… 아니 나는 갈 때는 오른쪽 보고 올 때는 왼쪽 보고 해서 양쪽 다 구경하자 뭐 그런 생각이었는데… 뒤로 가면 14열 쪽이 명당이려니 생각도 했는데…

Q. 생각을 다 했다면서 어떻게 결론이 갈 때 1호차 5열 ab, 올 때 1호차 13열 ab일 수가 있지요

A. ……

햇빛 안 들이친 것에 감사하기로 하자(오후 타임엔 ab 쪽이 햇빛이 안 듦)… 기차표 끊으실 분들은 참고하십시오… 저는 모든 정보를 다 드렸습니다…

하카타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한큐 백화점(였던 듯) 9층(였던 듯)으로 올라가서 가방을 물품보관함에 맡겼다. C양에 따르면 100엔 넣고 쓰는 곳인데 4시간 내에만 꺼내면 100엔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했다. 다행히 칸이 두 개 있어서 둘 다 캐리어를 맡길 수 있었다. C양은 C브랜드에서 귀금속을 사기로 마음을 먹었고, 그를 위해 S 편의점의 ATM을 찾아야 했다. 거기까지는 뭐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하카타역이다.

나는 이번에 하카타역을 겪은 후, 다른 사람한테 이곳을 설명해야 할 때 이런 식으로 설명하게 되었다. ‘1호선과 2호선과 공항철도와 KTX가 다 다니는 환승역인데, 지상에는 백화점과 아울렛이 있고 지하에는 잠실 지하상가가 있는 곳’. 근데 이 말로도 모자랄지 모르겠다. 왜 역 출구가 중앙에만도 16개나 있지요? 왜 동쪽에 출구가 7번까지 있지요? 왜… 2번하고 5번이 보이는데 4번이 안 보이지요…? C양과 머리를 맞대고 아무리 지도를 들여다보아도 도대체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는 하카타역 근처에서 뺑뺑이를 40분쯤 돌고 있었고, C양은 분노와 오기로 점점 기분이 나빠지는 듯했다… 우리는 지도를 보며 지상에서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를 돌고, 그 다음에는 어떤 블로거의 사진 첨부된 여행기를 따라 지하에서 또 두 바퀴를 돈 끝에 드디어 마침내 결국은 ATM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C브랜드의 맛있는 사과주스를 또 축내고… 귀금속을 손에 넣고… 택스 리펀을 신청하고 나니 나는 또 C양의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시간도 많이 됐고, 저녁도 못 먹었고, 로프트 가려면 지하철로 또 이동을 해야 하고, 그 돈을 또 C양이 내 줘야 하고… 그러나 C양은 태연하게 리펀으로 받아온 현금을 건네는 것이다. 가자고. 그래서… 결국… 갔다. 아니 갔는데 그 곰돌이 코너에 곰이 없는 것이다. 그새 누가 사갔나? 하긴 너무 귀여워서 그럴 법도 하긴 했는데, 아니 그렇긴 한데 - 온갖 생각을 다 하며 다가갔더니 곰이 다른 곰들 뒤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누가 잘못 놓았나 싶었다. 어쨌든 있다. 있다!!

(이 사진을 본 친구의 한줄평 : 왤케 사람같이 누워 있지)

그러고 나서 우리는… 하카타역으로 되돌아왔다. 그 와중에 내가 방향을 잘못 봐서 거꾸로 한 정거장 갔다가 다시 되돌아왔다. 원래는 캐리어를 찾은 후 초밥을 저녁으로 먹으려고 했는데 사람이 너무 많고, 비행기 시간도 걱정되어서 결국은 뭘 못 먹고 공항으로 바로 갔다. C양은 선택의 여지 없이 캐리어를 부쳤고, 나는 들고 탈 계획이었다. 비행기 타기 전 검사 중에 가위가 걸리기 전까지는.

직원 : 이건 가지고 탈 수 없어

나 : 포장도 안 뜯었는데도?

직원 : 안 돼 안 돼 버리든가 나가서 부치고 다시 와

나 : 아 도로 나가도 되는 거임?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뒤에서 어떤 부부가 호들갑을 떨며 지나갔다.

여자 : 어우 무서워 저런 걸 들고 타려고 하다니

남자 : 여행 안 다녀보면 모를 수도 있지

여자 : 저걸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 아휴 너무 무섭다

나 : ……(그래 포장도 안 뜯은 가위로 사람을 찌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마)

그래도 참았다. 가방을 도로 질질 끌고 나가서 수하물로 부치고 다시 검사를 통과했다. 원래는 공항 가서 뭘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공항에 먹을 게 없었다… 뭔 놈의 공항에 먹을 것이 커피하고 편의점밖에 없냐… 그렇다 나는 이 와중에 C양을 굶기고 만 것이다… 우리는 카페에서 피자와 요거트 그래놀라를 사고,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다가 저녁을 때우고 한국으로 되돌아왔다.

근황1 : C브랜드 귀금속은 대행을 부탁한 이에게 잘 건너갔고 정산도 마무리되었습니다. 저의 온갖 쓸데없는 걱정은 기우로 끝났다.

근황2 : 곰인형은 제 베개맡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름도 지어 줬다고요. ‘보리’. 그리고 집에 데려올 때까지 몰랐는데… 이녀석 입이 있었다…

근황3 : 이제 내년까지 여행기 없습니다 아마 해외여행 자체도 안 갈 것 같고… 매번 다음 편 쓰려고 앉을 때마다 스스로의 게으름을 새삼 깨닫는 나날이었다

여행 관련 정보 필요하신 분들은 물어보시면 아는 만큼은 알려 드립니다… 많이 안다고는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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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배부른 페가수스

    여행내내 내가 한 생각 배부르다 배고프다 오.풍경. 오.맛있다. 오.구매. 오.맥주. 오.새. 오.온천. 오.곰돌이. 밖에 없는데 이렇게나 제 눈치를 보고 계셨다니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곰돌이는 정말 굿구매 굿구매였어요 C브랜드 산다고 atm찾기 똥꼬쇼한것도 지금 돌아보니 추억이네요 은해님과 함께해서 너무 즐거운 여행이었다 내년에 또 어딘가 가요 저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으니 제발 제 눈치 보지 마시고... 여행기 써줘서 고맙읍니다 덕분에 기억이 증발되지 않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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