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이카루스의 날개

잘 지내다가 이제와서 무슨 소리야.

그냥 그렇게 하는 건 어때요. 처음으로 돌아가는 거잖아요. 

아주 지독한 장마였다. 

밤낮 안 가리고 쏟아지는 거센 빗줄기는 창문을 타고 벽을 마구 긁었다. 바깥의 일인데도 선연하게 들려오는 빗소리가 딱 절반의 짐이 사라진 공간을 대신 메워줬다. 이 절반의 짐이 들어찬 건 얼마나 되었더라.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게 작은 식물을 사다가 이 창가 근처를 메웠더란다. 그래서 그 식물들은 자리에 그대로 뒀다. 어쩌면 그게 네게 안 좋은 작용이 될지라도. 식물은 원래 자리를 옮기는 존재가 아니니까, 여기를 훨씬 좋아할거다. 빗소리가 선연하게 들려오고, 따스한 온기가 맴도는 이 집을. 

아주 오래 전에 나의 집은 차가운 냉기만 가득했다. 내 몸에 남아있는 열기마저 뺏어갈 듯이 매섭게 후려갈기는 바람이 들락날락하는 그 집은 아주 작고 낮았다. 그게 언제의 일이냐면, 벌써 수년은 지난 나의 첫 집이었다. 누구든 고개를 숙이면 볼 수 있는 반지하의 작은 원룸이 나의 세상이었다. 창문을 열 때는 블라인드를 꼭꼭 끼고, 모기장에 억지로 붙인 잠금장치를 꽉 닫아두었다. 여는 의미가 있는지조차 알 수 없던 시절의 나는 적어도 미약한 자유를 느꼈더란다. 그 집에서 두 해를 넘게 버티다가 시간이 되어 그 집을 나오니 나의 세상은 비로소 넓어졌다. 

저희가 얼마나 같이 지냈었죠, 형?

적어도 삼 년은 같이 있었겠지. 

그러니까요, 이제 그만 서로를 놓아줄 때도 된 것 같아서요. 

무슨 헛소리야?

날이 선 말과 눈을 마주하자니 처음 저 사람을 마주한 그 날이 생각나서 웃음이 설핏설핏 입가 사이로 흘러나올 것만 같아서 입술을 앙다물었다.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일까. 그 낡은 건물의 뒷골목에서 새하얀 와이셔츠 위에 핏물을 잔뜩 담고 비틀거리던 나를, 그때의 저 사람은 어떻게 보았을까. 

형, 저 이제 좀 더 자유로워질래요. 

자유를 얻을 수 없는 사람이 자유로워지려면 이카루스처럼 날개를 만들어야죠. 태양에 불탈 수도, 바다에 떨어져버릴 수도 있지만, 찰나의 자유를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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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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